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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45화 (145/202)

145화 연예인도 아닌데요

“원하는 게 뭔가?”

남궁천 사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인센티브를 두둑하게 챙겨주시는 건 기본으로 알겠습니다.”

강주혁이 말했다.

“공략기여도를 따진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

“그리고 마석 매장지에 용광로처럼 보이는 시설이 하나 있습니다.”

“용광로?”

아직 세부 사항까지 보고를 받지 못한 남궁천은 용광로가 무엇인지 몰랐다.

“네. 제가 조사해 본 결과, 실제로도 용광로처럼 쓸 수 있더군요.”

“그래서?”

“그 시설을 태원공략에 넘겨주십시오.”

“나는 강주혁이라는 개인과 거래를 하고 있는 거네.”

남궁천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강주혁은 그런 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는 태원공략에게 이득이 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강주혁이 굳이 태원공략을 언급한 것은 남궁천이 막역한 사이인 이윤철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강주혁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진다. 회사의 대표로 나간 자리에서 개인을 위한 거래를 해버린 셈이니까.

박종근 회장하고는 그렇게 했지만, 그때는 철저하게 강주혁 개인에 관련된 사건이었기에 문제 될 게 없었다. 이번 사건이랑은 성격이 달랐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저는 지금 태원공략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알겠네. 근데 그 용광로가 도대체 뭐라고 그러는 건가?”

“그냥 그걸로 무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궁천의 표정을 보고 강주혁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보나마나 보고를 똑바로 안 한 신광공략 헌터들에게 잔소리를 할 것이다. 강주혁이 본 걸 당신들은 왜 못 봤냐면서.

“좋아. 용광로는 태원공략에 넘기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있나?”

“이건 부탁이 아니라 협조 요청입니다.”

“협조?”

“네. 던전에서 한태성이 사용했던 물약을 하나 빼돌렸습니다. 톨게이트에서 신광공략 측 감사팀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약물의 성분을 조사해서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한태성을 심문해서 얻은 정보도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대의를 위한 일이니까.”

남궁천은 이를 드러내면서 씩 웃어 보였다. 말에 뼈가 있었다. 나는 블랙 헌터 타도라는 대의를 거래 조건으로 사용한 누구하고는 다르다는 소리였다.

“그 대신 자네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게.”

“부탁이요?”

“아주 간단할 걸세.”

* * *

그날 저녁.

강주혁의 형이 사는 아파트.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침 가게를 쉬는 날과 강주혁이 복귀하는 날이 겹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주혁이는 아직 안 왔어?”

강주혁의 형인 강수혁이 어머니 서지현에게 물었다.

“회사에 일이 있어서 좀 늦는데.”

아들이 장기공략에 들어갈 때마다 서지현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불안해했다.

밖에서는 겸손한 강주혁도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집에서만큼은 허풍까지 섞어가면서 자기 실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뛰어난 실력 탓에 매번 위험한 공략에 들어가니 그것도 헛수고였다.

“무슨 놈의 회사가 던전에서 5일 만에 돌아온 사람을 저녁 시간까지 잡아 놓나 몰라.”

강수혁이 툴툴거렸다.

“그러게 말이다. 다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도 무사히 나왔잖아. 엄마도 걱정 그만해.”

강수혁은 여전히 얼굴이 굳어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동생이 던전에 나오자마자 연락을 했기에 무사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결코 안심하지 못했다.

“맞아요. 어머님. 도련님 엄청 강하잖아요. 별일이야 있었겠어요.”

강수혁의 아내인 진수연도 시어머니를 다독였다.

강주혁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서지현도 평생 헌터 집안에서 살아온 사람이라서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던전에서 치명상을 입었을 수도 있다.

힐러와 치유 물약 덕분에 결과적으로 상처가 없다 하더라도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었을 수도 있다.

서지현은 그게 싫었다. 강주혁은 자기가 너무 빨라서 그럴 일이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던전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닐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예전에야 집안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다. 절약해서 쓰면 손자까지 쓰고도 남을 돈이다.

