166화 빨리 끝낼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전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온갖 강력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기량을 닦아온 일행에게 D급밖에 안 되는 자이언트 스파이더는 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거미줄과 독침도 공허진이 사용하는 정화 스킬에 의해서 모두 해결되었고.
유일한 문제점은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그것에도 해결책이 있었다.
"파이어 볼 갑니다!"
콰쾅!
주선우가 던진 화염구가 폭발을 일으키자 좁은 곳에 모여 있던 수십여 마리의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일시에 소각되었다.
덕분에 강주혁이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
"이야, 성능 확실하네. 우리 선우가 언제 이렇게 컸지?"
유덕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선우 씨 이제 우리 팀 에이스입니다."
강주혁이 대신 답했다.
"에이스라뇨. 팀장님이랑 공허진 대리가 있는데 제가 감히……."
주선우가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에이스 맞아요.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공허진도 엄지를 세워 보였다.
"오늘 분위기 좋은데요. 이참에 쭉쭉 밀어붙이죠."
안다정이 건의했다.
"좋아. 돌격!"
하지만 유덕현의 외침은 무색해졌다.
자이언트 스파이더들은 줄행랑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끼익! 끼익!
"뭐, 뭐야? 왜 저래?"
"……우리가 무섭나 봅니다."
일행이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자 거미들은 싸우다 말고 달아났다.
"저리로 가버리면 잡을 수가 없는데."
그리고 대부분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구멍으로 달아났기에 추격도 할 수 없었다.
"난감하네."
"다른 팀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 친구들이라고 별수 있었을까? 그냥 나중에 검사받을 때 안 튀어나오기를 빌었겠지."
"일단 계속 가 보죠."
안다정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녀답지 않게 마음이 좀 급한 것 같았다.
"그래."
일행은 동굴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중간에 거미줄이 빡빡하게 쳐져 있는 곳도 있었지만 주선우가 만들어낸 화염으로 모두 걷어낼 수 있었다.
통로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바닥이 어둠에 잠겨 있었고, 천장에는 종유석이 가득했다. 다행히 자연적으로 생성된 돌다리가 반대편까지 이어져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서 아래로 내려가면 되는 거지?"
유덕현이 돌다리 반대편의 동굴을 가리켰다.
"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내려가면 됩니다. 층으로 구분하면 8층이고요. 내려갈수록 규모가 더 커진다고 했습니다."
강주혁이 부연했다.
"시간은?"
"진입하고 15분 지났습니다."
"벌써?"
"전투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젠장. 신광 놈들은 어떻게 이런 곳을 두 시간 만에 끝낸 거야."
유덕현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두르죠."
안다정이 다시 한번 일행을 재촉했다.
"그래."
일행은 돌다리를 건넜다.
툭!
강주혁은 돌다리를 건너다가 일부러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발로 찼다.
그냥 찬 게 아니라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후에 찬 것이다.
다리 밖으로 날아간 돌멩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주혁은 청각에 내공을 집중했다.
툭!
아주 미세하지만 강주혁이 기대하던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강주혁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왜 그래?"
"빨리 끝낼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뭔데?"
"선우 씨, <페더 폴(feather fall)> 사용할 수 있죠?"
페더 폴은 깃털이 떨어지듯이 대상을 천천히 떨어지게 만드는 공기 속성의 마법이다.
전투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대상의 낙하 속도를 현저히 줄여줌으로써 지형적인 제한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입니다."
"페더 폴을 사용한 다음, 여기에서 뛰어내리는 겁니다."
"뭐?"
네 사람 모두 경악했다.
"공략 보고서에 첨부되어 있던 던전 지도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여기를 지상 1층이라고 했을 때 저 아래에 지하 7층의 돌다리가 있습니다. 페더 폴을 사용하면 낙하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다리를 다쳐도 공허진 대리가 치료해 줄 수 있고요."
"……."
"……."
"설사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낙하 지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잖아."
돌다리 아래는 깜깜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방금 찾았습니다."
