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괜한 걱정이었나
강주혁은 마석 매장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수십억의 인센티브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입안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한다는 게 더 중요했다.
강주혁은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신태원도 뛰어넘고 싶었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헌터라는 그의 명성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헌터들과의 싸움뿐만이 아니라 몬스터 사냥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
용의 길 끝에 있는 티아메트 급 드래곤은 강주혁에게 최강자의 명성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몬스터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회중시계는 그 어떤 아티팩트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얻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동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
“우리 회사의 헌터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네.”
그래도 이윤철은 우려를 표했다.
“괜찮습니다, 사장님. 제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강 팀장이 다치거나 죽어도 문제지만 상대가 죽는 것도 문제야.”
나를 죽이려고 하는 상대를 죽인다. 정당방위이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강주혁에게는 이미 낙인이 찍혀 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살인도 범죄로 여겨질 수 있다.
“걱정 마십시오.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윤철은 강주혁의 지나친 자신감이 걱정되었으나 동시에 이 프로젝트에 강주혁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지난 마석 매장지 두 건에 대한 보고서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공략의 A부터 Z까지 강주혁이 기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전투력만 충분하다면 강주혁 한 사람만 보내도 될 정도였다.
“자네랑 함께 갈 사람들을 잘 골라보겠네.”
양준기 전무의 비리를 도려내느라 공략 1부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레전드 1부 3팀 멤버들은 강주혁을 도울 수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김재후나 신대승에게 매수당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장이 직접 나서서 미리 경고를 한다면 일탈의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태원공략 헌터들이 강주혁을 돕는다면 대현공략의 헌터들도 함부로 엄한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번 일로 회사 내의 불순분자들을 솎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강주혁이 되레 자신을 미끼로 삼아 김재후와 신대승을 공격할 건수를 잡자는 식으로 말하자 이윤철은 화들짝 놀랐다.
“……자네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
* * *
합동 공략 당일.
“안녕하세요. 팀장님.”
“어서 오십시오.”
강주혁은 박종민과 웃으면서 악수를 나눴다.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건지 박종민의 눈이 퀭했다.
‘소심한 친구군.’
강주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히드라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박종민은 강주혁의 집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그렇게 살갑게 대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후에 할아버지에게 진실을 들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걸로 봐서 강주혁의 암살 임무도 맡았을 것이다.
강주혁에 대한 미안함인지 공포감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 심란한 상태라는 건 분명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잠을 설쳤을 것이다.
‘손자를 직접 보내다니 박종근 회장도 보통이 아니군.’
마석 매장지를 찾으러 가는 것도, 강주혁을 죽이는 것도, 극도로 위험한 임무다. 강주혁이 박종민의 실적을 미끼로 던진 제안이라서 박종민이 빠져버리면 의심을 살 수도 있지만, 핑계를 대자면 얼마든지 댈 수도 있다.
하지만 박종근은 과감하게 장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못 보던 얼굴들이 많네요.”
박종민과 김재현 외에 기세가 흉흉한 중년 남자 셋이 더 있었다. 헌터라기보다는 청부 업자 같은 느낌을 줬다.
박종민과 김재현을 제외한다면 기존의 TF팀은 한 명도 참여하지 못했다.
“아, 임원진이 TF팀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해서 임시로 팀원을 교체했습니다. 기존의 TF팀은 따로 할 일이 있기도 하고요. 공략에 필요한 내용들은 모두 인수인계를 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박종민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공략 계획을 위해서 사전회의를 했을 땐 박종민의 TF팀이 왔었는데, 정작 공략 당일에 사람을 바꿔버렸다.
미리 신원을 노출하면 강주혁이 뒷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명백히 관례에 어긋난 행동이었으나 강주혁은 그냥 넘어갔다.
“실력이 더 뛰어난 분들이 오신 건데 저희야 환영이죠. 반갑습니다. 선배님. 태원공략의 강주혁 팀장님입니다.”
강주혁은 딱 봐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헌터들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대현공략의 곽도운 팀장입니다.”
“이성일 팀장입니다.”
“김한수 팀장입니다.”
강주혁은 세 사람하고도 인사를 나눴다. 스스로를 팀장이라고 소개했지만 연령대만 놓고 보면 거의 임원처럼 보였다.
