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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13화 (113/202)

113화 그저 그래요

“으아아!”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유덕현은 진유철의 검이 자신에게 먼저 닿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몸을 빼거나 방어하는 대신에 공격을 택했다. 등 뒤에 버티고 있는 S급 힐러 공허진을 믿었다.

푹!

“컥!”

유덕현의 검이 진유철의 흉갑과 몸을 꿰뚫었다. 진유철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유덕현의 목을 노리던 진유철의 검은 힘을 잃고 땅으로 고꾸라졌다.

“왜…….”

유덕현은 왜 마지막 순간에 망설였냐고 물으려다 말을 삼켰다. 묻지 않아도 답을 알았으니까.

진유철은 애초에 유덕현을 죽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죽일 것처럼 유덕현을 몰아세웠던 것도 결국 유덕현의 손에 죽기 위함이었다.

“실력이 많이 늘었군.”

진유철은 피 묻은 입으로 힘겹게 말했다.

유덕현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은 사실이나 진유철은 여전히 그에게 높은 벽이었다.

유덕현이 안다정과 강주혁을 먼저 보낸 걸 후회했을 정도로 진유철은 무시무시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공허진의 지속적인 치유가 없었다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허진아.”

“네. 부장님.”

유덕현은 진유철을 치료하려고 했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덕현아.”

하지만 진유철은 손을 들어서 유덕현을 제지했다.

“저랑 함께 가시죠.”

유덕현이 진유철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양준기의 명령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한두 명이 아니지.”

진유철의 고백에 유덕현도 공허진도 움직임을 멈췄다.

짐작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양준기도 몰락했으니 진유철이 던전에서 저지른 짓들도 드러날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양심상 그냥 덮어줄 수는 없었다.

그건 이 던전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 헌터들에 대한 모욕이니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시죠. 허진아.”

“그만, 제발 이대로 가게 해다오.”

진유철이 유덕현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입술이 파리해졌다.

복부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몸에 관통상이 생긴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는 없다.

공허진은 누구 말을 들어야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형님!”

유덕현은 싸우기도 전에 진유철이 죽음을 결심했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여기서 나가봤자 감옥행이다.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진유철은 간절함을 담아서 말했다.

유덕현도 진유철의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겪어 왔는지 알고 있었다.

회사의 마석을 빼돌리다가 걸려서 던전으로 달아나버린 가장. 가족들은 범죄자의 아내, 자식이라는 오명을 듣고 살아야 했다.

당연히 퇴직금도 보상금도 없다. 회사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돌아온 가장이 그동안 저지른 더 큰 범죄로 인해 옥살이를 한다면 가족들의 삶은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른다.

“부, 부탁한다.”

진유철은 이제 말을 하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유덕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뜨거운 눈물을 뺨을 타고 내려 턱 끝에 맺혔다.

“가족…….”

진유철은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유덕현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강주혁은 지난 2년 동안 평범한 각성자라면 20년 넘게 걸렸을 성취를 이뤄냈다.

그 전에도 남들보다 빠르긴 했지만 지난 2년은 아예 차원을 달리했다.

강주혁의 유일한 약점인 내공 부족을 바로잡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약을 주던 권대호도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에 겁을 집어먹고는 영약 섭취를 중단시켰다.

이런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신대성에게 넘겨받은 백호검의 비급을 익혔기 때문이다.

물론, 백호검만으로 그런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백호검을 통해 진정한 무극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4분의 3만으로 이 정도 경지에 올랐는데 현무검까지 익혀서 완전체가 되면 얼마나 강해질지 강주혁도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현존하는 어떤 헌터보다도 강해지리라는 것이다.

강주혁은 자신보다 한 세대나 앞서있는 실력자인 양준기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정신이 좀 드세요?”

강주혁이 준 치유 물약을 마신 안다정이 눈을 떴다.

“야, 양준기는 어떻게 됐어요?”

“제가 잡았습니다.”

안다정은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면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 악!”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인지 안다정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직 내상이 완전히 다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치유 물약을 먹이긴 했지만 워낙 부상이 심해서 완치는 불가능했다.

추가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어떻게 한 거예요?”

“그냥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싸웠죠.”

