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꼭 잡아야죠
안다정, 공허진과 함께 영정에 절을 한 강주혁은 이어서 유족들에게 맞절을 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망인 한현숙이 초췌한 얼굴로 인사했다.
실제 나이는 중년일 텐데 새하얀 머리 탓에 거의 노인처럼 보였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아버지를 쏙 빼닮은 것 같았다.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한현숙은 아들을 남겨 놓고 일행을 테이블로 이끌었다. 장례식장은 방문객이 없어서 황량한 느낌마저 줬다.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지 몇 년이 지난 사람의 장례식인지라 찾아올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진유철은 세상에서 잊힌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양준기의 장례식에는 이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이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회사 생활을 잘 했나 보네요.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한현숙은 힘없이 웃어보였다. 다들 할 말이 없어서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저희는 진유철 과장님과 회사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에요.”
안다정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 그렇군요.”
아마 한현숙도 알았을 것이다. 7년 전에 실종된 사람과 회사 생활을 함께 했다고 보기에는 세 사람은 너무 젊었으니까.
“유덕현 부장님을 대신해서 왔어요. 부장님이 꼭 가달라고 해서요.”
“아, 덕현 씨. 그사이에 부장이 되었군요.”
한현숙은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예전에도 가끔 찾아와서 도와주곤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까지 마음을 써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진유철이 달아난 후 유덕현은 종종 그의 가족들을 찾았었다. 본인 형편이 어려운 와중에도 아내의 동의를 받아 진유철네 가족을 경제적으로 돕기도 했었다.
하지만 양준기가 따로 가족들을 챙긴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발걸음을 끊었다고 했다.
“출장을 가셔서 직접 오시진 못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강주혁이 답했다.
사실, 유덕현은 지금 장례식장 주차장에 있었다. 같이 가자고 해놓고는 입구까지 와서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진유철을 죽인 장본인으로서 가족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러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부장님께 진유철 과장님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술만 드시면 과장님 얘기를 하시거든요. 가장 존경하는 헌터라고.”
한현숙의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걸렸다.
“그런 양반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현숙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강주혁은 안다정과 공허진을 슬쩍 봤다. 두 사람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철 과장님이 원해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한현숙이 좀 진정되자 강주혁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전부 양준기 전무가 시킨 일입니다.”
“양 전무님이요?”
“네. 양준기 전무가 오랫동안 회사의 마석을 빼돌려왔습니다. 물론, 본인이 직접 한 게 아니라 아랫사람들을 시켰죠. 진유철 과장님도 그들 중 한 명이었고요.”
“전무님은 우릴 도와주신 분인데…….”
한현숙은 당혹스러워했다. 오랫동안 양준기에게 경제적인 원조를 받아왔으니 믿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선의로 그랬던 건 아닙니다.”
“그랬군요.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다달이 돈을 보내주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계속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 걸 따지긴 어려웠지만요. 양준기 전무님은 어떻게 된 건가요?”
“죽었습니다. 그동안의 범죄가 드러나자 던전으로 도주했다가 헌터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설마 그이도?”
“네. 현장에서 양준기 전무랑 같이 있다가 변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된 거 아닌가요? 그냥 투항하지 왜 그랬을까요?”
강주혁은 유덕현이 믿고 있는 것처럼 진유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정말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양준기의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진유철이 역시 음과 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주혁은 아들이 충분히 멀리 떨어져있다는 걸 확인한 후 답했다.
“실은 진유철 과장님이 던전에 머물면서 양준기 전무와 지속적으로 접선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양준기 전무의 명령으로 추가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도 나왔고요.”
“아…….”
한현숙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진유철 과장님이 숨어 지내던 동굴에서 이런 게 나왔습니다.”
강주혁은 유덕현에게 받은 사진들을 한현숙에게 전해줬다.
“이건? 이건 우리 애랑 저잖아요.”
“양준기 전무가 사람을 시켜서 몰래 찍은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죠?”
“진유철 과장님을 협박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가족들을 볼모로 잡아놓고 과장님에게 해서는 안 될 짓들을 시킨 것 같습니다.”
“아니, 무슨 회사가 이 모양이에요? 이건 조직폭력배나 다름없잖아요.”
한현숙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현숙에게 사과를 한 건 안다정이었다. 그녀가 사과하자 한현숙이 오히려 당황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흥분해서…… 여러분이 그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정말 죄송합니다.”
