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태원공략에 온 걸 환영합니다
‘뭐지? 저 또라이는?’
윤정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나이에 별호를 가지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들어본 적도 없었고.
헌터 업계의 별호는 뛰어난 실력과 연륜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별호를 가진 대선배가 지어주는 것이다.
대개 나이 오십은 되어야지 받을 수 있으며 받는 사람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태원공략에서 별호가 있는 사람은 이윤철 사장, 김재후 부사장, 양준기 전무 세 사람이 전부다.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멋대로 별호를 붙이거나 지어주면 미친놈 취급을 당한다. 심하면 대련을 빙자한 린치를 당하기도 한다.
“어서 와요.”
강주혁은 웃으면서 윤정석을 맞이했다. 정말로 보고 싶은 얼굴이었으니까.
“여기가 제 자리인가요?”
윤정석은 비어 있는 책상을 가리키면서 묻더니 답변을 듣지도 않고 그 위에 자기 검을 내려놓았다.
나머지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윤정석과 강주혁을 번갈아 봤다. 신입사원이 보여줄 만한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여전하구나.’
윤정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나쁜 놈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오랫동안 지켜본 윤정석은 진솔하고 선량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단지, 어른이 될 생각이 없으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통성명은 안 해요?”
팀원들이 말이 없자 윤정석이 물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이 팀의 팀장인 강주혁 과장입니다.”
“와, 몇 살이에요? 저랑 별 차이도 안 나는 것 같은데. 원래 팀장은 아저씨들이 하는 거 같은데.”
“저기, 이름이 정석이랬나?”
양준영이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네. 그런데요.”
“여기 회사예요. 예의 좀 지킵시다.”
“예의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윤정석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강주혁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
윤정석 때문에 안다정에게 덩달아 욕을 먹던 시절을 떠올라서 골이 아팠다.
회귀 전, 윤정석은 강주혁을 우습게 여겼다. 2년 반이나 일찍 회사에 들어왔지만 둘 사이의 실력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헌터로서의 능력이나 태도를 따진다면 강주혁이 더 나았으나 개인 전투 능력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윤정석은 강주혁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반항을 해댔다. 사수로서 그런 윤정석을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강주혁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고.
“차차 배워나가면 되죠. 다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세 사람은 자신을 소개했다.
윤정석은 씩씩한 태도로 인사를 했지만 입에 머금고 있는 조소를 지울 줄 몰랐다.
“시간 10분 줄게요. 옷 갈아입고 와요.”
1부 3팀 파트에서 공포의 환복 시험이 시작되었다. 신입사원이 후다닥 달려서 입구 밖으로 사라졌다.
그걸 본 강주혁은 옛날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윤정석에게도 시켜볼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고쳤다. 그 정도로는 길을 들이는 게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특이한 검을 쓰네요?”
다시 윤정석에게로 시선을 옮긴 강주혁이 책상에 놓여 있는 검을 가리켰다.
“아, 이것저것 써보다가 제일 맞는 걸 골랐습니다.”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윤정석이 자기 검을 내밀었다.
“아니요. 직접 휘두르는 거요.”
강주혁의 말에 윤정석이 씩 웃었다.
“얼마든지요.”
강주혁은 일단, 유덕현에게 윤정석을 데리고 잠시 훈련장에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다.
“그래. 다녀와.”
1부 2팀의 일 처리 속도가 워낙 빨라서 잠깐 여유를 부려도 괜찮았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강주혁이 나가려고 하는데 유덕현이 그를 멈춰 세웠다.
“미안하다. 너한테 골치 아픈 녀석들만 계속 보내게 되네.”
이미 인사팀으로부터 윤정석의 악명을 전해 들은 유덕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팀에 헌터가 많을수록 좋죠.”
“인사팀 놈들이 우리 괴롭히려고 뽑은 놈 같아. 연수원에서 중간에 무단이탈까지 했다고 하더라.”
“무단이탈이요?”
“중간에 나가서 술 마시고 왔다는 거야. 완전 미친놈이지.”
“용케 안 잘렸네요.”
“실력은 쓸만한가 봐. 태도 점수만 빼면 연수원 1등이라고 하던데.”
