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잘 됐군요
태원공략 사장실.
"한준공략이 공략 불가 지역에 대한 합동 공략을 제안했네."
"한준공략이요?"
이윤철의 말에 강주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준그룹의 계열사인 한준공략은 광야를 담당하고 있는 대형공략회사들 중 하나다.
"그래."
"우리 입장에서는 좋지만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군요."
한준공략이 관리하는 공략 불가 지역에는 다음 제단이 있다. 그다음은 다시 신광공략의 영역이지만 이미 함께 공략하기로 계약을 맺은 상태다.
마지막 남은 하나는 태원공략이 이미 구매했다. 한준공략이 가진 지역만 공략하면 <용의 길>을 모두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블랙 헌터들에게 당한 여파가 큰 모양이더군."
한준공략의 헌터들 역시 귀화초 서식지에 대한 조사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사상자가 나오는 정도에 그친 다른 팀들과는 달리 전멸당하고 말았다.
"주가가 폭락했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불의의 사고나 마찬가지다. 회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그쪽에 나타난 블랙 헌터들이 다른 쪽보다 더 강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사람들은 한준공략이기 때문에 전멸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주가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래. 평판은 무서운 법이지."
헌터들에게 광야의 대형공략회사들 중 가장 부실한 회사를 고르라고 하면 누구나 한준공략을 꼽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준공략이 신광공략의 전신인 우성공략처럼 헌터가 세운 공략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준그룹은 원래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었지만, 공략회사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자 후발주자로 헌터 업계에 뛰어들었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여기저기에서 헌터들을 빼 오긴 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언제나 헌터가 아닌 비각성자 전문 경영인으로 채웠다.
남궁천을 사장으로 만들었다가 회사를 빼앗겨버린 우성그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헌터들은 던전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은 경영인들이 매출만 가지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걸 못 견뎌 했다.
실력이 뛰어난 헌터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한준공략을 택하지 않았다. 한준공략이 제시하는 높은 연봉에 이끌린 자들은 실력이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헌터들이었다.
실력이 모자란 헌터들과 공략에 문외한이 경영진이 모인 탓에 한준공략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언제나 광야에서 퇴출 가능성이 가장 높은 회사로 꼽혔다.
그런데도 한준그룹은 헌터 출신을 경영진으로 만들지 않았다. 헌터의 질을 올리는 대신에 양을 늘렸고 헌터 관리국에 뒷돈을 찔러주면서 위기를 넘겨왔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땠나? 그쪽 친구들이 부실해 보였나?"
"딱히 그렇진 않았습니다. 헌터 관리국에서 주도하는 작전이라서 그런지 나름 신경을 써서 보낸 것 같았습니다."
강주혁이 작전 전에 만났던 한준공략의 헌터들은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한준공략 내에서는 나름대로 에이스들을 보낸 것이다.
"에이스들이 대거 사망했으니 전력 공백이 크겠군."
"주가도 그래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서 주가를 반등시킬 건수가 필요한 거고."
주가를 반등시킬 만한 호재 중에는 마석 매장지 발견만 한 것도 없다. 마석 매장지 발견은 매출의 폭등으로 이어지니까.
그리고 강주혁은 현재 업계에서 마석 매장지의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3년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네 개의 마석 매장지를 발견했으니까. 그 가치를 따지면 최소 5조가 넘는다.
한준공략은 자체적으로 마석 매장지를 찾을 여력이 안 된다. 그전에도 못 했던 일을 에이스 헌터들이 이탈한 지금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마석 매장지 발견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태원공략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다.
"우리가 갑이군요."
"그런 셈이지."
"그럼 7대 3으로 가시죠. 이번에는 우리 쪽을 7로 하는 겁니다."
이윤철이 강주혁을 보고 씩 웃었다.
합동 공략을 할 때 공략 지역을 제공하는 쪽이 더 많이 가져가는 건 업계의 관례다.
