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합동 공략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태원공략 본사 건물.
감사실 내부에 있는 취조실.
감사팀 김한솔 과장이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책상 반대편을 힐끗 봤다.
강주혁이 잡아 온 블랙 헌터가 포박을 당한 채 앉아 있었다. 얼굴은 피투성이였으나 눈빛은 형형했다.
“담배?”
김한솔이 물었다.
“좋소.”
김한솔은 블랙 헌터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는 불을 붙여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아직 생각이 안 바뀌었습니까?”
김한솔의 물음에 블랙 헌터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김한솔은 담배 연기를 한 번 길게 뿜어냈다.
‘골치 아프군.’
이 블랙 헌터가 알고 있는 걸 모두 캐내야 하는데 김한솔은 아직 그의 정체도 몰랐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DNA검사를 해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왔다.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돌려도 비슷한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지문도 전부 지워지고 없었다. 서류상으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게다가 끔찍할 정도로 강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이는 자신과 비슷해 보였으나 분명 S급이다.
경찰에는 이 정도 수준의 헌터를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았다. 그 인원이 준비가 되기 전까지 태원공략 취조실에 구류해놓기로 했다. 헌터 관련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기 전에는 항상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
“슬슬 다시 시작해 볼까요?”
김한솔은 담배를 재떨이를 눌러서 껐다.
“그럽시다.”
블랙 헌터는 마지막으로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는 말했다. 김한솔이 그의 담배를 빼서 재떨이에 놓았다.
하지만 블랙 헌터의 태연하고도 굳건한 모습을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질리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겁니까? 이래서는 당신에게 좋은 게 없습니다.”
김한솔은 진즉부터 폭력을 동원했다.
태원공략의 헌터를 죽이려고 했으니 명분은 충분했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니 법적으로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다쳐도 힐러나 물약을 동원해서 치료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블랙 헌터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열흘간 지속되자 오히려 때리는 사람이 지쳐갔다.
감사실 직원은 고문관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폭력을 동원하긴 했지만 김한솔은 언제나 대화를 선호했다. 성격에 안 맞는 일을 계속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신들은 우리를 근본도 없는 범죄자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도 나름의 룰이 있소.”
“룰?”
“절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다는 거지.”
“허.”
김한솔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진실이기는 했다.
만약 블랙 헌터가 마력 억제 수갑을 차고 있지 않았다면 입장이 바뀌었을 것이다.
“나는 단전을 다쳐서 내공도 제대로 못 쓰는 A급 헌터에게 놀아날 정도로 하찮은 놈이 아니오.”
김한솔은 흠칫 놀랐다.
김한솔은 감사실에 잡혀 있던 양준기 전무가 탈출했을 때 그를 막아섰던 헌터들 중 한 명이었다.
양준기 전무의 고강한 장법에 김한솔은 치명상을 입었다. 만약 양준기 전무에게 확인 사살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김한솔은 분명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김한솔은 오랫동안 사경을 헤맸고, 간신히 상처를 회복하고 복귀한 지금도 내공을 다루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블랙 헌터는 그걸 알아볼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화가 난 김한솔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을 때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똑똑똑.
“과장님.”
“뭔데?”
김한솔은 움직이지 않고 목소리만 높였다.
“공략 1부 2팀의 강주혁 팀장님이 오셨습니다.”
“강 팀장님이?”
김한솔은 블랙 헌터를 남겨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강주혁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어서 오십시오. 팀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블랙 헌터랑 얘기를 좀 해볼 수 있을까요?”
“그건 좀…….”
아무리 강주혁이 잡아 온 블랙 헌터라고 해도 이미 감사실로 넘어왔다. 공략팀에게는 취조의 권한이 없었다.
“이윤철 사장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전화해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아, 그러셨군요. 괜찮습니다.”
“지금 들어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근데 그건?”
김한솔의 시선이 강주혁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로 향했다.
“아, 치유 물약입니다. 얘기하는데 필요할 거 같아서요.”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그런 걸…….”
김한솔은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강주혁은 기분 나쁘게 웃어 보였다.
“글쎄요. 그건 저 시커먼 친구가 알고 있겠죠.”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죠.”
김한솔은 문 옆으로 비켜섰다. 강주혁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문이 닫혔다.
김한솔은 커피나 한잔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했다.
“으아아아악!”
하지만 안에서 들려온 처절한 비명소리 때문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과장님.”
부하 직원은 불안한 듯 김한솔을 쳐다봤다. 김한솔도 잠시 고민을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 둬.”
범죄자 주제에 기고만장해져서 자신을 비웃던 블랙 헌터가 괘씸했다.
“끄윽!”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김한솔이 상대할 때도 그랬다.
저 블랙 헌터 정도의 근성이라면 강주혁이라고 해서 별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저렇게 때리다가 블랙 헌터가 기절해 버리면 강주혁도 소득 없이 물러날 것이다.
철컥.
잠시 후, 비명소리가 끝나고 강주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과장님.”
“네?”
“이 친구가 할 말이 있다는 군요.”
깜짝 놀란 김한솔이 강주혁을 따라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블랙 헌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치유 물약을 쓴 건지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하겠소. 모두 다 말할 테니 살려만 주시오.”
겁에 질린 블랙 헌터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강주혁이 취조실로 들어간 지 불과 5분 만에 생긴 일이었다.
