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제가 시작한 일이니까 제가 끝내야죠
태원공략 사장실.
강주혁은 한태성이 가지고 있던 검은색 액체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얘기를 듣고 곧장 사장실로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서 오게.”
이윤철이 강주혁을 맞이했다. 두 사람은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팀원들이 뭐라고 안 하던가?”
이윤철이 씩 웃으면서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강주혁이 난감하다는 투로 말했다.
“나만 강 팀장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네. 임 이사랑 유 부장도 자주 부르지?”
“……네.”
“내년에는 아예 팀을 개편해서 강 팀장 혼자서 활동하는 건 어떻겠나?”
“저 혼자서 말입니까?”
“강 팀장 혼자서 공략부 하나의 실적을 올리고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네. 그쪽이 더 효율적인 것 같기도 하고.”
회사 입장에서는 일당백에 가까운 강주혁을 1부 2팀과 함께 고만고만한 공략에 들어가게 하는 게 오히려 낭비였다.
“지금이야 마석 매장지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석 매장지가 더 이상 안 나오면 저도 거품이 빠지겠죠.”
“자신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박하군.”
“사실이니까요. 제 실적이 곧 제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실적이 나쁜 헌터들도 많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강 팀장 실적은 실력을 온전히 담을 수 없겠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닌데…….”
“알고 있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도 있지. 매번 목숨을 걸고 열심히 노력하는 건 사실이지 않나.”
“네. 사장님.”
“팀이랑 갈라서는 건 안 내킨다는 거지?”
“네. 저한테 꼭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헌터로서도 그렇지만, 리더로서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팀원들한테도 더 도움을 주고 싶기도 하고요.”
“알겠네. 강 팀장만 좋다면 나야 좋지. 자네 영향을 받는 헌터들이 많아질수록 회사 입장에서는 이득이니까. 다른 한 편으로는 강 팀장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
“아직 까지는 괜찮습니다.”
“힘들면 언제든 얘기하게.”
“네. 사장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부탁을 하나 드려도 괜찮을까요?”
“편하게 말하게.”
“다음 마석 매장지 공략에 1부 2팀 멤버들을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음…….”
이윤철은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뜸을 들였다.
이미 <용의 길> 마석 매장지 공략에 관한 전권을 강주혁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워낙 큰 실적이 걸려 있는 일이다 보니 매번 말이 많았다.
“실적 문제 때문에 공략에 들어갈 때마다 반대 여론이 심했네. 강 팀장이야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자 핵심 인력이니 아무도 반대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네.”
“안다정 팀장도요?”
“안다정 팀장의 실력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 근데 왜 하필 공략 1부 사람이냐고 따지는 사람들은 많더군. 그런 큰 기회는 모든 공략팀에게 골고루 주어져야 한다는 게 골자였네.”
“그걸 사장님께서 지금까지 막아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됐네. 이 사람아. 자네보다 이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자네 말을 들어야지.”
강주혁은 자신이 일선에서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뒤에서 잡음을 막아준 이윤철 사장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나 보군.”
“다음 마석 매장지 공략부터 인센티브만 지급하고 실적은 계산하지 않는 겁니다.”
“실적을 계산하지 않는다고?”
“네. 사장님. 마석 매장지가 연달아 발견되면서 실적 시스템 자체가 망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헌터가 벌어들이는 돈만큼 실적을 인정해 준다. 그런데 한 번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어 버리면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지금의 강주혁이 딱 그랬다.
평범한 직원이 사원부터 사장까지 올라가는 동안 만들 수 있는 실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실적을 몇 달 사이에 올려버렸다.
강주혁뿐만이 아니다.
그가 속해있는 팀과 부서도 덩달아 압도적인 1등이 되어버렸다. 그들 모두 지금부터 아무것도 안 해도 임원까지 진급할 수 있는 실적을 쌓아버린 것이다.
