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35화 (135/202)

135화 기대하겠습니다

“오랜만이네요. 태성 씨. 신광으로 간 줄은 몰랐네요.”

안다정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한태성 팀장입니다.”

“빠르네요. 저도 이제야 팀장을 달았는데.”

“신광공략은 어디랑은 다르게 제 진가를 알아주더군요.”

한태성 팀장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안다정과 한태성 사이에서 차디찬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어? 한태성?”

그 때, 하품을 하면서 부장실을 나오던 유덕현이 한태성을 봤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한태성은 고개만 까닥했다.

“네가 여기 웬일이냐?”

“합동공략 사전미팅 때문에 왔습니다.”

“합동공략? 너 신광으로 갔었어?”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유덕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안다정을 쳐다봤다. 그녀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주혁은 한태성이 태원공략 공략 1부 3팀 출신으로 강주혁이 입사하기 전에 퇴사한 직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왔다. 미팅 잘하고. 수고해.”

유덕현은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는 안다정에게 욕을 먹다가 버티지 못하고 떠난 직원이 두 명 있다고 했다.

하나는 정신상태가 나빠서 혼났고, 다른 하나는 실수를 많이 해서 혼났다.

유덕현이 대하는 태도로 보건대, 한태성은 정신상태 때문에 욕을 먹었던 쪽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데면데면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정보다 일찍 오셨네요?”

강주혁이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약속 시간은 1시 반인데 20분이나 일찍 나타났다.

“여기서 점심 먹으려고 일찍 왔죠. 구내식당은 솔직히 태원이 낫거든요.”

헌터 한 명이 뒤늦게 나타나면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강주혁과의 내기에서 져서 신광으로 돌아간 신유정이었다.

“진급 축하해요. 강 팀장님. 공 대리랑 안 팀장님도 반가워요. 우리 1부 2팀 친구들은 잘 있나…… 다들 어디로 갔어요?”

“팀장님의 1부 2팀은 공중분해 됐습니다.”

“……고, 공중분해요?”

“네.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떠나버려서 그렇게 됐네요.”

“…….”

신유정은 옛 동료들이 떠나버린 것에 대해서 실망한 눈치였다.

“다들 회의실로 가시죠.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강주혁은 신광의 헌터들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윤정석은 냉큼 달려와서 테이블을 세팅했다. 이제 이런 건 따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했다.

“안 팀장님. 가시죠. 오늘은 가볍게 얼굴 한번 보자는 거니까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자세한 건 제가 차근차근 알려드릴게요.”

강주혁은 멀뚱멀뚱 서 있는 안다정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안다정은 굳은 얼굴로 강주혁을 따라갔다.

“일단 서로 소개부터 해야겠죠. 우리부터 할게요. 이쪽이 최고참이신 유한길 팀장님.”

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이번에도 신유정이었다.

“반갑습니다. 유한길입니다.”

유덕현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 남자는 고개만 가볍게 숙여 보였다.

한쪽 눈을 검은색 안대로 가리고 있는 데다가 수염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어서 꼭 해적 선장처럼 보였다.

“이쪽은 신광공략의 떠오르는 신성, 한태성 팀장이에요. 태원공략 출신이죠. 안다정 팀장님이랑은 구면이죠?”

“네. 저를 갈구시던 악질 상사셨죠.”

한태성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뭐요?”

안다정이 발끈했다.

“에이, 농담 가지고 왜 그러세요. 한 팀장님도 말 좀 예쁘게 해주세요.”

신유정이 험악해지려는 분위기를 재빨리 수습했다.

강주혁은 한태성을 바라보았다. 강주혁과 눈이 마주친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나이는 강주혁보다 약간 더 많은 것 같은데 벌써 팀장이다. 한태성 역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자란 얘기였다. 신광 같은 회사가 아무나 팀장을 달아주지는 않으니까.