이전에 진행했던 합동 공략 때도 장소를 제공한 대현과 신광이 7을 가져가고 태원공략이 3을 가져갔다.
"피도 눈물도 없군."
"한준공략이 상대니까요."
헌터들 사이에서 한준공략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한준공략 헌터들을 돈에 팔려 간 사냥개라고 빈정거리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강주혁은 한준공략을 택한 헌터들을 얕잡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기 실력에 맞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강주혁이 싫어하는 건 한준공략을 잘못된 방식으로 운영하는 한준의 오너일가였다. 이미 수많은 사건 사고로 인해 경영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게 알려졌는데도 그들은 반성하거나 개선할 줄 몰랐다. 작금의 상황을 마석 매장지 발견이라는, 넘어가겠다는 것도 일종의 꼼수였다.
게다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은 언론과 헌터 관리국에 돈을 뿌렸다. 언론은 항상 불의의 사고니 회사의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갔고 헌터 관리국도 회사의 문제점을 눈감아줬다. 최도준이 한준공략의 검은돈을 받아먹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가면 판이 엎어질 수도 있네."
지금까지 발견된 제단들은 총 네 개. 아무리 정보를 통제한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제단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준공략 역시 태원공략이 남아 있는 마석 매장지를 먹으려면 자기네 공략 불가 지역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한준공략이 망한 다음에 먹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역사가 회귀 전과 같이 흘러간다면 한준공략은 몇 년 후에 광야에서 퇴출된다. 한준공략의 돈을 받아먹었던 최도준도 몰락하고. 누적된 문제들이 임계점에 도달해 터져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한준공략은 대기업에서 중견 회사 수준으로 규모가 축소되고, 오랫동안 적자에 시달리다가 해체되었다. 광야에서 한준공략이 담당하던 지역은 공개입찰이 이루어졌다.
공략회사들 간의 균형을 중시하는 정부는 나머지 아홉 개의 회사들보다 신규 공략회사에 우선권을 준다.
하지만 신규 공략회사의 역량이 기존의 공략회사들을 대신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는 아홉 개의 회사들에게 지역의 일부를 떼어주기도 한다.
광야에서 한 번도 공략을 안 해본 회사가 처음부터 잘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 한 회사가 빠지고 새로운 회사가 들어올 때마다 광야의 지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 일로 주가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런 걸로 망하기야 하겠나."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아쉬울 건 없는 상황이니 한 번쯤 어깃장을 놓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신광에게 떼어줄 것도 있으니 일단 최대한 높게 불러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준공략의 공략 불가 지역에 들어가려면 신광공략의 제단에서 불의 힘을 빌려야 한다. 당연히 신광은 공짜로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 문제도 있었지."
이윤철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틀 후.
공략 1부 사무실.
강주혁은 오랜만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기를 붙잡고 이윤철 사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잘 됐군요. 별말씀을요. 정말 감사합니다. 네. 사장님. 꼭 해내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경하는 팀원 여러분."
"가세요."
"가십시오."
"어차피 우린 필요 없잖아요."
이번에도 팀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팀원들과 함께 할 때보다 혼자서 활동하는 시간이 더 많은 팀장인지라 이미 신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러분은 2주 후에 저와 함께 한준공략과의 합동 공략에 투입될 겁니다."
"지, 진짜요?"
"정말입니까?"
팀원의 반응이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좋겠다."
"1부 2팀도 이제 강트코인 탑승하는 거예요?"
공략 1부의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강주혁과 함께 합동 공략에 들어가면 수십억의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게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강주혁이 그동안 보여준 퍼포먼스가 있기에 그가 합동 공략에 한해 전권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강주혁에게 간택 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강주혁에게 자기도 좀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주려는 사람도 있었으나 강주혁이 모두 되돌려주었다.
이런 상황이니 강주혁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매번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실적으로 계산되지는 않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공략에 따른 인센티브는 받게 되겠지만 그게 인사고과에 반영은 안 될 겁니다. 마석 매장지 발견했다고 진급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마석 매장지로 인한 과도한 실적이 진급 시스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상황이 계속되어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네요."
