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명줄을 줄여요?
강주혁은 태원공략과 신광공략 양측의 허락을 받고 장철준을 광야로 데리고 갔다.
“던전에 들어온 건 수십 년만이군.”
장철준이 감상에 젖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들어오신 적이 있습니까?”
강주혁이 물었다.
“헌터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꽤 자주 드나들었지. 내가 만든 장비들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보고 싶었거든. 물론, 그 친구들한테는 거추장스러운 짐짝이었겠지. 그래도 그런 경험들 덕분에 제작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아마 다른 장인들은 안전 문제와 게으름 때문에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만든 무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알면 무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강주혁은 장철준이 자기 기술에 대해서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혹시 경험해 보고 싶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상사들에게 한번 건의해 보겠습니다.”
“음…… 자네가 싸우는 걸 한 번 보고 싶기는 하군.”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웨이포인트 위에 섰다.
목적지는 최근에 강주혁이 발견한 마석 매장지였다.
그곳에 있는 웨이포인트는 지원팀이 아니라 공략 당시 유한길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쪽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고, 마침 주변에 마석이 널려 있어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건강 상태가 염려스러운 생존자들을 데리고 용암지대를 건너는 건 어렵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공략이 끝난 후 지원팀이 웨이포인트를 보강했고 지금은 안전하고 편하게 마석 매장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오오, 이런 건 처음이군.”
웨이포인트를 넘자마자 펼쳐진 장관에 장철준을 감탄사를 터뜨렸다.
축구경기장보다 더 큰 공동이 빛나는 마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광경이 낯익은 강주혁조차 볼 때마다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마석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석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언제나 헌터들을 고양시켰다.
캉! 캉!
수백 명의 광부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일을 해야 할 만큼 매장량이 풍부했다.
“이쪽입니다.”
강주혁은 얼이 빠져 있는 장철준은 인도했다. 두 사람은 제단이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이 사장? 남궁 사장?”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공략회사의 사장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두 사람은 장철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니, 바쁜 사람들이 여기는 어쩐 일인가?”
“선생님께서 오시는 데 무리를 해서라도 나와야죠. 어느 안전이라고 거드름을 피우겠습니까.”
“인사 자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장철준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강주혁을 쳐다봤다.
“두 분께서 선생님을 아신다고 하셔서요.”
강주혁이 변명조로 말했다.
장철준에게 용광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윤철 사장과 남궁천 사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윤철 사장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무척 기꺼워하면서 강주혁의 아이디어를 칭찬했다.
그리고 곧장 남궁천에게 연락을 취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검은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이윤철과 남궁천이 각자의 검을 들어 보였다. 현재 두 회사에서 장철준에게 검을 받은 사람은 저 둘밖에 없었다.
“제가 갔을 때는 문전박대하시더니 이 녀석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남궁천이 짓궂게 물었다.
“크흠, 위험한 무기를 다룬다기에 한번 봐준 것뿐이네.”
장철준은 헛기침을 했다.
그의 현역 복귀를 바라고 도우려고 한 사람들 중에는 이윤철과 남궁천도 있었다.
하지만 장철준이 워낙 완강하게 밀어내는 바람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주혁의 손에 이끌려 나타났으니 원망스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강 팀장에게 검을 무기로 만들어주시기로 하셨다면서요?”
이윤철의 질문에 장철준이 강주혁을 째려보았다.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녔구나.”
“제 사장님이십니다. 물어보면 솔직히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철준은 고개를 젓더니 이윤철의 질문에 답했다.
“이번 공략에서 뜻깊은 일을 했기에 선물을 해주기로 했네.”
“선생님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마음껏 둘러보십시오.”
“오신 김에 식사라도 하시죠.”
“일 없네. 이 녀석이 보자고 한 것만 보고 떠날 테니 자네들도 가서 일 보게나. 사장이 자리를 오래 비워서 쓰나.”
장철준이 고집을 부리자 두 사장이 강주혁에게 눈총을 쐈다. 어떻게 해서든 장철준을 꼬시라는 특명이었다.
강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강주혁은 장철준을 이끌고 용광로로 갔다. 용광로 앞에 도착한 장철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
용광로뿐만이 아니라 쇠를 달구는 데 필요한 화덕과 모루, 쇠를 식힐 때 필요한 물을 구할 수 있는 우물까지 갖추고 있었다.
“누가 쓰던 것인가?”
“그건 모릅니다. 이 세계의 원래 주민이거나 지성이 있는 몬스터들이겠죠. 지금은 안전합니다. 리스폰 데이 때는 출입이 통제되겠지만 평소에는 언제든 올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군.”
