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안 궁금하십니까?
강주혁이 말한 대현공략의 공략 불가 지역이란 <용의 길>에서 세 번째 제단이 위치한 사막이다. 두 번째 제단까지 공략한 태원공략 입장에서는 세 번째 제단이 절실했다.
그러나 대현공략은 그게 태원공략이 발견한 두 개의 마석 매장지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팔지 않았다.
“음…….”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늘어놓던 박종민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인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시네요.”
김재현도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었다.
“공략 불가 지역이라고 하면 사막을 말씀하시는 거죠?”
박종민이 물었다.
“네. 팀장님.”
“거기에 뭐가 있는 건가요?”
강주혁은 대답을 하는 대신 빙그레 웃어 보였다.
“뭐긴 뭐야. 보나마나 마석 매장지겠지.”
김재현이 강주혁을 대신해서 말했다.
강주혁이 <용의 길>을 공표한 것은 2년 전 태원공략에서 있었던 임원회의 때였다.
그날, 신태원 회장은 강주혁의 제안에 따라 비밀 엄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태원공략 못지않은 정보력을 갖춘 경쟁 기업들이 그 비밀을 캐지 못했을 리가 없다.
“맞습니다.”
강주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더 이상 제단이 있는 지역들을 구매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거기를 태원이랑 합동으로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박종민과 김재현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본인들도 선뜻 판단이 안 서는 것 같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강 팀장님은 이 안건에 대해서 전권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사장님께 건의를 드려볼 수는 있습니다. 애초에 그 마석 매장지 프로젝트를 계획한 사람이 저거든요.”
“진짜요?”
태원공략이 연달아 대량의 마석 매장지를 발견했다는 건 업계 전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발견으로 태원공략이 업계 1위로 발돋움했으니까.
그리고 강주혁이 마석 매장지를 발견한 공략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전체가 강주혁에 의해서 시작된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네. 팀장님.”
“싸움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다른 쪽도 잘 하시는군요. 근데 그거랑 우리 구역에 있는 마석 매장지가 무슨 상관인가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합동공략을 하게 요청하신다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박종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합동공략으로 마석 매장지를 발견할 경우, 태원공략과 그 결실을 나눠 가져야 한다.
마석 매장지의 값어치는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조 단위를 넘길 때도 많다. 그걸 다른 회사랑 나눠 가지는 건 대현 입장에서 너무 뼈아픈 선택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박종민이 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대현공략이 마석 매장지 발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태원공략에게 그 해결책이 있다는 건 보장할 수 있습니다.”
대현공략 역시 공략 불가 지역에 마석 매장지가 있을 거라고 추측은 하고 있었다.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헌터들을 투입했으나 광활한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돌아오기 일쑤였다.
2년 동안 사막 주변 지역을 개척한 덕분에 사막이 어디서 끝나는지는 확인했으나 사막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한 마석 매장지를 찾는 일은 요원했다.
이쯤 되면 자기들끼리는 마석 매장지를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 것이다.
“우리가 실패했다는 얘기가 거기까지 퍼졌군요.”
박종민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리죠. 하지만 대현공략의 헌터들이 못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태원공략에게 있죠.”
“뭔가가 있기는 한 모양이군요.”
박종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강주혁은 박종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헌터 일에 대한 압박감과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은연중에 내비치는 말들만 귀담아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헌터 일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후계자로서의 여러 책무 때문에 힘들어하는 쪽일 것이다.
대현그룹은 장자승계의 원칙을 따른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그렇지 않든 장자라면 무조건 가업을 이어야 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골육상쟁해야 하는 로열패밀리가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을 것이다.
“제가 마석 매장지 발견으로 받은 금액이 수십억 원입니다. 저랑 함께한 직원들도 그 정도는 받았죠. 직원들에게 그 정도를 줄 수 있을 정도면 회사가 벌어들인 돈도 어마어마하겠죠.”
박종민이 돈이 아쉬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실적은 아쉬울 것이다.
공략회사에 뿌리를 둔 그룹인 만큼 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헌터들이 숙이고 들어갈 만한 강자가 되어야 한다.
헌터가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방법은 대련과 실적뿐이다. 대련은 리스크가 크니 남은 건 실적뿐.
박종민이 받는 실적 압박은 일반 직원들보다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구미가 당기기는 하네요.”
박종민이 웃음을 지었다.
“이 프로젝트를 계획한 사람으로서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혹시 제 제안이 마음에 드시면 공식적으로 회사에 연락을 주십시오.”
“사장님께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강주혁이 씩 웃으면서 잔을 들었다. 세 사람은 다시 한번 건배를 했다.
* * *
“다녀왔습니다!”
강주혁과 헤어진 박종민은 집으로 곧장 들어왔다.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대현그룹의 박 씨 일가는 삼대가 저택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늦었구나.”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박종근이 말했다. 아버지도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박종민은 할아버지의 굳은 얼굴을 보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태원공략의 강주혁 팀장이랑 뒤풀이를 하고 왔어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잠깐 앉거라.”
박종민은 소파에 앉았다.
“오늘 공략은 어땠느냐?”
박종권 사장이 아들에게 물었다.
“강주혁 팀장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더군요. TF팀이 하루 종일 결려서도 못 잡은 히드라를 혼자서 5분 만에 잡아내더군요.”
