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06화 (106/202)

106화 그러면 그렇지

“빈틈이 없다고?”

“네. 없어요.”

양준영은 아버지의 질문에 힘없이 답했다.

강주혁한테 얻어맞은 후로 아들은 줄곧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양준기는 복장이 터졌다. 당장 달려가서 강주혁에게 쌍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신태원 회장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놈도 사람이잖아. 흠잡을 게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야.”

양준영은 다시 곰곰이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일 처리는 완벽에 가까워요. 아무리 트집을 잡으려고 해도 그럴 만한 게 없었어요.”

던전에서든 사무실에서든 강주혁은 이상적인 헌터였다. 양준영이 보기에는 그랬다. 어쩌면 임원쯤 되면 강주혁의 흠결을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준영은 원래 헌터 일에 큰 열의가 없었고 대리를 달 때까지도 탱자탱자 놀기만 했다.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강주혁이 뭘 해도 대단해 보였다.

“팀원들은? 강 팀장 싫어하는 인간이 한둘이 아닐 텐데.”

“없어요.”

“뭐?”

“진짜예요. 한 명도 없어요.”

양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팀원들을 선동해 팀장을 따돌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팀원들은 강주혁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오히려 팀에서 겉도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대놓고 따돌리는 건 아니지만 팀원들은 양준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온 윤정석도 귀신같이 분위기를 읽어내고는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1부 1팀에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온갖 아첨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양준영는 이런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주선우는? 강주혁이 퇴근 후에도 일 시킨다면서?”

“일은 아니고요. 3팀 이정인 과장한테 개인 교습 받게 했어요.”

“3팀? 주선우는 2팀이잖아.”

“안 팀장이랑 강 팀장이랑 워낙 친해서…….”

양준기는 어안이 벙벙했다.

경쟁 관계에 놓인 공략팀이 상대를 도와주는 경우는 합동 공략 때뿐이다. 그럴 때도 서로 실적을 많이 가져가려고 다투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다른 팀의 모자라는 팀원을 도와준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아주 미쳐 돌아가는군. 회사가 무슨 놀이터인 줄 알아.”

양준기는 인상을 썼다.

헌터들을 팀별로 나눠놓은 건 치열하게 경쟁해서 실적을 올리라는 뜻에서다. 저런 상호 협조적인 분위기는 회사에 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양준영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보기에도 요즘 공략 1부의 분위기는 좋았다. 분위기만 좋은 게 아니라 실적도 좋았다.

예전의 공략 1부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전쟁터였다면, 요즘의 공략 1부는 룰을 따르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스포츠 경기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유덕현이 부장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덕현과 경쟁했던 팀장들은 부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을 넘는 일이 잦았다.

4팀 팀장인 하민지가 팀원 관리보다 임원들과의 친분을 쌓는 일에 더 열을 올린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팀 팀장인 정완순은 양준영을 이용해 양준기와 임재경의 노골적인 편애를 받았고, 김현우는 실적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가 감옥에 갔다.

부장이 되겠다고 그렇게 꼴사나운 짓들을 많이 했는데도 결국 부장 자리에 오른 건 가장 조용하게 지냈던 유덕현이었다. 압도적인 실적으로 그 모든 편법들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헛짓거리를 하기보다는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젊은 팀장들이 맡게 된 2팀과 3팀이 이런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다.

“대신 강 팀장이 3팀 신입사원까지 봐주고 있어요.”

“이경호를?”

“네. 매일 퇴근하고 윤정석과 이경호를 수련장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회사에 있는 게 싫을 때인데 둘 다 불만이 많겠군.”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아하더군요.”

“뭐?”

양준영에게도 의외였다.

강주혁이 신입사원들을 직접 지도하는 것도 처음에는 죽을상을 하고 있던 신입사원들이 은근히 젊은 팀장과의 수련을 즐기게 된 것도.

“팀장이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도움을 준다는 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알더군요.”