정황상 한태성이 제대로 실력 발휘한 건 신광으로 이직한 후인 것 같았다. 태원공략 입장에서, 그리고 안다정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뛰어난 헌터를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경쟁사에게 뺏긴 거나 마찬가지니까.

“다음은 신광공략의 미래, 신광공략의 얼굴, 신광공략의…….”

신유정이 다음 사람을 소개했다.

“김정현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신유정의 말을 자른 김정현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강주혁 팀장님이시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정현은 특별히 강주혁에게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아, 네. 영광이랄 것까지야.”

당황한 강주혁은 어색하게 마주 인사했다.

“그리고 저는 신광 어벤저스의 리더인 신유정…… 부장입니다!”

신유정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낙하산입니다.”

옆에 있던 김정현이 덧붙였다.

“낙하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실력으로 올라간 거예요!”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신유정이 씩씩거렸지만 김정현은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파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저런 말을 주고받는 걸로 봐서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한태성과 유한길은 못마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흘겨봤다.

참으로 요상한 멤버였다.

강주혁은 남궁천이 이 네 사람을 뽑은 이유를 추측하기 위해서 머리를 열심히 굴렸으나 딱히 답이 나오진 않았다.

“태원공략은 두 분뿐입니까?”

강주혁과 안다정이 자기소개를 들은 유한길이 물었다.

“네. 지난번 공략 때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내부평가가 나와서 이번엔 둘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합동 공략에서 최석도와 장하민은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용의 길>은 뒤로 갈수록 공략 난이도가 높아진다. 공허진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면 최소 팀장급은 되어야지만 투입될 수 있다.

“우리가 보낸 자료들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다 봤습니다. 임원 회의도 거쳤고요.”

“그런데도 두 분만 투입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유한길은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를 못 하신 것 같군요. 이번 지역은 지금까지 공략된 지역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 지역과 관련된 세 지역을 모두 공략한 사람이 접니다. 여기 계신 안 팀장님은 두 지역을 공략했고요.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유한길은 노골적으로 언짢은 티를 냈다. 최고참이 이러니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박에 없었다.

“태원공략에게 용암지대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그건 뭡니까?”

“엄밀히 말하면, 태원공략이 아니라 대현공략에 있죠.”

“대현공략이요?”

강주혁은 제단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용암지대를 돌파하려면 대현공략의 관할지역에 있는 제단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거죠?”

신유정이 물었다.

“네. 팀장님.”

“그럼 파이를 또 한 번 나눠야겠네요.”

대현공략이 공짜로 자기 지역의 제단을 이용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공짜로 써도 된다고 박종근 회장님께 직접 허락받았으니까요.”

“회장님이 허락하셨다고요?”

“네.”

“그 구두쇠 할아버지가?”

신유정이 가장 놀랬다.

“구두쇠셨나요? 저한테는 잘해 주시던데요.”

강주혁이 씩 웃으면서 답했다.

박종근 회장이 사죄의 의미로 공짜로 이용하게 해줬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히 신광에서 발견될 마석 매장지를 나눠 먹자고 했을 것이다.

그 후로 회의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강주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이용해서 유한길이 걱정하는 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강주혁을 불신하는 것 같던 유한길도 명쾌한 설명이 이어지자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신광공략의 헌터들이 돌아갔다.

“안 팀장님.”

강주혁은 자기 팀으로 돌아가려는 안다정을 불렀다.

“왜요?”

“커피 한잔?”

안다정은 강주혁을 빤히 쳐다봤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각자의 팀을 맡게 된 후로 한 번도 따로 시간을 낸 적이 없었다.

레전드 1부 3팀 멤버들의 추억 모임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좋아요.”

강주혁은 안다정을 회사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데리고 갔다.

강주혁은 물어보지도 않고 안다정이 늘 마시는 커피를 주문했다.

“표정이 안 좋으세요. 한태성 팀장 때문이죠?”

강주혁이 커피를 건네면서 물었다.

“뭐, 그렇죠.”

강주혁이 걱정을 해주자 안다정은 오히려 옅은 웃음을 보였다.

