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제 검을 만들어주십시오
“차장이요?”
“그래. 늦어도 많이 늦었지. 실적만 놓고 보면 진즉 달고도 남았으니까.”
유덕현이 강주혁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답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축하해요. 강 차장님.”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안다정이 자기 자리에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한턱 쏠 거지?”
유덕현이 물었다.
“물론이죠. 1부 사람들 모두 데리고 한 번 하고 우리끼리도 따로 자리를 마련하죠.”
“그래. 허진이 삐치기 일보 직전인데 달래줘야지.”
“삐쳐요?”
“살짝. 걱정 마. 공허의 특공대는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강주혁은 쓴웃음을 지었고 유덕현은 그런 강주혁을 보면서 껄껄 웃었다.
“내가 전생에 이순신 장군님이었나 보다. 어떻게 니들 같은 사람들이 내 밑으로 들어오냐.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저하고만 있을 때는 전생에 히틀러였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랬나? 허허.”
유덕현은 어색하게 웃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두 사람한테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아, 부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유덕현은 계속 웃으면서 뜸을 들였다.
“뭔데요?”
“헌터 관리국 홍보대사 한번 해 볼래?”
“홍보대사요?”
“그쪽에서 이번에 두 사람이 헌터들 구출해낸 게 마음에 들었나 봐. 두 사람을 홍보대사로 쓰고 싶다고 요청했어.”
“그런 건 원래 연예인들이 하잖아요. 그래야 홍보가 되죠.”
“너희 둘은 이미 준연예인이야. 특히, 주혁이 너는.”
“저는 싫어요. 안 해요.”
안다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생각 없습니다.”
“에이, 왜 그래. 별로 하는 것도 없어. 그냥 행사에 한두 번 정도 얼굴 비추는 게 전부야. 사진 몇 장 찍히고.”
“공공기관이면 돈도 많이 안 주잖아요.”
“교통비랑 식사비 정도는 챙겨주겠지.”
“얼굴 팔리는 것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소소한데요. 우리 팀 일도 잔뜩 밀려있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러다가 팀원들이 들고 일어나서 탄핵당할 것 같아요.”
“헌터 관리국 홍보대사면…… 명예로운 자리잖아.”
“우리가 무슨 기사도 아니고 명예를 따져요. 받은 만큼 일하는 직장인인데. 부장님,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뭔가 더 있죠?”
“그쪽은 회장님이랑 사장님도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런 사람들 눈도장 찍어놔서 나쁠 건 없지.”
“…….”
“…….”
강주혁은 어이가 없어서 안다정을 쳐다봤다. 그녀도 황당해하면서 큰 눈을 껌뻑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유덕현을 쳐다보았다.
“왜? 내가 뭘 잘못했어?”
“부장님.”
“무섭게 왜 그래?”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뭐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부장님 변하셨어요.”
높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거야 예전에도 잘했지만 유덕현은 결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손해를 보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사내 정치를 멀리했으니까.
강주혁은 이런 변화가 오히려 기꺼웠다. 부장을 넘어 더 위로 올라가려면 그만한 정치력은 있어야 한다.
“타락했어요. 순박한 분이셨는데.”
하지만 안다정은 실망한 눈치였다.
“야, 그런 거 아니야. 니들 좋으라고 하는 소리잖아.”
“우리는 그런 사람들한테 눈도장 찍어가면서까지 성공하고 싶지 않아요.”
안다정이 냉랭하게 말했다.
“사장님께서 시키신 거죠?”
“……그렇지.”
“어쩔 수 없군요. 저라도 하겠습니다.”
강주혁의 대답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장님 곤란하시잖아요. 저도 별로 안 내키기는 하지만 부장님이랑 사장님한테 밥 얻어먹은 게 있어서요. 밥값은 해야죠.”
“으하하, 고맙다. 역시 주혁이밖에 없네.”
“그럼 저도 할게요.”
안다정도 말했다.
“안 팀장은 싫다면서?”
“저 혼자 안 한다고 하면 눈치 보이잖아요. 또 반골로 찍히고 싶진 않아요.”
“흐흐흐, 안 팀장도 변했어.”
“저야 찍혀도 상관없는데 팀원들 생각해야죠.”
부하는 상사가 닦아놓은 길을 통해서 올라간다는 사실을 안다정도 받아들인 모양이다.
“대신 내가 두 사람한테 크게 쏠게.”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세요. 이번엔 꼭 비싼 데 갈 거니까.”
“걱정 마.”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그 때, 1부 2팀의 세 사람에다가 1부 3팀의 이경호가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출근길에 만나서 같이 온 것 같았다.