"뭐?"
"잘 들어보세요."
강주혁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좀 전에 떨어뜨린 방향을 날렸다.
일행은 귀를 쫑긋 세운 채 결과를 기다렸다.
"소리가 들렸어요! 바닥이 있어요!"
안다정만이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안 팀장님, 좀 전의 그 방향으로 빛나는 화살 하나만 날려주세요."
"알겠어요."
안다정은 내공을 살짝 실어서 화살을 어둠 속으로 날렸다. 일행은 경계에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푸르스름한 내공의 빛이 어둠을 가르면서 날아갔다.
팍!
화살이 바닥에 닿으면서 아래층에 있는 돌다리가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찾았어요!"
"역시나 있군요."
"저, 저기로 뛰어내리는 거예요?"
강주혁과 안다정은 기뻐했지만 공허진이 핏기가 가신 얼굴로 물었다.
돌다리 옆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돌다리에 착지하지 못한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낙하 방향을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내공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헌터들은 주변 공기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그것만 있어도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저기로 내려간다고 해서 공략이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이 안에 있는 놈들을 모두 잡는 게 우리 목적 아니야?"
유덕현이 반문했다.
"이곳의 보스는 여왕 거미입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들은 여왕의 안위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
"……!"
"……!"
"지하 8층에 있는 보스를 공격하면 이 동굴에 있는 자이언트 스파이더들이 모두 보스 룸으로 몰려들겠군요."
안다정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자이언트 스파이더들과 싸워본 헌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여왕을 공격하는 순간,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부하들이 떼거리로 튀어나오는 걸 경험해 봤을 것이다.
"맞습니다. 여왕을 위협하기만 하고 죽이지 않으면서 부하들이 모두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아마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숨어 들어간 놈들도 모두 몰려올 겁니다."
"역시 주혁이 넌 천재구나."
유덕현이 강주혁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운 좋게 얻어걸린 겁니다."
강주혁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우린 그게 운이 아니라는 걸 알죠. 강 팀장님 덕분에 옛날 생각나네요. 평범한 방법으로 공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죠."
안다정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제야 공략할 맛이 나네. 한번 해보자. 일단, 내가 선두로 내려가고. 다음에 주혁이가 허진이 데리고 뛰어내려. 선우야, 두 명한테 걸어 줄 수 있지."
"아, 네. 부장님."
주선우는 정말로 이 계획이 받아들여질 줄 몰랐는지 잠시 당혹스러워했다.
"안 팀장이 선우 좀 챙겨주고."
"같이 내려갈게요. 부장님도 조심하세요."
"오케이. 선우야, 나한테 먼저 걸어줘."
"네. 부장님."
주선우의 손에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서 유덕현을 감쌌다.
"부장님, 이거 가져가십시오."
강주혁은 빛나는 돌멩이를 건넸다.
"야광석도 챙긴 거야?"
짧은 공략이고, 조명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주선우가 있어서 굳이 안 챙겨도 되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다.
"밑에 도착하시면 흔들어주세요. 뛰어내리는 사람이 착지 지점을 알 수 있도록."
"예나 지금이나 철두철미하구나."
"안 그러면 강 팀장이 아니잖아요."
유덕현과 안다정이 웃음을 지었다.
"안 팀장, 길 좀 밝혀줘."
"알겠어요."
안다정이 다시 한번 화살을 날려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돌다리를 드러나게 했다.
"오케이. 조심해서 내려와!"
탁!
유덕현은 거리낌 없이 다리 밖으로 몸을 날렸다. 페더 폴을 쓴 덕에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낙하 속도가 느려졌다.
슉!
안다정은 유덕현이 제대로 돌다리에 착지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빛나는 화살을 날렸다. 유덕현을 피해간 화살은 어둠을 가르면서 그가 착지할 곳을 밝혀주었다.
"됐어요."
유덕현이 무사히 착지했다. 다시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유덕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이 생겨났다.
유덕현이 야광석을 흔들어 보였다.
