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곧바로 들어가시죠
공략을 위해서 톨게이트로 가는 길.
"준비할 때만 해도 안 그러시더니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강주혁은 낯빛이 검게 변한 유덕현을 보고 웃었다.
"분위기가 바뀌었잖아. 아니, 광야에 있는 공략회사들끼리 한 판 붙는다는 걸 우리 와이프도 알더라니까. 이런 건 업계사람들만 알아야하는 거 아니야?"
"아마 크리스 바셋 때문이지 않을까요? 미국의 유명헌터가 한국에 왜 온 건지 다들 궁금해 하잖아요. 딱히 회사에서 대외비로 취급한 것도 아니고요."
강주혁이 그럴 듯한 추측을 내놨다.
"요새 헌터 관리국 비리 때문에 사람들이 헌터 업계에 관심이 많잖아요. 게다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경쟁한다는 것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미있잖아요."
"덕분에 우리 부담감만 배가 되었지. 우리가 무슨 국가대표도 아니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한다고 할걸."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너희들은 안 떨려? 우리 신광한테 밀리면 엄청 욕먹는다."
"그냥 공략 들어가는 거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평소처럼 하면 되죠."
"저도 괜찮아요."
"저도요."
강주혁, 안다정, 공허진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주선우는 유덕현과 마찬가지로 체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선우야, 너는 긴장되지?"
"네. 부장님. 하하. 평소하고는 느낌이 다르네요. 그냥 공략이 아니다 보니……."
"봐. 이게 정상이지."
유덕현은 주선우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안 좋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유덕현이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직급이 무려 부장이다. 나머지 세 사람처럼 동고동락하면서 친해진 것도 아니고.
"쟤들은 전부 외계인이야, 외계인. 같은 지구인끼리 잘해보자."
"네. 부장님."
유덕현이 주선우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톨게이트에 도착한 일행은 태원공략이 사용하는 출입구가 아니라 한준공략이 사용하던 출입구로 들어갔다.
한준공략이 광야에서 쫓겨나는 걸로 결정이 났다고 해서 곧바로 철수한 것은 아니다. 몬스터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지역에 공략 공백이 생기면 안 되니까.
후임 회사가 결정되고 인수인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한준공략은 여전히 자신들의 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일행은 톨게이트 입구로 들어가서 인사했다. 한준공략의 직원들과 헌터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태원공략에서 오셨죠?"
강주혁 또래의 남자가 사무적이고 건조한 태도로 일행을 맞이했다.
귀화초 서식지를 조사하러 갔을 때 관리국 소속의 헌터들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사람.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풍기는 기세가 대단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이 공략팀을 담당하고 있는 유덕현 부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부장님. 헌터 관리국의 김철수 주무관이라고 합니다."
헌터 관리국이 초토화되었지만 헌터와 관련된 공공업무를 할 수 있는 기관은 헌터 관리국뿐이다. 회사들의 공략 경쟁을 주관하는 정부 기관도 결국엔 헌터 관리국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도 성함과 직함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다정 팀장이에요."
"강주혁 팀장입니다."
"공허진 대리예요."
"주선우 사원입니다."
"다른 회사하고는 상이한 구성이군요."
김철수는 자신의 폰으로 신원을 체크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팀워크를 중시하는 편이죠. 그렇다고 실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는 길에는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내던 유덕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김철수는 강주혁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당 지역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일행은 김철수를 따라 이동했다.
"헌터 관리국에 주무관님 같은 실력자가 있는 줄을 몰랐군요."
가는 길에 유덕현이 김철수에게 말을 붙였다.
유덕현 역시 김철수가 강주혁 못지않은 실력자라는 걸 느낀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김철수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이 정도 인재라면 공략회사에서 임원 코스를 밟고도 남는다. 그리고 강주혁처럼 헌터 업계 전체에 이름을 떨칠 만큼 유명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회귀 전에도 후에도 김철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특이한 케이스군.’
헌터 관리국도 공공기관치고는 연봉이 높지만 당연히 대형 공략회사만큼은 아니다. 대형 공략회사에 들어갈 만한 실력이 안 되거나 직장의 안전성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헌터들이 헌터 관리국을 택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 권력의 맛을 본 이들은 대개 최도준처럼 그것을 이용해 돈을 만져보려고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도준의 폭로에도 이렇게 일선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김철수는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명감 때문인가.’
정말 극히 드물지만 헌터 관리국이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것처럼 사명감이나 애국심 때문에 관리국을 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회귀 전에도 후에도 실제로 그런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강주혁 팀장님."
강주혁이 생각에 잠긴 채 걷고 있는데 김철수가 걷는 속도를 줄여서 강주혁 옆으로 왔다.
"네."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최도준 전 부장이 기자 회견을 하기 일주일 전쯤, 팀장님께서 관리국에 전화를 하셔서 최 전 부장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랬죠."
"어떤 연유에서 연락하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도는 정중했지만 묘하게 심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전에 제가 헌터 관리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저한테 협박을 하더군요."
"협박이요?"
"뒤를 봐줄 테니까 돈을 달라고요."
강주혁은 작게 말했지만 같이 걷던 일행들도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뭐? 그 사람이?"
"정말이에요?"
"아니 자기가 뭔데 뒤를 봐준대요. 강 팀장님은 뒤를 봐줄 필요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일행은 화들짝 놀래서 발걸음을 멈췄다.
