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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44화 (144/202)

144화 공짜로는 안 됩니다

모든 헌터가 의식을 되찾았다.

10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다는 사실과 동료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기어이 눈물을 터뜨렸다.

유한길과 헌터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한참 동안 오열했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분위기가 진정되자 일행은 우선적으로 힐러들을 돌봤고, 기운을 차린 힐러들이 다른 헌터들을 돌봤다.

반나절 정도 지나자 모든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진작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유한길은 헌터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살아있는 게 어딥니까.”

“맞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죠.”

“정말이지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헌터들은 한 번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와서 그런지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나저나 우리 마누라 폭삭 늙었겠는데.”

“그러게. 내가 없으니 고생만 오지게 하고 있겠네.”

“아니면 재혼했거나.”

“우리 아들은 많이 컸겠군.”

헌터들은 10년이라는 세월이 가져다줬을 변화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다들 한시라도 빨리 가족들과 재회하고 싶어했다.

“부장님, 다들 괜찮아지셨으니 주변을 좀 둘러볼까요?”

강주혁이 신유정에게 제안했다.

“그러죠. 김 팀장님은 다른 분들 계속 돌봐주세요. 저는 두 분이랑 정찰 좀 하고 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일행은 힐러인 김정현을 남겨두고는 서큐버스 여왕이 앉아있던 왕좌의 뒤편으로 향했다.

뒤쪽은 탁 트인 공간처럼 보였으나 어둠에 잠겨있어서 제대로 확인이 불가능했다.

“조금만 더 들어가 볼까요?”

강주혁은 어둠을 밝힐 때 쓰는 야광석을 꺼내 들고 앞장섰다.

하지만 야광석도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평범한 어둠이 아닌 것 같았다.

“마력이 느껴져요.”

안다정의 말대로 주변에서 강렬한 마력 반응이 느껴졌다.

“마석 매장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가보죠.”

한참 동안 걸어도 주변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신유정이 불안한 눈으로 뒤를 힐끗거렸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요.”

어느덧 일행은 서큐버스 여왕의 왕좌가 있는 대전에서 꽤 멀어져 있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네?”

강주혁은 정면을 가리켰다.

“뭔가 있나요? 제 눈에는 안 보여요.”

“직접 가서 확인하시죠.”

일행이 도달한 곳에서는 제단이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에 따르면, 불의 힘을 주는 제단이었다.

‘괜찮겠지?’

첫 번째 제단을 만졌을 때, 제단의 힘이 청룡검과 반응해 일시적으로 폭주를 일으켰다.

두 번째 제단은 관련이 있을 법한 현무검을 아직 배우지 않아서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다.

세 번째 제단은 백호검과 관련이 있었지만, 폭주까지 가지는 않았다.

확률은 반반이다.

“제가 먼저 해볼게요.”

강주혁은 제단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화르르.

제단에서 화염이 솟구치면서 주변의 어둠을 한 번에 몰아냈다. 공동 안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안다정과 신유정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수많은 마석이 거대한 공동 안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제단의 힘으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공동뿐만이 아니었다. 강주혁의 내부에서도 강렬한 마력 반응이 일어나면서 고갈되었던 내공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군.’

하지만 그 이상의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전반적인 실력향상 덕분인지 갑자기 에너지가 넘쳐나도 몸이 견뎌주는 것 같았다.

“1조는 족히 될 것 같은데요.”

신유정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기뻐했다.

“이러다가 마석 값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안다정은 좀 더 현실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주혁이 대현에서 발견한 마석 매장지까지 합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시장의 이치니까.

“마석 채취하는 데 한 세월이 걸릴 거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신유정은 좀 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마석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강주혁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었다.

‘저기 있군.’

제단의 뒤쪽에 용광로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보였다. 이 던전에서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건 마석도, 제단도 아니다. 저 용광로야말로 이 던전의 진정한 보물이다.

* * *

신광공략 사장실.

