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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62화 (162/202)

162화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까?

"어디로 가는 거야?"

윤정석이 김종수에게 물었다.

"어디긴 어디야. 형님들의 아지트지."

김종수가 무뚝뚝하게 답했다.

늘 쾌활하던 양반이 오늘따라 엄청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덩달아 그를 따라온 윤정석까지 불안해졌다.

두 사람은 인천항의 한 부두에 있었다.

선적을 기다리는 수백 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고, 철조망이 구역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들어와."

김종수는 철조망에 달린 문을 가지고 있는 열쇠로 열었다. 열쇠까지 가지고 있는데도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꼭 무슨 범죄자 같았다.

‘뭐야. 모양 빠지게.’

윤정석은 쥐새끼처럼 구멍으로 숨어드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얼굴을 구겼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강주혁이 시킨 일이기 때문에 꾹 참았다.

"가자."

김종수는 앞장서서 쌓여있는 컨테이너 사이로 들어갔다. 컨테이너들이 다들 똑같이 생긴 탓에 꼭 미로를 헤매는 것 같았다.

"다 왔다."

김종수는 한 컨테이너 앞에서 멈춰 섰다.

"지금부터는 공손하게 구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랬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까."

김종수는 잔뜩 위축된 상태로 덧붙였다. 늘 껄렁껄렁한 모습만 보이던 사람이 공손을 거론하니 기분이 상당히 이상했다.

"종수 형."

"왜?"

"솔직히 말해서 그냥 돌아가고 싶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만나고 싶지는 않네."

"한번 믿어봐. 새끼야. 직접 만나보면 생각이 싹 달라질 거니까."

"알았어."

"후우. 들어가자."

김종수는 긴장이 되는지 심호흡까지 한 번 했다. 그리고는 컨테이너의 문을 규칙적으로 몇 번 두들겼다. 잠시 후, 반대편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윤정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정도면 자기는 손도 못 댈 강자다. 물론, 강주혁 정도는 아니었지만.

김종수는 열쇠를 이용해 손잡이에 감겨있는 자물쇠를 풀었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돌려서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검은 전투복에 복면을 쓴 사람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신분을 드러낼 만한 모든 걸 가리고 있는데도 존재감이 강렬했다. 김종수의 말대로 범상치 않은 실력자인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김종수는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러면서 윤정석의 옆구리를 툭 쳤다. 윤정석도 얼떨결에 함께 인사했다.

"어서 와라. 전에 말했던 그 친구?"

위협적인 기세와는 달리 사내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네. 선배님."

"만나서 반갑다. 나는 최성훈이다. 블랙 헌터 행동대원이지."

최성훈이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밝히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윤정석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환영한다."

최성훈은 손을 내밀었다. 윤정석은 그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들어와."

김종수와 윤정석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최성훈은 문을 다시 닫았다.

철컥.

어떻게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바깥의 손잡이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문이 잠긴 것 같았다.

‘어?’

윤정석은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컨테이너는 안이 텅 비어 있었는데 바닥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가자."

문을 정리한 최성훈이 두 사람을 데리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공략 1부 사무실만큼이 넓은 공간이 있었다. 보니까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과 가구가 있었다.

최성훈과 똑같은 복장을 한 사내가 다섯 명이 흩어져 있었다. 복면은 벗고 있었는데 모두 최성훈 못지않은 격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워 보였다. 한 사람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은 한쪽 구석에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의 집회 현장이나 범죄 조직의 아지트 같은 분위기를 예상한 윤정석은 예상외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경직된 김종수의 태도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이러면 곤란한데.’

규모도 예상 밖이었다.

김종수가 블랙 헌터에게 데려간다고 하기에 수십 명이 모여 있는 비밀기지 같은 걸 떠올렸었다.

그 정도 건수면 곧바로 강주혁에게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당연한 건가.’

범죄 집단이니 발각될 것을 염려해 점조직 형태로 운영하는 게 정상이다.

게다가 저들 입장에서 윤정석은 아직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중심부로 데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강주혁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탔지만, 윤정석은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종수 왔구나."

"어서 와라."

"안녕하십니까."

김종수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사를 했고, 윤정석도 인사했다.

"네가 말한 그 녀석인가?"

컴퓨터 앞에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간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중년 남자였다. 다른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걸로 봐서 이곳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윤정석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남자가 조금씩 드러내 보이는 격이 태원공략의 임원들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빛. 그건 격을 쌓기 위해서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을 죽여 온 헌터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 같았다.

피 냄새가 묻어날 것 같은 시선이 윤정석을 찬찬히 훑었다. 윤정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떨었다.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오한이 심하게 들었다.

"네. 대장님. 일전에 말씀드린 그 친구입니다. 인사해. 우리 대장님이셔. 나한테 검술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이기도 하고."

윤정석 못지않게 위축되어 있던 김종수가 그를 툭 쳤다.

"안녕하십니까. 윤정석입니다."

"반갑다. 고태우라고 한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지."

고태우가 악수를 청했다. 윤정석은 공손하게 그 손을 잡았다.

"태원공략에 들어갔다고 했지?"

"네. 대장님."

고태우는 건조한 눈빛으로 윤정석의 눈을 들여다봤다. 윤정석은 그 시선이 자신을 산 채로 해부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다들 못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인 곳인데 왜 그만둔 건지 궁금하군."

"차별을 받았습니다."

"차별?"

"아카데미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요한 공략에서 저를 배제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만뒀다?"

"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다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팀장한테 개인적으로 검술도 배웠다지?"

"잔소리를 들은 거죠. 큰 도움은 안 되었습니다."

고태우가 피식 웃었다.

"종수 말이 정식으로 우리 쪽에 가담하고 싶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네."

