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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56화 (156/202)

156화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군요

‘차원이 다르다.’

한준공략의 김명섭 과장은 전투가 시작되고 1분도 안 되어서 결론을 내렸다.

그 명성이 한준공략에까지 퍼져 있는 강주혁뿐만이 아니었다. 미팅 전까지는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공허진과 주선우의 활약도 눈부셨다.

오히려 강주혁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였다.

펑!

공허진이 철퇴를 휘둘러 다크 엘프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정통으로 맞은 게 아니라 스치기만 했는데도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분명히 힐러라고 했는데 전투 실력과 호전성은 힐러의 그것이 아니었다.

최전방에 뛰어들었다가 포위를 당했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적들을 분쇄해가는 공허진은 노련한 전사 같았다.

공허진을 둘러싼 다크 엘프들은 분명히 그녀보다 빨랐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휘두르는 철퇴를 피하지 못했다.

미리 움직임을 예상하고 휘두르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하려면 몸이 못 따라가더라도 눈만큼은 다크 엘프를 따라가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크 엘프와 수도 없이 싸워서 그들의 움직임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것이거나.

어느 쪽이든 김명섭은 감히 흉내도 못 낼 영역이었다.

펑!

다른 사람들의 무기도 하얀빛에 감겨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그 무기에 닿기만 해도 터져나갔다. 공허진이 걸어준 홀리 웨폰이었다.

전사처럼 싸우면서도 공허진은 힐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해 여섯 명 모두에게 홀리 웨폰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효과가 김명섭이 알고 있던 홀리 웨폰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S급인가?’

나이만 보면 자신보다 한참 어린데 실력만 놓고 보면 S급 힐러인 것 같았다.

"으아아악!"

주선우가 빛나는 지팡이를 휘둘러 자신에게 달려드는 다크 엘프의 복부를 가격했다. 다크 엘프의 몸뚱이가 두 개로 나눠졌다.

선두가 죽자 뒤따르던 다크 엘프들이 백 스텝으로 지팡이를 피했다.

파지직!

주선우의 손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강렬한 섬광이 시야를 잠시 가렸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번개가 세 명의 다크 엘프를 연달아 강타했다.

"끄르르."

감전당한 다크 엘프들이 피거품을 뿜으면서 널브러졌다. 피부가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다.

펑! 펑! 펑!

반면에 같은 마법사인 김명섭이 날린 매직 미사일은 단 한 명의 다크 엘프도 죽이지 못했다. 물론, 잠시 비틀거리게 만들긴 했지만, 완전히 쓰러뜨리진 못했다.

좀 더 강한 마법을 쓰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자신을 지켜줘야 할 탱커인 이창옥 팀장은 근처에 있는 다크 엘프들도 버거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를 통과한 다크 엘프들이 계속해서 후방에 있는 김명섭과 류은정을 노렸다. 김명섭은 주선우처럼 마법을 빨리 쓰지도 못했다. 지팡이로 싸우는 것도 미숙했다.

"왜 이렇게 안 맞아! 좀 죽어!"

궁사인 류은정도 근접전을 걸어오는 다크 엘프들 탓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쏘는 화살은 계속해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화살을 쏘는 속도가 다크 엘프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온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한 검은 홀리 웨폰이 아니었다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서걱!

그때, 섬뜩한 기운과 함께 눈앞의 공간 전체가 일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투툭! 투두둑!

열댓 명의 다크 엘프들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면서 허물어져 내렸다.

강주혁의 검이 찬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검신보다 몇 배나 긴 검기가 칼날을 감싸고 있었다.

팀원들이 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다가 딱 한 번 나섰는데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괴물이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심한데.’

김명섭도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강남 게이트 단지의 만년 꼴찌인 한준공략이 업계 톱을 달리고 있는 태원공략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1부 2팀은 태원공략에서도 1등을 하고 있는 팀이다. 반면에 3부 4팀은 한준공략에서도 딱히 뛰어난 팀이 아니다.

그리고 3부 4팀의 세 사람은 각자의 직급에 맞는 실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기존의 팀장이 합동 조사팀에 참석했다가 사망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한 단계씩 진급이 된 것이니까.

그건 에이스 헌터들이 몰살당하면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한 경영진의 궁여지책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대형 공략회사이니 격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함께 싸워보니 3부 4팀이 그동안 해왔던 싸움은 소꿉놀이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거의 민폐 수준인데.’

아마 이창옥이나 류은정도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같은 싸우는 동료가 아니라 전투 중에 챙겨야 할 피보호자가 된 느낌이었다.

퍽!

"끅!"

공허진이 쓰러져 있는 다크 엘프의 목을 발로 밟아서 숨통을 끊었다.

40여 명의 다크 엘프들이 몰살당하는 동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한준공략의 헌터들이 자잘한 부상을 당하기는 했지만 공허진 덕분에 금방 치유되었다.

만약 태원공략의 도움 없이 한준공략 헌터들끼리만 싸웠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절한 전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원의 헌터들 덕분에 일방적인 학살이 되었다.

"다 끝났죠?"

"네. 끝났어요."

"고생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점검부터 하시죠."

다들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언제든 다시 싸울 수 있도록 장비를 재점검했다.

태원공략의 헌터들은 한준공략의 헌터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한준공략의 헌터들도 죄인이 된 기분으로 묵묵히 자기 일들을 했다.