아들의 답변에 박종권은 아버지 박종근 회장을 바라봤다. 박종근은 눈을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종민아.”
“네.”
“지금부터 이 할아비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박종근 회장은 강주혁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산마존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5인은 절대 그에 대해서 발설하지 않기로 정부와 약속했다. 실제로 박종근은 그동안 가족들에게조차 경산마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주혁이 나타났으니 더 이상 과거의 일만으로 묻어놓을 수는 없었다.
“신태원 회장님이 최강이 아니었군요.”
박종민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들 중에서는 최강이었지만 경산마존 앞에서는 신태원이나 다른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압도적인 강함이었지.”
“강주혁 팀장이 그렇게 강한 것도 좀 이해가 가네요. 솔직히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종민아.”
“네.”
“네가 본 강주혁은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
강주혁의 실력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를 물었기에 잠시 답변을 고민했다.
“고작 두 번 본 걸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실력이 뛰어난데도 굉장히 겸손하더군요. 물론, 제 앞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음…….”
“술자리까지 가졌으면 얘기가 길어졌을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하더냐?”
“주로 일 얘기였죠. 개인적인 얘기는 전혀 안 했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워커홀릭 같았습니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느냐?”
“아, 합동공략을 하자는 제안을 하기는 했습니다.”
“합동공략?”
“네. 공략 불가 지역에 있는 마석 매장지를 같이 공략하자고 했습니다. 자기네들한테 방법이 있다고 하더군요.”
“음…….”
박종근은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따라 할아버지의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종민아.”
“네.”
“강주혁을 이길 수 있겠느냐?”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 할아버지에게 강주혁의 혈통에 관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이 말을 하는 게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이기지 못한 사람의 손자라는 이유가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박종근의 시선이 아들에게 향했다.
“일단, 태원 측에 얘기해서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
“네.”
“종민아.”
“네.”
“너한테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해야겠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평소와 같지 않았다.
“네. 말씀하세요.”
“강주혁과 같이 마석 매장지를 찾으러 가거라. 그리고 마석 매장지를 찾은 후에 그놈을 죽여라. 쓸 만한 사람을 붙여주마."
"네?
“아버지!”
박종민뿐만이 아니라 박종근까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박종근의 굳은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직 그 녀석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놈이 조부의 검술을 물려받았다는 건 알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너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오늘 공략 때 나도 그곳에 있었다. 그놈이 마지막에 쓴 기술은 분명 경산마존의 것이야.”
“검술을 물려받은 게 죽어야 하는 이유는 아니잖아요.”
“경산마존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검술 탓으로 돌렸다. 그 검술 때문에 자신이 미쳤었다고 했다. 강주혁이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
박종민은 할아버지의 눈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집착과 광기를 읽었다. 평생토록 할아버지가 올곧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믿어왔던 박종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 기억이기에 할아버지가 저토록 치를 떠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강주혁이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썩 괜찮은 녀석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강주혁이 가진 힘이지. 그 힘의 원래 주인은 자신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힘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
“강주혁 팀장이 그 힘을 다스릴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친구가 자기 할아버지처럼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 강주혁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제일가는 헌터 열 명이 동시에 덤비고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던 사람이다.”
박종민은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라는 할아버지가 손끝을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다섯 명이 죽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지. 그자는 벌을 받지도 않았다. 벌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강주혁은 지금도 히드라를 5분 안에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나중에는 그보다 더 강해지겠지. 그때는 어떻게 막을 셈이냐?”
박종민은 할아버지가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반박을 하지 못했다. 반박을 해도 들을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박종민은 아버지를 슬쩍 봤다. 아버지도 딱히 할아버지에게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태원공략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박종민이 어쩔 수 없이 핑계를 댔다.
“걱정 마라. 그쪽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일을 진행할 거니까. 이건 헌터 업계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위한 일이다.”
* * *
슉! 슉!
권대호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면서 날아왔다. 강주혁은 그것들을 피하면서 마주 주먹을 날렸다. 권대호는 주먹을 피하면서도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권대호에게 권법을 배운지 2년, 강주혁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권사와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합동공략을 제안했다고?”
“네. 아마 하자고 할 겁니다.”
“너도 참석할 생각이냐?”
“당연히 그래야죠.”
두 사람은 싸우면서도 대화를 나눴다. 권대호가 갑자기 주먹을 멈췄다.
“위험할 수도 있다.”
“어째서 그렇죠?”
“다 알면서 뭘 또 묻는 게냐?”
“스승님 생각이랑 제 생각이랑 다를 수도 있잖습니까.”
“박종근은 심약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느끼는 공포를 과장하기 마련이지.”
“제가 단지 경산마존의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저를 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 친구는 네 할아버지랑 싸운 후 몇 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신경이 쇠약해졌었다. 자기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친우가 눈앞에서 풍선처럼 터져버렸거든.”
“……그랬군요.”
“그 친구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있고, 네가 가진 힘에 대한 공포심일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거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불구덩이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이냐?”
“안 궁금하십니까?”
“뭐가?”
“제가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요?”
강주혁이 할아버지를 계승하는 동시에 할아버지를 뛰어넘기를 바랐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살의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는 할아버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강주혁은 그 결과를 박종근과 세상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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