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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11화 (111/202)

111화 부장님

“어떻게 광야로 탈출한 거예요? 경찰서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회사로 달려가는 길에 안다정이 유덕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처리했는데 양준기 전무는 그룹 차원에서 캐야할 게 더 있었나봐. 그래서 감사실에서 계속 잡아놓고 있었어.”

“거기서 탈출했다는 거예요?”

“그래. 감사팀에서 사상자가 꽤 나왔대.”

양준기는 태원공략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다. 감사팀 직원들만으로 그를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양준기를 제압할 수 있는 이윤철이나 김재후는 직함이 직함인지라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

“임원이라고 떵떵거리면서 살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맨 정신을 유지하기 어렵겠지.”

감사실 직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강주혁은 양준기가 던전으로 달아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유 부장!”

톨게이트 앞에 있는 별관에 도착하니 임재경 이사가 일행을 맞이했다.

“이사님.”

“이야, 마침 딱 드림팀이네.”

임재경은 몇 년 동안 태원공략에서 가장 유명했던 팀의 멤버들이 같이 나타난 걸 보고는 씩 웃었다.

“같이 한잔하고 있었습니다.”

“치사한 놈들, 다음엔 나도 불러.”

“……네. 이사님.”

“팀원들에게 연락 돌렸지?”

“네. 이사님. 모두 회사로 오는 중입니다.”

유덕현은 하민지 팀장과 1부 1팀 멤버들에게, 강주혁과 안다정은 각자의 팀원들에게 연락을 돌린 상태였다.

“좋아.”

“양준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측 톨게이트를 박살내고 광야로 튀었다. 웨이포인트를 쓸 수 없으니까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마력 억제 수갑>은 없었습니까?”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를 일반인 경찰이나 군인이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범죄자들에게는 마력을 억제하는 힘이 담긴 특수한 수갑을 사용한다. 아마 구속이 결정된 시점부터 양준기에게도 수갑을 채워 놓았을 것이다.

“어떤 새끼가 몰래 풀어준 것 같다.”

유덕현의 질문에 임재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회사에 아직 양준기의 부하들이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없으니까 니들부터 들어가. 나머지 애들은 내가 팀을 짜서 투입할게. 유 부장.”

“네. 이사님.”

“네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레전드 1부 3팀이다. 네가 잘 이끌어. 나머지 애들은 내가 데리고 갈게.”

“감사합니다. 이사님. 준비하자.”

일행은 사물함에 있는 장비를 챙겨서 로비로 돌아왔다.

“이거 받아라.”

임재경이 일행에게 광야의 지도를 건넸다. 지도 위에는 급하게 펜으로 쓴 화살표와 체크 표시가 있었다.

광야의 게이트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화살표가 뻗어져 나가 있었다. 몇몇 화살표는 웨이포인트에서 시작해 게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헌터들 투입 현황이다. 화살표는 먼저 들어간 팀들 수색 방향이고. 양준기가 보법을 펼치더라도 아마 여기 어디쯤에 있을 거야.”

임재경은 두 화살표가 만나는 지역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인원이 부족해서 포위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체크해 놓은 지역들은 아직 공략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니까 되도록 피해가. 아마 양준기도 그쪽으로 가지는 않을 거다. 몬스터에 잡힐 인간은 아니지만 몬스터랑 싸우다 보면 덜미를 잡힐 수 있으니까.”

“이사님, 혹시 다른 회사에 도움을 요청했습니까?”

강주혁이 물었다.

“그래. 도와주겠다고는 했는데 퇴근한 직원들 다시 불러들여서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전까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지.”

다른 회사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다.

당연히 신태원 회장은 이런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는 태원공략 헌터들만으로 일을 수습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윤철은 자신이 질책을 당하는 걸 감수하더라도 지원을 요청하는 걸 택했다. 광야의 광활함을 고려한다면 이쪽이 좀 더 안전하고 확실하니까.

“양준기의 목적지는 어딜까요? 아무 생각 없이 달아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안다정이 말했다.

“보나마나 미개척 지역이겠지.”

광야는 한반도보다 몇 배나 넓은 땅덩어리다. 몬스터가 들끓고, 전기가 없어서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살아가기에 충분한 땅이다.