장철준이 눈에서 용광로의 불길처럼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강주혁은 용광로 뒤편에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
“저 위를 보면 아시겠지만, 철광석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옆에 있는 레버를 당기면 철광석이 저절로 들어가고 용광로가 작동됩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지원팀 직원 말로는 아주 좋은 철이 나온다고 합니다.”
장철준은 뭔가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강주혁의 설명을 들었다.
“지금 한번 해볼 수 있겠나?”
“네. 선생님.”
강주혁은 레버를 작동시켜서 철을 생산하는 공정을 시작했다.
용광로에서 뽑아져 나온 철은 본 장철준의 눈이 한없이 깊어졌다.
“술부터 끊어야겠군.”
장철준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마음에 드십니까?”
뒤에서 걸어온 이윤철이 물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용광로는 처음 보는군.”
“대형 제철 회사에 못지않은 철을 뽑아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분명 그럴 걸세. 그리고 이 철도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철하고는 많이 다르네. 더 좋은 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윤철이 물었다.
“근데 여기는 신광공략의 영역이 아닌가?”
“……그랬죠.”
남궁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의 원망 어린 시선은 강주혁을 향하고 있었다.
남궁천은 이 용광로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를 뒤늦게 알았다. 아마 속으로 마석에 정신이 팔려서 이걸 놓쳐버린 자기회사 헌터들을 저주하고 있을 것이다.
“합의하에 우리 쪽으로 넘기기로 했습니다.”
“남궁 사장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다니 의외군.”
“그, 그게…… 아닙니다.”
남궁천 사장이 한숨을 푹 쉬더니 강주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우리가 친구이자 동지인 줄 알았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태원공략의 직원이라서…….”
남궁천 사장은 오만상을 썼다.
한태성이 일으킨 사건을 덮는 것에 대한 대가치곤 너무 비쌌다.
기자 회견을 할 때도 강주혁은 자신의 업적을 강조해달라는 부탁했다. 그 부탁을 들어줬더니 신광공략이라는 회사보다는 강주혁이라는 개인이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강주혁과 거래를 하면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수수료만 두둑하게 내면 신광공략 친구들도 사용 가능합니다.”
이윤철 사장은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보물을 가져온 강주혁이 기특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자네가 허락해 준다면 여기에다가 내 작업장을 만들고 싶네.”
“저 역시 바라던 바입니다. 하지만 사장으로서의 제 입장도 고려해 주시죠.”
이윤철은 대가 없이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자네 회사 직원들을 위해 쓸 만한 물건 몇 개를 만들어주지.”
“철칙에 예외를 두시는 겁니까?”
장철준이 자신이 인정하는 헌터에게만 물건을 만들어준다는 건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예외는 아니고 기준을 조금 완화한 것뿐이네. 내 기준에 따르면 내 검을 받을 만한 녀석은 자네 둘이랑 이놈뿐이야.”
장철준이 강주혁의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강 팀장은 아주 유별난 케이스입니다.”
“알고 있네. 이 녀석 검만 만들고 여기를 놀게 할 수는 없으니까 주문을 받아주지. 물론, 아무나 받아줄 수는 없네. 이 녀석 만큼은 아니어도 뭔가 한 가닥씩 하는 놈이어야 하네. 허접한 놈들한테까지 무기를 줄 순 없네.”
“물론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죠.”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자네 둘 장비도 싹 다 가져오게. 서비스로 수리 정도는 해주지. 더 좋은 방식으로 개량도 해보고.”
남궁천과 이윤철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그럼 제가 작업장 이전 비용을 부담하겠습니다.”
남궁천 사장이 말했다.
“저희는 월급을 챙겨드리죠. 지원계열 임원 수준으로 대우하겠습니다.”
“난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알아서 해주게. 오늘부터 정리를 시작해야겠군.”
장철준이 성큼성큼 걸어서 웨이포인트로 걸어갔다. 누가 봐도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았다.
“강 팀장.”
“네. 사장님.”
이윤철 사장이 강주혁을 불렀다.
“잘했네. 정말 잘했어.”
이윤철은 강주혁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씩 웃었다.
“저 고집불통 영감을 여기까지 끌고 오다니 무슨 요술을 부린 건가?”
남궁천이 물었다.
“딱히 없습니다. 이번에 헌터들을 구출한 일에 큰 감명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제 검들 중에 좀 위험한 물건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뵈었더니 봐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일로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위험한 물건?”