"이유는?"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고 해서요."

윤정석의 대답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지 마. 이것들아. 틀린 말도 아니잖아."

고태우가 핀잔을 줬다.

"너무 거창하지 않습니까."

"니들도 10년 전만 해도 저런 소리 하고 다녔어. 올챙이 시절은 벌써 잊어버렸냐?"

"그랬죠. 근데 10년 동안 아무리 애를 써도 이놈의 세상이 뒤집어질 생각을 안 하니 그런 패기도 잊어버렸죠."

"한심한 놈들. 그러니까 네들이 아직도 이런 곳에 처박혀 있는 거다."

"광야 들어가기 싫어서 그런 거라니까요. 거긴 전기도 안 들어오잖아요."

대장이라는 작자가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데도 부하들은 겁도 없이 농담을 던졌다.

윤정석은 이 요상한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할 수 없었다.

"큼큼,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는 우리랑 일하기는 어려울 거다."

고태우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럼 어떤 마음이어야지 함께할 수 있는 겁니까?"

"너한테 검술을 가르쳐줬다는 그 팀장, 죽일 수 있겠나?"

"하고 싶지만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너무 강합니다."

김종수가 대신 답했다.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김종수가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종수 형 말이 맞습니다.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실력자입니다."

"상처를 내는 것도?"

"……네."

"실망스럽군."

실망스러운 건 오히려 윤정석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강주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강주혁은 별호까지 있는 전무와 싸워서 이긴 사람이니까.

자기도 못 할 일을 입단 테스트로 제시하는 걸 보니 고태우도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이 조직 전체의 정보력이 별로거나.

"좋아. 그럼 차선책을 제시하지. 우리랑 함께하고 싶으면 저 녀석을 죽여라."

고태우는 턱짓으로 김종수를 가리켰다.

"대장님!"

"지난번에 데려왔던 놈들 중 한 명이 우릴 배신하려고 했다. 조금만 힘들어져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나약한 놈이었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

김종수가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고태우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로 땅을 찧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 녀석은 진짜배기입니다. 정말입니다."

김종수가 간절하게 외쳤다.

당황한 윤정석은 주변을 둘러봤다. 말리거나 놀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식으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몇몇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그 일상적이고 평범한 분위기에 윤정석은 소름이 돋았다.

"윤정석이라고 했었지?"

"네."

윤정석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 거다. 선택해라. 여기서 죽든지 종수를 죽이고 우리랑 한배를 타든지."

윤정석은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 * *

헌터 관리국 게이트.

세상은 최도준으로 인해 촉발된 사건을 그렇게 불렀다. 검찰은 최도준의 자기 파멸적인 발표 직후 헌터 관리국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그 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비리가 드러났다. 처음에는 최도준의 기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사람들도 점차 폭로의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주혁은 회귀 전까지만 해도 이 사건이 최도준의 개인적인 일탈 정도로 생각했었다. 실제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최도준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최도준을 시켜서 직접 조사해보고 회귀 전에 드러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도준이 자신의 지위만 믿고 그렇게 설쳐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임자들도 모두 해먹은 전례가 있었고, 부하직원들 중에도 비리에 연루된 자들이 있었다.

뒷돈을 받지 않는 놈이 오히려 등신 취급을 당할 처지였던 것이다.

검찰은 헌터 관리국의 국장과 부국장을 포함해 수많은 직원을 소환했다. 그들과 뒷거래를 했던 임원급 헌터들도 불러들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들 옷을 벗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니 세금을 축내면서 비리만 저지르는 헌터 관리국을 해체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공략업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팀장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공허진이 강주혁에게 말했다.

"무슨 소식이요?"

"한준공략이 광야에서 쫓겨났대요."

"네. 저도 들었어요."

"우리랑 공략 들어갔던 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광야에서 나갔으니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겠죠. 그렇다고 당장에 회사가 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실적도 높고 이미 벌어놓은 돈도 많으니까요."

이번에 함께 공략에 들어갔던 한준공략 3인방에게는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하는 게 옳았다.

다크 엘프의 마을에서 수십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준공략은 이에 대해서 쉬쉬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벌였던 비리들이 터지면서 그게 불가능해졌다.

"애초에 한준공략은 광야에 들어올 자격도 없지 않았나요?"

주선우의 말대로 한준공략은 광야에 들어올 때 헌터 관리국에 돈을 먹여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들어와서 버틸 때도 마찬가지였고.

최도준은 한술 더 떠서 광야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중견 공략회사들 상대로도 돈을 뜯었다.

하지만 강주혁의 예상대로 태원, 대현, 신광처럼 실력도 좋고 자존심도 강한 회사는 건드리지 못했다.

"그렇죠."

"한준 대신에 누가 들어올지 궁금하네요."

"광야에 들어오고 싶어서 줄을 서 있는 회사들이 많으니 그중 하나가 되겠죠."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유덕현 부장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일찍 들어왔네. 다들 점심 식사 잘했어?"

"네. 저희는 요 앞에 새로 생긴 라멘 집 갔어요."

공허진이 대표로 말했다.

"거긴 어때?"

"완전 맛있어요."

"양은 푸짐한데 간이 좀 셉니다."

강주혁이 덧붙였다.

"딱 허진이 스타일이네."

"네. 헤헤."

"일은 밥심으로 하는 거야. 든든하게 챙겨 먹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주혁아, 잠깐 나 좀 보자."

"네. 부장님."

강주혁은 유덕현을 따라서 부장실로 들어갔다.

"사장님이랑 임 이사님이랑 밥 먹고 왔거든."

유덕현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까?"

"한준 놈들이 관리하던 영역 있잖아."

"네."

"잘하면 우리도 그거 좀 나눠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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