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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36화 (136/202)

136화 정신 똑바로 안 차려요!

신광공략의 사장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남궁천 사장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유한길에게 물었다.

“네. 사장님.”

“둘만 있을 때는 굳이 그렇게 격식 안 차리셔도 됩니다.”

사장과 팀장. 직급은 꽤 차이가 났지만 나이는 유한길이 오히려 두 살 많았다.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야죠.”

유한길의 말에 남궁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꼭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젊은 친구들에게도 맡겨도 되는 일입니다.”

유한길은 지금의 신광이 우성이었던 시절부터 회사에 헌신해 온 베테랑 헌터였다.

태원에서 신광으로 이직한 남궁천은 유한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들 텃세를 부리면서 남궁천을 밀어낼 궁리를 했지만 유한길은 남궁천에게 손을 내밀어줬고 그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었다.

남궁천은 그런 유한길을 은인으로 생각했다. 인격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했고.

“저는 헌터입니다.”

유한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뜻을 이해한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나 경력으로 따지면 최소 이사 자리에 있어야 할 유한길이 아직까지 팀장인 이유는 지방으로 한 번 좌천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은 더 지난 일이다.

당시 공략부 부장이었던 유한길은 두 개의 공략팀을 이끌고 공략 불가 지역으로 분류된 용암지대에 돌입했다.

회사의 명성을 위해 공략 불가 지역을 남겨놓고 싶지 않았던 임원진의 고집으로 인해 진행된 공략이었다.

결과는 대실패.

화산이 수시로 폭발하고, 용암이 강처럼 흐르는 극한 지형을 헌터들의 역량만을 믿고 돌파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었다.

용암과 화산재로 인해 녹초가 되어버린 헌터들은 강력한 악마종 몬스터들의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총 열다섯 명이 동원된 작전에서 살아남은 건 유한길을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유한길은 거기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

유한길은 공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다른 경우라면 잘리고도 남았을 결과였지만 임원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기에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사건으로 인해 임원진이 대거 물갈이되면서 굴러온 돌이었던 남궁천이 회사의 실세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궁천은 유한길에게 항상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남궁천이 유한길에게 말했다.

태원공략의 강주혁이 공략 불가 지역을 연달아 정복함으로써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가 정복한 공략 불가 지역에서는 헌터들에게 유용한 힘을 줄 수 있는 제단과 매장량이 엄청난 마석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자극을 받은 신광의 임원진은 예전의 실패 이후 방치해 놓았던 공략 불가 지역에 대해서 재고하기 시작했다.

지방으로 내려간 후 소식이 끊어졌던 유한길에게 연락이 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는 말단이라도 괜찮으니까 자신을 공략 불가 지역에 투입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현재 신광의 임원진 중에는 유한길과 막역한 사이였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유한길이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남궁천은 신세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유한길에게 다시 일을 맡겼다. 패장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이다.

유한길은 시체조차 찾지 못한 부하들의 넋을 기린다는 마음으로 불철주야 공략에 매달렸다.

하지만 지옥불이 넘실거리는 용암지대는 쉽사리 정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유한길도 그를 재신임한 남궁천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태원공략으로부터 합동 공략을 제안받았다. 공략 불가 지역을 정복한 장본인이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헌터라면 당연히 은원을 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배님은 부하들의 원수를 갚고 저는 은혜를 갚는 거죠.”

유한길은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이내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장님.”

“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그 강주혁이라는 친구, 신뢰할 수 있습니까?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력발휘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은 것 같습니다.”

남궁천은 빙그레 웃었다.

유한길은 이미 여러 차례 인원 증원을 요청했다. 지금 인원의 두 배가 넘는 헌터들을 투입하고도 실패한 공략이다. 인원을 늘려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줄여버린 걸 유한길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궁천은 태원공략에서 강주혁을 보내주니 인원 증원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제가 장담하건대, 대여섯 명의 임원이 들어가는 것보다 그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놀랍군요.”

“저도 같이 싸워보지 않았다면 선배님과 같은 의견이었을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유한길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제 답변이 성에 안 차시는 모양입니다.”

남궁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위험하고, 중요한 공략입니다. 충분한 인원과 완벽한 팀워크가 갖추어져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태원의 헌터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쪽도 문제가 많습니다.”