신입사원들이 입사 후 겪게 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로 공략에 투입되었다가 그것도 모르냐면서 욕을 먹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상사들이 일을 가르칠 여유는 없고 실력은 못 미더우니 여유가 생길 때까지 방치되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하지만 명성이 자자한 엘리트 팀장이 A부터 Z까지 가르쳐 준다면? 팀장이 보증을 해주니 방치되지도 않을뿐더러 특훈의 효과로 실력이 향상되어 던전에서 욕을 먹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처음에는 퇴근 후에 상사를 봐야 하는 게 싫겠지만 신입사원들끼리 교류를 해보면 자신들이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 팀장이 개인적으로 많이 챙기는 것 같아요.”

강주혁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킨 날에는 꼭 술을 사줬다. 점심시간에도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둘에게 밥을 사주기도 했다. 쓸 만한 검을 선물하기도 했고.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윤정석과 이경호는 강주혁의 좌청룡 우백호 행세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이경호는 안다정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윤정석이 강주혁의 골칫거리가 될 줄 알았는데 의외군.”

“만만한 상대는 우습게 봐도 실력이 좋은 사람한테는 숙이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더군요.”

“주선우는? 강제로 개인교습 받게 하는 데 불만 없어?”

“처음에 싫어하는 티를 내기는 했는데 자기 실력이 별로라는 걸 알아서인지 그냥 수긍했어요. 강 팀장도 업무를 줄여주는 식으로 배려를 했고요.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까 본인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음.”

양준기는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도 팀장 시절이 있었기에 아들의 설명만 들어도 1부 2팀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1부 2팀은 현재 진짜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분위기를 흐리는 팀원은 규율을 따르고 실력이 모자라는 팀원은 성장하고 있다. 불협화음을 일으킬 요소가 사라진 팀은 조만간 엄청난 시너지를 보여줄 것이다.

강주혁은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되었고 급조된 팀을 맡았다. 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허점을 드러내야 정상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마치 팀장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그 자리에 오르자마자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렸고 한 달 만에 모든 위험 요소를 가능성으로 바꿔놓았다.

“아버지.”

“왜?”

“저 그냥 1부 1팀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1부 1팀에서 왕족처럼 살았던 양준영이었다. 팀에서 겉돌고 있는 지금, 그는 그 시절이 몹시 그리웠다.

“마음 약한 소리 하지 마라.”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렇죠.”

“한 가지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봐야지.”

“이 상황에서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양준기는 아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반면에 강주혁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강주혁 덕분에 성장한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지 못할 것이다. 1부 2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싸움에서 양준영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양준영은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그 방법이 아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요?”

양준기는 자기 책상으로 가더니 서랍을 열어서 팔찌 하나를 꺼내서 가져왔다.

양준영에게도 낯익은 물건이었다.

“뭔지 알지?”

“이건 아공간 보관함 팔찌잖아요. 이건 왜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 * *

다음 날.

공략을 끝낸 1부 2팀은 마석을 채취하기 위해 팀을 두 개의 조로 나눴다.

전투와 마석 채취를 번갈아가면서 할 때도 있지만 오늘은 전투 지역이 그리 넓지 않았기에 전투를 완전히 끝낸 후 일괄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정석 씨는 좀 어때요?”

강주혁은 공허진과 함께 마석을 채취했다.

“잘 따라오는 것 같아요.”

“오전에 사무실에서 보니까 대리님한테 말대꾸하고 그러던데요.”

“가끔 그러긴 해요.”

공허진은 헤헤거리면서 웃어 보였다.

윤정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대답을 해도 공허진은 웃으면서 타이르기만 할 뿐 뭐라고 하지 못했다.

“말 안 들으면 혼내요.”

“……그런 건 아니에요.”

“유 부장님 봐요. 우리랑 있을 때는 완전히 순둥이셨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맞아요. 화가 많아지신 것 같아요.”

요즘은 하루에 서너 번은 유덕현의 사자후를 들을 수 있었다. 팀장 회의라도 있는 날에는 사무실을 음파 공격으로 부수려는 사람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1팀장님이랑 4팀장님이 계속 시비를 거니까요. 항상 좋은 사람일 수는 없죠. 그래서도 안 되고요.”

공허진은 강주혁이 어떤 의도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는 깨닫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력해 볼게요.”

공허진은 안쓰러운 웃음을 보였다.

“한 번만 해봐요. 그럼 그다음부터는 쉬워질 거예요.”