만약 강주혁이 자기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서지현은 진즉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는 쪽방에서 몇 년 사이에 궁전처럼 으리으리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러나 자식이 던전에서 매일 같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차라리 쪽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좀 늦는다고 했으니 우리끼리 먼저 먹자. 아가, 너도 어서 들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옮기기가 싫었던 서지현은 힘없이 웃어 보였다.

“네. 어머님. 잘 먹겠습니다.”

“뭐 하나 볼까?”

강수혁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텔레비전부터 켰다. 마침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헌터 업계에서 들려온 기적 같은 소식입니다. 10년 전 던전에서 실종된 열두 명의 헌터들이 극적으로 생환했다는 소식입니다.”

“10년? 방금 10년이라고 했지?”

“맞아. 10년.”

“그게 가능해? 던전은 엄청 위험하잖아.”

강수혁과 진수연은 뉴스 내용을 의심스러워했다.

서지현은 아들에게도 그런 일이 닥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뉴스 화면이 병원 안을 비췄다.

서로 끌어안은 울음을 터뜨리는 수십 명의 사람이 보였다. 귀환한 헌터들과 그들과 재회한 가족들이었다.

그 모습이 꼭 이산가족 상봉 때처럼 기쁘면서도 슬퍼 보였다.

“신광공략과 태원공략이 합동으로 진행한 공략에서 10년 전 실종되었던 신광공략의 헌터들이 구출되었습니다. 헌터들은 서큐버스로 명명된 몬스터에 의해 정신지배를 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화면이 다시 이동하더니 갑자기 강주혁이 나타났다.

“어머님, 도련님이에요!”

“제가 왜 저기서?”

화면에 친절하게 태원공략의 강주혁 팀장이라는 설명이 자막으로 나왔다.

“서큐버스에 정신 지배를 당한 사람은 물과 음식이 없어도 생존이 가능합니다. 90년대에 영국에서도 동일한 사례가 있었죠.”

강주혁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몬스터가 아니라 헌터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싸우면서 투구 안을 들여다봤는데 사람의 얼굴이 보이더군요. 원래 레드 아머 내부에는 숙주로 삼은 육신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해서 사살하지 않고 확인해 봤죠.”

화면이 다시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신광공략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강주혁 팀장의 정확한 판단이 없었다면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을 겁니다.”

다음에는 귀환자들 중 이정종 차장이라는 사람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인터뷰를 했다.

“강주혁 팀장님과 동료 헌터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분들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 이후에는 가족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해외의 유명 언론들도 이번 일을 헤드라인으로 다뤘다고 했다. 해외 뉴스의 한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지구 반대편의 이국땅 사람들도 강주혁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와, 도련님 진짜 최고다.”

“저놈이 텔레비전에 나오니까 진짜 이상하네. 엄마?”

강수혁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보면서 놀랬다.

“왜 또 울고 그래? 좋은 일이잖아. 경사구먼. 경사.”

“그냥 네 아빠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아, 진짜, 아빠 얘기는 왜 또…….”

강수혁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삑삑삑삑.

그때,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도련님 왔어요! 도련님!”

진수연은 호들갑을 떨면서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세 사람은 서둘러 현관으로 걸어갔다. 집이 워낙 커서 그런지 거실에서 현관까지 가는 길도 무척 길게 느껴졌다.

“저 왔어요. 미안, 많이 늦었지. 갑자기 회사에서 기자 회견을 하라고 해서.”

강주혁은 구두를 벗으면서 말했다. 넥타이랑 윗도리는 이미 벗은 상태였다.

“어서 와라.”

강수혁이 씩 웃으면서 실내로 들어온 동생을 안았다.

“가, 갑자기 왜 그래?”

강주혁은 어색해하면서 형의 등을 두들겼다.

“형수님, 무슨 일 있어요? 엄마는 또 왜 그래? 울었어?”

강주혁이 형과의 포옹을 풀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왜긴 왜예요? 도련님 때문이죠.”

“저요? 제가 왜요?”

“텔레비전에 도련님 나왔잖아요.”

“아, 벌써 나왔구나. 엄마 봤지. 아들이 이 정도야.”

