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기대하겠습니다
“뭐요?”
강주혁이 일부로 화살을 막지 않았다는 공허진의 말에 양준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팀장님, 일부러 안 막으신 거죠?”
공허진의 지적에 강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허진 씨 많이 예리해졌는데요.”
“팀장님이랑 같이 다닌 기간이 좀 되니까…….”
공허진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니…… 왜?”
주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전방에서 팀원을 지켜줘야 할 탱커가 일부러 공격을 흘렸다.
“테스트예요.”
“네?”
“위기 상황에서 선우 씨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주선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팀장님, 무슨 테스트를 던전에서 합니까? 다칠 뻔했잖아요.”
양준영이 소리를 질렀다.
“각도까지 계산해서 흘린 거예요. 옆으로 스쳐갔죠?”
강주혁은 주선우에게 물었다.
“……네.”
강주혁은 분명 전방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등 뒤에 있는 주선우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사람 같았다.
“테스트라는 걸 알고 하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겁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죠.”
“아닙니다.”
공략회사에서 하급자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실전 테스트를 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이다. 스켈레톤 수십 마리 정도면 강주혁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으니 무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미리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주선우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화살에 맞은 것도 아니고 옆으로 지나쳤을 뿐인데도 시전에 실패했다.
아카데미 학생이나 할 법한 실수였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치열한 전투였다면 자신의 실수가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4팀의 정혜영 대리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더군요. 선우 씨가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요.”
강주혁은 주선우가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주혁의 팀원이 되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만들어야 했다.
주선우를 성장시키려면 우선, 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회귀 전에는 일찍 퇴사를 해버렸기에 강주혁은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정혜영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선우의 사수였다. 주선우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주혁은 정혜영을 따로 만나 주선우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정이 많고 선량한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고 주선우를 잘 좀 봐달라는 애정 어린 부탁을 하기도 했다.
“4팀에는 하민지 팀장님이 계셔서요.”
주선우는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과 클래스가 겹치는 막내 직원이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팀장이 막내를 아끼고, 키워주려고 노력한다면 급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하민지는 그럴 만한 위인이 못 되었다.
“이 팀에서 공격 마법을 쓸 일이 많을 겁니다. 선우 씨를 우리 팀의 주력 딜러로 만들 거니까요.”
“저, 저를요?”
“같은 양의 내공과 마나를 투자했을 때 낼 수 있는 공격력은 마나가 훨씬 높아요. 영력은 몬스터가 언데드가 아닌 이상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못하고요. 그러니 선우 씨가 메인 딜러가 되는 게 맞죠.”
“네, 팀장님.”
주선우는 힘없이 답했다.
“좀 전까지는 잘했어요. 하지만 팀원들이 항상 선우 씨를 지켜줄 수는 없어요. 4팀에는 그런 식으로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선우 씨 실력 향상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겁니다. 던전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생겨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마법을 쓸 수 있어야 해요.”
“명심하겠습니다.”
주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주혁의 지적에 불만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양준영은 주선우의 편을 들어서 강주혁에게 반기를 들까 하다가 자신도 좀 전에 주선우를 욕했다는 걸 깨닫고는 말을 삼켰다.
“계속합시다.”
공략은 계속되었다.
* * *
첫 번째 공략을 성공적으로 끝낸 다음날.
금요일 저녁을 맞이해 예전 1부 3팀 멤버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년 반의 시간은 네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유덕현에게 그 시간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전성기였고, 공허진에게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계기였다.
안다정에게는 일과 직장에 대한 애정을 되찾게 해준 시간이었고, 강주혁에게는 복수와 성공을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시기였다.
그만큼 네 사람은 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된 후로도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부장님은 좀 어떠세요?”
“어휴, 말도 마라. 니들이랑 던전에 들어갈 때가 낫다. 던전보다 회사가 더 끔찍해. 니들이랑 있을 때는 머리도 거의 안 빠졌거든. 근데 부장 달자마자 탈모가 다시 시작되네.”
강주혁은 무심결에 유덕현의 정수리를 슬쩍 봤다. 확실히 부장이 된 후로 머리숱이 더 줄어든 것 같았다.
“하 팀장이랑 정 팀장이 말썽이죠?”
실제로 팀장 회의를 하면 그 두 사람이 유덕현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곤 했다.
처음에는 좋게 가려고 했던 유덕현도 결국 폭발해버려 사자후를 터뜨려대면서 맞불을 놓았다. 요즘 공략 1부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은 유덕현을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화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굴욕도 감내하던 겁쟁이 유덕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놈들도 문제지만 윗선도 문제야.”
“윗선이요?”
“부장 되니까 임원들이 자꾸 부르네.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힘들어 죽겠다.”
“그래도 진급해서 사모님이 좋아하시지 않나요?”
강주혁의 질문에 유덕현은 씩 웃어 보였다.
“그건 그래. 그거라도 아니었으면 다시 팀장으로 강등시켜달라고 건의했을 거다.”
“강 팀장은 좀 어때요? 아직까지 대리인 분이 좀 귀찮게 굴지 않나요?”
안다정이 강주혁에게 물었다.
“아직까지 대리인 분은 팀장님 엄청 무서워해요.”
공허진이 강주혁을 대신해서 답했다.
“그때 패준 게 효과가 있었나 보네.”
유덕현이 낄낄 웃었다.
“우리 팀원들도 양 대리가 강 팀장한테 박살난 걸 좋아하더라고요.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불만이 많았나 봐요.”
