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계속해야죠
“후우. 후우.”
한태성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호흡이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고, 입으로는 계속해서 피를 토해냈다.
“크윽.”
한태성의 몸이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들이 끓는 물 위의 거품처럼 끊임없이 움직거렸다. 약물의 도움 없이 힘을 끌어낸 부작용인 것 같았다.
“블랙 헌터 놈들이랑 함부로 거래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강주혁은 한태성이 블랙 헌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주혁이 누군지 모르니까.
김종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말단일 가능성은 낮다. 한태성은 말단 노릇을 하기에는 실력이 좋은 편이다.
정말로 블랙 헌터였다면 중간 간부 정도는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 간부라면 강주혁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네놈은, 후우, 네놈은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거지?”
한태성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밑천을 전부 드러냈는데도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절절한 울분이 묻어났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력했지.”
반쪽짜리 진실이었다.
강주혁에게는 혈통과 그에 따른 재능, 그리고 위험하지만 강력한 검술이 있었다. 회귀를 통해 축적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이전에 강주혁은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노력해왔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만약 회귀 전 지독한 일 중독자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많은 것들을 기억해서 써먹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회사 사람들이랑 술잔을 기울일 때를 빼면 쉬지 않는다.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수련만 한다.
“노력도 없이 남들을 능가하고 싶으니까 그런 꼴이 되는 거다.”
안다정은 한태성이 재능은 있지만 게으른 사람이었다고 했다. 알량한 재능을 과신한 탓에 오만해졌고 오만한 탓에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더 강해지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 헌터 업계에서는 강해질수록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네놈이 뭘 안다고…….”
한태성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지간히 분하고 억울한 모양이다.
“안 팀장님한테 들었다. 재능은 출중하지만, 태도는 글러 먹었다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노력해야지.”
“내가 노력을 안 했다고? 그래. 저 여자 앞에서는 그랬지. 그랬다가는 노력해도 그것밖에 못 하냐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게을러터진 등신인 척했지.”
강주혁은 안다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저 여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네놈 말대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해도 저 여자를 뛰어넘을 수 없었지. 단 한 순간도. 그게 내 재능의 한계였다.”
한태성이 다시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너나 저 여자 같은 인간들은 모를 거다. 피나는 노력이 재능의 부족으로 물거품이 되었을 때의 절망감을.”
“강 팀장님은 몰라도 나는 알아요.”
신유정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무척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요.
“당신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알아요. 할아버지의 손녀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잘해도 열등아 취급당했으니까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런 인식은 달라지지 않더군요. 근데 그거 알아요?”
한태성이 묻는 얼굴로 신유정을 바라봤다.
“우리 같은 사람이 무척 많다는 거. 아니,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강 팀장님이나 안 팀장님 같은 분들은 드물죠.”
한태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악마처럼 보였다.
“지금 더 싸우면 강 팀장님도 한 팀장님을 죽일 수밖에 없어요.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해요. 제가 도와줄게요.”
신유정은 간절한 어조로 말했으나 한태성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크, 나더러 그딴 개소리를 믿으라고? 재능이 없어서 열등아 취급을 당해? 한 것도 없이 부장 자리에 오른 인간이 할 소린가? 나는 이 나이에 팀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그런데 그저 유명한 할아버지의 손녀라는 이유로 부장이 된 당신이 내 마음을 안다고?”
한태성의 근육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를 감옥에 처넣을 생각을 하고 있겠지?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뜻대로 안 될 거다. 네놈들은 모두 내 손에 죽을 테니까.”
한태성이 강주혁에게 돌진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끼어들지 마세요.”
강주혁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 후 한태성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으아아악!”
한태성이 엄청난 내공이 실린 주먹을 내질렀다.
강주혁은 고개만 살짝 피해서 주먹을 흘려보냈다.
한태성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주먹을 연달아 날려댔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강주혁에게 닿지 않았다.
‘난감하네.’
강주혁은 어떻게 해서든 한태성을 살려서 데려가고 싶었다. 그의 입에서 들어야 할 정보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대로 한태성을 죽여 버리면 안다정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하지만 한태성의 전투력은 죽이는 건 쉬워도 제압하는 건 어려운 수준이었다.
“언제까지 날 조롱할 셈이냐!”
한태성은 맹렬하게 주먹을 휘둘러댔지만, 간발의 차이로 전부 빗나가고 말았다. 답답해진 한태성은 발차기까지 동원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을 피하기만 하니까 뒤로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주혁은 어느덧 낭떠러지를 등지게 되었다. 한 걸음만 더 뒤로 내딛으면 추락할 것 같았다.
“끝이다!”
귀멸축공보를 이용해서 뒤로 넘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한태성이 추락해버릴 것이다.
‘한 번 해보자.’
강주혁은 권대호에게 배운 권법들을 응용해보기로 했다.
팡!
피하기만 하던 강주혁이 주먹을 내밀어 한태성의 주먹을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공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태성의 주먹에 실려 있던 내공들이 모두 흩어져버린 것이다. 만약 폭발이 일어났다면 그 여파로 강주혁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에잇!”
한태성은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팡! 팡!
강주혁도 주먹을 날려서 주먹을 막았다. 한태성은 내공을 쏟아부으면서 강주혁을 압박했다.
그러나 강주혁은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선 채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한태성이 동원한 내공은 계속해서 먼지처럼 흩어져 버렸다.
‘된다.’
얼핏 보기에는 주먹을 맞대는 것 같지만 강주혁은 한태성의 주먹이 아니라 주먹에서 1㎝ 앞에 있는 공기를 타격하고 있었다.