일시적이지만 실적 시스템 자체가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이러니 다른 부서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하지. 근데 유덕현 부장이나 팀원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제가 양해를 구해보겠습니다.”
이미 유덕현은 강주혁 덕분에 임원에 진급하고도 남을 실적을 쌓았다. 레전드 1부 3팀에 있던 공허진과 안다정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실적보다 중요한 돈이 주어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헌터들이 마석 매장지에 목을 매는 이유도 결국은 인센티브 때문이니까.
실적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이다. 실적을 쌓아서 진급하는 것도 결국은 회사로부터 돈을 더 받기 위해서다.
강주혁은 알맹이에 해당하는 돈을 챙기고 나머지를 줌으로써 필요한 명분을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임원회의 때 한번 얘기해 보겠네. 반대의견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전보다는 이야기하기가 쉬울 것 같군.”
“감사합니다. 사장님.”
“근데 그 친구들만으로 가능하겠나? 검증된 사람은 공허진 대리밖에 없지 않나. 공략 난이도가 꽤 높은데 아직 여물지 못한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
“테스트를 해보고 역량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좋아. 강 팀장 뜻대로 한번 해 보게.”
“네. 사장님.”
“이제 본론에 들어가야겠군. 일이 좀 커져 버렸네.”
“블랙 헌터가 연루된 건가요?”
“그런 것 같네. 혹시 <귀화초(鬼火草)>라고 들어봤나?”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잎이 반투명하고 불이 타오르는 것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는 독초로 알고 있습니다. 극독이 아니라서 소량씩 섭취할 수는 있지만 마약 성분이 있어서 중독되기 싶다고 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건데 알고 있다니 놀랍군.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네.”
이윤철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강주혁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우연히 배웠습니다. 그게 한태성이 마신 영약에서 나온 겁니까?”
“그래. 다른 성분들은 일반적인 영약에도 들어가는 것들이네.”
“영약에 독초를 섞어 넣는 게 블랙 헌터답군요.”
“한태성은 그 영약을 블랙 마켓을 통해서 구매했다고 하더군.”
“전부 털어놓은 겁니까?”
“형량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순순히 불더군.”
“블랙 마켓에서 구하더라도 전달자는 있었을 텐데요.”
“감시카메라를 들여다봐야 하는 거라서 일단 경찰에게 넘겼네. 그리고 이번 일은 헌터 관리국에서 담당할 거야.”
강주혁은 이윤철이 어떤 의미에서 일이 커졌다고 말한 건지 알게 되었다.
정부와 헌터들은 각성자가 생긴 이래 계속해서 껄끄러운 관계였다. 블랙 헌터처럼 극단적으로 대립하지는 않지만 헌터들도 대개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부도 마찬가지고.
헌터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인 헌터 관리국과 가장 힘 있는 헌터 집단인 대형 공략회사들도 항상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특히, 대형 공략회사들은 자신들의 주된 자산인 광야에 관리국 소속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꺼려한다. 들어와서 둘러보고 트집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광야로 범죄자들이 들어오거나 소속된 헌터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되도록 회사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큰 범죄가 아니면 회사에서 잘리는 선에서 덮어주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 이상이더라도 그냥 경찰에 넘기는 걸로 마무리했다.
던전이라는 공간에 한해서 공략회사들이 공권력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당연히 헌터 관리국은 이런 관행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스케일이 커진 모양이군요.”
“게이트 안의 문제라면 우리끼리 해결하면 되는데 바깥까지 연루된 거라 어쩔 수가 없네.”
“우리도 일을 거들어야겠군요.”
“우리 영역이니까 그래야지. 광야에서 귀화초가 발견된 곳은 크게 세 군데네. 셋 중 하나는 우리 영역이지. 물론, 미개척 지역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네.”
“중독성이 있는 영약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려면 대량생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지속적으로 채취를 해야 할 거야.”
“그럼 귀화초가 발견된 지점들을 동시에 기습하는 건가요?”