“네. 마검입니다.”
이미 강주혁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윤철과는 달리 남궁천의 몹시 놀랐다.
그 역시 장철준이 겪었던 비극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군.”
남궁천은 어째서 장철준이 강주혁을 받아준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 * *
태원공략 사내 식당.
헌터들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혹시 그 얘기 들었습니까?”
“무슨 얘기?”
“신광공략 쪽에서 발견된 마석 매장지 있잖습니까.”
“공략 1부 팀장들이 찾은 거?”
“네. 그거요.”
“그게 왜?”
“신광공략 쪽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 한복판에 공방이 생겼답니다.”
“공방?”
“장비를 만들어주는 공방이요. 거기에서 용광로가 발견됐는데 그걸 써먹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던전에서 발견된 시설을 쓰다니 별난 발상이네. 안전성이나 편의성을 감안하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마석 매장지 한복판에 있으니 안전성은 확실하겠죠. 편의성이 문제이긴 한데 그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양입니다.”
“전설의 검이라도 만들려나?”
“그럴 모양입니다. 그 공방의 책임자로 전설의 장인을 앉혔다던데요.”
“전설의 장인?”
“이름이 장철준이하고 하던데. 혹시 아십니까?”
“처음 듣는데?”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설이랍니다.”
“뭐? 그러면 공신력이 없잖아. 신광도 참 웃기는 놈들이네.”
“근데 그 시설 태원공략 소유 아니에요?”
“뭐? 신광공략 영역 안에 있는 거잖아.”
“강주혁 팀장님이 공략 대가로 요구해서 받아왔대요. 그 공방도 우리 거고 그 장인을 초빙해 온 사람도 강주혁 팀장님이래요.”
“……제길.”
남의 회사인 줄 알고 빈정거리던 헌터들은 자신들의 방정맞은 입을 다물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때, 한 무리의 헌터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강주혁 팀장님이다.”
강주혁과 공략 1부 2팀 헌터들이었다.
“뭐, 뭐지?”
“장 대리도 느껴져?”
“네. 보통이 아니네요.”
“강 팀장님이 뿜어내는 기운은 아닌데.”
강주혁이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지닌 헌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곳에서 자신의 격을 드러내는 헌터는 없다.
“검이네.”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력은 강주혁이 아니라 그가 차고 있는 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칼집 안에 들어 있어도 수백의 몬스터를 벤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검.
식당 안의 모든 사람이 얼이 빠진 상태로 강주혁이 차고 있는 검만 쳐다봤다.
장철준이 만들어준 멸마검(滅魔劍)이었다.
* * *
그 주 주말.
강주혁은 청계산으로 오라는 권대호의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향했다.
수련을 하는 곳에 가보니 권대호가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을 하고 있었다.
“왔느냐?”
“별래무양하셨습니까?”
“장철준 그놈을 복귀시켰다면서?”
같은 세대인 권대호 역시 장철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놈이 만들어준 검이냐?”
강주혁이 차고 있는 검을 보고 물었다.
“네. 한번 보시겠어요?”
강주혁은 멸마검을 꺼내 권대호에게 건넸다. 검은 찬찬히 살펴보던 권대호가 인상을 썼다.
“왜 그러세요?”
“그놈이 제 명줄을 줄였구나.”
“명줄을 줄여요?”
“뛰어난 장인은 역작을 만들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역작을 만드는 순간에 명을 다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이건 초일류 장인이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검이야. 지나치게 좋은 검이란 거지.”
권대호에게서 검을 돌려받은 강주혁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장철준이 복귀를 한 것은 좋지만 그가 무리하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까.
이 검에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척!
권대호가 옆에 있던 보자기를 내밀었다.
“이건?”
“내 건틀릿이다. 그놈한테 가져가서 기름칠 좀 해오거라.”
“……장철준 선생님은 이제 회사소속입니다. 제가 사적으로 부탁할 만한 입장은 못 됩니다.”
“이 사장한테 전화하랴?”
“아닙니다. 그냥 제가 부탁드려 볼게요.”
“보면 알겠지만, 그것도 그놈이 만든 거다. 네 검은 공짜로 해줬지만 나한테 10억이나 받아먹었지. 날강도 같은 새끼.”
권대호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역정을 내면서 씩씩거렸다.
“근데 웬일로 이쪽으로 부르셨습니까? 최근엔 자주 안 오셨잖아요.”
“왜일 거 같으냐?”
권대호가 씩 웃어 보였다. 강주혁은 대답 대신에 검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이에요.”
거기에는 신다은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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