“다친 곳은 없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강주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안다정의 눈에서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상식을 아득히 초월해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나 보다.

강주혁은 안다정의 그런 반응에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그 역시 처음에는 강해지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그 속도에 주변 사람들이 경계하는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 상태로 가다간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고.

“고마워요.”

하지만 불편했던 감정은 안다정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흩어져 버렸다.

강주혁은 힘없이 웃는 안다정을 보면서 마주 웃었다.

“강 팀장님한테는 빚만 지네요.”

“헌터끼리는 자주 있는 일이잖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강 팀장님한테는 거의 없는 일이죠. 그나저나 이번엔 뭐로 보답하죠? 이제 강 팀장님도 부자잖아요.”

안다정은 진심으로 난감해하는 것 같았다.

“꼭 보답을 해야 합니까?”

“제가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거 잘 알잖아요.”

“나중에 제가 위험해지면 제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강 팀장님한테 그런 날이 오긴 올까요?”

강주혁은 멋쩍은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던전이든, 회사든, 그를 위협할 만한 적들이 빠르게 줄어가고 있었으니까.

현무검만 손에 넣으면 신태원 회장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기분이 어때요?”

강주혁이 대답이 없자 안다정이 화제를 돌렸다.

“기분이요?”

“팀장님을 죽이려고 했던 인간이잖아요.”

강주혁은 양준기의 시체가 있는 곳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주혁은 과정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목적은 신대성의 목을 베는 것이었다.

아무리 전무라고는 해도 강주혁에게는 잔챙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그래요.”

강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좋은 일을 한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안다정은 걱정스레 말했다. 강주혁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염려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강주혁이 살인을 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지는 건 어렵다. 그래서도 안 되고.

“괜찮습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강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주혁아! 안 팀장!”

때마침 유덕현과 공허진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다친 곳은 없어?”

“저는 괜찮은데 안 팀장이 내상을 입었습니다. 공 대리님, 안 팀장님 좀 봐주세요.”

“네! 팀장님!”

공허진은 곧바로 안다정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때, 수풀을 헤치고 한 무리의 헌터들이 나타났다.

야광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두워서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대현공략에서 나왔습니다. 태원공략 분들이신가요?”

포위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온 다른 공략회사 직원들이었다. 공허진이 쏜 신호탄을 보고 온 것이다.

“네. 태원공략 공략 1부의 유덕현 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타깃은 어떻게 되었나요?”

유덕현이 대답하려는 찰나, 한 무리의 헌터들이 추가로 나타났다.

이윤철 사장과 김재후 부사장이 태원공략의 헌터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강주혁 일행이 인사하자 대현공략의 헌터들도 따라서 인사를 했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윤철은 그들에게 목례를 한 후 유덕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친 곳은 없나?”

“네. 사장님. 안다정 팀장이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하고 있습니다.”

“양준기는 어떻게 되었나?”

“저기에 있습니다. 사장님.”

강주혁은 옆구리가 터져나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죽었나?”

“네. 저항이 심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윤철과 김재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적으로는 원수지간이긴 하지만 동시에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을 함께 한 동료이기도 했다.

양준기의 몰락을 기뻐하면서도 그 비참한 최후에 인간적으로 안타까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썼네. 자네들이라면 해낼 줄 알았네.”

제아무리 별호가 있는 전무라도 S급에 준하는 인재들이 넷이나 있는 팀을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희는 한 게 없어요.”

그때, 공허진의 치유를 받고 기운을 차린 안다정이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다들 묻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다정의 말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강 팀장이 혼자 죽인 거예요.”

이제 겨우 과장밖에 안 된, 입사한 지 만 3년도 안 된 팀장이 전무를 죽였다.

그냥 전무도 아니고 별호가 있는 바꿔 말해, 업계 전체에 그 실력을 인정받은 전무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팀장이 일대일로 싸워서 전무를 죽였다고? 그게 말이 돼?”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첫 번째 반응은 이 불가해한 결과를 믿지 않는 것이다.

“사장님이랑 다른 헌터들도 다 봤대.”

“결과만 본 거잖아. 강 팀장 띄어주려고 같이 잡아놓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증인은 예전 1부 3팀 사람들밖에 없잖아.”