어쩌면 대현공략에 공식적으로 속해있지 않는 외부인일 가능성도 있었다.
“태원공략의 구자연 팀장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최석도 대리입니다.”
“장하민 대리입니다.”
태원공략에서 투입된 헌터들은 대현공략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였다.
강주혁과 함께 합동 공략에 참여할 헌터들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이윤철과 김재후가 실랑이를 벌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재후는 형평성을 명분 삼아서 공략 1부 사람들을 뽑는 것에 반대했고, 이윤철은 혹시나 매수당하더라도 강주혁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일부러 랭크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끼워 넣는 걸로 타협을 봤다.
공식적으로나마 강주혁과 동급으로 분류되는 건 공략 2부 3팀의 팀장인 구자연뿐. 대리인 최석도와 장하민은 유망주일 뿐 회사를 대표해서 합동 공략에 나설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 모인 것 같군요.”
이번 공략의 공식적인 리더는 강주혁이었다. 경험은 적었지만 이미 실적으로 모든 걸 증명했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에 대현공략에서 오신 헌터님들에게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물은 필요 없습니다. 모두 두고 가시죠.”
“네? 우리가 갈 곳은 사막입니다.”
대현공략의 헌터들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물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이동 속도도 느려지고 피로도도 증가할 것이다.
“가보시면 압니다. 전부 두고 가시죠.”
대현공략 헌터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다. 합동 공략팀은 우선 태원공략이 맡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제단에서 바람의 힘을, 두 번째 제단에서는 물의 힘을 받아들였다.
강주혁은 손바닥에서 샘물처럼 솟구치는 물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바람의 힘과 마찬가지로 이 힘도 거의 한 달 정도 유지됩니다. 연구팀에서 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와.”
대현공략에서 온 헌터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확실히 이거면 사막에서의 생존율이 높아지겠군요.”
준비를 끝내 일행은 대현공략 쪽 웨이포인트를 이용해서 세 번째 제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막에 진입했다.
“으으.”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네요.”
지평선까지 펼쳐진 모래사장 지구의 사막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았다.
작열하는 태양 탓에 가만히 있어도 뛰어다니는 것처럼 진이 빠졌다.
“이런 것도 없이 저길 들어갈 생각을 했다니 대단하군.”
김재현이 자신의 손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물을 보면서 말했다.
“대단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지. 우린 2년 동안 헛짓거리를 한 거야.”
박종민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대현공략의 헌터들은 제단의 힘도 없이 사막을 뒤지고 다녔다.
중간에 오아시스도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외부에서 가져온 식수에 의존해야 했고, 그걸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식수를 많이 챙기면 그만큼 무게가 늘어나서 이동 속도가 줄어들었다. 지구에서 낙타까지 끌고 와서 탐색에 열을 올렸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태원공략에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해결 방법이 있었다.
“그래도 이 지도는 도움이 될 겁니다.”
강주혁은 태원공략에 제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대현공략이 제공한 지도를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동안 대현공략이 사막에서 진행한 정찰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박종민이 힘없이 웃었다.
“가시죠.”
강주혁은 앞장서서 걸었다. 일행은 그를 따라서 사막에 첫발을 내딛었다.
합동 공략팀의 분위기는 사막보다도 삭막했다. 다들 속에 칼을 한 자루씩 품고 있으니 좋을 수가 없었다.
강주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 건 마석 매장지를 발견한 직후가 될 테니까. 그전까지는 강주혁을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인다.
“재현아.”
하지만 강주혁과 달리 박종민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왜?”
“태현공략에는 이렇게 아리따운 헌터님들이 계시는데 우리는 왜 칙칙한 아저씨들밖에 없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인사권은 너희 아버지한테 있잖아.”
“장하민 대리님이라 하셨죠?”
박종민이 장하민에게 말을 붙였다.
나이도 많고 차분한 인상의 구자연보다는 장하민이 좀 더 만만해 보였나 보다.
“대현공략으로 넘어올 생각 없어요?”
“음…… 가면 뭐 해주실 건데요?”
발랄한 성격의 장하민은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잘생긴 팀장과 일할 수 있는 기회?”
