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신호탄을 사용할게요
일행은 물 위에 돌다리를 만들어가면서 늪을 통과했다.
강주혁이 경고한 대로 다들 수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두에 서서 다리를 만드는 강주혁도 시선은 정면으로 한 채 수면을 향해 손만 뻗었다.
"헉!"
검은 물이 한 번씩 출렁거릴 때마다 팀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아래를 봤다가 다시 시선을 올렸다.
"안에 뭔가가 있기는 한 모양이군요."
강주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 늪을 그냥 횡단할 생각을 했다고 하니 끔찍하네요."
"맞아요. 이렇게 위로 통과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
"옵니다."
주선우의 말에 김명섭이 입을 다물었다. 주선우의 탐색 마법에 뭔가가 걸린 것이다.
일행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기다렸으나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어느 쪽이에요?"
"물속입니다."
강주혁은 물속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훑었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 때문에 시야가 나빴다.
"여기선 불리합니다. 서두르죠."
강주혁은 돌다리를 만드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싸우더라도 되도록 육지에서 싸워야 했다.
끼에에엑!
그때, 고막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옵니다!"
갑자기 안개가 사방으로 갈라지면서 와이번 한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우면서 급강하했다.
드래곤이나 히드라만큼은 아니지만 와이번 역시 S급에 준하는 강력한 몬스터. 일행 중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강주혁뿐이다.
"계속 앞으로 이동하면서 싸워요!"
강주혁은 그 말을 남기고 제자리에서 날아올랐다.
휙!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이 강주혁이 있던 자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푹!
키에에엑!
뛰어오른 강주혁은 자신을 공격한 와이번의 가슴팍에 검을 꽂아 넣었다.
와이번이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하면서도 다시 고도를 높여서 날아올랐다. 강주혁은 와이번에 매달린 채로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팀장님!"
"내 걱정 말고 발아래를 살펴요!"
일행이 강주혁의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물속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이 튀어나왔다.
강주혁이 2년 전에 잡은 적이 있던 던전 보아였다. 주로 숲에 살지만, 물속에서도 숨을 오랫동안 참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늪지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 지역에서는 아니지만,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보스 역할을 할 정도로 강한 몬스터다.
슉!
류은정이 곧장 던전 보아의 피부에 화살 하나를 박아 넣었다. 하지만 던전 보아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조심하세요!"
공허진이 일행들 사이로 몸을 날리면서 철퇴를 휘둘렀다.
퍽!
"퀙!"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류은정을 집어삼키려던 던전 보아가 머리통을 두들겨 맞고는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머리에 딸려온 거대한 몸뚱이가 일행이 있던 돌다리를 덮쳤다.
쾅!
"우악!"
던전 보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돌다리가 무너져 내리면서 근처에 있던 김명섭이 물에 빨려 들어갔다.
"김 과장!"
이창옥 팀장이 재빨리 손을 뻗어서 김명섭이 완전히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그를 낚아챘다.
"꽉 잡아!"
김명섭도 팔에 힘을 주면서 올라오려고 했다. 곁에 있던 류은정도 도왔다.
주선우는 대지의 힘을 이용해 돌다리를 보강했고, 공허진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으아아악!"
돌다리 위로 막 올라오려는 순간, 김명섭이 비명을 지르면서 다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명섭이 완전히 빠져나온 줄 알고 손에 힘을 빼고 있던 이창옥 팀장은 그를 놓치고 말았다. 그 대신 류은정이 김명섭의 손목을 다시 낚아챘다.
이창옥과 주선우도 다시 가세해서 김명섭을 잡아당겼다.
그의 상체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더, 던전 보아가!"
김명섭은 끔찍한 고통에 눈물을 글썽였다.
"조금만 참아요! 올라오기만 하면 됩니다! 공 대리님이 낫게 해줄 거예요!"
주선우가 힘을 주면서 말했다.
"노, 놓으세요. 이러다 전부 끌려갑니다."