상대가 아니라 상대의 앞에 있는 공기를 타격해 호신강기를 흩어놓는 귀멸파공권을 쓰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호신강기를 해체 시켜 상대를 무방비하게 만드는 수법이지만 강주혁은 그걸 응용해서 한태성의 공격에 실린 내공 전체를 흩어놓았다.
내공이 사라지자 위협적인 권법도 그저 평범한 주먹 지르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정확한 거리 계산 덕분에 그 주먹은 강주혁의 주먹에 닿지도 않았다.
“헉, 헉, 헉.”
그렇게 한 5분 정도 주먹다짐을 벌이자 한태성의 호흡이 가빠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어, 언제까지 날 우롱할 셈이냐!”
“네가 그만둘 때까지.”
“죽어!”
한태성은 주먹질을 포기하는 대신 강주혁에게 태클을 걸었다. 강주혁과 함께 동반자살을 할 속셈이었다.
빡!
하지만 강주혁은 한 템포 일찍 손날로 한태성의 뒤통수를 찍었다.
퍽!
강주혁의 무릎을 잡아채 뒤로 넘어뜨리려고 했던 한태성은 바닥에 처박히고 말했다.
쉬이익.
몸에서 나던 연기들이 잦아들면서 근육도 줄어들었다. 등판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 아직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이 팽창했다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살이 늘어져서 상당히 흉측해 보였다.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끝났습니다.”
강주혁은 한태성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강주혁이 한태성을 상대하는 동안, 안다정과 신유정이 치유 물약을 이용해 유한길과 김정현을 회복시켰다.
“정말 다행입니다.”
깨어난 두 사람은 한태성이 완전히 제압당한 걸 보고 안도했다. 한태성이 보여준 위력은 상급 헌터인 그들조차 감당이 안 될 수준이었으니까.
“강 팀장님은…… 정말 강하시군요.”
김정현은 강주혁을 보면서 감탄했다.
한태성에게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해보고 한 방에 나가떨어졌는데, 강주혁은 그를 제압해 버렸다. 힘의 격차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던 것이다.
“강 팀장님, 안 팀장님.”
신유정이 강주혁과 안다정을 향해 돌아섰다.
“네?”
신유정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는 제가 신광공략을 대표할 수밖에 없네요. 못난 모습을 보여서 정말 죄송합니다.”
신광에서 주체한 공략이다. 지원하러 온 강주혁과 안다정은 손님이라고 할 수 있다.
공략 중 신광 측 사람의 잘못으로 이런 불상사를 일어났으니 공략책임자인 신유정은 사과할 필요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도요. 괜찮아요.”
강주혁과 안다정은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번 일을 수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께 보고해서 꼭 적절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긴 했지만 신유정에게 책임을 묻기도 애매했다.
“그리고 강 팀장님.”
“네?”
“혹시 권대호 선생님을 아시나요?”
강주혁은 잠시 생각했다.
자신과 권대호의 관계는 신태원도 박종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권대호와의 관계를 강조해야지 지난번처럼 오해를 받는 일이 안 생길 것이다.
“네. 제 스승님이십니다.”
“정말입니까? 그 종로투왕에게 사사 받은 겁니까?”
“역시나.”
강주혁의 대답에 김정현은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다. 유한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연을 맺으신 거예요?”
신유정이 물었다.
“우연히 산에서 만났습니다.”
“산이요?”
“얘기하자면 깁니다. 여기서 할 얘기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우리 공략은 어떻게 하죠?”
강주혁이 말을 아끼려고 하자 신유정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계속해야죠.”
강주혁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태성은 어떻게 하고요?”
“공략 끝나고 복귀할 때 찾아가죠,”
“복귀할 때 찾아가자고요?”
강주혁은 씩 웃으면서 기절해 있는 한태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대지의 힘을 사용했다.
“설마?”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한태성의 불그레한 피부가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으으.”
한태성이 정신을 차렸을 때쯤에는 이미 몸의 절반이 돌이 된 상태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동료들을 공격한 죗값은 치러야지. 좀 아프겠지만 죽는 것보단 나을 거다.”
“그, 그만! 으아아아악!”
한태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다가 석상이 되어버렸다.
“여기 위치 표시해놓고 돌아갈 때 챙겨가죠.”
강주혁은 손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
“그, 그래요.”
일행은 강주혁의 무식한 포로 처리 방식에 경악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내일도 강행군해야 하니까 그만 자러 갈까요?”
일행은 다시 야영지로 돌아갔다.
“강 팀장님.”
야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안다정이 강주혁에게 말했다.
“네.”
“고마워요.”
“뭐가요?”
“한태성을 살려줬잖아요. 저 때문에 무리한 거 알아요.”
“겸사겸사 살려둔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안다정이 힘없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팀장님.”
“네?”
“팀장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
안다정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신 팀장님 말대로 한태성 같은 사람은 많습니다. 세계 최고가 아닌 이상, 누구나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의식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모두가 한태성 같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닙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회귀 전의 강주혁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대형 공략회사에 들어가기에는 좀 모자란 범재. 지방의 이름 모를 헌터 아카데미를 나온 족보 없는 사원. 그게 회귀 전의 현실이었다.
한태성이 그랬던 것처럼 강주혁도 안다정이라는 천재를 벽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 벽을 저주하고 침을 뱉는 대신, 그 벽을 인정했다.
안다정에게 배운 걸 수백, 수천 번씩 복습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강주혁은 가장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직원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노력한 끝에 강주혁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경산마존의 손자가 아닌, 헌터 강주혁은 그렇게 해서 완성되었다.
“이제 강 팀장님이 제 선배 같네요.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어요.”
안다정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갑시다. 내일 또 강행군하려면 잠을 좀 자둬야 할 것 같네요.”
괜히 멋쩍어진 강주혁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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