“그게 TF팀을 말하는 건 아니죠?”
“맞아요. 정확히 TF팀을 말하는 거예요.”
장하민은 강주혁과 박종민을 번갈아 가면서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거절할게요.”
그 모습을 보고 김재현이 킬킬거리면서 박종민을 비웃었다.
“요즘 공략 3부는 좀 어때요?”
강주혁은 가까이에 있는 최석도에게 말을 붙였다.
입사 초기 강주혁과 대련을 하면서 영약을 썼다가 들켜서 수모를 당했다. 그 후로 순탄치 않은 회사 생활을 했지만,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결국은 살아남았다.
회사를 대표하는 헌터로 합동 공략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상이 꽤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근성 하나는 인정할만했다.
“별 탈 없이 잘 굴러갑니다.”
최석도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여전히 강주혁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린 강주혁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자신이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대와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저기 좀 봐요!”
그때, 구자연 팀장이 외쳤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새까만 어둠이 일행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워낙 빠르고 범위도 넓어서 피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모래 폭풍이에요.”
일행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젠장, 땅에 파묻힐 것 같은데.”
“어떡하죠?”
일행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구자연, 곽도운, 이성일, 김한수는 베테랑 소리를 들을 법한 나이인데도 그랬다.
웨이포인트의 발달로 인해 장기 공략이 불필요해지면서 헌터의 업무가 몬스터와의 전투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었다. 대도시의 전철 수준으로 빽빽한 웨이포인트를 갖춘 광야에서는 특히나 그랬다.
던전에서 악천후나 자연재해를 만나면 공략을 다른 날로 미룰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대처법을 익힐 기회 역시 줄어든다.
아마 합동 공략팀의 베테랑 헌터들도 모래폭풍을 경험하는 건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저토록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달랐다.
“첫 번째 제단에서 받은 힘을 사용하면 됩니다.”
강주혁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제단의 힘이요?”
“바람의 힘을 주변에 일으키는 거죠. 그냥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하면 돼요.”
“아! 눈보라를 밀어낼 때처럼 하면 되겠네요.”
강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험자이기 때문에 이해가 빨랐다.
“폭풍 오기 전에 연습 좀 해보죠. 하민 씨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요.”
“네! 팀장님!”
일행은 강주혁과 장하민의 도움을 받아 바람의 힘을 몇 차례 사용하면서 감을 익혔다.
“로프 꺼내서 묶어요.”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로프로 서로를 이었다. 그 사이에 모래폭풍은 일행의 코앞까지 닥쳐왔다.
“다들 시작해요.”
일행은 곧장 바람의 힘을 전개했다.
“옵니다!”
모래폭풍은 순식간에 일행을 집어삼켰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콰콰콰!
맹렬한 폭풍 속에서 태풍의 핵처럼 텅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 속으로는 한 톨의 모래도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바람의 막 밖에서는 모래가 빠르게 쌓여갔다.
“계속해서 움직여요! 가만히 있으면 모래 속에 묻혀요!”
강주혁은 내공을 담아서 외쳤다. 바람 소리가 너무 강해서 그냥 목소리는 전달이 안 될 것이다.
“네! 팀장님!”
잠시 후, 답변이 들려왔다. 강주혁은 로프를 끌어당기면서 일행을 이끌었다.
일행은 강주혁을 따라서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으아아악!”
그때, 일행의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모래 속에 뭔가가 있어요!”
강주혁은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나 일행의 실력을 확인해 볼 겸 해결책을 곧바로 내놓지 않았다.
“반격해요!”
“제기랄! 공격이 안 통해!”
“마법! 마법을 써!”
“너무 빠릅니다!”
일행은 소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강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박종민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는 헌터들을 셋이나 데려와서 잠시 걱정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상황 대처 능력을 보니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촤르르.
강주혁은 자신을 노리는 살기를 느끼자마자 손에서 물을 생성해냈다. 그리고 그걸 검에 끼얹었다.
칼날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바닥의 모래를 엉겨 붙게 만들었다.
크아아!
모래폭풍 속에서 악귀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모래로 이루어진, 그래서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악령, <샌드 레이스>였다.
서걱!
하지만 축축하게 젖어 있는 강주혁의 검은 샌드 레이스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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