전투 한 번에 견적이 나온 것이다.

"이상 없죠?"

"네. 없습니다."

"계속 가시죠."

강주혁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쉬지도 않고 이동을 명령했다.

강주혁은 제단의 힘을 이용해 숲을 계속해서 소각해갔다. 그들이 태워버린 나무는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끔찍한 재생력으로 한준의 헌터들을 집어삼켰던 나무들은 일행이 만들어내는 불길 앞에 잿더미가 되어 사그라졌다.

나무들이 사라지자 다크 엘프들의 위험성도 줄어들었다.

울창한 숲은 필연적으로 짙은 어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숲과 구분이 안 되는 망토와 피부색을 가진 다크 엘프들을 숨겨줬다.

그리고 가지를 쳐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정도로 빽빽한 나무들은 헌터들에 비해서 날씬한 체형을 지닌 다크 엘프들에게 극단적으로 유리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바람처럼 나무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다크 엘프들은 압도적인 기동성을 바탕으로 헌터들을 습격했고 조금이나마 불리하면 달아나버렸다. 그런 식으로 치고 빠지면서 헌터들을 유린한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이 나무들도 견디지 못하는 불을 가지고 와서 숲을 밀어버리자 다크 엘프들도 평지로 나와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평지에서 태원공략의 헌터들과 조우한 다크 엘프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해, 해독제 좀!"

전투 중, 다크 엘프의 시미터에 자상을 입은 류은정이 신음을 토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무기에는 맹독이 발라져 있었다. 그것 역시 오랫동안 이 숲을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던 요소들 중 하나였다.

"해독제는 아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공허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원격으로 류은정을 해독시켰다.

공허진은 계속해서 한준의 헌터들을 해독시켜 주고, 회복시켜 주는데도 영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일행에게 홀리 웨폰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태원공략의 세 사람은 네 번의 교전 중에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유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 합동공략에 투입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창옥 팀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만큼 이 공략 불가 지역은 한준의 헌터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들어간 헌터들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드물었다. 생존자들 역시 그 속에서 무엇을 본 건지 제정신이 아니었고 대부분 헌터 업계를 떠나버렸다.

그래서 한준의 헌터들은 이곳을 <헌터를 먹는 숲>이라고 불렀다.

태원의 헌터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한준의 3부 4팀 팀원들 중에는 이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자 회사의 결정에 반대하면서 퇴사를 해버린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그쪽의 강주혁 팀장이 알아서 할 거야. 너희들은 그냥 폐만 안 끼치면 되는 거야.’

한준공략 공략 3부 부장이 말했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헌터를 어떻게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위에서 그렇게 시킨 거라고 답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불세출의 천재란다.’

실제로 만나본 강주혁은 부러움을 느낄 만큼 잘생겼다는 것 빼고는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부사수인 류은정은 강주혁이랑 함께 하면 지옥의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김명섭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고민은 공략 당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아내에게 털어놓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다. 보나마나 가지 못하게 말릴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김명섭은 공략을 성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그저 이번 공략은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좀 귀찮아서 그렇지 위험한 건 아니라고, 친정에 가 있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만 남겼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주혁을 위시한 태원의 헌터들이 싸우는 걸 보니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지던 공략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늪이군요."

네 차례의 교전 끝에 숲의 중심부에 들어온 일행을 맞이한 것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이었다.

"이 늪에서 가장 많은 실종자가 나왔습니다."

이창옥이 굳은 얼굴로 설명했다.

"잠깐만 주목해 주세요."

일행이 강주혁을 바라보았다. 강주혁은 말을 하는 대신 늪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더니 수면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자그마한 석판이 생겼다.

"우와 어떻게 한 거예요?"

류은정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현공략 담당 지역에 있는 제단의 힘을 사용한 겁니다. 우린 이런 식으로 다리를 만들어서 늪을 통과할 겁니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뭔데요?"

"절대 수면을 들여다보지 마세요. 절대로."

"왜요? 물속에 있는 몬스터들을 대비하려면 계속 살펴보는 게 좋을 텐데……."

공허진이 물었다.

"외국에서 안 좋은 사례가 있어서 그래요."

"안 좋은 사례요?"

"호주 쪽 던전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도 이렇게 물 색깔이 검은 늪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실종자가 꽤 나왔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늪을 오래 바라보거나 물에 빠지면 늪에서 도플갱어가 생성된다고 하더군요."

"도플갱어요?"

"네. 다들 아시죠?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몬스터."

"네. 알고 있습니다."

"그냥 도플갱어만으로도 위험한데 문제는 그놈을 죽였을 때에요."

"어떻게 된대요?"

"자신의 도플갱어를 죽이면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고 하더군요."

"기억을 잃어요?"

"네. 단순히 헌터를 모방하는 괴물이 아니라 영혼의 일부분을 가져가는 놈이라는 얘기죠."

강주혁의 설명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40년도 더 된 사건인데다가 인스턴트 던전이라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저도 책에서 읽은 게 전부고요."

"근데 이곳도 그럴 거라는 증거가 있나요?"

"없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좀 전에 이곳에서 실종자가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하셨죠?"

"……네."

"생존자들은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요."

"……네."

김명섭은 자연스럽게 도플갱어를 죽인 사람은 기억을 잃게 된다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군요."

일행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갑시다."

강주혁은 앞장서서 늪으로 진입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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