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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10화 (110/202)

110화 왜 그러세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양준기는 취조실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일이 어그러지고 난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오판이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감사실 놈들은 양준기를 밤새도록 잡아놓을 생각인 것 같았다.

‘준영이가 실수한 건가?’

갑자기 잡혀 오는 바람에 양준기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폰도 빼앗기는 바람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

‘아니야.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양준기는 양준영에게 꽤 중한 일을 맡겨왔다. 공략 1부 1팀에서 마석을 빼돌릴 때 그걸 총괄하던 사람이 양준영이었다.

관리 감독만 한 게 아니라 마석을 직접 빼돌리는 작업까지 했었다. 양준영이 안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했으니까.

공략 1부 1팀의 전원이 마석 횡령에 동참했던 건 아니다. 양준영, 정완순 팀장, 그 외에 한 명만 횡령에 가담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특혜를 누리면서도 양준기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아마도 진유철 과장에 대한 얘기를 듣고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그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기에 마석 횡령에 대해서는 끝까지 비밀로 했다. 양준영은 그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매번 성공적으로 마석을 빼돌려왔다.

그래서 양준기는 아들이 이번 일도 어렵지 않게 해낼 거라고 믿었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감사팀 김한솔 과장이 들어왔다. 그는 양준기 전무를 보더니 씩 웃었다.

“식사가 입에 안 맞으셨습니까?”

김한솔은 양준기 전무가 먹다 남긴 싸구려 도시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입맛이 없더군.”

양준기 전무가 김한솔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한때는 양준기의 구둣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이윤철 사장의 심복 노릇을 하고 있었다.

휙!

김한솔은 도시락을 집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 도시락 맛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입 조심하게.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나?”

김한솔은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예전이라면 양준기 앞에서 감히 저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양준기 씨.”

“뭐?”

양준기의 눈이 살기를 내뿜었다.

“눈 깔아요. 밖에 사장님 있으니까요.”

감사팀은 유사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헌터를 제압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전원이 대인 전투에 특화된 헌터로 구성된다.

김한솔 역시 그랬다. 물론, 전무인 양준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가 뿜어내는 살기와 투지를 어느 정도 견디는 것은 가능했다.

이윤철 사장이라는 말에 양준기 전무도 살의를 누그러뜨렸다.

“후우.”

김한솔은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다시 웃음을 보였다.

“신기한 일입니다.”

“뭐가?”

“강주혁 팀장이 뿜어내는 살기가 어째 양준기 씨보다 더 강한 것 같군요. 그때는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죠. 그 친구가 저보다 젊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군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강주혁과 비교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을 한 수 아래인 것처럼 말하자 양준기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못 믿겠지만 사실입니다.”

김한솔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시작해볼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잘못은 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것밖에 없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얘기해 주지 않고 떠보기만 하던 감사실 직원들도 양준영이 잡혀 왔다는 건 알려주었다.

양준기도 그 정도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이렇게 잡혀 오지 않았을 테니까.

“진유철 과장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아들까지 팔아먹는 겁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전혀 모르는 일이야.”

아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은 오리발을 내밀어야 한다. 양준영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아버지가 무사해야 자신도 구제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이것도 모르십니까?”

김한솔은 가지고 온 서류철을 양준기 앞에 던졌다. 양준기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걸 펼쳐보았다.

‘이건?’

서류는 그동안 빼돌린 마석의 수량과 그것을 빼돌린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었다. 날짜를 보니 비교적 최근에 작성된 것이다.

양준기에게도 이런 종료의 서류가 있지만 회사에서 보관하지는 않았다. 그를 제외하고 이 서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이진욱 이 새끼가…….’

눈앞이 깜깜해지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양준기는 동요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든 심력을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감사팀 직원들은 이런 사소한 징후를 귀신같이 포착해내는 데 통달한 인간들이다.