강주혁도 윤정석이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주혁이나 다른 헌터들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케이스는 아니다.
신광공략의 남궁천 사장이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윤정석 역시 길거리 싸움꾼 출신이었다.
각성자들 중에는 아카데미와 공략회사로 이어지는 제도권에 편입되는 걸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프리랜서 신분으로 국가 소유의 게이트를 돌면서 실력을 쌓고 자기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친목을 도모했다.
국가 소유의 게이트는 대개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져서 공략회사에서 구매하지 않은 것들이고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별 볼 일 없다는 얘기다.
그런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헌터들도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 자유주의 헌터들은 제도권에 속한 헌터들보다 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궁천처럼 가끔 예외가 나올 때도 있었다. 윤정석 역시 그런 케이스였고.
“잘됐네요. 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태도가 저 모양인데 잘 적응할지 모르겠다.”
“걱정 마십시오. 부장님. 제가 잘 교육시켜서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그래. 버르장머리를 한 번 고쳐놓으면 말을 잘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강주혁은 팀원들을 전부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으…….”
강주혁과의 대련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양준영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면서 인상을 썼다.
반면에 윤정석은 상사들과 함께 훈련장에 왔는데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배짱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보여드리면 되나요?”
“간단하게 대련 한번 해보죠. 혼자서 검을 휘두르는 걸 보는 건 재미없잖아요.”
“그러시죠.”
강주혁의 제안에 윤정석이 씩 웃었다.
“정석 씨 별호는 누가 지어준 겁니까?”
“친구들이 지어줬는데요. 왜요?”
“원래 별호는 그런 식으로 짓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죠?”
“그건 아는데요. 전 그런 고리타분한 관습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그런 건 오늘 내일 하시는 영감들이나 따르는 거잖아요.”
윤정석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강주혁의 말에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평소에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헌터 업계의 전통과 관습에 대해 꽤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별호를 받았다고 해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죠.”
회귀 전, 강주혁은 가장 존경하는 신태원 회장에게 별호를 받는 헌터가 되는 걸 꿈꿨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태원 회장은 전혀 존경할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별호를 받은 김재후나 양준기도 마찬가지였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신태원이 별호를 내린다면 강주혁은 그걸 거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별호를 지어주는 것도 이상하겠죠. 그럼 개나 소나 별호를 지어 붙일 테니까요.”
강주혁의 말에 윤정석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 개나 소나에 자신이 포함된다는 뉘앙스였으니까.
“잘 모르시나 본데 저 밖에서는 좀 잘나갔습니다. 불일 만하니까 붙여준 거죠.”
윤정석은 망나니 칼을 빙빙 돌리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 볼 때 보니까 대기업 헌터들도 별 볼 일 없던데요.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허.”
윤정석의 대꾸에 양준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주선우와 공허진도 어이없어했다.
윤정석은 회귀 후의 강주혁처럼 실기시험 때 상사를 정말로 이기고 들어온 케이스였다.
게다가 아카데미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온 입사 동기를 제치고 연수원에서 실력으로 1등까지 했다. 아마 태원공략의 헌터들이 우습게 여겨질 것이다.
“그럼 이번 기회에 둘 다 확인해 볼 수 있겠군요. 정석 씨가 별호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대기업 헌터들이 별 볼 일 없는지.”
“그러시죠.”
“먼저 시작하세요.”
“근데 팀장님 권사예요?”
강주혁은 여전히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검사입니다.”
“검은요?”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윤정석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절 너무 우습게 보는군요.”
“정말 우습게 봤다면 대련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정석 씨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나한테 꽤 높은 평가를 받은 겁니다.”
“뭐, 그렇다고 치죠.”
“시작해요.”
윤정석이 도약하는 순간, 구경을 하던 세 사람의 눈이 커졌다. 신입사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으니까.
윤정석은 착지와 동시에 검을 횡으로 크게 베었다. 찍을 것처럼 위로 들어 올렸다가 팔을 돌리면서 횡으로 벤 것이다.
촤악!
오러가 담긴 칼이 공기를 찢으면서 섬뜩한 소리를 남겼다.
“어?”
하지만 강주혁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툭툭.
강주혁이 등 뒤에서 손가락으로 윤정석의 등을 두들겼다.