* * *
사장실.
비서의 안내를 받은 강주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일찍 왔네?”
이윤철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블랙 헌터가 입을 열었습니다.”
“벌써?”
이윤철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강주혁은 열흘이 지나도록 블랙 헌터로부터 알아낸 게 없다는 걸 듣고는 자신이 직접 얘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라고 내려보냈는데 20분 만에 돌아왔다.
“어떻게 한 건가?”
이윤철 사장이 강주혁에게 물었다.
“헌터답게 주먹으로 대화했습니다. 말이 아주 잘 통하더군요.”
강주혁이 능청스럽게 말하자 이윤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항상 정도를 걷는 것 같은데 필요하다 싶으면 두려움 없이 선을 넘는다.
선을 넘는 게 두려운 이유는 일단 그렇게 하고 나면 선이 없어져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자기 의지대로 그 선을 넘나들었다. 어쩌면 자기식대로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일단 앉게.”
이윤철은 강주혁에게 자리를 권했다.
좀 전에 같이 마시던 차에는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열흘 동안 버티던 블랙 헌터를 차가 식기도 전에 굴복시키고 돌아온 것이다.
“새로 내려달라고 할까?”
“괜찮습니다. 아직 마실만 합니다.”
이윤철은 차를 마시는 강주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사장실에 앉아 있는 강주혁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들어 자주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강주혁 자신과 관련된 일 때문에 불렀다. 그때마다 강주혁은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했고 그 나이 때의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노련함과 통찰력을 보여줬다.
사람의 시야는 위치와 연륜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팀장이 된 강주혁은 자신의 팀을 제대로 보는 것도 버거워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대화를 해보면 강주혁이 팀을 넘어 공략 1부를, 더 나아가 회사와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걸 알게 된 후부터 이윤철은 강주혁을 수시로 불러들여 회사 일에 관해서 의견을 묻고는 했다. 그리고 매번 그 답변 속에서 자신이 놓친 것들을 찾아내곤 했다.
불과 2년 전에는 그저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고 싶은 부하였는데 지금은 동등한 파트너나 마찬가지였다.
이윤철은 강주혁의 진정한 강함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힘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이를 뛰어넘는 지혜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놈이 뭐라고 하던가?”
“자신들의 근거지가 신광공략이 담당하는 지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신광공략?”
“네. 사장님. 미개척 지역에 있는 동굴에 수십 명이 모여 지낸다고 합니다.”
이윤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광이 경쟁사이긴 하나 블랙 헌터를 상대하는 건 모든 헌터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일이다. 신광에게 이 정보를 알려야 한다.
“거기서 뭘 한다던가?”
“훗날의 거사를 위한 거점이라고 합니다.”
“거사?”
“광야에 블랙 헌터들이 충분히 모이면 공략회사들과 한 판 붙으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랑 싸워서 이긴다고 뭐가 달라지나?”
“광야에 자기들만의 왕국을 세울 거라고 하더군요.”
“하하, 진짜 정신이 나간 놈들이군.”
이윤철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강주혁은 진지했다.
“광야의 규모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지역만 해도 한반도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게이트만 잘 틀어막으면 지구에 있는 국가들에게 공격당할 일도 없다.
전기와 수도 없이 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블랙 헌터들이 정말로 광야를 완전히 장악해 버리면 광야를 기반으로 성장했던 한국의 대형 공략회사들은 전부 부도가 날 것이다.
“나라를 세우려면 사람이 있어야지. 블랙 헌터들은 우리에 비하면 여전히 한 줌뿐이네. 그나마 고수들은 전부 감옥에 있고. 그것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나?”
헌터들은 세대가 바뀌더라도 끊임없이 증원되지만 블랙 헌터는 아니다. 블랙 헌터는 태생적으로 범죄자 집단이기에 나라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결코 헌터들보다 많아질 수 없다.
“제가 이번 공략에서 죽인 블랙 헌터들은 전원이 부장급이었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고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강주혁처럼 성장 속도가 유난히 빠른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열 명이 넘는 건 확실히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아래층에 있는 친구는 자신이 말단 간부라고 했습니다. 전체 조직의 수장이 있는데 자신은 얼굴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거점도 더 있지만 자신이 아는 건 한 군데뿐이라고 했습니다.”
“부장급이 말단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만, 블랙 헌터들에게 성장 속도를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지.”
블랙 헌터가 헌터들과 구분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정치사상 때문만은 아니다. 블랙 헌터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을 따르며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소문에 따르면, 인육 섭취와 흡혈을 통해서 강해진 블랙 헌터들도 있다고 했다.
“그럼 상대적인 전력 차이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능력 부족으로 헌터 업계에서 낙오된 자들의 힘을 미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이윤철은 강주혁의 진지한 반응을 보고 자신이 너무 물렀다는 점을 깨달았다.
블랙 헌터들이 그저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광신도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강주혁의 추측을 듣고 나니 그들이 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천 사장이랑 얘기를 좀 해봐야겠군요.”
“저, 사장님.”
“왜 그런가?”
“이 정보를 그냥 알려주시지 마시고 조건을 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건을 단다고?”
이윤철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모든 회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의 문제였으니까.
“네. 합동 공략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이윤철은 다음 마석 매장지가 있는 곳이 신광이 관리하는 지역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무릎을 쳤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