“아주 많이도 해먹었더군요. 얼추 계산해 보니 백억이 넘더군요. 우리도 나름 충성해 온 게 있는데 좀 나눠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럼 사장님께 욕을 먹더라도 좀 덜 억울했을 텐데요. 이렇게 해먹을 때까지 감사팀은 도대체 뭐했냐고, 부끄러운 줄 알라면서 혼쭐을 내시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김한솔은 빈정댔지만 양준기는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영광공략 이진욱 상무가 모든 걸 털어놓았습니다. 공략 1부 1팀 사람들도 전부 잡아넣었습니다. 이제 양준기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양준기는 굴욕감에 주먹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석을 어디에 어떻게 팔아먹었으며, 그 돈을 어디다 썼는지 밝히는 겁니다. 그럼 형량이라도 좀 줄여드리죠. 아시다시피 액수가 너무 커서 회사 차원에서는 덮을 수 없습니다. 사장님도 그걸 원치 않으시고요.”

“이봐. 김한솔 과장.”

김한솔이 양준기를 쳐다봤다.

“자네는 아직 젊어. 회사에 다닐 날도 많겠지. 신대성 부회장이 회장이 되면 어쩌려고 이러나?”

양준기의 기대와는 달리 김한솔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글쎄요. 그런 날이 오기는 하겠습니까?”

* * *

양준기 전무가 파멸했다.

회사의 실세로 군림하다가 쇠고랑을 차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파멸이다.

양준기 전무의 비호 아래 호의호식하던 사람들은 다가올 숙청의 시간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칼바람이 불기 전에 미리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양준기의 몰락을 통쾌해했다.

양준기와 그의 패거리 탓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이 으스대고 다니던 걸 못마땅해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건배!

짠!

강주혁은 유덕현, 안다정, 공허진과 잔을 맞부딪혔다.

신대성 타도를 결의한 동지들이 양준기의 몰락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어떠세요?”

강주혁은 잔을 비운 사람들에게 물었다.

“음, 좋은데?”

“뭔가 깔끔한 맛인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술이라고 했죠?”

안다정이 강주혁에게 물었다.

“보리소주예요.”

“앞으로 이것만 마셔야겠네요.”

안다정은 술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유덕현이 강주혁의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고생은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사장님이 네가 머리를 잘 써서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렸다고 하던데.”

“운이 좋았던 거죠. 애초에 나쁜 짓 하는 인간들 사이에 제대로 된 의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러지.”

“부장님은 힘들지 않으세요? 요새 공략 1부 상황이 말이 아닌데.”

강주혁의 물음에 유덕현이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힘들긴 하지. 그래도 회사를 좀먹던 놈들이 전부 떠나버려서 오히려 속이 시원해.”

양준기 사건의 여파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부서가 공략 1부였다. 특히, 1부 1팀은 정완순 팀장을 포함한 상급자 두 명이 쇠고랑을 차면서 팀이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1부 2팀에서도 양준영이 빠졌다. 마석 횡령 미수와 명예 훼손만으로는 징계와 벌금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부 1팀 시절 마석을 횡령했던 게 들통이 나는 바람에 공범들과 함께 감옥에 가게 되었다.

1부 2팀이야 원래 강주혁과 공허진을 주축으로 하던 팀이었기에 양준영의 공백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1부 1팀은 팀을 이끌어줄 상급자들이 이탈해 버리는 바람에 던전에 투입하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부장인 유덕현이 팀장 노릇을 해가면서 1부 1팀을 굴리고 있었다. 덕분에 유덕현의 업무 부담은 두 배가 되었다.

“정완순 그놈이 벌을 받아서 얼마나 통쾌한지 몰라. 더러운 짓 해가면서 호의호식하다가 천벌 받은 거지.”

“맞아요.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저기, 사장님.”

안다정은 오픈키친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사장을 찾았다.

“네. 손님.”

“여기 명란 오믈렛 하나만 추가해 주세요.”

“네. 2번 테이블에 명란 오믈렛 추가요.”

“입에 맞으시나 봐요?”

강주혁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맛있어요. 앞으로 여기 자주 와야겠어요.”

안다정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근데 강 팀장님.”

“네?”

“저 사장님 있잖아요. 강 팀장님이랑 좀 닮지 않았어요?”

안다정이 요리를 하고 있는 사장을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음…… 좀 닮긴 했네요.”

강주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내심 뜨끔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강주혁의 형인 강수혁이었으니까. 홀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사람은 형수인 진수연이었고.

