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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15화 (115/202)

115화 하겠습니다

“으아아아!”

신대성이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면서 책상을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200㎏이 넘는 원목 책상이 종이상자처럼 손쉽게 바닥에서 떨어져 나왔다.

신대성은 그걸 벽을 향해 집어던졌다.

쾅!

책상이 책장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책장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꽂혀 있던 책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서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비서는 바로 옆으로 책상이 스쳐 갔는데도 부동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잘못한 거라고는 안 좋은 소식을 전한 것밖에 없지만 일단 고개를 숙인 채 용서를 구했다.

“후.”

신대성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심호흡을 했다. 그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붉게 충혈이 된 두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신대성은 사신무극검 습득의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폐관수련을 하는 동안 오른팔인 양준기가 죽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주혁에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강주혁을 건드렸다가 역으로 당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칩거 중이라서 소식도 늦게 접했다. 칩거 중만 아니었다면 양준기가 잡혀 들어갔을 때 손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준기는 이미 무덤에 들어간 후였고 신대성은 양준기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쓸모없는 새끼.”

신대성은 불필요한 행동으로 명을 재촉한 양준기를 저주했다. 수십 년을 함께 했지만 애도의 마음은 전혀 없었다.

양준기는 볼 때마다 아부해댔지만 신대성에게 그는 그저 유능한 부하에 지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우정이나 의리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신대성은 주화입마를 다스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기 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 중 상당수를 양준기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룹의 핵심인 태원공략에서 신대성에게 충성할 사람들을 모으고 길러내는 것 역시 양준기의 일이었다. 그걸 대신해 줄 사람이 없으면 신대성이 회장이 되었을 때 공략의 헌터들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강주혁한테 죽은 거, 확실해?”

신대성이 짜증스럽게 물었다.

“네. 확실합니다.”

벌써 세 번째 같은 질문. 하지만 비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믿겨지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강주혁이 대단한 놈이라지만 어떻게 팀장이 전무를 죽을 수 있지? 싸우는 거 본 사람 없어?”

“죄송합니다.”

신대성이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비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신대성은 못마땅했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죄도 없는 비서에게 화를 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대책이 필요할 때다.

“태양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신대성은 자신의 장성한 장남을 찾았다.

장남인 신태양이 태원공략에 있다면 주인을 잃은 신대성의 세력들에게 구심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케냐에 있습니다.”

“빌어먹을, 도대체 거기에서 뭐 하는 거야?”

미국에서 아이비리그와 거대 공략회사로 이어지는 엘리트코스를 착실하게 밟아나가던 신태양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 오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고 연락도 잘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태양이가 저한테는 말을 아껴서…….”

“넌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정말 죄송합니다.”

“가서 그 망할 블랙 헌터 새끼나 데려와.”

“알겠습…… 윽!”

서재를 나가려던 비서가 갑자기 선 채로 경련을 일으켰다. 얼굴을 기이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섬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풀려버린 두 눈이 멋대로 돌아갔다.

“뭐야? 왜 그래?”

신대성은 침착하게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가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내려놓았다.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부회장님. 아니, 이제 전 부회장님이라고 해야겠군요.”

비서의 입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가 서재 전체를 얼려버릴 것 같은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2년 전, 단골식당에서 비밀리에 회동했던 블랙 헌터였다.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겁니까?”

신대성이 노기를 드러냈다. 자신이 찾자마자 모습을 드러냈다. 감시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2년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군요. 저는 제 사도가 보고 들은 걸 언제든지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 내 비서에게 수작질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만남을 위한 번거로운 절차들을 생략할 수 있어서 좋지 않습니까?”

비서가 건방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대성은 당장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어차피 검을 휘둘러봤자 죽이고 싶은 인간 대신 애꿎은 비서만 죽을 것이다.

“강주혁 때문에 저를 찾으신 줄로 압니다.”

“던전에 있는 당신 부하들한테 강주혁을 손봐달라고 하십시오.”

던전을 떠돌고 있는 부랑자들 중에 잡범들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보다 더 강하고 위험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공략회사의 중진들조차 두려움을 느낄 만한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존재는 그들에게 아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랬다가는 회장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텐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요.”

신대성의 엄포에 상대는 조소를 흘렸다. 신대성은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이윽고 비서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입에는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 *

다음 날.

“강주혁 팀장님, 정석 씨가 팔 굽혔습니다.”

이경호가 강주혁에게 고자질을 했다. 윤정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똑바로 해요. 한 시간 추가하기 전에.”

강주혁이 자기 자리에서 서류 작업을 하면서 말했다.

“네! 팀장님!”

윤정석이 박력 있게 외쳤다. 이경호를 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윤정석과 이경호는 사무실 한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든 채 벌을 서고 있었다.

쪽팔리기는 하지만 각성자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강주혁은 그 위에다가 자신의 검들 중 가장 무거운 데몬의 흑검을 올려놓았다.

‘너 때문에 시간이 늘어나는 건 사양이다.’

이경호의 뺨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윤정석과 무게를 분담하고 있는데도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떻게 강주혁이 이런 검을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건 검이 아니라 바윗덩어리였다.

‘나쁜 새끼, 손잡이 쪽이면 완전히 꿀 빠는 거잖아.’

윤정석은 이경호를 보면서 이를 갈았다. 손잡이 쪽을 들고 있는 이경호보다 두꺼운 칼날 쪽을 들고 있는 윤정석 쪽이 더 힘들었다.

‘이제 슬슬 위험해질 타이밍인가.’