한현숙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일행에게 고개를 숙였다. 흥분이 가라앉은 걸 확인한 강주혁이 나머지 유품을 건넸다.
“이건 진유철 과장님이 던전에서 머무는 동안 직접 쓰신 편지들입니다. 사진과 같이 있던 것들입니다.”
형식은 편지지만 편지지가 아닌 노트에다가 적은 것들이었다. 종이를 아끼기 위해서인지 글자를 여백에까지 빽빽하게 써놓았다.
평소에 가족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써놓았는데 그런 노트가 열 권이 넘게 있었다.
첫 번째 편지를 읽던 한현숙은 다 보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꼈다.
“과장님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범죄에 저지르셨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만, 그 범죄들 때문에 감옥에서 평생 있어야 할 바에야 그냥 세상을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한현숙은 울먹이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세 사람은 그 후 몇 시간 동안 유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자정 무렵에야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보니 유덕현이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끝났어?”
“네. 부장님.”
“고맙다.”
“아닙니다.”
“형수님은 좀 어떠셔?”
“잘 견디고 계세요.”
“내가 앞으로 도와줄 거라는 얘기는 전했고?”
“네, 부장님.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제 명함도 드리고요.”
“고맙다. 슬슬 가자. 니들도 쉬어야지.”
“네, 부장님.”
네 사람은 유덕현의 차를 타고 장례식장을 떠났다.
분위기 탓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꼭 잡자.”
잠시 신호등에 걸려서 차가 멈췄을 때 유덕현이 말했다. 세 사람이 묻는 얼굴로 쳐다보자 유덕현이 덧붙였다.
“신대성.”
양준기를 시켜서 이 모든 일을 벌인 인간이 여전히 버젓이 살아있었다. 그 인간을 끌어내려서 죗값을 치르게 해야만 했다.
“네, 부장님. 꼭 잡아야죠.”
강주혁이 답했다.
* * *
양준기 사건이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났다. 회사는 양준기의 흔적을 빠르게 지워나갔다.
불미스러운 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도 평소대로 돌아왔다.
“건배.”
짠!
네 명의 남녀가 잔을 맞부딪혔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술을 들이켰다.
“캬!”
“여기 맥주 맛도 괜찮네요.”
3부 2팀의 신입사원인 김아리가 말했다.
“회사 근처에 이렇게 운치 있는 술집이 있는 줄 몰랐네요. 큰 술집들밖에 없어서 별로였는데.”
2부 3팀의 신입사원인 채윤영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덧붙였다. 테이블이 딱 여덟 개밖에 없는 아담한 사이즈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무래도 큰 회사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보니 주변에 회식용 대형술집들밖에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술잔을 기울일 만한 아지트 같은 술집을 찾기는 어려웠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어요.”
채윤영과 김아리가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그건 좀 말리고 싶은데요. 우리 팀장님이 여기 단골이거든요.”
윤정석이 씩 웃었다. 이 술집을 고른 건 윤정석과 이경호였다. 강주혁이 훈련 후에 자주 데리고 와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요? 그럼 더더욱 자주 와야겠네요.”
김아리는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회사 밖에서 상사를 만나는 것만큼 불편한 일도 없다.
신입사원이 술집에서 할 만한 얘기라고 해봤자 회사랑 상사 욕밖에 없다. 아무리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해도 눈치가 보인다.
“왜요?”
“잘 생겼잖아요.”
“…….”
김아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윤정석과 이경호는 할 말을 잃었다.
강주혁의 특징 중 그들이 주목하는 건 강주혁의 강함과 사악함이지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두 사람에게 있어 강주혁은 대련을 빌미로 자신들을 구타하고 맛있는 밥과 술을 사주는, 그렇게 해서 자신들을 조련하는 악마였으니까.
“저도 팀장님 보고 싶어요. 우연히 만나면 술이라도 한잔 사주시지 않을까요?”
채윤영도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한심한 눈으로 보지 마요. 남자들이 모이면 여자 얘기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모이면 남자 얘기해요.”
윤정석과 이경호가 뚱한 얼굴을 하고 있자 김아리가 타박을 줬다.
“강 팀장님이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나요?”
“당연하죠.”
“잘 생겨서?”
“그렇죠.”
“능력도 좋고.”
“돈도 많고.”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맞장구를 치면서 깔깔거렸다.
“근데 강 팀장님 진짜 솔로예요?”