"왜 하필 강주혁 팀장님께 그런 요구를 했을까요?"
김철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놈 봐라.’
최도준이 돈을 뜯어낼 생각을 한 건 강주혁에게 출신 성분이라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강주혁이 경산마존의 손자라는 걸 모른다. 김철수는 그걸 알고 저런 질문을 던진 것 같았다.
"최근에 제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강주혁은 일단 둘러대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따로 만난 겁니까?"
김철수가 물었다.
"네."
일행은 또 한 번 놀랐다.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궁금하군요."
"별걸 다 궁금해하시는군요."
"강 팀장님이 비리 사건의 피해자로 거론되지 않아서 여쭤보는 겁니다. 공식적인 조사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질문이니 내키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도준과 개인적으로 만났는데 그 내용을 밝히기를 꺼려하면 강주혁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살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다행히 최 전 부장이 제 잔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군요."
"그렇군요."
농담에 가까운 답변이었음에도 김철수는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강주혁을 놀라게 만들었다.
"저는 혹시 누가 최 전 부장에게 최면이라도 걸었나 했습니다."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짓을 못하지."
유덕현이 눈치 없게 끼어들었다.
"맞아요. 그 사람도 나중에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어요?"
최도준에게 걸린 정신지배의 효력은 영원하지 않다. 다크 엘프 제사장 수준으로 만들려면 주기적으로 정신지배 목걸이를 사용해야 하는데 강주혁은 딱 한 번만 사용했다.
그 결과, 최도준은 구치소에서 정신을 차렸고 자신이 한 말은 모두 거짓이고 자신이 잠시 미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물증까지 다 제출한 상황이라서 사건을 뒤집을 순 없었다.
"강주혁 팀장님이 한준공략과의 합동 공략에서 최면을 이용해서 보스를 처리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철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어떤 경로를 이용한 건지는 모르지만 한준공략의 공략보고서를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아니면 함께 한 한준의 헌터들에게 들었거나.
공허진은 흠칫하고 놀라더니 강주혁과 김철수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봤다.
"그곳에 있던 헌터가 제사장에게 최면을 걸어 놓은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그 헌터가 죽은 후에도 명령권이 유지되었죠."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특이한 케이스죠."
"마치 저를 의심하시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강주혁이 김철수를 바라보았다.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마치 심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런 건 아닙니다."
"김 전무님은 최 전 부장의 원수라도 갚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면 최 전 부장 때문에 헌터 관리국이 쓰레기 취급당하는 게 억울하신 겁니까?"
"주혁아, 말이 너무 지나쳤다. 주무관님도 그만하시죠. 주혁이 그런 사람 아닙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처럼 보이자 유덕현이 끼어들었다.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저는 최 전 부장의 폭로가 헌터 관리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일이었죠. 저는 다만."
김철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강주혁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다른 이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힘이 나타난 게 아닌가 걱정이 될 뿐입니다. 그런 힘이 있다면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없애 버려야할 것 같아서요."
"그런 힘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죠."
강주혁도 담담하게 답했다.
‘보통내기가 아닌 건 확실하군.’
강주혁은 어떤 식으로든 김철수와 한 번 붙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얘기가 길었습니다. 어서 가시죠."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웨이포인트를 거치고 도보로 다시 20분 정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각기 다른 회사에서 파견된 세 명의 감독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서 참가하는 회사를 제외한 세 회사에서 한 사람씩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이 지역에 대한 공략 보고서는 보셨죠?"
김철수가 물었다. 공략의 안전성을 위해서 참여하는 모든 회사에 한준공략이 작성한 공략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해줬다.
태원공략의 대표팀도 그 공략보고서를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한 상태였다.
"물론입니다."
"저 동굴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제거하시면 됩니다. 공략 종료를 선언하시면 감독관들이 점검에 들어갈 겁니다. 몬스터가 한 마리씩 발견될 때마다 기록에서 5분이 추가됩니다. 치유가 불가능한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올 경우 실격처리됩니다."
공략을 빨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철수를 포함한 네 명의 감독관은 시계를 조정했다. 스톱워치가 작동하지 않는 던전이기에 태엽시계를 이용해야만 했다.
"현재 시각은 10시 29분입니다. 언제 시작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할까?"
유덕현은 강주혁을 바라봤다.
좀 전에 김철수랑 실랑이를 벌인 것 때문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곧바로 들어가시죠. 점심은 나와서 먹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강주혁은 괜찮다는 뜻에서 빙그레 웃어보였다. 유덕현도 마주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곧장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시각 10시 30분입니다. 지금부터 카운트하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일행은 곧장 동굴로 들어갔다.
"선우야, 라이트 켜자."
"네. 부장님."
주선우가 조명 마법으로 시야를 밝혔다.
"전방에 거미 떼예요."
이 지역의 몬스터들은 자이언트 스파이더. 생긴 건 거미랑 똑같지만 크기는 사람의 절반 수준으로 크다.
개별적인 전투력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지만 수백 많게는 수천 마리가 떼거리로 몰려다니기에 상급 헌터들에게도 난적으로 통한다.
거미줄을 뿌려서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한 후 독침으로 공격하기에 상태이상을 없애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속전속결로 끝내자."
"네. 부장님."
"가자."
유덕현이 방패를 앞세우고 거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