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37화 (137/202)

137화 영약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죄, 죄송합니다.”

한태성은 강주혁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했다.

“잘 좀 합시다.”

강주혁은 낚아챈 투창을 반대로 향하게 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 붉은색 갑주를 입은 인간형 몬스터가 보였다. 투창을 던진 장본인이었다.

“사람?”

“<레드 아머>입니다. 가끔 보이는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다들 조심하세요.”

유한길의 설명이었다.

레드 아머는 악령에 의해 지배받은 갑주를 말한다. 겉보기에는 사람인데 대개 속이 비어 있거나 뼈만 남아 있다.

원래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악령에 의해 지배를 당하는 순간, 갑주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레드 아머라 불린다.

갑주에 스며있는 사용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움직이기에 전투력은 천차만별. 방금 던진 투창의 속도와 위력으로 보건대, 저 레드 아머는 최소 A급은 될 것이다.

촤아악!

강주혁은 내공을 실어서 투창을 던졌다. 일부러 머리가 아니라 팔을 노렸다.

팍!

투창은 정확하게 레드 아머의 팔을 꿰뚫었고 레드 아머는 뒤로 넘어지면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일행은 얼빠진 얼굴로 강주혁을 쳐다봤다.

“다른 놈들도 옵니다. 전투 준비하세요.”

강주혁이 말했다. 다들 자세를 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화산재로 인해 시야가 상당히 제한된 상태였다.

“뭐가 온다는 겁니까?”

한태성이 따지듯 물었다.

강주혁은 대답 대신에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꺼내 들었다.

콰지직!

푸르스름한 전격이 뱀처럼 칼날을 휘감았다. 강주혁이 하늘을 찌를 듯이 검을 높이 뻗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간 전격이 화산재 속으로 들어갔다.

크아아악!

화산재 속에서 붉은 피부에 얇은 날개를 가진 악마 여러 마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악마종 몬스터인 임프였다.

“체인 라이트닝?”

유한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공을 기반으로 한 기술입니다.”

강주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방금 사용한 건 사신무극검 2형 4식인 <청룡연뇌격(靑龍聯雷擊)>이었다.

강주혁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원거리 공격으로 마법사들의 체인 라이트닝과 큰 차이는 없으나 효율은 좀 더 뛰어나다.

“옵니다!”

일행들이 놀랄 틈도 없이 수백 마리의 임프가 쏟아져 나왔다.

“서로 등 붙여요!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요.”

일행은 강주혁이 시키는 대로 등을 맞댄 채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서걱!

카악!

안다정이 빠르면서도 묵직한 검으로 임프를 찢어놓았다.

콰지직!

신유정이 금빛 전격이 넘실대는 검을 휘두르자 서너 마리의 임프가 동시에 추락했다.

마법사인 유한길은 매직 미사일로 대응했고 권사인 한태성은 내공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가장 돋보이는 건 김정현이었다. 홀리 웨폰을 기본으로 탑재한 그의 망치는 스치기만 해도 적을 분쇄해 버렸다.

비행 능력에다가 하급 몬스터들 중에서 최강의 스펙을 춘 임프였으나, 상급 헌터들의 공격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일행이 휘두르는 공격에 임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키익! 키익!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임프들은 뒤로 물러났다. 달아난 임프들은 자신들의 상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패밀리어>들을 데리고 왔다.

생긴 건 둘 다 비슷하지만 패밀리어의 피부가 더 붉었다. 그리고 패밀리어는 파이어 볼트를 쓸 수 있었다.

화르르.

패밀리어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에서 파이어 볼트를 날려댔다.

펑! 펑!

파이어 볼트는 김정현이 전개한 보호막에 막혔다.

팡!

그리고 안다정은 환영궁을 날려 패밀리어를 몰살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공격수단으로 패밀리어를 격추시켰다.

