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안 팀장님은 안 오셨어요?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신다은은 강주혁을 죽일 기세로 싸웠지만 강주혁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중요한 건 결과니까.
게다가 파천제왕검의 비전절기를 견식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오늘의 경험은 훗날 신대성이나 신태원과 싸울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찍기가 아니라 찌르기였나?’
피하느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강주혁이 서 있던 자리에 검이 수직으로 꽂혀 있었다.
강주혁의 머리 바로 위에서 수직으로 검을 던진 것이다. 처음 의도대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공격을 했거나 피하는 게 늦었다면 정수리에 칼이 꽂혔을 것이다.
머리 위를 의식하지 않도록 신다은은 계속해서 강주혁의 양옆으로만 이동했다. 그런 식으로 습관을 들여놓은 다음, 옆으로 빠지는 척 하면서 머리 위로 점프해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투지를 드러냄으로써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애초에 던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강주혁을 그 정도 속임수로 낚는 건 불가능했다.
‘비전절기가 투척 기술이라니…….’
이것도 의외였다.
뼈대 있은 검술들 치고 검을 투척하는 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을 던진다는 건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무극검과 마찬가지로 뒤가 없는 기술인 것이다.
신태원이 평소 이미지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았다. 그만큼 모르는 상대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고마웠어요. 덕분에 한 수 배웠네요.”
신다은도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보법.
강주혁은 그것을 파훼하지 못했다. 사신무극검의 기술들을 사용했다면 가능했겠지만 내공소모를 염두에 둔다면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신다은을 잡지 못한다면 오히려 강주혁이 곤란해진다.
반대로 신다은 역시 강주혁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날리지 못했다. 보법에서 파생되는 공격들은 그저 위협하는 수준에 그쳤다. 비장의 수로 꺼내든 비전절기도 손쉽게 피해버렸다.
두 사람 모두 이번 대련으로 숙제가 생긴 것이다.
“이만 가볼게요.”
신다은이 권대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오냐. 또 보자꾸나.”
강주혁에게는 인사를 했으나 그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옷을 털고 검을 닦으면서 뭉그적거렸다.
“안 가니?”
“가요. 보채지 마세요.”
신다은은 괜히 머리를 풀었다가 다시 묶는 둥 딴청을 피웠다.
“주혁아.”
“네?”
“너도 이만하고 내려가거라.”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세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뭘 배웠느냐가 중요하지.”
“그럼 같이 내려가시죠.”
“나는 좀 더 있다가 가마. 다은이 너도 집에 가는 거지?”
“네.”
신다은은 여전히 하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묘하게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방향도 같은데 같이 내려가거라.”
권대호가 무심한 듯 강주혁에게 말했다. 강주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권대호를 바라보았다.
“으음, 다리가 쑤시네. 비가 오려나.”
권대호는 먼 산을 바라보면서 딴소리를 했다. 강주혁은 그의 검은 속내를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다음 주에 또 오거라.”
강주혁은 음흉한 스승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준비 다 되면 알려줘요.”
“끝났어요. 가요.”
천년만년 이어질 것 같던 하산준비가 단숨에 끝났다.
두 사람은 산길을 따라서 나란히 걸었다.
“회사 다니는 건 어때요?”
신다은이 물었다.
“좋습니다.”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요?”
“괴롭히는 사람이요?”
“아, 강 팀장님이 입사 초기부터 이래저래 트러블을 많이 겪었다고 들어서요.”
강주혁을 해코지하던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죽거나 감옥에 있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혹시 힘든 일 생기면 저한테 얘기해 줘요.”
“부회장님이 나서주시는 건가요?”
강주혁은 빙그레 웃었다.
“그럼요. 어쩌면 회장님이 나서주실 수도 있죠.”
“든든하군요.”
“근데 제 번호는 아세요?”
“모릅니다.”
“이거예요.”
두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번호를 교환했다.
“아빠가 많이 고마워해요.”
“저한테요?”
“강 팀장님 덕분에 회사가 급성장했잖아요. 할아버지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로 업계 1등을 한 기간은 거의 없어요. 강 팀장님이 오고 난 후로 몇 년째 하고 있죠. 태원공략이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좋아하세요. 아빠도 할아버지도.”
“저 혼자 한 것도 아닌데요.”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강주혁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내려가면 뭐 할 거예요?”
“집에 가서 수련하려고요.”
“수련이요?”
“원래 스승님이랑 하는 건데 못했으니까 혼자라도 해야죠.”
“내일 월요일인데 피곤하지 않을까요?”
“내일 월요일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일할 때는 수련을 못하니까요.”
“……밥은 안 먹어요?”
“대충 먹으려고요.”
“……네.”
강주혁은 신다은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알았지만 호응해 주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녀가 불편했다.
“참, 다정이랑은 잘 지내요?”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죠.”
“며칠 전에 다정이를 만났는데 강 팀장님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제 얘기요? 뭐라고 했는데요?”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제가요?”
강주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안 팀장님이 그런 평가를 내렸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좋은 건 아니고요?”
“좋은 소리를 들었으니 좋기는 하죠. 근데 그 말을 안 팀장님이 하니까 뭔가 괴리감이 드네요.”
“왜요?”
“일적으로 저를 평가하실 줄 알았거든요. 유능하다. 열심히 한다. 혼자만 잘나서 팀워크가 부족하다. 이런 식으로요.”
“직장동료가 아니라 사람으로 평가해서 놀란 거군요.”
“그렇죠.”
강주혁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강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선배이자 동료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고요.”
“지인이 아니라 제 3자에 대한 평가 같은데요.”
“진심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어요.”
“뭐를요?”
“아시잖아요.”
“사양하겠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요.”
“다정이가 팀장님 좋아한대요.”