“어서들 와.”
유덕현이 씩 웃으면서 직원들을 반겼다.
“어, 팀장님이다!”
“강 팀장님!”
“나 없는 동안 잘 있었어요?”
세 사람은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개들처럼 강주혁에게 달라붙었다.
* * *
홍보대사를 한다고 해서 일이 곧바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헌터 관리국은 일정을 조율해서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뭉그적거렸다.
강주혁은 그 전에 신광공략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확인했다.
신광공략은 강주혁의 인센티브로 50억을 지급했다. 공략기여도에 따른 결정이었다.
공략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강주혁이 없었다면 공략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보고서에 썼다. 덕분에 강주혁은 두 달 만에 백억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강주혁은 신광에게 받은 두 번째 선물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 장인 장철준을 찾아갔다. 그는 여전히 같은 가게에 있었다.
임대 문의라고 붙어 있던 종이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강주혁이 일부러 돈이 많이 드는 의뢰를 맡겨서 가게를 살려놓은 것이다.
강주혁도 값을 깎을 생각이 없었지만 장철준도 애초에 많이 남겨 먹는 타입이 아니었다. 손님이 자기가 만든 장비를 쓸 자격만 된다면 거저 주기도 했던 사람이니까.
어쩔 때는 아예 재료비만 받으려고 해서 강주혁이 오히려 돈을 더 주기도 했다.
‘잘 계시나?’
강주혁은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리벽을 통해서 가게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장철준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초췌한 건 여전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다행히 주변에 술병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비해서 술을 많이 줄인 것 같았다.
강주혁은 문을 몇 번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 자넨가?”
장철준은 웬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검의 칼집을 제작해 준 것을 계기로 2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강주혁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냉랭했다. 원래도 좀 무뚝뚝한 성격인데다가 안 좋은 일까지 겪어서 그런 것 같았다.
퉁명스럽게 대해도 일은 확실히 해줬기 때문에 강주혁도 불만이 없었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늘 똑같지.”
“덕분에 이번 공략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주머니사정이 넉넉해진 후 강주혁은 항상 장비들의 유지보수를 장철준에게 맡겼다.
회사에서 공짜로 해주기는 하지만 솜씨만 놓고 보면 지원팀의 직원들은 장철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장비를 오래 쓰기에는 이쪽이 더 좋았다.
“소식 들었네.”
장철준은 작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소식이요?”
“이번 공략에서 실종된 헌터들을 구해낸 게 자네 아닌가?”
“아, 그거요. 운이 좋았습니다.”
강주혁은 몰랐다.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헌터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줬는지.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헌터들을 자기 가족처럼 생각했고 그들을 보면서 안도하고 슬퍼했다.
언론도 그런 여론을 감지하고는 계속해서 뉴스를 내보냈다.
강주혁이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서 검에 매진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은 먹었나?”
“아직 안 먹었습니다.”
“잘 됐군. 여기 근처에 괜찮은 국밥집이 있는데 혹시 밥 생각 있나?”
장철준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강주혁은 살짝 놀랬다.
“좋습니다. 제가 대접하죠.”
장철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하는 강주혁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됐네. 이 사람아.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사야지. 가세.”
“근데 가게 문 닫으셔도 괜찮은가요? 한창 손님 올 시간인데.”
주변의 다른 가게는 꽤 붐비고 있었다.
지금은 퇴근한 공략회사 직원들이 상가를 찾은 시간대였다. 그들 역시 무거운 장비를 들고 돌아다니는 게 번거로우니 대개 퇴근하고 곧바로 공방을 찾는다.
저녁 시간이지만 손님이 가장 많은 때이기에 공방의 주인들은 저녁 식사를 미루거나 배달 음식으로 간단히 때우곤 했다.
“자네 빼고는 올 사람도 없네. 어서 가세.”
어차피 손님도 가려서 받으니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장철준이 데리고 간 국밥집은 아주 예스럽고 허름한 가게였다. 맛이 좋은지 사람은 바글바글했다.
두 사람은 운 좋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장철준은 일단,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술 좀 하나?”
“잘 마시는 건 아니지만 좋아합니다.”
“잘 됐군. 이모, 여기 소주도 한 병 줘요.”
“줄인다고 하더니 왜 또 초저녁부터 술판이요?”
가까운 사이여서 그런지 주인아주머니가 핀잔을 줬다.
“아, 손님이랑 왔으니까 그렇지. 많이 안 마실 거니까 얼른 갖다 줘요.”
“딱 한 병이에요. 그 이상은 안 팔 거니까 싫으면 다른 가게 가쇼.”