"선우 씨, 저랑 공 대리님도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주선우가 두 사람에게 페더 폴을 걸어주었다.
강주혁은 얼어붙어 있는 공허진의 손목을 잡았다.
"정 무서우면 눈 감아도 돼요."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공허진은 눈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그동안의 공략으로 단련이 된 것 같았다.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강주혁은 공허진을 데리고 뛰어내렸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낙하 속도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빨랐다.
"으으."
공허진은 공포심에 인상을 쓰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어차피 어둠 속이라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저 멀리에 있는 야광석의 빛이 빠르게 커져 갔다.
강주혁은 내공으로 바람을 조정하면서 방향을 잡아갔다.
슉!
두 사람 옆으로 안다정이 쏜 화살이 날아갔다. 순간적으로 어둠이 밀려나면서 돌다리가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안다정이 쏜 화살이 유덕현의 바로 뒤에 꽂혔다.
"으익! 야, 안 팀장!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유덕현이 엄살을 피우면서 소리를 질렀다.
쿵!
그 사이에 강주혁과 공허진은 착지했다.
"악!"
공허진이 짧은 비명을 토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낙하 속도를 줄였는데도 다리에 꽤 큰 충격이 가해졌다. 페더 폴만으로는 속도를 줄일 수는 있지만, 낙하 충격을 완전히 상쇄할 순 없었다.
"괜찮아?"
"네. 부장님이랑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공허진은 고통에 울상을 지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했다.
"나도 좀 삔 것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
"……앞으로 탱커는 네가 해라."
"네. 부장님."
"치료는 나중에 하고 일단 남아 있는 사람들 맞이하자고."
세 사람은 야광석을 꺼내서 흔들어 보였다.
안다정이라면 하강 중에도 화살을 정확하게 날릴 수 있지만 주선우까지 챙기면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옵니다."
잠시 후, 어둠을 가르면서 안다정과 주선우의 신형이 나타났다.
"우악!"
안다정은 돌다리 위에 사뿐히 착지했으나 주선우는 발을 헛디뎌서 돌다리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강주혁이 팔을 뻗어서 주선우를 잡아챘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돌다리 위로 올라온 주선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공허진은 다리를 다친 사람들을 치료했다.
"저기가 보스 룸이겠지?"
유덕현은 돌다리가 끝나는 곳에 있는 동굴을 보면서 씩 웃었다.
"네. 부장님."
"서두르자."
일행은 곧장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끼이익! 끼이익!
승용차 크기의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거미줄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 동굴의 보스인 여왕 거미였다.
주변에는 수백 마리의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부하들이 더 이상 안 나올 때까지 여왕은 죽이면 안 됩니다."
"오케이. 다들 주혁이 말 들었지?"
"네."
"시작하자고."
콰르르.
강주혁의 검신에서 세 가닥의 불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 * *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S급도 넘어선 사람 한 명과 S급에 준하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는 팀이다. 랭크는 낮지만 실력이 좋은 마법사도 있고.
반면에 여왕 거미의 랭크는 B급. 일행은 여왕 거미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면서 몰려드는 거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한창때는 수천 마리에 달하던 거미들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수백에서 수십, 나중에는 대여섯 마리가 될 때까지도 물러나지 않고 일행에게 돌진했다.
위협을 느낀 여왕이 계속해서 부하들을 닦달한 결과였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궁지에 몰린 여왕이 발작적으로 외쳐댔으나 더 이상 부하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끝난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습니다."
"끝내자."
"제가 할게요."
공허진이 철퇴를 들고는 걸어갔다. 철퇴의 머리 부분이 새하얀 빛에 감싸였다.
콰직!
공허진이 여왕 거미의 머리통을 부수었다.
"네가 저렇게 만든 거다."
유덕현의 말에 강주혁이 떨떠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간은?"
"여기까지 58분 걸렸어요."
안다정의 답변에 유덕현이 씩 웃었다.
"한숨 자고 올라갈까?"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