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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55화 (155/202)

155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더러워서 못해먹겠습니다."

윤정석이 퇴사했다.

강주혁의 예상대로 회사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자 김종수는 회사를 그만둘 것을 권했다.

윤정석은 미리 계획했던 대로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도 블랙 헌터의 눈과 귀가 있을 수 있으니 겉으로는 강주혁과 갈등이 있는 척했다. 심지어 송별회도 없이 떠나버렸다.

사람들은 윤정석이 합동공략에서 자기만 제외된 것에 앙심을 품고 회사를 그만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거기가 어디라고 신입사원이 껴."

강주혁의 리더십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신입사원 주제에 위험천만한 공략에 데려가 달라고 하는 윤정석이 시건방지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강주혁과 윤정석, 그리고 이윤철 사장만 알고 있었다.

윤정석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공허진과 주선우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린 윤정석을 원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지만 만에 하나 실수로 말이 새어나가면 윤정석만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윤정석에 대한 강주혁의 부채 의식은 더 커졌다. 검술을 좀 지도해 주고 밥이랑 술을 사 먹인 게 전부인데 윤정석은 기꺼이 강주혁을 위해서 모든 걸 걸었다.

‘돌아오면 더 잘해줘야겠군.’

강주혁은 윤정석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윤정석이 퇴사를 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안녕하십니까. 한준공략에서 왔습니다."

세 명의 헌터가 태원공략 공략 1부 사무실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인사했다. 주선우와 공허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강주혁은 한준공략의 헌터들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세 사람 모두 상당히 어수룩해 보였기 때문이다.

복장은 깔끔했지만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모습이 꼭 서울에 처음 와본 촌놈들 같았다. 헌터 특유의 날카로운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고 표정에서도 자신감을 찾을 수 없었다.

대현과 신광의 헌터들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체급이 같은 회사의 직원들끼리 만나면 으레 그러듯이 그들은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미묘한 신경전을 걸어왔다. 강주혁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준 후에도 너무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용을 썼다.

하지만 눈앞의 헌터들에게는 그런 의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불편한 장소에 처음 온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초조감만 드러낼 뿐이었다.

지방에 있는 중소 공략회사에서 왔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저들도 엄연히 대형공략회사 헌터들이다.

강주혁은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선우 씨, 회의 준비는 끝났죠?"

"네. 팀장님."

"이쪽입니다. 가시죠."

1부 2팀은 한준공략의 헌터들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통성명부터 할까요? 저는 태원공략 공략 1부 2팀을 맡고 있는 강주혁 팀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팬이에요."

한준공략의 유일한 여성 헌터가 쑥스러워하면서 덧붙였다.

"네?"

"아,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서……."

여성 헌터는 입을 가리면서 민망해했다. 강주혁은 마른기침을 하면서 팀원들에게 눈짓했다.

"공허진 대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주선우 사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한준공략 쪽이었다.

"공략 3부 4팀의 이창옥 팀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얼굴만 보면 30대 중후반인 것 같은데 일부러 밀어버린 것인지 완전한 민머리였다.

"김명섭 과장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이는 강주혁 또래인데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류은정 대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소심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것이 꼭 2년 전의 공허진을 보는 것 같았다.

세 사람 모두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헌터 관리국이 주관하는 작전 때 봤던 한준공략 헌터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태원공략에서 온 헌터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격을 가진 자들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어려운 공략이지만 힘을 합쳐서 안전하게 끝마칠 수 있으면 좋겠군요. 혹시 세 분은 원래부터 같은 팀이신가요?"

"……네."

대답을 한 이창옥은 상당히 민망해했다.

‘참신한 전략이군.’

회사의 명운이 걸린 공략에 평범한 공략팀 하나만 덩그러니 보낸 것이다. 대현공략과 신광공략이 회사의 에이스들을 모아 드림팀을 만들어 보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치졸한 새끼들.’

한준공략 경영진의 장삿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번 공략을 통해 가져가는 건 태원공략이 더 많다. 한준공략은 자기들의 몫이 작으니 책임도 덜 지겠다는 심보였다.

어쩌면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강주혁만 믿고 아무나 보낸 건지도 모르다. 누구를 보내든 태원공략 측이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준공략은 전체의 3할을 가져갈 자격도 없다.

‘차라리 잘 됐군.’

강주혁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이번 공략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마석이 아니라 아티팩트다. 그게 있어야지 최도준을 끝장낼 수 있으니까. 윤정석에게 생길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해결책도 될 것이다.

공략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기여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강주혁이 아티팩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훌륭한 팀워크를 기대할 수 있겠군요. 사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부터 한 팀이었죠."

"아, 네. 하하. 잘 됐군요."

한준공략 헌터들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표정을 보니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여러분은 이번 임무에 자원하신 건가요?"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위에서 시켜서 ……."

이창옥이 말끝을 흐렸다. 나머지 두 사람도 표정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어디나 다 똑같군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위에서 시키면 해야지 별 수 있나요."

강주혁은 약간의 거짓을 섞어서 말했다.

태원공략의 헌터들도 따지고 보면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공략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1부 2팀을 제외한 다른 헌터들도 그랬다. 공략 불가 지역에 대한 공략이 거론될 때마다 서로 가겠다고 난리였고 뽑히지 못한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윤철이 진땀을 빼야했다.

모두들 공략 불가 지역이 위험하다는 건 안다. 그래도 일확천금을 받을 수 있고 그만한 명예가 주어지기에 도전 정신을 불태운 것이다.