잠시 후,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 둘은 모르겠지만 검 속에 잠들어 있는 악마가 두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강주혁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후 마검은 그에게 완전히 굴복했다. 성석이 박혀 있는 칼집에 꽂아놓지 않더라도 감히 강주혁의 정신을 침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렇게 다른 사람 근처에 두면 예전 버릇이 나오곤 했다. 회귀 전, 오랫동안 지켜봐 왔기 때문에 이경호가 의리 빼면 시체라는 걸 안다.

반쯤 장난이라지만 이경호가 윤정석을 팔아넘긴(?) 걸 보면 마검이 두 사람을 이간질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어나요.”

강주혁은 두 사람이 네 팔로 간신히 들었던 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개인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강주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 아닙니다. 팀장님.”

“하기 싫다고 했으면 안 시켰을 거예요.”

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웃었다.

“그 말을 직접 하는 건 어렵죠?”

강주혁이 빙그레 웃었다.

“……네. 팀장님.”

“이해합니다. 나도 신입사원 때는 그랬어요.”

강주혁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애초에 상사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대련은 오늘까지만 하기로 하죠.”

“안 됩니다! 팀장님!”

강주혁은 윤정석의 말을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싫다는 사람 붙잡고 가르치는 것도 안 내키네요.”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윤정석은 다시 무릎에 꿇고 강주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기 입으로 제자가 되겠다고 한 만큼 대련이 절실할 것이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경호도 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 역시 강주혁이 주는 가르침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으이그, 잘해 줄 때 알아서 잘 좀 하지.”

안다정이 탕비실로 가는 길에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갔다.

“좋아요. 그렇게 원한다면 어쩔 수 없군요.”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거짓말한 건 괘씸했지만 한창 놀고 싶은 나이니까 이해는 갔다. 안 그래도 너무 심하게 굴렸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단, 연습하기 싫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줘요. 그 정도 배짱도 없는 사람을 가르치기 싫으니까.”

“네! 팀장님!”

두 사람은 씩씩하게 답했다.

“주혁아.”

그때, 부장실 문이 열리더니 유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부장님.”

“사장님이 부르신다. 올라가 봐.”

“네. 부장님. 지금 가겠습니다.”

강주혁은 곧장 사무실을 떠났다.

대개 사장실에서 호출이 오면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주혁이 사장실로 간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위상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후 강주혁은 사장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니까.

사장실.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이윤철이 환한 얼굴로 강주혁을 맞이했다.

“차 좀 준비해 주게.”

“네. 사장님.”

비서가 차를 가져다주었다.

“임재경 이사가 한번 마셔보라면서 가져다준 차인데 어떤지 모르겠군?”

“잘은 모르지만 향이 좋네요.”

강주혁은 빙그레 웃었다.

임재경이 어울리지 않게 다도에 조예가 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입에 맞다니 다행이군.”

강주혁은 이윤철이 용건을 꺼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양준기 전무 일을 잘 처리해 줘서 고맙네.”

강주혁의 조언 덕분에 양준기의 범죄를 밝혀낼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를 처단할 수 있었다.

양준기의 몰락은 강주혁에게서 시작되어서 강주혁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네 덕분에 회사가 좀 더 나아졌네.”

“지금은 오히려 좀 힘드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반대파라고 하더라도 양준기가 회사 업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의 공백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종양을 도려내면 당장에는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아나네. 지금은 잠시 아픔을 견딜 때지. 자네 팀이나 공략 1부도 힘들지 않나?”

“아직은 할 만합니다.”

양준영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공략 1팀은 유덕현이 직접 컨트롤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경력직 공고를 올렸으니까 조만간 인원이 보충될 걸세.”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윤철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 공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귀찮은 일을 떠맡겨야 할 것 같군.”

“귀찮을 일이요?”

“대현공략에서 공식적으로 지원 요청이 왔네. 보스를 잡는데 자네 힘을 빌리고 싶다고 하더군.”

대현공략 정도 되는 회사면 자기 영역에 있는 보스를 처리하기 위해서 굳이 다른 회사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다. 아무리 강한 보스라도 임원들이 총출동하면 잡히기 마련이니까.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제가 정말로 양준기 전무를 꺾은 건지 확인하고 싶어서군요.”

이윤철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걱정이야. 경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네.”

적당히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비정상적으로 잘하면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강주혁은 이미 정상의 범주를 넘어버린 지 오래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회사의 대표로서 직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네. 자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거절하겠네.”

“양준기 전무 체포 작전 때 대현의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의도가 불손한 지원 요청까지 받아줄 필요는 없네. 명분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게.”

강주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현그룹의 회장인 강원설귀 박종근. 그 역시 강주혁의 할아버지와 싸웠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대현그룹 역시 태원처럼 공략회사를 바탕으로 대기업이 된 케이스. 회장인 박종근도 공략업계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조금 밀리고 있기는 해도 대현그룹은 태원그룹과 같은 체급에 속한다. 그 그룹의 총수라면 강주혁이 누구의 손자인지 알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놈인지 확인해 보려는 거군.’

우선, 강주혁이 정말로 경산마존의 손자다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관심을 끊을 테고 그렇다면 강주혁을 경계할 것이다. 강주혁은 둘 다 원하지 않았다.

‘이미 경계를 피하기에는 늦었다.’

강주혁은 대현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힘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 성격상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게 낫겠지.’

할아버지의 힘을 계승하되 할아버지처럼 미치지 않는 것, 그것이 강주혁의 목표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목표이기도 했고.

강주혁은 그것을 신태원 못지않은 강자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어쩌면 박종근이 신태원과 신대성 부자를 무너뜨리는 데에 힘을 보내줄지도 모른다. 막역한 사이이긴 하나 동시에 경쟁 관계이기도 하니까.

“하겠습니다.”

생각을 끝낸 강주혁이 이윤철에게 답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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