“본인 입으로도 그랬고 우리가 추측하기로 그래요.”
“매일 대련하자는 거 보면 분명 솔로일 거예요.”
“맞아요. 여친 있는데도 퇴근하고 매일 훈련장 가면 진짜 욕먹지.”
“주말에도 회사 나와서 같이 훈련하자고 그래요. 아주 미치겠어요.”
윤정석과 이경호가 넌더리를 냈다.
“오늘도 겨우 둘러대고 빠져나왔네요.”
“정석 씨는 뭐라고 했어요?”
“친구 아버지 상 당하셨다고 했어요. 경호 씨는요?”
“엄마 생신이라고 했죠.”
두 사람은 강주혁을 속여먹었다는 생각에 킬킬거렸다.
“강 팀장님 여기 단골이시라면서요.”
“그러다가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걱정 마요. 자주 오시기는 하는데 사장님이랑 친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장님도 우리 못 알아보실 걸요.”
사장은 멀찌감치 떨어진 오픈 키친에서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홀에서 서빙 하는 여직원이 자신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으며 틈틈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갑자기 여기 나타나시는 거 아니에요?”
김아리의 말에 윤정석과 이경호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으나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아는 강주혁은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에이, 설마요.”
“지금쯤 회사 훈련장에서 혼자서 검술 연습하고 계실 걸요.”
윤정석의 말에 이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강 팀장님 좋지 않아요? 개인 시간 할애해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시고.”
“맞아요. 우리 사수 언니도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없으면서 무슨 일 터지면 혼만 내요. 짜증 나.”
채윤영이 툴툴거렸다.
“안 당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윤정석이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이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두 사람도 강주혁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혹독한 트레이닝 덕분에 자신들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도 매일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자들 앞이라서 허세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강주혁이 얼마나 자신들을 혹독하게 대했는지를 잔뜩 부풀려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 팀장님이 그렇게 강해요?”
“말도 마세요. 진짜 손가락 하나 못 댔어요.”
“2대 1인데? 정석 씨랑 경호 씨도 꽤 잘하잖아요.”
연수원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두 사람이었기에 더욱 의외였다.
아무리 팀장과 신입사원 사이에 격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2대 1이면 지더라도 몇 합 정도는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강 팀장님은 사기캐잖아요.”
“손가락은커녕 스친 적도 없어요. 아, 있구나. 팀장님한테 두들겨 맞을 때 스치긴 하네.”
윤정석과 이경호가 자조 어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그 소문 진짜예요?”
“소문이요?”
“강 팀장님이 혼자서 양준기 전무 처리했다는 거요.”
“네. 공략 1부 사람들은 기정사실로 보고 있어요.”
유덕현과 공허진은 진유철을 맡았고, 안다정과 강주혁이 양준기를 추격했다. 안다정은 양준기에게 기습을 당해 싸우지도 못하고 전투 불능에 빠졌다.
결국, 강주혁 혼자서 양준기를 상대했고, 부상 없이 그를 죽이는 데에 성공했다.
이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믿지 못하면서도 당사자들이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특히, 네 사람을 오랫동안 봐온 공략 1부 사람들은 그들 모두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득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주혁이 양준기를 단신으로 해치웠다는 걸 믿었다.
“아무리 강 팀장님이 강하다고 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별호까지 있는 사람인데.”
“아니요. 강 팀장님은 가능합니다.”
“어떻게 알아요?”
“강 팀장님한테 계속 맞다 보면 알 수 있어요.”
“맞아요. 강 팀장님은 할 수 있어요. 이 연남취검 윤정석을 개 패듯이 팰 수 있는 남자에게 불가능은 없어요.”
“…….”
이경호와 윤정석의 궤변에 김아리와 채윤영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 이게 그건가? 스톡홀름 증후군? 아니면 마조히즘 같은 건가?”
“맞아요. 자기 때리는 사람 좋아하는 거.”
김아리가 맞장구를 치자 채윤영이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아니,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겁니까?”
“맞아요. 그 악마 같은 인간을.”
벌컥.
바로 그때, 술집의 문이 활짝 열렸다.
마침 네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가 문 바로 앞이어서 들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어? 정석 씨, 경호 씨?”
강주혁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 닥쳤다.
툭!
두 사람은 들고 있는 술잔을 떨어뜨렸다.
“어서 오세요!”
여직원이 쾌활하게 웃으면서 강주혁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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