남궁천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시계를 봤다.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을 하느라 시계를 볼 겨를도 없었는데 지금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시계를 힐끗거렸다.

공략 불가 지역에 공략팀이 들어간 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강주혁이 있으니 성공은 확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날짜가 지나갈수록 불안감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놈은 완전체야. 절대 실패할 리가 없다.’

강주혁이 그저 싸움만 잘하는 헌터였다면 이런 식으로 공략팀을 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이미 여러 차례 어려운 공략을 성공시키면서 싸움뿐만이 아니라 공략에 필요한 지식과 센스도 갖추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불안감의 원인은 공략팀의 자질에 대한 의심 때문이 아니라 이 공략에 걸려 있는 판돈 때문일 것이다.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주 둘에다가 태원그룹의 로열패밀리인 신유정까지. 만에 하나 이번 공략이 실패로 끝난다면 남궁천은 사장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띠리링.

그때, 사장실 내선전화가 울렸다. 남궁천은 잽싸게 수화기를 낚아챘다.

“무슨 일인가?”

“공략팀이 복귀했습니다.”

신광공략에는 수십 개의 공략팀이 있지만 비서가 말하는 공략팀은 사장이 며칠째 계속 근황을 물어봤던 한 팀뿐이다.

“결과는?”

“모두 무사합니다. 다만.”

“다만?”

“한태성 팀장이 중간에 사고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한태성이?”

남궁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태성을 통해 태원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었기에 남궁천은 그를 아주 각별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한태성이 사고를 쳤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네. 공략을 중단시킬 목적으로 태원공략의 안다정 팀장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공략을 중단시켜? 왜?”

“그동안 불법적인 약물을 섭취해 왔는데 전투 중에 약물을 분실해서 금단증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자기로 인해 공략이 중단되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안다정 팀장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허, 이런 미친…….”

사장의 감정이 격해지자 비서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게.”

“사고를 친 후에는 김정현 팀장과 유한길 팀장에게도 부상을 입혔습니다.”

“김정현을? 그게 가능해?”

김정현이 서서히 무르익어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단계라면 한태성은 이제 겨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단계다. 한태성은 절대 김정현을 넘을 수 없다.

“그게…… 다른 헌터들 주장에 따르면 블랙 헌터들이 사용하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블랙 헌터?”

남궁천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태원공략에서는 그저 그런 헌터였다가 신광으로 이직한 후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보였던 한태성.

그리고 젊은 나이에 부장급의 실력을 갖췄던 수십 명의 블랙 헌터들.

한태성이 마셨다는 불법적인 약물.

이 세 가지 조각들이 만나서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그림이.

남궁천은 아무 의심도 없이 한태성을 중용한 과거의 자신에게 쌍욕을 퍼붓고 싶어졌다.

“네. 사장님.”

“한태성은 어떻게 되었나?”

“태원공략의 강주혁 팀장에게 제압당한 후 석화의 저주에 걸린 상태로 잡혀 왔습니다.”

남궁천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던전에서 동료 헌터를 공격했다는 것만으로 한태성은 아웃이다. 게다가 블랙 헌터일 가능성도 있다면 더더욱 가망이 없다.

아무리 한태성이 전도유망한 헌터라고 해도 구해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남궁천은 한태성을 구제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놈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덜 입을지를 궁리해야 했다.

“다른 소식은 없었나?”

“마석 매장지 발견은 성공했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1조 원 이상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매장량이라고 했습니다.”

비서의 대답에 남궁천은 주먹을 꼭 쥐었다. 한태성으로 인해 잡음이 생기더라도 이 정도 호재면 충분히 덮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뭐가 더 있나?”

“해당 지역에서 10년 전에 실종되었던 헌터들이 모두 돌아왔습니다.”

“뭐?”

남궁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짝짝짝.

“와아아!”

톨게이트에 모여 있는 헌터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박수는 신광공략 쪽 출입구에서 시작되었고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다른 회사의 헌터들도 가세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그들은 모두 헌터라는 이름의 공유하는 동업자다.