김명섭이 힘겹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주변의 물이 붉게 물들어갔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게!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지!"
이창옥이 악을 썼다.
"공 대리님, 저 대신 잡아주세요!"
"알겠어요!"
공허진에게 김명섭을 맡긴 주선우가 곧바로 주문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2m 정도 되는 얼음창을 만들어낸 주선우가 그걸 물속에 던졌다.
물속에서 검붉은 물이 번져왔다. 던전 보아가 아이스 스피어에 찔린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김명섭을 놓아주지 않았다.
"끄아악!"
김명섭이 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찌지직!
물에 젖은 옷이 찢어졌다. 김명섭은 옷만 남겨놓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 팀장!"
김명섭이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끼에에엑!
그때,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녹색의 비가 쏟아졌다.
"공 대리님! 보호막!"
하늘에게 강주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공허진은 재빨리 보호막을 전개해 일행의 머리 위에 씌웠다.
투두둑!
보호막에 떨어진 녹색의 피는 그냥 사라졌지만, 돌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은 연기를 피우면서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쾅!
일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수면 위에 와이번이 처박혔다. 밀려난 물이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면서 일행이 있는 곳까지 몰려왔다.
척!
일행의 바로 앞에 강주혁이 착지했다. 와이번과 혈전을 벌였는데도 옷에 피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이쪽으로 피가 떨어질 줄은 몰랐네요."
"괜찮아요."
"김명섭 과장님은?"
"던전 보아에게 끌려갔어요."
일행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평소 같으면 같이 뛰어들어서 어떻게든 구해냈을 텐데 강주혁이 늪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기 때문에 망설인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요."
"팀장님!"
강주혁은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수면이 크게 요동치더니 암녹색의 물 위로 붉은 피가 번져갔다.
"푸아아!"
김명섭이 물 위로 튕겨져 나왔다.
"김 과장!"
"우에에엑!"
김명섭은 곧장 엎드려서 돌바닥 위에 물을 토해냈다. 이창옥이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다리가 너덜너덜해져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공허진은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촤아악!
잠시 후, 강주혁이 물 위로 올라왔다. 옷만 젖었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아이스 스피어는 누가 던진 거죠?"
"제가 던졌습니다."
주선우가 손을 들었다.
"정말 잘했습니다. 선우 씨가 김 과장님을 살린 거예요."
"네?"
"아이스 스피어가 던전 보아를 꿰뚫고 땅에 박혀 있더군요. 그것 때문에 달아나지도 김 과장님을 완전히 삼키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랬군요."
강주혁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주선우에게 엄지를 세워 보였다.
"김 과장님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공허진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명섭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던전 보아의 위장을 들여다보다가 나왔으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무사해서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에요."
3부 4팀 사람들이 김명섭을 끌어안고 그의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다들 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공허진이 말했다. 던전 보아는 그녀가 휘두른 철퇴를 맞고 김명섭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류은정이 끌려갔을 것이다.
"맞아. 그 상황에서 그놈을 어떻게 막아. 강 팀장님도 안 계셨고."
그리고 어느 쪽으로 날려버렸던 던전 보아 의 덩치 때문에 일행이 디디고 있던 돌다리가 부서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돌진하는 던전 보아를 완전히 반대로 날려버리는 건 강주혁에게나 가능한 일인데 강주혁은 와이번과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잘하신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강주혁도 김명섭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저 때문에 강 팀장님도……."
김명섭의 시선이 암녹색의 물로 향했다.
저 물을 오래 보고 있거나 물속에 빠지면 영혼의 일부분을 가져가는 도플갱어가 생성될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제 추측이 잘못되기를 바라야죠. 여기는 너무 위험합니다. 서두르시죠."
어떤 상황에서든 태연한 강주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표정이 어두웠다.
* * *
그 이후로는 공략이 순조로웠다.