강주혁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정색했다.
“농담이시죠?”
“정말이에요.”
신다은의 표정을 보니 진지한 것 같았다.
“그렇군요.”
강주혁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반응이 심심하네요. 강 팀장님은 다정이가 별로인가 봐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우리 이 얘기는 그만하죠.”
“……네.”
강주혁의 표정이 안 좋은 걸 본 신다은은 더 이상 안다정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 * *
두 사람은 신다은의 차를 타고 함께 강남으로 돌아왔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강주혁은 또 보자는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아, 뭐야.”
혼자 남겨진 신다은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인상을 썼다.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별로인가.’
신다은은 백미러를 보면서 자기 얼굴을 살폈다. 아무리 도복 차림이라고 해도 지금이 안다정일 때보다 훨씬 나았다.
평생을 꼬이는 남자들 쳐내느라 고생했는데, 정작 마음에 드는 사람은 금강불괴 수준의 철벽으로 신다은을 밀어냈다.
자존심이 상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안다정 때문인가.’
대련하기 전까지만 해도 냉랭했던 태도가 대련 후에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다.
비록 지기는 했지만, 강주혁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덕분에 함께 얘기를 나눌 때도 호응을 잘 해줬다.
하지만 안다정에 대한 얘기가 나온 후로 다시 분위기가 딱딱해졌다.
‘진짜 좋아하는 게 맞나?’
신다은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안다정에게는 어느 정도 호감이 있다.
이게 신다은의 추측이었다. 이번 공략 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한태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강주혁은 그녀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그리고 무리를 해가면서 한태성을 생포했다. 안다정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강주혁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신다은의 마음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꼭꼭 눌러 담아뒀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 보여준 반응도 그랬다. 안다정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정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서둘렀나.’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강주혁의 태도가 너무 답답했다. 호감은 있지만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 그 태도가 싫었다.
‘술 고프네.’
저녁 시간이 다가왔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신다은은 차를 공영주차장에 세워놓고 강주혁이 자주 데리고 가던 술집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서빙을 하는 여직원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신다은을 쳐다봤다.
직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쳐다봤다.
‘옷 때문에 도망간 건가?’
신다은은 그제야 자신이 도복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주혁이랑 저녁을 같이 먹게 되면 갈아입으려고 괜찮은 옷을 차에 실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소주 한 병 주세요.”
오픈 키친에 붙어 있는 바 자리에 앉은 신다은은 술부터 시켰다.
안주로는 야키도리를 시켰다. 묘하게 강주혁을 닮은 것 같은 사장님이 정성스레 꼬치를 구워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신다은은 강주혁이 왜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신 씨 집안에 대한 원한 때문에 그럴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다은과 강주혁은 동지나 마찬가지다. 둘 다 신대성을 처단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신다은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대성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가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신다은의 마음을 강주혁이 알 리가 없었다. 강주혁에게 신 씨 집안사람은 그저 증오와 혐오의 대상일 뿐일 테니까.
별 상관도 없는 신대승에게도 해코지를 당했으니 그런 마음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아마 신대길이나 자신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에휴.”
신다은은 한숨을 쉬고는 소주를 털어 넣었다.
“손님.”
그때, 잘생긴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네?”
“헌터이신 것 같은데 살기를 좀 거둬주시죠.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신다은은 자기도 모르게 살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재빨리 기세를 갈무리했다. 그녀가 풍기는 살벌한 분위기에 답답해하던 손님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감사합니다. 이건 서비스예요.”
사장이 무심한 듯 나가사키 짬뽕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신다은은 고개를 꾸벅하고는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까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까지 풀리지는 않았다.
‘난 관심도 없는데…….’
강주혁이 신다은을 꺼려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태원공략 때문일 것이다. 강주혁은 레전드 1부 3팀 멤버들에게 태원공략을 차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주혁이니, 허풍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해 줬다.
강주혁의 포부를 전해 들은 아버지도 좀 난감해했다. 아버지가 바라는 건 스스로 회장이 되고, 공략을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었으니까. 나중에 정체를 밝힌다면 헌터로서 경력이 없다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신다은은 아버지가 강주혁을 좋아하면서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태원공략의 주인 자리를 놓고 다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작 신다은 본인은 공략회사를 이끄는 일에 뜻이 없었다. 아버지가 신대성 때문에 불구가 되기 전까지는 회사 일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무예를 연마하는 건 좋아했으나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잘하기도 했지만, 진정으로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강주혁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적응을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태원공략이 있어야지만 신대성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아버지의 부탁 때문에 마지못해 다니긴 했지만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여직원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소주병을 건넸다. 신다은은 소주병을 받자마자 잔을 채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랑 원치도 않는 유산을 두고 신경전을 벌여야하는 상황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혹시나 강주혁이 안다정에게 마음을 열어준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언제까지 그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
만약 안다정의 정체가 신다은인 걸 알면 강주혁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돌겠네.’
술이 물처럼 달게 느껴졌다.
* * *
다음 날.
강주혁은 출근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안다정이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안 팀장님은 안 오셨어요?”
“몸이 편찮으셔서 병가 내셨어요.”
이정인 과장이 답했다.
“그렇군요.”
강주혁은 걱정이 되면서도 안다정의 얼굴을 늦게 보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어제 신다은이 한 말이 신경이 쓰였다. 안다정의 얼굴을 보면 괜히 어색해질까 봐 걱정되었다.
띠리리.
그때, 사내 전화가 울렸다.
“공략 1부 2팀 강주혁 팀장입니다.”
“이윤철 사장이네. 주말은 잘 보냈나?”
“네. 사장님.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신광의 남궁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네.”
“무슨 일인가요?”
“자네가 한태성에게서 뺏어온 약물의 성분 분석이 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