강주혁의 활약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태원공략의 사람들조차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4대 1로 싸워서 잡았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긴 했다.

강주혁은 지나치게 빠른 승진 속도와 그걸 가능케 한 실적 때문에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강주혁을 시샘하는 무리는 그가 이룬 업적을 어떤 식으로든 깎아내리거나 곡해하고는 했다.

이번 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론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그럴 이유가 있나? 임시로 예전 멤버들이 뭉치긴 했지만 이제 각자 갈 길 가는 사람들이잖아.”

“맞아.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그럴 이유가 없지.”

“그럼 강 팀장 실력이 이미 전무급이라는 얘기야?”

“…….”

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런 분위기는 포위 작전을 지원했던 대현공략으로 이어졌다.

“헛소리 작작해. 미친놈아. 팀장이 어떻게 전무를 이겨.”

밤에 불려 나와 포위 작전을 도왔던 헌터들이 자신들이 보고 들은 걸 말했다가 사기꾼 취급을 당했다.

“진짜라니까. 그 여자가 왜 자기네들 사장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어.”

“베테랑 팀장도 아니고 2년 반 만에 팀장 달았다면서? 그럼 놈이 30년 경력의 구로쌍장을 죽였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대현공략의 헌터들과 그들의 입을 통해서 태원공략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거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이름이 강주혁이라고?”

<강원설귀(江原雪鬼)>라는 별호를 가진, 전국 10대 고수 중 한 명이자 대현그룹의 회장인 박종근이 비서에게 물었다.

“네. 회장님.”

“그놈이 구로쌍장을 죽였다고?”

“그렇습니다.”

박종근은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강주혁이라는 이름은 그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마석 매장지를 두 개나 찾았느니 데몬을 혼자 잡았느니 하는 소문들이 나돌았으나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헌터 노릇을 수십 년 동안 하다 보면 그 정도 인재는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구로쌍장 양준기 역시 그런 인재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친구가 내공파를 날려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대현공략은 광야에서 태원공략의 담당 지역과 인접한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만큼 합동공략을 할 일도 잦았다. 웨이브 데이 때는 연합 전선을 펼치기도 했고.

박종근 회장도 양준기 전무와 함께 싸운 적이 있었다.

능글맞고 비굴해 보이는 태도 속에 큰 야심을 품고 있는 젊은이였다. 그 야심에 어울리는 실력과 잠재성도 갖추고 있었고.

탐이 나는 인재여서 은근슬쩍 대현으로 넘어올 생각이 없냐고 찔러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준 신대성과 함께 하겠다면서 거절했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었지.”

그때만 해도 신대성은 호부견자라는 소리를 듣던 둔재였다. 천재인 신대길을 쓰러뜨려서 업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박종근은 양준기가 신대성을 따르는 이유가 신대성을 바지사장으로 세워놓고 자신이 실세가 되려는 야심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대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는군.”

박종근은 양준기의 허망한 인생을 생각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강주혁이란 놈에 대해서 좀 알아봤나?”

회장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미리 조사하는 건 비서의 기본이다.

“네. 회장님. 출신지는 서울이지만 어릴 때 경상북도 경산시 인근의 시골 마을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경산이라는 말에 박종근의 표정이 굳어졌다.

경산도 강 씨도 특별할 게 없지만 그 둘을 붙여놓으면 아주 끔찍한 결과물이 나온다.

정부는 경산마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은폐해버렸지만 박종근은 경산마존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5인 중 한 명이었다. 그에게는 알 권리가 있었다.

“왜 내려간 거지?”

“강주혁의 조부가 그곳에서 작은 공략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강주혁의 부친이 가업을 잇기 위해 내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오래된 악몽이 기억의 저편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악몽의 혈통이라면 서른 살의 나이에 별호를 지닌 헌터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강주혁이 17살 때 던전에서 사고가 터져서…….”

비서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박종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종근은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다.

“태원공략이 우리에게 빚이 있지.”

태원공략은 양준기 전무를 잡기 위해 대현공략의 손을 빌렸다.

결국, 양준기를 잡은 건 태원공략이었지만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네. 회장님.”

“이윤철 사장한테 강주혁을 한 번 빌려달라고 해.”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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