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23화 (123/202)

123화 그러시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붉은 눈의 석상이었다.

크기는 좀 전에 일행이 잡은 석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과 원형 방패로 무장한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좀 전에 싸웠던 석상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컸다.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이 좀 전의 석상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강하다.’

구자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S급을 눈앞에 둔 자신도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공격이었다. 자신보다 한 수 위인 것이 분명한 대현공략의 3인조도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오직 강주혁만이 투창의 궤적을 읽고 몸을 날렸다.

‘강 팀장이 막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야.’

아직도 주변에 투창에 담겨 있던 마력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걸로 추측건대, 투창의 위력은 구자연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강주혁이 몸을 날려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구자연은 창에 꿰뚫려 즉사했을 것이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더라도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의식을 잃어서 치료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죽는다.

‘돌아버리겠네.’

강주혁에게 생명을 빚졌다. 던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고 강주혁에게는 팀장으로서 팀원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구자연은 강주혁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쿵! 쿵!

제왕의 석상이 일행을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

선공은 곽도운의 도끼였다. 그는 엄청난 점프력으로 단숨에 석상의 머리까지 날아올랐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마지막 석상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던 도약 강타였다.

퍽!

“윽!”

하지만 제왕의 석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를 휘둘러 곽도운의 도끼가 닿기도 전에 그를 날려버렸다. 곽도운은 벽에 부딪혔다가 튕겨져 나왔다.

“조심해!”

제왕의 석상이 곧장 후방에 있던 박종민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가 피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항상 박종민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김재현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박종민도 그의 앞에다가 얼음 방벽을 만들었다.

콰직!

하지만 제왕의 석상이 내지른 창은 얼음 방벽과 김재현의 방패를 아무런 저항 없이 뚫어 버리고는 김재현의 가슴에 박혔다.

“크억!”

김재현이 피를 토하면서 뒤로 날아갔다. 뒤에 있던 박종민도 김재현에 휩쓸려서 함께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구자연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김재현은 가슴에 구멍이 뚫렸고 박종민은 뒤통수를 세게 부딪치면서 기절해 버렸다. 저것보다 더한 공격을 맞고도 말짱했던 강주혁이 진짜 괴물처럼 여겨졌다.

“최 대리님하고 장 대리님은 뒤로 빠져요!”

강주혁은 일행 중 최약체인 두 사람에게 전선에서 이탈할 것을 명령했다.

두 사람보다 강한 김재현과 박종민이 단 한 번의 공격에 저 지경이 되었으니까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게 뻔했다.

“으아아아!”

하지만 최석도는 강주혁의 명령을 듣지도 않고 분기탱천해서 제왕의 석상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일반 석상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던 최석도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서걱!

제왕의 석상이 창을 바닥을 쓸 듯이 낮게 휘둘렀다. 선혈이 낭자하면서 돌바닥과 석벽에 피가 튀었다.

“끄아악!”

두 다리를 잃은 최석도가 나뒹굴었다.

‘저런 등신을 봤나.'

최석도를 공략팀에 끼워 넣은 김재후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최석도의 목적은 강주혁을 죽이는 게 아니라 공략을 망치는 것 같았다.

“장 대리님, 최 대리님 끌어내요!”

“네! 팀장님!”

강주혁의 명령에 장하민이 달려갔다. 그리고는 무릎 아래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최석도를 뒤로 끌어냈다.

“구 팀장님!”

“확인했어요!”

김재현의 상처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던 구자연은 최석도까지 챙겨야 했다. 전투를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다.

제왕의 석상을 상대하는 건 강주혁과 곽도운, 이성일, 김한수의 몫으로 남았다. 곽도운은 김재현과 달리 석상의 공격을 견뎌내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붕!

제왕의 석상이 창을 휘두르면서 네 사람을 압박했다. 강주혁은 적당히 상대하면서 대현공략 3인조의 움직임을 살폈다.

세 사람은 다른 석상들을 처리할 때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대응했으나 석상의 탄탄한 방어를 뚫을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위기에 처하면 공세가 헐거워지는 게 눈에 띄었다.

퍽!

“크억!”

석상의 무릎에 얼굴을 가격당한 이성일이 코피를 흘리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 틈을 김한수가 나서서 막았으나 그 역시 팔꿈치를 맞고는 나가떨어졌다.