남궁천이 기억하는 유한길은 사장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임원진들이 터무니없는 공략을 진행하라고 명했을 때 반대했을 것이다.

적당히 눈치도 보고 처세도 할 줄 알았던 현실적인 사람이 부하들의 죽음으로 인해 사장 앞에서도 거침없이 불만을 털어놓은 사람이 된 것이다.

남궁천은 그런 변화가 안타까웠다. 부하들의 원수를 갚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복수귀가 되어버린 거니까.

“김정현 팀장은 아시다시피 현재 일반 직원들 중에는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때문에 못 올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 내정자이기도 하고요.”

김정현은 듀얼 클래스의 헌터로 검사로서의 재능과 힐러로서의 재능을 둘 다 갖춘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대개 이런 경우는 둘 다 어중간하게 잘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정현은 둘 다 S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헌터로서의 경력도 완벽에 가까웠다. 지금은 강주혁의 대두로 인해 빛이 바래긴 했지만, 한동안 헌터 업계 전체에 그 이름을 떨친 신광공략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한태성은 포스트 김정현이라고 불리는 친구죠. 신광공략의 역사에서 그 친구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태성을 떠올릴 때마다 남궁천은 짜릿한 승리감을 느끼곤 했다. 태원공략에서는 그저 그런 헌터였다가 신광에서 그 재능이 만개한 케이스니까.

태원공략에 맺힌 것이 많은, 그래서 항상 태원공략으로부터 뭔가를 빼앗길 원하는 남궁천에게 한태성은 거저 얻은 승리처럼 여겨졌다.

강주혁을 못 데리고 온 것이 아쉽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한태성도 나쁘지는 않았다.

“김정현 팀장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태성 팀장은 성격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팀워크가 깨질 수밖에 없죠.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사장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유한길의 직언에 남궁천은 쓰게 웃었다.

남궁천 역시 한태성의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단기간에 급성장해서 그런지 한태성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태성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취를 이룬 강주혁이 겸손하고 예의가 바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번 일로 달라질 겁니다.”

남궁천은 제아무리 김정현과 한태성이 신광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라고 해도 강주혁 옆에 세워놓으면 한없이 초라해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남궁천이 바라는 건 강주혁과의 공략을 통해서 두 사람이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다. 특히, 한태성은 겸손함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던전은 갈고 닦는 곳이 아니라 갈고 닦은 것을 증명하는 곳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유정 부장을 붙여놓은 겁니다.”

신유정이라는 말에 유한길이 더 인상을 구겼다.

“신유정 부장이 탁월한 리더인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탁월한 헌터인지는 좀 의심스럽군요.”

“걱정 마십시오. 신유정 부장의 실력은 결코 거품이 아닙니다. 제가 장담하죠.”

“신태원 회장의 손녀인데 어련하겠습니까? 문제는 신 부장이 VIP라는 겁니다. 다치거나 죽으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남궁천도 그 점을 걱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신유정이 워낙 졸라대서 어쩔 수 없었다.

신유정은 남궁천이 태원그룹을 공격할 때를 위해서 품고 있는 카드다.

후계갈등이 격화되면서 태원그룹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장남인 신대성은 그룹에서 쫓겨났고, 삼남인 신대길은 헌터가 될 수 없다.

지금이야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남궁천은 다가올 혼돈의 시기에 신유정과 신대승을 지원해 태원그룹을 흔들어 볼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그룹을 차지한다면 그들에게 지원의 대가를 뜯어낼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가진 지분을 이용해 그룹을 여러 개로 쪼개지도록 만들 것이다.

남궁천이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 신유정을 부장으로 올려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광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으면 그만큼 신태원 회장에게 인정받을 테니까. 회장의 인정은 곧 그룹 내의 영향력과 직결되는 법이다.

당연히 일선에 있는 헌터들은 신유정의 진급에 반대가 많았다. 신유정이 남들이 꺼려하는 공략에 뛰어든 이유도 이런 반발을 무마시키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일이 없도록 선배님이 힘을 써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남궁천의 능글맞은 웃음에 유한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공략 당일.