“실력도 없는 놈이 아버지 믿고 얼마나 설쳐댔냐. 뻔질거리면서 다른 헌터들 우습게 보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분위기 흐리는 놈은 좀 맞아야 돼.”
“맞아요. 강 팀장이 사람들의 답답하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줬네요.”
“그냥 팀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강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도 최근에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유난히 살갑게 대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은근히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이 한결 호의적인 태도로 강주혁을 대했다.
강주혁은 그 호의가 꼴불견이었던 사람을 대신 처단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친구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반응은 분명 호재였다.
강주혁은 이 뜻밖의 수확 덕분에 양준영에게 고마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허진이는 잘하고 있을 테고 주선우는 어때?”
유덕현이 물었다.
예전에 합동 공략을 했을 때 애를 먹였던 기억이 있어서 걱정이 된 것이다.
유덕현의 질문에 공허진이 강주혁의 눈치를 봤다. 안다정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선우 씨한테 뭔가가 있는 모양이네요.”
안다정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문제랄 것까지는 없습니다. 경력에 비해서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게 흠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겁니다.”
“맞아요. 저도 팀장님 만나고 많이 좋아졌으니까 선우 씨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예요.”
공허진이 덧붙였다.
강주혁도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던전에서 하기 마련인 실수들도 결국 실전 경험과 훈련 시간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교정이 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성과를 내라고 독촉하는 대신에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준다면 분명 나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야, 허진이가 이제 다른 사람 걱정도 해주네. 진짜 많이 달라지긴 했다.”
“엄청 좋아졌죠.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잖아요.”
유덕현과 안다정은 그런 공허진을 보면서 깔깔거렸다.
“아, 그때는 제가 좀…….”
공허진은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리면서 얼굴을 붉혔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안 팀장님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강주혁은 회식 자리에서 하려고 준비해 둔 이야기를 꺼냈다.
“뭔데요?”
안다정은 눈을 빛냈다.
“선우 씨가 이정인 과장님께 따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선우의 문제는 실전 감각만이 아니다. 마법 자체가 별로 위력적이지 못하다.
실전 감각은 던전에서 구르다 보면 저절로 쌓이게 되지만 마법 그 자체의 위력은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다.
이 부분은 강주혁이 도와줄 수가 없다.
“이정인 과장이요?”
4부 4팀에 있던 이정인 과장은 이번 인사개편을 통해서 1부 3팀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네. 이정인 과장은 실력 좋은 마법사잖아요.”
안다정과 싸울 때 본 바로는 그랬다.
일대일 상황이고, 상대가 안다정이니 질 수밖에 없었지만, 마법사가 대인 전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었다.
신태훈이 이정인을 중용했던 것도 바로 이 출중한 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
안다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유덕현도 공허진을 가르친 것처럼 상사가 부하 직원을 가르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팀의 하급자를 가르치는 건 전례가 없었다. 실적을 놓고 팀별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팀에 이득이 될 만한 선택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바람직하기는 한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좀 그렇긴 하다.”
공략 1부 전체의 실적으로 평가를 받는 부장에게는 공략 1부 헌터들이 두루두루 성장하는 것이 기꺼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팀장인 안다정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녀는 부장 자리를 놓고 강주혁과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이정인 과장 의견을 물어봐야겠지만 저는 일단 찬성이에요.”
잠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안다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의외네? 그러다 주혁이 팀한테 밀리면 어쩌려고.”
유덕현이 히죽거렸다.
“좀 도와줄 수도 있죠. 그렇게까지 치졸하게 굴면서 이기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강 팀장이랑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경쟁해서 이길 거예요.”
“오, 좀 멋진데.”
“기대하겠습니다.”
강주혁은 안다정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좀스럽게 구는 건 질색하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업무시간에는 안 돼요.”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유덕현도 퇴근 후의 시간을 할애해서 공허진을 가르쳤다.
“이정인 과장의 개인 시간을 뺏어야 하는데 본인이 하기 싫다고 하면 나도 강요할 수는 없어요. 알죠?”
“물론입니다.”
“그리고 맨입으로 부탁하기는 그러니까 이 과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사례를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과외를 받을 때마다 식사를 대접하거나 아티팩트 하나 선물하…… 아니, 아니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저한테 사례해요.”
“팀장님한테요?”
“내가 허락해 주는 거잖아요.”
“이정인 과장에게는 선우 씨더러 보답하라고 하죠. 저도 팀장님께 나름대로 보답을 하죠.”
“보답이요?”
“3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제가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지도해 주겠습니다.”
“신입사원이요?”
안다정은 약간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혹시 검을 쓰는 친구면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맞아. 주혁이 같은 검사가 가르쳐 주면 실력이 쑥쑥 늘 걸.”
유덕현도 거들었다.
“……나도 검술 잘해요.”
안다정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 *
다음 주 월요일. 공략 1부 사무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나타나면서 입구가 어수선해졌다.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한 명을 제외한 둘은 바짝 긴장해서 몸이 뻣뻣해진 게 눈에 띄었다.
긴장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 1부 2팀 파트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정장 차림이긴 한데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머리는 헤어왁스를 잔뜩 발라서 세워놓았다. 어깨에 망나니 칼처럼 보이는 걸 얹어놓았다. 그리고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연남취검(延南醉劍) 윤정석, 선배님들께 인사 올립니다.”
태원공략 역사상 최고의 또라이가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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