그 모든 공격이 곽도운이 휘두른 도끼를 방패로 막고 강주혁을 창으로 찌르면서 행한 것이었다. 제왕의 석상은 창과 방패만 잘 다루는 게 아니라 체술도 수준급이었던 것이다.

네 명에서 동시에 덤비는 데도 도무지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방어를 뚫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제왕의 석상이 들고 있는 방패에서 빛이 번쩍였다.

“젠장!”

어두침침한 실내에 익숙해져 있던 헌터들은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감을 수 없었고 석상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푹!

“끄억!”

창에 베인 곽도운이 어깨에서 피를 흘리면서 비틀거렸다. 세 사람의 합동 공격도 느슨해졌다.

“젠장, 망할 석상 나부랭이가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무슨 뾰족한 수는 없어?”

“부상자들 회복 될 때까지 버텨. 마법사랑 힐러가 가세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대현공략 삼인조가 투덜거렸다.

<용의 길>에 딸린 마석 매장지는 수조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그 마석 매장지를 차지하기 위한 시련은 더욱 혹독해질 것이다.

‘슬슬 끝내야겠군.’

살수들의 전력을 파악한 강주혁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틈을 노리지도 않고 곧바로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이봐! 뭐 하는 거야!”

당황한 이성일이 외쳤다. 최석도가 저린 식으로 돌진하다가 두 다리를 잃었다.

슉!

제왕의 석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창으로 강주혁을 찔렀다. 하지만 그의 신형은 창이 닿는 순간 사라졌다.

쾅!

강주혁이 있던 자리를 찍은 창이 돌바닥을 찍자 부서진 돌덩이가 위로 솟구쳤다.

사라졌던 강주혁은 창이 꽂힌 자리 앞에서 다시 나타나더니 돌진을 계속했다.

제왕의 석상은 방패로 강주혁을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주혁은 대포알처럼 공중으로 치솟았다.

캉!

강주혁은 자신의 어깨로 방패를 들이박았다.

“아, 아니!”

튕겨 나가는 건 강주혁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왕의 석상이 보여준 전투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강주혁 대신에 방패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퍽!

방패를 자신의 경로에서 쳐내버린 강주혁이 석상에게 태클을 걸었다.

제왕의 석상은 땅에 박혀있던 투창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사신무극검 1형 2식.

백호맹돌격(白虎猛突擊).

전사 계열 헌터들이 사용하는 돌진 기술과 유사하나 기술 발동 직후 돌진 경로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백호검은 사용자에게 암석과 금속의 힘을 다룰 수 있게 해준다. 그 힘으로 인해 대지와 융화되면서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튀어나오는 것이다.

언제 지하로 들어가고 나올지는 훈련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좀 전에도 그렇게 해서 투창을 피한 것이다.

게다가 금속의 힘 덕분에 기술이 사용되는 동안 일종의 슈퍼 아머가 생기기 때문에 중간에 공격을 받아도 기술이 끊어지지 않는다. 방패 공격을 받고도 석상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이유다.

척!

석상의 가슴팍에서 몸을 일으킨 강주혁이 검을 역수로 쥐었다.

퍽!

석상이 비어 있는 오른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하지만 강주혁은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백호금강갑으로 몸을 보호한 덕분에 피해도 없었다.

콱!

강주혁의 검이 석상의 가슴팍을 찔렀다. 만약을 대비해서 무극검은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꽤 많은 내공이 담겨 있었고, 어렵지 않게 돌로 된 육신을 파고들었다.

푹!

느낌이 왔다. 깊디깊은 곳에 있는 코어 즉, 마석에 검이 닿았다는 것을.

그곳은 석상 전체에 마력을 공급하는 심장인 동시에 석상에 깃든 악령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했다.

키에에에엑!

검이 코어를 부수자 그 안에 있던 악령까지도 덩달아 소멸해 버렸다. 석상이 뿜어내던 강렬한 마력과 존재감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후.”

검을 석상에게 뽑으려는 찰나, 강주혁은 등 뒤에서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강주혁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검을 포기하고 몸을 피할 것인지 아니면 공격을 받아내면서 검을 뽑을 것인지.

‘검만 있는 게 아니지.’

강주혁은 어떤 것도 택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틀면서 주먹을 날릴 뿐.