“많이 혼냈어요? 좀 맺힌 게 많아 보이던데.”

“그랬죠. 그땐 저도 많이 어렸고, 어리석었으니까요.”

“의외네요.”

“뭐가요?”

“한태성한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실 줄 알았거든요.”

“저 그렇게 옹졸한 사람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아까 반응을 보니 유덕현 부장님도 한태성 팀장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좀 까다로운 사람이었어요. 분명히 재능이 있는데, 그걸 끌어낼 노력은 안 했죠.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사소한 핀잔에도 발끈하곤 했어요.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한 말들이었는데 더 비뚤어지곤 했죠. 제 요령이 부족해서였어요.”

“팀장님이 아니라 그쪽이 옹졸한 것 같습니다.”

“제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죠. 나이도 저보다 두 살이나 많아요. 자기보다 어린 여자 상사에게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깨졌으니까 앙심을 품을 만도 하죠.”

“그건 그렇군요.”

“합동 공략팀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재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두각을 드러낼 줄은 몰랐네요.”

“우리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한태성도 팀장을 달 만한 나이는 아니죠.”

“맞아요. 그래서 더…… 아니에요.”

안다정은 말을 삼킨 후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편하게 얘기하세요.”

“제가 다르게 대했다면 여기에서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까 견디기 어렵네요.”

“안 팀장님은 완벽주의자에요.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건 어때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군요.”

“그런가요? 하지만 꼭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강주혁은 헌터 업계 전체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중이다. 엄청난 성공을 연달아 거둔 만큼 그걸 이어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주혁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패배자로 살아온 회귀 전 인생이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좀 더 여유 있는 안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한태성 팀장이 신광에서 자기랑 잘 맞는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했을 수도 있죠. 그리고 팀장님 말대로 그때는 다들 어렸잖아요. 그 사람도 팀장님도요.”

안다정이 강주혁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강 팀장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좀 덜 심란했을 거예요.”

“왜요?”

“강 팀장님은 공 대리를 제대로 키워냈잖아요. 강 팀장님도 어리고, 경험이 없었죠.”

“……그건 공 대리가 잘나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유 부장님이랑 팀장님도 도와주셨잖아요.”

“강 팀장님이 없었다면 결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예요. 요즘 옆에서 보고 있으면 얼마나 대견스러운 줄 알아요? 불과 2년 전에만 해도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팀장 역할도 거뜬히 해내요.”

“1부 2팀의 대들보죠.”

엄밀히 말하면, 대들보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매일 도망가는 바람에 대들보 대신에 끼워놓은 서까래였다.

“잘 좀 챙겨요. 강 팀장님 없으면 얼마나 서운해하는데요. 우리는 팀장님한테 버람받았다고 투덜거려요.”

“명심하겠습니다.”

난감해진 강주혁은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러다가 무릎을 탁 쳤다.

“보세요. 저도 완벽하지는 않잖아요. 팀원들 만족도 조사하면 2팀이 보나마나 꼴찌일 겁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안 팀장님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안다정은 가만히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팀원들 어떻게 달래죠? 밥이랑 술은 열심히 사주고 있는데…….”

윤정석뿐만이 아니라 안다정에게도 같은 소리를 들으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2팀 팀원들은 팀장님을 정말 좋아해요. 직장 상사이기 전에 인간적으로 좋아하죠. 그 친구들에게 필요한 건 팀장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시간이 여의치 않네요. 위에서 자꾸 부르셔서요.”

안다정은 잠시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조만간 괜찮아질 거예요.”

“네?”

“아니에요. 그냥 제 느낌이 그래요.”

강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안다정은 옅은 웃음을 흘리기만 했다.

“커피 잘 마셨어요. 이제 일 하러 가요.”

안다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주혁도 따라서 일어났다.

“오늘 고마웠어요. 강 팀장님한테는 이래저래 신세만 지내요. 이번 공략 끝나면 제가 술 한잔 살게요.”

“기대하겠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