"저는 상관없어요."
"저도요. 인센티브만 받으면 되죠."
예상대로 1부 2팀은 불만이 없었다.
유덕현 부장에게는 이윤철 사장이 미리 언질을 줬다. 그 역시 괜찮다는 뜻을 밝혔다.
자기 실력으로 만든 실적도 아닌데 지금까지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과분하다는 말도 남겼다.
"그리고."
강주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윤정석을 바라보았다.
"안타깝지만 정석 씨는 이번 공략에서 열외예요."
"……네?"
"다들 결과만 보고 부러워하는데 다녀온 사람은 알 겁니다. 극도로 위험한 공략이에요. 아직 정석 씨가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닙니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윤정석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입이 댓 발 나온 상태로 고개를 푹 숙였다.
"커피 한잔할래요?"
"……네."
"공 대리, 전화 좀 받아줘요."
"네. 팀장님. 다녀오세요."
강주혁은 윤정석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강주혁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윤정석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사람이 없는 쪽으로 걸어갔다.
"팀장님."
"편하게 말해요."
"제가 아직 신입이긴 하지만 주선우 사원보다는 잘 싸울 자신이 있습니다."
강주혁은 윤정석을 보면서 씩 웃었다. 공허진한테 깨진 후로 그녀는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선우는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만약 주선우와 윤정석이 싸운다면 윤정석이 이길 것이다. 주선우는 일대일 싸움에서 불리한 마법사니까. 게다가 주선우는 둔재에 가까운 범재지만 윤정석은 천재에 가까운 수재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과 비교해보면 주선우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강주혁이 연결시켜 준 과외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전투력이 떨어져도 그동안 던전에서 쌓은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공략에서 충분히 한 사람 몫은 해낼 것이다.
"제가 정석 씨를 빼놓고 가려는 건 실력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직원들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건가요? 팀장님 정도면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되지 않습니까?"
"여기는 회사예요. 사장님도 다른 직원들 눈치를 보는데 제가 어떻게 안 봅니까."
윤정석이 실망감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기에 강주혁은 웃고 말았다. 이런 걸 보면 아직 치기가 어린 것 같았다.
"공동 생활이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겁니다. 저랑 같이 공략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박탈감이 심하겠어요. 지금 정석 씨도 그렇잖아요."
강주혁의 말에 윤정석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해줘야죠."
"위험한 공략이라서 신입사원을 데려갈 수 없다는 건가요?"
"그렇죠."
"공 대리는 그쪽 분야에서 최고지만, 주선우 사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같은 포지션이면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도 있을 텐데요?"
"팀워크 핑계를 될 수가 있죠. 협력할 줄 모르는 엘리트들을 모아놓는 팀보다 조금 모자라더라도 손발이 맞는 팀이 더 나아요. 리더인 저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고 하면 뭐라고 못할 겁니다."
"그럼 저는요?"
"사실, 정석 씨를 안 데리고 가는 건 더 중요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윤정석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본 강주혁이 씩 웃었다.
"더 중요한 일이요?"
"그룹 친구들은 잘 만나고 있어요?
"네.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꾸준히 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은 없어요?"
"팀장님 말씀대로 주의 깊게 보니까 보이는 게 있더군요."
"보이는 거요?"
"안 그래도 팀장님 좀 덜 바쁘실 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최근에 실력이 꽤 괜찮은 친구 두 명이 잠수를 탔습니다."
"갑자기?"
"네. 말도 없이요. 저랑 종수 형 다음으로 가장 잘 싸우는 친구들이었거든요. 연락이 끊어진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정말로…… 종수 형이 블랙 헌터들이랑 관련이 있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종수 씨한테 제 욕은 잘하고 있어요?"
"엄청 하고 있죠."
"잘 됐군요. 그럼 이번에 따돌림당한 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해요."
"……회사를 그만둬요?"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