강주혁은 씩 웃으면서 그답지 않게 허세를 부렸다.

“다친 곳은 없어?”

서지현은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워했다. 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렸을 피와 땀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없지. 나 누군지 몰라? 강민혁 사장님의 아들 강주혁이야. 생채기 하나 안 났으니까 걱정 마. 아,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문제? 무슨?”

강주혁의 말에 세 사람이 긴장했다.

“나 배고파.”

* * *

3일 후 아침.

지난 공략이 장기 공략인 데다가 주말을 끼고 있었던 터라 보상 개념으로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틀 동안 잘 먹고 잘 잔 덕분에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강주혁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회사로 걸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주치는 이들 모두 강주혁을 힐끗거렸다.

‘방송 때문인가.’

강주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회사 건물에 거의 다 왔을 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세 사람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면서 다가오더니 강주혁 앞을 막아섰다.

강주혁은 놀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강주혁 헌터님 맞으시죠?”

“어제 텔레비전에 봤어요!”

세 사람은 인사를 꾸벅하더니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아,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팬이에요! 사인 좀 해주세요!”

“사진 찍어주시면 안 돼요?”

“잘생겼어요!”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있고, 부끄러워서 입도 가리고 있는데 말하는 건 거침이 없었다.

“……네?”

회귀 전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강주혁은 당황했다. 그때도 공략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죄송한데, 저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에 나왔잖아요.”

“뉴스에 한 번 나온 거죠. 출근 해야 해서…… 실례합니다.”

“아, 치사해요!”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돼요?”

등 뒤에서 소리치는 학생들을 무시한 채 강주혁은 서둘러 회사 건물로 갔다.

때마침 안다정이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좀 어울려주지 그래요.”

안다정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주혁과 여고생들의 실랑이를 본 모양이다.

“연예인도 아닌데요.”

강주혁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제 연예인 다 됐잖아요.”

“제가요?”

“인터넷 안 봤어요? 강 팀장님 관련 얘기로 완전 도배가 되어있던데.”

“그, 그래요?”

“쉴 때 인터넷도 좀 들어가 보고 그래요.”

“……먹고 자고 검술 연습 하느라.”

곰곰이 돌이켜보니 이틀 동안 폰과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딱히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공략에 대해서 복기하고 검술 훈련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쉴 땐 좀 확실히 쉬어요. 강 팀장님은 진짜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야.”

“저한테는 이게 휴식입니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뉴스에 몇 초 나온 게 전부인데.”

강주혁은 내심 자신의 혈통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네요. 직접 찾아보세요.”

안다정은 웃음을 흘렸다.

“팀장님은 잘 쉬셨어요?”

“계속 잤는데도 피곤하네요. 역시 장기 공략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씀하시는 것치고는 일찍 오셨네요.”

“저도 강 팀장님처럼 아침 훈련 해보려고.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왜요?”

“제가 아침잠이 많거든요. 졸려 죽겠어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사무실로 올라갔다.

웬일로 유덕현 부장이 출근해 있었다.

“흐흐흐, 어서 와라. 우리 복덩이들.”

“일찍 오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합동 공략이 끝난 후 전화로 보고하고 곧바로 퇴근했기에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것이다.

유덕현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강주혁을 끌어안았다.

아직 정산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강주혁과 안다정의 활약으로 실적 폭탄이 떨어지는 건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다.

강주혁이 대현공략과 진행했던 공략 덕분에 공략 1부는 전체 공략부 중에 1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공략은 공략 1부의 독주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줄 것이다.

당연히 공략 1부의 수장인 유덕현에 대한 평가도 덩달아 상승하게 된다. 이 상태로만 가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임원 자리가 현실이 될 것 같았다.

“아, 싫어요. 저리 가요.”

유덕현이 강주혁에 이어 포옹을 하려고 다가오자 안다정이 질색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나도 너 싫어. 매정한 것아.”

유덕현은 다시 강주혁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안다정을 남겨놓고는 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주혁아.”

“네. 부장님.”

“차장 진급 축하한다.”

“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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