10년의 세월을 건너 죽음에서 돌아온 헌터들은 동업자들에게 존경과 축하를 받기에 충분했다.

서큐버스에게 잡혀 있던 헌터들은 톨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광장의 바닥에 엎드렸다.

10년 만에 밟아보는 지구 땅.

그들은 뜨거운 울음을 터뜨리면서 차가한 아스팔트 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들을 뒤로 헌터들을 구해낸 공략팀 멤버 다섯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했다!”

헌터들의 박수 소리가 더 커졌다. 그때 인파를 헤치고 남궁천 사장이 나타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남궁천 사장의 시선이 유한길 부장에게 향했다. 이미 비서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후였지만 당사자들에게 직접 듣고 싶어서 하고 있던 일도 던져놓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실종된 헌터들입니다.”

유한길은 바닥에 엎드린 헌터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 역시 사장에게 보고가 올라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궁천은 귀환자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현재 사장직을 맡고 있는 남궁천입니다.”

헌터들은 황송해하면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종 차장이 대표로 인사했다.

그때, 남궁천이 부른 앰뷸런스들이 광장으로 들어왔다.

자기 발로 걸어 나왔다고는 하나 10년 동안 던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정밀 검사를 받고 안정을 취해야 했다.

“일단, 검사부터 받으시죠. 가족분들께는 연락을 돌렸습니다. 병원으로 곧바로 오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생환한 헌터들이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석상이 되어버린 한태성은 감사실 직원들이 가지고 갔다.

나머지 공략팀 헌터들은 신광공략 건물 안 있는 의료실로 이동했다.

장기공략을 다녀온 헌터들은 의료실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는 것이 관례다. 체력고갈이 심할 경우 링거를 맡기도 한다.

“강 팀장.”

남궁천 사장이 검사를 끝낸 강주혁을 찾아왔다.

“네. 사장님.”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남궁천은 강주혁을 사장실로 데리고 갔다.

“공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저 혼자 한 것도 아닌데요.”

“내 앞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네. 신광 쪽 헌터들에게 모두 들었으니까. 모두 자네에게 공을 돌리더군. 한태성을 제압한 것도 미궁을 돌파한 것도 헌터들을 구출한 것도.”

강주혁은 대답하는 대신 빙그레 웃어 보였다.

“신유정 부장이 완전히 질려하더군.”

“신 부장이요?”

“부장은 강 팀장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지 자기는 그럴 깜냥이 안 된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팀장으로 강등시켜달라고 했네. 체면을 좀 살려주지 그랬나.”

“바깥이라면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던전은 그런 곳이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신유정 부장을 장기말로 쓰시는 건 좋지만 너무 서두르시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겁니다.”

남궁천이 얼굴을 굳혔다.

강주혁이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는 자네를 내 장기말로 만들고 싶었네.”

“지금은 아닌가요?”

“여전히 그러고 싶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걸 배웠네. 자네는 장기말이 아니라 장기를 두는 사람이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 조언은 새겨듣도록 하지. 그리고 한태성 일은 전적으로 내 불찰이네. 내 잘못으로 공략팀만 고생했군. 정말 미안하네.”

“무탈하게 넘어갔으니 괜찮습니다.”

“근데 그놈에게 구린 곳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싸움 실력에 비해 너무 어설퍼 보이더군요. 헌터가 그 정도로 급성장하려면 혹독한 전투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런 경험을 쌓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덫을 놓았는데 걸려들더군요.”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 근데 이번 일 말일세.”

남궁천이 뜸을 들이자 강주혁이 빙그레 웃었다.

“덮고 넘어가자고요?”

“분위기 좋은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있을까?”

남궁천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마석 매장지의 발견과 헌터들의 무사 귀환으로 신광의 명성과 주가는 엄청나게 치솟을 것이다.

하지만 한태성 사건이 알려지면 그런 상승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공짜로는 안 됩니다.”

강주혁은 씩 웃으면서 답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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