전투는 순조로웠다. 여전히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문제는 적들의 머릿수였다. 아무리 잡아도 임프와 패밀리어는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패밀리어들의 공격이 뜸해지면 임프들이 달려들었고, 임프들의 공세가 끝나면 다시 패밀리어들이 파이어 볼트를 날려댔다.

이런 식의 전투가 한 시간 이상 이어지자 일행은 지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가장 먼저 빈틈을 보인 건 한태성이었다.

내공이 고갈된 그는 임프들을 제때 떨쳐내지 못했다. 임프들은 가장 약한 적을 알아보고는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그를 물어뜯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붕! 붕!

강주혁은 한태성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악!”

한태성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버둥을 쳤다. 게다가 대검을 휘두르기에는 일행이 타고 있는 석판이 지나치게 좁았다.

자칫하면 한태성을 벨 수도 있었으나 강주혁이 휘두르는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태성의 몸에 붙은 임프들만 베어 나갔다.

“여전하네. 강 팀장님은.”

단검으로도 하기 힘든 일을 2m가 넘는 대검으로 해내는 강주혁을 보고 신유정이 헛웃음을 흘렸다.

“으아악, 아아, 어?”

한태성은 강주혁 덕분에 임프들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발버둥을 치느라 석판의 경계까지 밀려나 있었다.

“어어어…….”

휘청거리면서 용암으로 빠지려는 순간, 강주혁이 손을 뻗어 한태성의 머리채를 잡았다.

“으아악!”

그 상태로 한태성을 잡아당겨서 석판 중간으로 밀어 넣었다. 한태성은 강주혁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했지! 헌터라는 새끼가 고작 임프가 깨무는 걸 못 참아!”

강주혁이 한태성에게 호통을 쳤다.

공식적인 리더인 신유정도, 실질적인 리더인 유한길도, 강주혁을 말리지 않았다. 김정현은 그저 혀끝을 찼다.

“……죄송합니다.”

한태성은 얼굴만 붉힐 뿐, 뭐라고 하지 못했다. 누구 보면 신입 헌터를 혼내는 베테랑 헌터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한태성의 경력이 강주혁보다 길었다.

“정신 차리고 빨리 싸워요.”

강주혁은 얼이 빠져 있는 한태성에게 일갈한 후 다시 임프들과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젠장…….”

한태성은 자기 옷을 더듬으면서 난처해했다. 강주혁은 싸움을 하면서도 그를 힐끗거렸다.

“왜 그래요?”

“영약이…… 아닙니다.”

한태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임프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말하는 걸 보니 영약을 챙겨왔다가 임프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중에 분실한 모양이다.

수백만 원씩이 하는 걸 날려버렸으니 지옥에 떨어진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음?’

악마들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강주혁의 발치에 뭔가가 걸렸다.

검은색 액체가 담긴 스틱형 약병 두 개가 강주혁 발 언저리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헌터들이 마실 수 있는 약물이라면 웬만한 건 다 알고 있는 강주혁조차 처음 보는 색이었다. 그 진한 검정색이 강주혁에게 꺼림칙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강주혁은 자세를 낮춰서 검을 휘두르는 척하면서 발 근처에 굴러다니는 약병 두 개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헉, 헉!”

잠시 후, 드디어 임프와 패밀리어가 완전히 물러갔다.

수백을 넘어 천에 달하던 머릿수가 수십으로 줄어들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모두 고생했어요.”

신유정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강 팀장님만 멀쩡하네요.”

김정현이 강주혁을 보면서 웃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강주혁은 싸움을 시작도 안 한 사람처럼 보였다.

“한 팀장님.”

“네?”

강주혁에게 연달아 혼이 난 한태성은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흠칫하고 놀랐다.

“혹시 이거 한 팀장님 겁니까?”

강주혁은 주운 약병 중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나머지 하나는 주머니에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태성은 강주혁이 들고 있던 스틱형 약병을 냉큼 낚아채더니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 행동이 사막을 물도 없이 헤매던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절박해 보였다.

“영약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모든 영약은 전투 중에 마시는 것이다.