썬더 엘크처럼 먹을 수 있는 몬스터도 있고, 식용 과일들도 있으니까. 식수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광야는 오래전부터 강력 범죄자들에게 천국으로 여겨졌다.

“부랑자들과 합류할 수도 있겠군요.”

범죄자들이 광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웨이브 데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외부인력이 대거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가 시간과 행정력의 한계로 그들에 대한 꼼꼼한 신원 확인도 어렵다.

평소라면 걸리고도 남을 거짓 이력서와 신분증으로도 톨게이트를 쉽게 뚫을 수 있다. 그렇게 광야에 들어간 후 전투의 혼란을 틈타 전선을 이탈해 버리면 된다. 실종 처리가 된 사람들 중에 나중에 범죄자로 밝혀진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공략회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미개척 지역에서 무리를 짓기도 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생존 확률이 높으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몇 년 후에는 그 무리가 공략회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양준기는 분명 그들에게 합류하려고 할 것이다. 그 정도 실력이면 거기서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미개척 지역으로 빠져버리면 우리도 잡기 어려우니까.”

“지금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다른 팀들에게는 위치만 보고하고, 교전을 피하라고 했는데 너희들이라면 괜찮겠지?”

“문제없습니다. 이사님.”

다른 사람들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강주혁은 시원스레 대답해 버렸다.

“역시 강 팀장이야. 그래도 혼자서 감사팀을 작살낸 인간이니 조심해. 사장님이랑 부사장님도 들어가셨으니까 양준기를 발견하면 조명탄부터 터뜨려.”

“네. 이사님.”

“니들은 어느 쪽으로 갈래?”

임재경은 지도를 들어 보이면서 물었다. 원래는 지휘관이 정해주는 게 정상이지만 아직 헌터들이 투입되지 못한 지역이 많아서 어디를 택하든 비슷했다.

“이쪽은 어떨까요?”

강주혁은 화살표가 없는 지역을 가리켰다.

“이유는?”

“그냥 느낌입니다.”

강주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통해 광야 내에 발견되고도 보고가 되지 않은 히든 피스가 몇 개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곳들이 주로 범죄자들의 은신처로 이용되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들 중에는 양준기와 아주 가까운 인간들도 있었다.

강주혁은 그 히든 피스들 중에 게이트랑 가장 가까운 곳에 가고자 했다. 양준기라면 그곳으로 향했을 것 같았으니까.

“강 팀장의 느낌이라면 믿어볼 만하지.”

임재경은 선뜻 허락했다. 어차피 정보도 부족하고 포위망도 제대로 구축이 안 되어있어서 어딜 가나 똑같다.

“시간 없다. 어서 출발해.”

“네. 이사님.”

* * *

양준기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대인 전투 전문가들인 감사실 직원들과 일대다수로 난투극을 벌였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내공 소모가 컸다. 운기행공을 통해 내공을 끌어올릴 시간이 절실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추격자들에게 덜미를 잡힐 것이다.

양준기는 자기 대신 시간을 끌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이곳에 들렸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어둠 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기로 인해 부랑자 신세가 된 진유철이었다.

양준기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다. 항상 단정하고 꾸며진 모습으로 다닌다.

하지만 며칠 동안 감사실에 갇혀 있었더니 턱이 수염에 뒤덮이고 머리가 푸석푸석해졌다. 옷에서도 냄새가 났다.

“당신이 여기에서 할 일은 끝났습니다.”

양준기는 자신의 불안감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았을 상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양준기는 지쳤고, 진유철은 예전에 비해 성장했다.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의 매일 같이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 그런 생활을 몇 년 동안 계속하다 보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양준기와 진유철의 실력 차이는 이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았다. 양준기가 근소한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정도다. 그 차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이 시간에 여기를 찾다니. 회사에서 아주 쫓겨난 모양이군.”

진유철의 목소리에서 서늘한 웃음기가 묻어났다.

“당신이 웃을 처지는 아닌 것 같군요. 제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당신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스르릉.

양준기의 도발에 진유철이 검을 뽑았다.

“네놈도 바깥세상에서 완전히 끝난 것 같은데 무슨 수로 내 가족들을 돌봐준다는 거지?”

“당신의 가족을 돌봐주는 건 제가 아니라 신대성 부회장님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 신변에 꽤 관심이 많으시죠.”