2년 전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형은 동생의 권유에 따라 서울로 올라와 강남 게이트 단지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내친김에 형수님과 어머니도 올라오게 했다. 신태원 회장의 속내를 알고 나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가족들이 걱정되었다.

3개월 전, 강주혁이 경기도 화성에 구매해 놓았던 임야에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게이트 내에서 마석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강주혁은 게이트를 포함한 임야를 35억에 팔 수 있었다.

백억에 가까운 자산가가 된 강주혁은 강남 게이트 단지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 두 채를 구매해 한 채는 형네 부부가 살게 하고 자신은 어머니와 살았다.

대출을 받겠다는 형의 고집을 꺾고 가게를 차려준 것도 강주혁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형에 대한 부채감을 덜고 싶었다.

“와, 진짜 팀장님이랑 닮았어요.”

공허진도 강주혁과 강수혁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자꾸 쳐다보지 마요. 실례잖아요.”

“아, 네.”

강주혁은 일행들의 시선을 돌렸다.

사실 정체를 숨긴 이유는 자신의 요리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듣고 싶다는 형의 부탁 때문이었다. 인터넷상의 리뷰와 평점도 꽤 잘 나오고 있었지만 강수혁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대구에서도 유명한 가게에서 2년 정도 경력을 쌓기는 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도 베테랑 주방장을 따로 두고 틈틈이 요리를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강주혁은 요리에 대한 형의 진지한 마음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잠깐 실례할게요.”

강주혁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가게 구석으로 갔다.

“도련님.”

서빙을 하는 척 은근슬쩍 따라온 진수연이 말을 붙였다.

“네?”

“누구예요?”

“누구라뇨?”

“예쁜 여자랑 귀여운 여자, 둘 중 누구냐고요?”

진수연이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회귀 전에도 노총각 도련님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도련님은 여자보다 일을 좋아하는 인간이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둘 다 아닙니다.”

“아, 뭐 하는 거예요. 바보같이.”

진수연이 강주혁의 등짝을 철썩 때렸다.

“아야.”

그러더니 자기 손을 잡고 울상을 지었다.

“여기 있었네. 음식은 좀 어떻대?”

때마침 강수혁도 주방의 뒷문을 열고 화장실 쪽으로 나왔다.

“맛있대. 특히, 명란 오믈렛.”

형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빠, 나 손 부은 거 같아.”

진수연이 손을 남편에게 내밀었다.

“왜 그래?”

“도련님 때렸는데 몸이 무슨 돌덩이 같아. 너무 아파.”

“쟤는 헌터잖아. 함부로 때리면 안 돼. 손만 다쳐.”

그러면서 강수혁은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아내의 손을 주물러 주었다.

“우웩, 나 먼저 간다.”

강주혁은 신혼부부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뒤로 한 채 자리로 돌아왔다.

“서빙 하는 분이랑 아는 사이에요?”

안다정이 대뜸 물었다. 안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구석 쪽을 본 모양이었다.

“아, 아니요.”

강주혁은 당황했다. 이 가게가 형네 부부가 하는 곳임을 밝히면 안 되니까.

“근데 왜 강 팀장님을 때려요?”

안다정이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번호 달라고 했는데 거절해서 그런 거 아니야?”

유덕현이 실실 웃으면서 물었다.

“뭐라고요?”

“왜 주혁이 정도면 여자가 먼저 번호 달라고 할 수도 있지.”

“……그건 그렇죠. 근데 진짜 저분이 번호 달라고 했어요?”

“그, 그게…….”

강주혁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어, 와이픈가? 아직 통금이 아닌데?”

그때, 유덕현이 폰을 꺼냈다.

“임 이사님이다. 잠깐만.”

유덕현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일행은 하던 얘기를 멈추고 귀를 세웠다.

“네. 이사님. 유덕현입니다. 네. 회사 근처에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유덕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겠습니다. 지금 곧장 복귀하겠습니다. 네.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유덕현이 통화를 끝냈다.

“왜 그러세요?”

“양준기 전무가 광야로 도망쳤다. 긴급 소집령이야.”

강주혁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갔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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