늪을 통과한 후에도 빽빽한 숲이 나왔고, 다시 늪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 봤던 늪만큼 깊지도 넓지도 않았다.
숙영을 할 때는 지구의 벌레들보다 수십 배는 큰 벌레들이 일행을 덮쳤다. 하지만 강주혁이 제단에서 빌려온 불의 힘으로 야영지 주위에 불길을 만들자 접근하지 못했다.
숲에서는 여전히 다크 엘프들이 나왔으나 일행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3일 동안 꾸준히 걸은 끝에 일행의 숲의 중심부에 들어올 수 있었다.
"마을?"
일행을 맞이한 건 돌담으로 둘러싸인 다크 엘프들의 주거지였다. 일행이 있는 곳이 마을보다 고지대인데다가 망원경을 사용한 덕분에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을 한복판에는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다크 엘프는 최소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전원이 무장한 성인이었기에 마을이라기보다는 군사기지 같았다.
"마을이 아니라 도시 수준인데요."
"경계도 삼엄하군요."
돌담 위에도 다크 엘프들이 무리를 지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돌담을 따라서 해골들이 매달려있었다. 크기만 보면 사람인데 복장이 다크 엘프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헌터들이군요."
숲에서 사로잡은 헌터들을 저런 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일행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들 갈비뼈가 없어요."
"인신공양 때문일 겁니다."
"인신공양이요?"
"다크 엘프 제사장은 산 채로 포로의 심장을 빼내는 의식을 치른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얘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주혁의 말에 이창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 엘프들의 원시적이고 잔혹한 관습에 대해서는 헌터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다크 엘프와 소통하려는 수많은 시도는 매번 저런 식의 결말을 맞이했다.
지금은 보자마자 죽이는 게 기본이었다.
"꼭 저기를 공격해야 할까요?"
"제단과 마석 매장지는 대개 해당 지역의 한복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부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죠. 이 지역에서 이렇게 넓은 평지는 여기밖에 없습니다. 저 마을 지하에 마석 매장지가 있을 가능성이 크죠."
"저 정도 인원이면 아무리 평지에서 싸워도 어려울 것 같은데……."
수십 명까지는 무난하게 상대할 수 있지만 마을에 있는 다크 엘프는 수백이 넘었다. 그리고 저 중에는 분명히 다른 다크 엘프보다 강한 개체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강주혁이 있다 하더라도 정면승부는 불가능하다. 강주혁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제사장을 노리죠."
"제사장이요?"
"다크 엘프 사회는 신정일치 사회예요. 제사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죠. 제사장을 사로잡으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우리 목적은 저놈들을 모두 죽이는 거잖아요."
"제사장을 협박해서 숲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겁니다."
"숲 밖이요?"
"싸워봐서 알겠지만, 저놈들은 평지에서는 그다지 위협적인 적이 아니에요. 숲밖에 있는 헌터들에게 제때 상황을 전달해주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소탕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의사소통은 어떻게 해요? 말이 안 통하잖아요."
사실, 강주혁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었지만 그걸 일행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보디랭귀지로 해야죠."
"……."
강주혁은 확신에 차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저 혼자서 갈 테니까."
"네?"
"저 혼자서 침투할 겁니다."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다들 강주혁을 뜯어말렸다.
"저도 갈래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공허진과 주선우가 나섰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여러분에게는 없지만 저한테는 이게 있으니까요."
강주혁은 리치의 팔찌를 꺼내 보였다.
"공 대리님이랑 선우 씨는 이게 뭔지 알죠? 은신, 소음 제거를 해줄 수 있는 팔찌입니다. 가속화나 역장 같은 것도 가능하고요. 저런 곳에 몰래 들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죠."
"은신 마법은 저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선우가 나섰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마나는 교전을 위해서 아껴둬요."
다들 불만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다른 방법 있어요?"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주세요. 우리가 들어갈게요."
공허진이 답했다.
강주혁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가 혼자라도 달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신호탄을 사용할게요."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