“거 참 손님 앞에서 잔소리는.”
장철준이 오만상을 쓰는 걸 보면서 강주혁은 빙그레 웃었다.
아주머니가 소주를 가지고 오면서 물었다.
“근데 무슨 손님이랑 술을 마셔? 나이도 완전 아들뻘이구만. 진짜 아들인가?”
아들이라는 질문에 장철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주혁의 능청스러운 말에 장철준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머니는 강주혁을 보다가 불현듯 뭔가를 떠올리고는 손뼉을 쳤다.
“가만. 에구머니나. 총각, 그 사람 맞지? 요즘 텔레비전에 나온 잘생긴 총각이랑 완전히 똑같은데.”
“……아마 그럴 겁니다.”
“맞네. 맞네. 젊은 사람이 그런 일도 하고 정말 장해.”
“원래 하던 일인데요.”
소방관이 불을 껐다고 특별히 칭찬을 받지는 않는다. 강주혁은 자신이 한 일이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총각 봐서 소주는 서비스로 줄게.”
“고맙소.”
장철준이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한 잔 받게.”
강주혁은 공손하게 술잔을 들어서 술을 받았다. 그리고 장철준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두 사람은 잔을 비운 후 국밥을 한 숟갈 떴다.
“젊은 사람이라서 이런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저 국밥 자주 먹습니다. 술이랑 같이 먹기에는 최고 아닙니까. 제가 가는 회사 근처 식당보다 여기가 훨씬 낫네요.”
“입에 맞다니 다행이군.”
장철준은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 강주혁이 술잔이 빌 때마다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마검은 좀 어떤가? 요즘은 말썽 안 부리나?”
“제가 그동안 많이 성장해서 그런지 더 이상 시비를 걸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항상 칼집에 넣어놓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그래도 조심하게. 끈질긴 놈들도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장인에게 가장 큰 기쁨이 뭔지 아나?”
“좋은 검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출발이지. 좋은 검을 만들더라도 그걸 사용해 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죠. 근데 그 사람이 검을 이상하게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걸세. 좋은 검을 만들고 그 검을 제대로 써줄 사람까지 있는데 그놈이 그걸로 괴물이 아니라 사람을 베고 다니면 그걸 만들어준 장인 역시 죄인이 되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장철준은 머쓱한 표정으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고맙네.”
“네?”
“이번 공략 때 그 검을 썼다고 들었네.”
신광공략 쪽에도 아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남궁천 사장인지도 모른다. 장철준의 과거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내가 만든 검은 아니지만 그 검에는 내 손때가 묻어있네.”
“선생님께서 만들어주신 거나 마찬가지죠. 그 칼집이 없었다면 그 검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칼집만 만들어준 게 아니다. 칼날이 상할 때마다 그걸 새것처럼 만들어준 사람 역시 장철준이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제가 감사드리죠. 선생님 덕분에 던전에서 목숨을 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장철준은 기특하다는 듯이 강주혁을 쳐다봤다.
“나한테도 아들이 있었네. 자네보다 나이가 많으니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부장이 됐을지도 모르겠군.”
강주혁은 다 알면서도 묵묵히 들었다.
회귀 전에 신태원과 여러 사람에게 들은 건 있지만, 당사자에게 듣는 건 처음이었다.
장철준은 술도 안 마시고 덤덤히 자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까지. 강주혁은 숙연한 태도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자네가 처음 그 검을 가져왔을 때가 생각나는군. 귀찮아서 그냥 쫓아버리려고 했는데 아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지.”
“아드님께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그 검을 좋은 일에 써줘서 고맙네. 내가 완전히 일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들려고 일감을 계속 가져다주는 것도 고맙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 아니어도 선생님께 일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까.”
“내게 일을 시킬 자격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게 많더군. 모두가 입을 모아서 자네를 천년에 한 번 나올 만한 걸물이라고 평하더군.”
“열심히 한 건 사실이지만 좀 부풀려진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동년배들 중에 자네만 한 사람은 없을 걸세.”
“과찬이십니다.”
강주혁은 장철준의 눈에서 장인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바라는 걸 먼저 말하기로 했다. 그게 장철준의 체면을 살려주는 길이고 강주혁 자신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니까.
“선생님.”
“말하게.”
“그럼 저는 이제 선생님의 기준에 부합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 두 가지만 해도 될까요?”
“두 가지?”
“제 검을 만들어주십시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네. 다른 부탁은 뭔가?”
“그걸 제가 원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주십시오.”
“원하는 장소? 내 작업장이 아니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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