잠시 생각을 하던 진유철이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나랑 함께 미개척 지역으로 갑시다.”

“뭐?”

“그곳에서 부랑자들과 합류하는 겁니다.

“그 쓰레기들을 만나서 뭐 하려고?”

“그들 대부분은 쓰레기지만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신대성 전 부회장님은 친구들도 있죠.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신대성 부회장과 우리를 이어줄 겁니다.”

“크흐흐흐.”

진유철은 광소를 터뜨렸다.

양준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바깥세상에서 누리던 지위와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방금 그걸 자신의 입으로 인정한 것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당신이 나랑 같은 신세가 되다니.”

“잠깐.”

양준기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진유철도 정신을 집중했다.

한 무리의 인간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 *

“이쪽이에요.”

눈이 가장 밝은 안다정이 일행을 인도했다.

한밤의 던전은 칠흑 그 자체였으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발광석과 각성자 특유의 초인적인 감각이 어둠을 밝혀주었다.

“주혁이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천운이 따라주는 것 같아.”

“오늘만큼은 그런 것 같군요.”

유덕현의 말에 강주혁에 작게 웃어 보였다.

양준기는 던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헌터였지만 마음이 급했는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구두를 벗지 않았던 것이다.

금강불괴로 유명한 양준기는 맨발로 다녀도 발이 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구두를 벗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둠이 자신의 흔적을 감춰줄 거라고 믿은 것 같았다. 임원이 되면서 감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일행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구두는 맨발보다 땅에 더 큰 흔적을 남겼으니까.

“여기도 발자국이 있네요.”

안다정이 동굴의 흙바닥에 찍혀 있는 구둣발을 발견했다.

“좀 전에 찍힌 거예요.”

강주혁은 애초에 이 동굴을 목표로 이 지역에 왔다.

하지만 일행들에게 동굴의 위치를 알릴 방법을 찾지 못해서 서성거리다가 운이 좋게 바닥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찾은 것이다.

“허진아.”

“네?”

“동굴 밖에 나가서 조명탄 쏘고 와. 멀리 못 갔을 거다.”

“네. 부장님.”

공허진이 동굴 밖으로 달려갔다.

“가자.”

세 사람은 동굴의 내부로 더 들어갔다.

“발자국이 끊어졌어요.”

안다정의 말대로 발자국은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강주혁이 이 동굴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가 황급히 안다정에게 손을 뻗었다.

“팀장님!”

강주혁이 안다정을 잡아당기는 순간 벽에서 칼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그녀가 있던 공간을 예리하게 그었다.

“제법이군.”

벽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그럭. 절그럭.

철갑옷을 입은 기사가 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일종의 환영으로 이루어진 벽이었던 것이다.

“……진 과장님?”

유덕현은 그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는 투구의 덮개를 들어 올렸다.

“……유 대리?”

“네. 접니다. 유덕현.”

진유철 역시 투구의 덮개를 올렸다.

어둠 속이었지만 강주혁 일행이 가지고 있는 발광석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왜 하필…….”

“양준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유덕현이 물었다. 진유철은 대답을 하는 대신 덮개를 내렸다.

“과장님, 이제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양준기가 마석 빼돌리던 거 전부 다 들통났습니다. 과장님 형량도 줄어들 겁니다. 애초에 원해서 하신 일도 아니었잖아요. 저희랑 돌아가시죠. 가족들이 기다립니다.”

진유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투구 속의 두 눈동자가 슬픈 빛을 띠었다.

“덕현아.”

“형님.”

“이미 늦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양준기 잡는 걸 도와주시면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제가 힘써보겠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너는 모를 거다.”

유덕현은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주혁은 알 수 있었다.

진유철은 떠돌이 신세가 된 이후로 양준기의 명령으로 그의 정적들을 암살해왔다.

태원공략의 실종자나 사망자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진유철에게 죽었다. 그의 손에 묻은 피는 결코 연하지 않았다.

“부장님.”

강주혁은 입이 아니라 눈으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준기는 달아나고 있다고. 진유철을 설득할 시간이 없다고.

“그래.”

유덕현이 투구의 덮개를 내렸다.

“용서하십시오. 형님.”

“……미안하다.”

한때 서로에게 등을 맡겼던 동지가 서로에게 검을 겨눴다.

네 사람이 서로에게 돌진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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