권대호에게 배운 권법. 하지만 주먹은 등 뒤를 노리는 적에게 닿지 못했다.

챙!

갑자기 반투명한 보호막이 강주혁을 감싸면서 곽도운의 도끼를 튕겨냈다.

곽도운은 뒤로 비틀거리면서 물러났고 덕분에 그의 복부에 꽂혀야 할 강주혁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구 팀장?”

“뭐, 뭐야? 당신 우리 편 아니었어?”

대현공략의 살수 3인방이 구자연을 보면서 황당해했다. 그녀는 강주혁을 향해 펼치고 있던 손바닥을 다시 오므렸다. 흔들리는 눈빛이 감정의 동요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네요.”

강주혁은 구자연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보스와 싸운 직후, 힘이 가장 많이 빠져 있을 때라고 생각해서 비수를 꺼냈는데 호응을 해줘야 할 구자연이 변절을 해버린 것이다.

“뭐라고?”

“망할, 이래서 태원공략 놈들은 믿을 수 없다니까.”

“이봐요, 도련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세 사람은 박종민과 김재현 쪽을 봤지만 두 사람은 반응이 없었다.

“안 죽을 정도로만 치료했어요. 한참은 있어야지 정신을 차릴 거예요.”

구자연이 답했다.

박종민과 김재현뿐만이 아니라 최석도 역시 다리만 재생되었을 뿐 움직임이 없었다.

“자, 잠깐만요. 갑자기 다들 왜 이러는 거예요?”

장하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민 씨는 잠깐 빠져요.”

구자연이 말했다.

“빠지긴 뭘 빠져요. 왜 갑자기 강 팀장님을 공격하는 건데요? 당신들 도대체 뭐야? 정말로 대현공략 헌터들 맞아?”

장하민이 삿대질까지 하면서 역정을 냈다. 대현공략의 살수 세 사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미 얘기 끝난 거 아니었어?”

“태원공략 놈들은 일을 왜 이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이성일이 살기를 드러내면서 장하민을 쏘아봤다.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기운에 장하민이 움찔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꼬마야. 네가 아직 저놈의 정체를 모르나 본데 저놈은 블랙 헌터야. 우리는 블랙 헌터를 처리하는 청소부고.”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황한 장하민이 강주혁을 바라보았다.

“사실이 아닙니다.”

강주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거기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지. 우리도 멀쩡한 헌터를 죽이긴 싫으니까. 우리랑 함께 저 블랙 헌터를 죽이든가, 아니면 우리 손에 죽든가. 빨리 결정해.”

이성일이 구자연과 장하민에게 말했다.

“그냥 포기하시면 안 될까요? 강 팀장님이 지금 블랙 헌터라는 건 아니잖아요. 가능성만으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구자연은 김재후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때 김재후의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다는 후회하면서.

“당신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저놈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고 이러는 거야?”

“부정하진 않겠어요. 저도 헌터고, 헌터라면 은원을 중히 여겨야 하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근거도 명분도 부족한 일이잖아요. 여기서 그만두면 모두 다 살아서 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세요.”

구자연의 말은 당당했지만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니라 반쯤은 충동적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우라질.”

3인조는 오만상을 썼다.

공략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가면 강주혁을 사냥하기로 이미 협의를 했다.

그런데 그걸 시행하는 단계에서 이렇게 뒤통수를 치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일을 어렵게 만드는군.”

“어쩔 수 없지. 대의를 위한 희생이다.”

“당신이 택한 거니까 너무 원망 말라고.”

3인조는 자신들이 강주혁뿐만이 아니라 구자연까지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강주혁은 이 모든 상황을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안 놀라는군.”

곽도운이 말했다.

“이번 공략이 저를 죽이기 위한 덫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들어온 거야? 겁도 없이?”

“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거든요.”

“오해?”

“제가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3인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하지.”

세 사람이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시죠.”

강주혁 역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강주혁은 세 사람이 자신들이 가진 패를 완전히 다 보여준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체를 보니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곽도운은 몸집이 거대해지면서 두 배로 불어났다. 이성일의 몸에서 털이 돋아났다. 얼굴은 늑대의 그것처럼 변했다. 김한수는 몸 전체가 흐릿해지더니 안개처럼 변했다.

거인과 야수, 그리고 안개가 동시에 강주혁을 덮쳐왔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