“그 작전과 동시에 전달자를 체포하는 작전도 진행할 거야.”
어느 한쪽을 먼저 타격할 경우, 블랙 헌터들이 연락망을 이용해 나머지 거점을 정리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게이트 안과 밖의 거점을 동시에 타격한다면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
“헌터 관리국이 작전을 총괄하고,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공략회사들이 협조하는 식으로 진행될 거야.”
이윤철의 표정이 별로 개운하지 못했다. 헌터 관리국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지금 상황이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한태성의 범죄가 공략회사의 영역을 벗어난 이상, 헌터 관리국의 개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네가 나서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제가 시작한 일이니까 제가 끝내야죠.”
“고맙네.”
“이번에도 팀원들이 문제군요.”
“이걸로 밥이라도 사 먹이게.”
이윤철 사장이 자신의 법인카드를 내밀었다.
* * *
블랙 헌터 교주의 거처.
바닥과 벽도, 천장까지도, 거울로 되어 있는 방 한복판에 교주가 정좌하고 있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검은 복면인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부복했다.
“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모양이군요.”
부하를 바라보는 교주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고객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습니다.”
블랙 헌터는 조직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여러 자금줄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공략회사를 차리기도 했고, 신대성 같은 거물급 인사와 거래를 하거나 약점을 잡아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비중이 큰 자금줄은 불법적인 영약을 헌터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헌터들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모든 헌터가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그릇의 차이로 인해 아무리 노력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걸 인정하고 자신의 위치에 안주하는 자들도 있지만 만족하지 못해 발악을 하는 자들도 있는 법이다.
블랙 헌터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은밀히 접근해 강해질 수 있는 영약을 팔았다.
블랙 헌터들은 영약을 만들 때 재료를 따지지 않는다. 독성이 있어도 효과만 좋으면 무조건 집어넣는다.
고객들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힘에 매료되어서 약에 손을 댄다.
중독성도 있기에 끊기도 어렵다. 억지로 끊어도 심각한 부작용을 겪기 때문에 다시 복용할 수밖에 없다.
부작용이 드러나면 헌터 경력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도 끝난다. 심하면 부작용으로 인해 불구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객들은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약값으로 블랙 헌터들에게 바쳤다.
“한태성인가요?”
“네. 교주님.”
항상 강주혁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교주였다. 그와 작전에 들어가는 헌터들 중에 고객이 있다는 건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
짧은 기간 안에 엄청난 양의 약을 사 갔던 주요 고객 중 한 명이었다.
“주의를 주지 않았습니까?”
“강주혁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교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주혁과 엮이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그와 관련되기만 하면 일이 어그러졌으니까.
“경솔한 자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군요. 뒷정리는 확실히 했습니까?”
“이미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헌터 관리국이 이번 일에 개입한다고 합니다.”
교주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공략회사들만 있으면 적당히 꼬리 자르기를 하고 빠지려고 했다. 그러나 헌터 관리국이 개입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블랙 헌터들은 헌터들을 주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헌터들을 언제든 우리 편으로 넘어올 수 있는, 아직 계몽되지 못한 중생 정도로 생각한다.
블랙 헌터들의 진정한 적은 헌터와 블랙 헌터로 나뉘게 된 계기를 제공한 헌터 관리국과 그 뒤에 있는 정부다. 헌터 관리국이야말로 블랙 헌터에게 있어 반드시 타도해야 할 적인 것이다.
“광야에 귀화초 서식지가 세 군데 있습니다. 우리 재배지에 심어놓은 것들도 처음에는 거기에서 가져온 것들이죠.”
“공략회사들이 관리하는 영역에 있는 것들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공략회사들이 분명히 그곳을 노릴 겁니다. 헌터 관리국이 함께 하겠죠. 여러 회사가 움직이려면 총괄하는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살수들을 보내겠습니다.”
교주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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