내공을 채워주는 약이라 할지라도 지금 굳이 마실 필요가 없다. 전투가 당장 재개되는 게 아니라면 운기행공을 통해 회복하는 게 더 이득이니까.

한태성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황당해했다.

“아, 일종의 영양제입니다.”

“영양제요?”

영양제를 먹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지만, 전투가 끝나자마자 저렇게 허겁지겁 먹을 필요는 없었다.

“제, 제가 지병이 있어서 꾸준히 먹어줘야 합니다.”

당황한 한태성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지병? 왜 미리 얘기 안 했나?”

유한길 팀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지병 관리를 위해 약을 복용해야 한다면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공략에서는 배제되는 게 정상이다. 약이 모자라서 중간에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기회를 놓치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한태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실언을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이거 징계감이에요. 알죠?”

신유정도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방금 마셨으니 며칠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한태성은 웃으면서 말했으나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 공략이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알아요?”

“그 전에 끝내도록 해야죠. 다들 그럴 작정으로 오신 거 아닙니까? 설마 이 불지옥에서 일주일 넘게 있거나 그러실 건 아니죠?”

한태성의 무책임한 발언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유한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시말서 정도로 안 끝날 거예요.”

신유정이 노기를 띤 음성으로 말했다.

* * *

일행은 저녁 무렵까지 석판을 타고 용암의 강을 따라갔다.

임프와 패밀리어 몇 차례 몰려왔지만 큰 부상 없이 막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피로가 잔뜩 쌓이고 말았다.

“저녁 시간이에요.”

“슬슬 야영준비를 하죠.”

강주혁은 석판을 확장시켜서 땅과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육지로 이동한 일행은 주변 정찰부터 했다.

한쪽에는 낭떠러지가, 다른 쪽에는 용암의 강이 있었으나 엄폐물이 없어서 시야 확보를 하기에는 좋았다.

“이상 없어요.”

“이쪽도요.”

“화산재가 문제네요.”

깨어있을 때는 제단에서 받은 바람의 힘으로 화산재를 밀어낼 수 있지만, 수면 중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기관지가 나빠지는 건 둘째 치고 화산재에 파묻히면 자다가 질식할 수도 있다.

“불침번을 두 명씩 세우면 됩니다. 한 사람은 자는 사람들을 위해서 재를 밀어내고 다른 사람은 망을 보는 거죠.”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합시다.”

강주혁의 제안에 유한길이 동의했다. 일행은 전투식량을 이용해서 간단히 식사했다.

“안 팀장님.”

식사 후가 끝나고 강주혁은 안다정에게 다가갔다.

“왜요?”

강주혁은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떨어져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안다정에게 물었다.

“한태성 팀장 말입니다. 안 팀장님이랑 같이 일할 때도 지병이 있었나요?”

“아니요. 전혀 없었어요.”

“팀장님이 생각하시기에 한 팀장은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인가요?”

“재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수재 정도는 되겠죠.”

“한 팀장은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급이 다른 헌터가 되었죠.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미숙한 점이 너무 많더군요.”

내공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전투를 통해 흡수하는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그 방법을 통해서 급성장했다면 그만큼 치열한 전투를 겪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전투는 헌터를 노련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태성은 꼭 아마추어 같았다.

“무슨 뜻이에요?”

“비정상적인 성장이라는 얘기입니다.”

안다정은 강주혁을 빤히 쳐다봤다.

“물론, 제가 할 소리는 아니죠.”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강주혁은 최근에 싸웠던 블랙 헌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이 유덕현 부장에 필적할 만한 고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훨씬 어렸다는 점, 그런 자들이 무슨 말단 병사처럼 수십 명이 있었다는 점 등을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군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은근히 고지식한 구석이 있는 안다정은 쉽게 한태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죠.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신유정 부장님에게 얘기할까요?”

“제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을까요?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요. 부장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우리끼리 확인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확인이요?”

강주혁은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고 안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