“움직임이 쓸데없이 크군요. 검을 휘두를 때 팔이 시야를 가려요.”
윤정석은 상대를 속이기 위해 과장된 동작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좀 전에도 그렇게 하려고 팔을 크게 휘저었다.
들어 올린 팔이 잠시 시야를 가리는 찰나에 강주혁은 윤정석의 뒤로 넘어간 것이다.
“쳇!”
윤정석은 몸을 재빨리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는 시늉만 하고 팔을 안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상대가 뒤로 빠지고 나면 찌를 생각이었다.
“어?”
하지만 강주혁은 여전히 윤정석의 바로 등 뒤에 있었다. 마치 윤정석의 페이크 동작을 예상한 것처럼.
“수가 얕군요.”
강주혁은 심지어 뒷짐을 지고 있었다.
너무 딱 붙어 있어서 칼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강주혁은 그런 윤정석을 배려라도 하듯이 뒤로 천천히 물러나 줬다.
“젠장!”
윤정석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슨 형식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무아지경에 빠져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제대로 서서 칼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윤정석은 계속 휘청거렸고 그러면서도 검을 휘둘러댔다. 그 모습이 꼭 술 취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공격 하나하나가 날카로웠고, 동작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요상한 자세로 검을 휘둘러대니 공격을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한두 번 당해 보냐.’
회귀 전, 강주혁은 변화무쌍한 윤정석의 움직임에 농락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공만 놓고 보면 미묘하게 우위를 점했는데도 대련에서는 이상하게 밀리기 일쑤였다.
체계와 형식에 따라 싸우는 것에 익숙한 강주혁은 상대의 체계와 형식을 분석하는 것으로 싸움을 풀어간다.
그래서 체계와 형식을 깡그리 부정하면서도 매서운 공격을 펼칠 수 있는 윤정석은 강주혁에게 상당한 난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동안이었다. 강주혁은 일탈을 일삼고 반항을 하는 윤정석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와 시도 때도 없이 치고받고 싸웠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윤정석의 검술을 파훼하는 법을 알아냈다.
“에잇!”
강주혁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모두 피해버리자 윤정석이 짜증을 내며 더 맹렬하게 칼을 휘둘렀다.
강주혁은 공격을 할 수 있는데도 일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피하면서 그의 빈틈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의식적으로 규칙을 따르지 않더라도 무의식은 그렇지 않다. 계속해서 상대하다 보면 윤정석조차 의식하지 않는 규칙성이 보이기 마련이다. 강주혁은 그걸 꿰고 있었기에 윤정석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화르르.
윤정석의 움직임이 갈수록 더 빨라지면서 칼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강렬한 화기가 잔상처럼 퍼져나가자 강주혁이 피할 수 있는 범위도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주혁은 계속해서 공격을 피해 나갔다.
피하는 움직임이 빨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화염이 이동하는 경로를 정확하게 읽고 미리 움직였을 뿐이다.
강주혁의 얼굴에는 그을음은커녕 땀방울 하나 맺히지 않았다.
“헉, 헉.”
아무리 뛰어난 무재라고는 해도 어린 나이에 따른 내공 부족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전력을 다하느라 내공을 모두 쏟아부은 윤정석은 급격한 내공 소진에 따른 부작용으로 숨을 헐떡였다.
체력도 바닥을 보여서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반면에 강주혁의 호흡은 평소처럼 가지런했다.
“왜, 후아, 공격 안 해요?”
“하면 막을 수는 있습니까?”
“해보면 알겠죠.”
윤정석을 땀을 쏟아내면서도 웃어 보였다.
강주혁이 공격하면 없던 빈틈이라도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슉!
그 순간, 강주혁의 신형이 사라졌다.
쾅!
다시 나타났을 때 강주혁은 윤정석이 서 있던 자리에 있었다. 그곳에 있어야 할 윤정석은 한참 뒤에 있는 훈련장 벽에 처박혀 있었다.
“큭, 끄윽…….”
윤정석은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강주혁은 천천히 걸어가서 피를 토하고 있는 윤정석을 내려다봤다.
“정석 씨는 별호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군요.”
윤정석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강주혁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원공략에 온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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