“근데 팀장님도 화는 안 내시잖아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공허진이 따졌다.

강주혁은 화를 내는 대신에 대련을 하자고 한다. 그렇게 흠씬 두들겨 패고 나면 누구든 말을 잘 들었다.

강주혁이 하자는 대련이 합법적인 구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저요? 저도 냈어요.”

“누구한테요?”

“회장님한테요. 첫 웨이브 데이 때였나? 기억 안 나요?”

“아…….”

“방금 따진 건 잘했어요. 정석 씨한테도 그렇게 해봐요. 잘 모르면 헛소리하지 말고 일단 들으라고요.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거예요.”

“……네. 팀장님.”

공허진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이제 다 끝났죠?”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면서도 부지런히 마석을 적출했다.

공허진은 1부 3팀에 있으면서 강주혁에게 마석을 효율적으로 적출하는 방법을 배웠다. 요령이 생기자 힘은 절반만 들이면서 속도는 배로 낼 수 있게 되었다.

“네. 다 끝났어요.”

“우리가 3분의 2는 한 것 같군요.”

강주혁과 공허진은 두 사람인데도 나머지 세 사람보다 작업량이 많았다.

“다음부터는 팀장님이랑 저랑 다른 조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교육을 좀 시켜야겠군요.”

강주혁과 공허진은 세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린 끝났어요.”

“벌써요?”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간 지역도 우리가 다 했어요.”

“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주선우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요령이죠. 연습이 좀 필요합니다. 세 사람은 다 했어요?”

“우리도 얼추 다 끝내긴 했습니다.”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하죠.”

“네! 팀장님!”

마석 채취 작업이 완전히 끝난 후 강주혁은 모아온 마석을 펼쳐놓았다.

“개수가 안 맞네요.”

“그럴 리가요.”

“빠트린 거 없어요?”

“없습니다. 두 번 확인했습니다.”

“몬스터는 284마리였는데 마석이 세 개 모자라요.”

강주혁의 지적에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보고서에서 보신 걸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지역에 대한 기존의 보고서를 보면 몬스터의 숫자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간혹 지역이동을 하는 몬스터들이 있기 때문에 그 숫자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아니요. 싸우면서 센 겁니다.”

강주혁의 말에 양준영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미친 새끼, 그건 또 언제 세고 있었던 거야.’

몬스터가 수십 마리 정도 되면 셀 수도 있다. 하지만 백 단위가 넘어가면 전투 중에 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양준영이 말하자 강주혁은 굳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아니. 숫자가 워낙 많으니까요.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당황한 양준영이 말을 더듬거렸다. 강주혁은 표정을 풀더니 웃음을 지었다.

“대리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착각한 것 같네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도 퇴근하죠.”

강주혁은 사람들을 이끌고 톨게이트로 돌아갔다.

톨게이트 앞은 소지품 검사를 기다리는 여러 공략회사의 헌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좀 기다려야 할 것 같군요.”

태원공략 쪽은 광부들의 퇴근도 겹쳐져서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일행은 느긋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팀장님, 잠시 화장실 좀.”

양준영이 말했다.

“네. 다녀오세요.”

양준영은 줄에서 빠져서 화장실로 걸어갔다. 강주혁은 충분히 거리가 벌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반대편을 보고 말했다.

“어? 저 친구는?”

“왜 그러세요?”

“같은 아카데미 나온 친구예요. 취업 준비하느라 연락이 끊겼는데 영광공략 다니고 있었네요. 잠깐만 실례할게요.”

강주혁은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영광공략 쪽으로 걸어갔다.

영광공략은 열 번째인 J출입구를 이용했다. 영광공략의 헌터들은 A출입구를 이용하는 태원공략의 헌터들에 비해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중간에는 여덟 개 공략회사의 헌터들이 있었고.

강주혁은 일행과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리치의 반지를 이용해서 투명화와 가속화를 사용했다. 애초에 영광공략을 다니는 친구가 있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었다.

강주혁은 헌터들을 빙 돌아서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중간에 기척을 느낀 헌터들이 강주혁 쪽을 슬쩍 보기는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공공화장실 바로 앞에서 양준영을 따라잡은 강주혁은 그가 화장실이 아니라 근처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