일행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문제의 지역에 진입했다. 공략에 필요한 제단들은 어제 모두 돌았다.

“생지옥이 따로 없네요.”

안다정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평선에 걸쳐져 있는 화산이 계속해서 화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저런 화산이 세 개나 있었다.

바닥에는 화산재가 자욱하게 깔려있었고 곳곳에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쫄았어요?”

한태성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안다정은 정색하면서 대꾸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네.’

강주혁은 한태성을 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안다정을 대하는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런 캐릭터는 위험하고 중요한 공략에서 반드시 사고를 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덥네요.”

김정현은 투구 덮개를 올리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물 많이 드세요. 열기를 좀 가시게 해줄 겁니다.”

강주혁은 제단의 힘을 이용해 손바닥에 물을 만들어낸 후 그 물을 마셨다.

다들 강주혁을 따라서 물을 마셨다. 물은 맑고 시원했다.

“캬, 시원하고 좋네요.”

신유정은 맥주라도 마신 사람처럼 청량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우리 초장부터 너무 기죽지 말자고요. 용암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른다고 생각해요. 여기 어딘가에 마석 매장지가 있을 테니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다들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신유정은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도 높은 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갑시다.”

지난 2년 동안 이 지역을 전담하다시피 한 유한길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일행은 그를 따라서 용암이 흐르는 강에 당도했다. 강의 폭이 너무 넓어서 건너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열기가 장난이 아닌데요.”

“랭크 불문하고 빠지면 골로 가겠네.”

일행은 용암을 보고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강 팀장님.”

유한길이 강주혁을 불렀다.

“네.”

앞으로 나선 강주혁이 용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제단에서 받은 대지의 힘이 용암에 스며들었다. 흐물흐물하던 용암이 다시 굳어져 딱딱한 암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흐르는 강 위에 널따란 석판 하나가 생겼다. 석판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액체를 고체로 만들기는 했지만 열기는 아직 그대로였다.

치이익!

강주혁은 물을 만들어내 그 위에 뿌렸다. 한참을 그렇게 하자 열기가 잦아들었다.

“됐습니다.”

강주혁은 석판 위에 발을 디뎠다.

“정말 타도 괜찮은 거예요?”

일행은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튼튼한 석판이라고는 해도 용암 위에 떠 있으니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도중에 저게 쪼개지기라도 하면 몰살이다.

“걱정 마세요. 계속 바닥을 보강해주면 됩니다. 움직이기 전에 빨리 타세요.”

강주혁을 말을 하면서도 석판을 확장 시키는 작업을 계속했다.

안다정이 제일 먼저 석판으로 내려왔다.

그 때쯤 흐르는 용암이 석판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움직입니다. 빨리 타세요.”

일행은 따라 걸으면서 한 명씩 석판으로 뛰어내렸다. 여섯 명이 탔는데도 석판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저 배처럼 용암 위에 뜬 상태로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다.

“용암을 이런 식으로 써먹다니…….”

유한길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용암의 강은 이 지역 최대의 난제였다. 이런 강을 수십 개는 건너야 이 지역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도강을 하느라 진이 빠진 헌터들은 중심부의 몬스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주혁은 장애물을 역으로 이동수단으로 삼았다. 경사가 중심부를 향해 완만히 기울어져 있기에 그냥 강을 따라 내려가기만 해도 중심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다들 경계 철저하게 서주세요. 피할 곳이 없어서 집중포화를 당하기 딱 좋습니다. 미리 발견해서 제압해야 합니다.”

강주혁이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근데 더 빨리 갈 수는 없는 겁니까?”

한태성이 투덜거렸다. 그의 말대로 유속이 평범한 강에 비하면 느림보 수준이었다.

하지만 분명 용암치고는 빠른 편이었고 더디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중심부에 도착할 때쯤에는 늙어 죽……”

휙!

날카로운 파공음이 한태성의 말을 끊었다.

척!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색 투창이 한태성의 미간 앞에서 멈춰 섰다. 강주혁이 중간에 투창을 잡은 것이다.

강주혁이 0.1초만 늦게 손을 뻗었어도 한태성의 머리통은 쪼개졌을 것이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요!”

강주혁은 덜덜 떨고 있는 한태성에게 호통을 쳤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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