사냥꾼의 명예를 드높여 주는 건 사냥감이다. 사냥꾼이 더 강한 사냥감을 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눈앞의 헌터들은 마지못해 끌려왔다는 티를 팍팍 냈다. 아무리 봐도 진짜 사냥꾼이 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해당 지역에 대한 자료를 직접 가져오신다고 하셨는데 혹시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류 대리."

"네. 팀장님."

류은정 대리가 강주혁에게 출력해온 자료를 건넸다.

‘음?’

강주혁은 자료의 얄팍한 두께를 보고는 놀랐다.

"이게 전부인가요?"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여러 차례 공략이 시도된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의외군요."

대현공략도 신광공략도 자기네들 영역에 있는 공략 불가 지역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공략을 시도했었다.

대현공략은 제단과 마석 매장지만 못 찾았지, 거의 사막 전체에 대한 대략적인 지도를 만들었다. 신광공략은 지역의 중심부까지 들어갔다.

둘 다 공략에는 실패했는지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회귀 전의 기억밖에 없는 강주혁에게 그런 객관적인 자료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한준공략이 제공해준 건 극히 피상적이고 제한된 정보들뿐이었다. 이를테면, 이 지역에서 다크 엘프 출몰 3회. 딱 이 정도 수준이었다.

"우리 쪽 헌터들에겐 악몽과도 같은 지역입니다. 그동안 사상자가 꽤 나왔거든요. 아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강주혁도 회귀 전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한준공략은 자신들의 오판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돈으로 입막음을 해왔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언론이나 헌터 관리국에도 돈을 뿌려댔다. 하지만 그렇게 틀어막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은 모든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말았다.

강주혁은 왜 그런 식으로 돈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한준공략이 광야에서 쫓겨날 때까지 헌터 업계 내에서도 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줄은 몰랐으니까.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보고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것을 본 건지 기억조차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랬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인 방향은 나와 있습니다."

이창옥이 변명조로 덧붙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 * *

공략 당일.

합동 공략팀은 문제의 지역에 도달했다. 제단의 힘은 어제 돌아다니면서 미리 모아놓았다.

"빡빡하네요."

눈 앞에 펼쳐진 밀림을 보고 주선우가 꺼낸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사람 한 명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 지역만 날씨가 후텁지근했다. 게다가 자욱한 안개가 숲에 엉겨 있어서 시야가 제한적이었다.

"꼭 아마존 같아요."

공허진도 답답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큰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왔는데 막상 고생할 생각을 하니 막막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비슷할 겁니다."

이창옥 팀장이 말했다.

표정이 안 좋은 건 한준공략 측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들도 저 속으로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공략 불가 지역이 공략 불가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린 강주혁도 인상을 썼다.

식인 식물과 팔뚝만 한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밀림에 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하지만 돈을 위해서, 그리고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기를 뚫어야 한다.

"가시죠."

강주혁은 앞장섰다. 이미 강주혁에게 총책임자 자리를 넘긴 한준공략 헌터들은 군말 없이 그를 따랐다.

화르르.

신광공략 담당 지역에 있던 제단의 힘을 사용하자 강주혁의 손에서 불길이 생겨났다. 강주혁은 그걸 나무에 가져다 댔다.

나무에 옮겨붙은 불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무를 밑동까지 홀라당 태워버렸다.

옆에 있는 나무에 옮겨붙은 불은 그것도 빠르게 소각해 버렸다. 숲이 사라지면서 길이 생겨났다.

"신기한 불이군요. 예전에 이곳에 불을 피웠을 때는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이창옥이 홀린 듯이 불을 쳐다보았다.

"나무에서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나무를 닮은 몬스터에 가까울 겁니다. 그러니 평범한 불로는 태울 수 없었겠죠."

강주혁의 말대로 밀림을 이루는 나무들은 평범한 나무들과는 달리 엄청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칼로 자르거나 불로 태우면서 길을 뚫어도 금방 원상태로 재생되어서 퇴로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재생될 때마다 더 단단해졌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나오는 건 더 어려웠다. 숲은 그렇게 수많은 헌터를 집어 삼켜왔다.

"들어가죠."

일행은 제단의 불로 숲을 태워 가면서 조금씩 전진했다.

두 시간 정도 들어갔을 때였다.

"팀장님, 전방에 적들입니다."

강주혁은 주선우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들은 오러 즉, 내공을 다루는 클래스에 비해서 감각이 떨어진다.

대신 그들은 그걸 보완할 수 있는 마법들을 가지고 있다. 그 마법들은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에 오러 기반 헌터들의 감각보다 더 뛰어난 효과를 보여준다.

지금도 그랬다. 강주혁이 감지하지 못한 걸 주선우가 탐색 마법을 통해서 발견한 것이다.

"잘했어요. 모두 준비합시다."

강주혁은 자주 못 본 사이에 훌쩍 성장해버린 주선우를 보면서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쉭! 쉭!

잠시 후, 주변 풍경과 구분이 되지 않는 신형들이 숲 밖으로 튀어나왔다. 암녹색 망토에다가 풀을 달아서 위장을 한 다크 엘프들이었다.

강주혁이 나서기도 전에 공허진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퍽!

그리고 철퇴를 휘둘러 선봉에 선 다크 엘프의 머리통을 그대로 짓뭉개 버렸다.

"와……."

강주혁은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러세요?"

공허진은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공허진은 살포시 웃더니 다음 상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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