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공 대리님 생각은 어때요?
양준기 전무의 집무실.
“어쩌자고 그놈이랑 대련을 한 거야!”
양준기는 아들에게 호통을 쳤다.
“훼방 놓으라고 하셨잖아요.”
강주혁에게 두들겨 맞고, 죽다가 살아난 아들은 기가 팍 죽어 있었다. 턱이 모두 망가져서 근처에 힐러가 없었으면 평생 빨대로 음식물을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양준영의 턱과 함께 헌터로서의 자존심도 박살이 났다. 강주혁에게 지더라도 어느 정도 잘 싸우다가 졌으면 체면은 차릴 수 있었을 텐데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결국, 상대도 안 되면서 강주혁한테 까불다가 죽도록 얻어맞은 등신이라는 이미지만 생겨버렸다.
“아니, 내가 살살 긁어놓으라고 했지 그놈이랑 싸우라고 했어? 그놈이 어떤 놈인지 몰라서 그래?”
“한 대만 때리면 이긴 걸로 쳐주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지면 회사를 떠나겠대요.”
“멍청아, 그놈이 그냥 욱해서, 생각 없이 그런 얘기를 했을 것 같아? 그 나이에 실력 하나로 팀장까지 올라간 놈이야. 자기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제안을 한 거지.”
양준기는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계속 언성을 높였다.
대개 이 정도로 잔소리를 하면 툴툴거리던 아들이 오늘은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양준기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재능도 신 씨나 강 씨 집안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자신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능이 모자라면 노력이라도 피가 나도록 해야 하는데 아들은 그저 놀기에 바빴다. 아버지의 후광이 없다면 회사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주마.’
이성으로는 아들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의 굴욕적인 패배로 양준기 전무의 위상도 덩달아 추락했으니까.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
“네?”
“시비를 걸라고. 그놈이 팀을 자기 뜻대로 이끌지 못하게.”
“대련에서 졌잖아요.”
“한심한 놈아, 대련에서 졌다고 네가 그놈 말을 고분고분 들어야 할 이유라도 있어?”
양준영은 강주혁과 싸우면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강렬한 공포는 굴욕감과 수치심까지 밀어내 버렸다. 양준영은 아버지의 집무실로 올라오기 전에 강주혁의 자리가 된 책상을 깨끗이 닦아놓는 걸 잊지 않았다.
“계속 트집을 잡고 물고 늘어져. 그놈이 너 때문에 아주 미쳐 버리도록.”
“때리면 어떡해요?”
“이유 없는 구타는 해고감이야.”
“이유가 있잖아요.”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감사실에서 결정해. 그리고 팀원이랑 트러블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그 놈의 완벽한 경력에 오점이 될 거야.”
아버지의 말이 길어질수록 양준영의 낯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말이야 쉽지 그걸 실행에 옮기려고 하니까 겁이 났던 것이다.
“대련을 하자고 하면요?”
“당연히 거절해야지. 거절하면 그놈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계속해서 대련을 거절하면 양준영의 자존심도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팀원들 중에 네 편이 될 사람들을 찾아봐. 강주혁은 백이 없잖아. 전무 아들인 너랑은 다르지. 당근 좀 던져주면 알아서 네 편이 되어줄 거다. 그렇게 해서 팀장을 고립시키는 거야.”
자기 딴에는 묘안이라고 얘기했지만 말하고 나니 걸리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공허진 대리는 강주혁이랑 오래 붙어 다녀서 어려울 거다. 그래도 주선우라면 가능할 거야. 팀장이랑 나이도 동갑인데 막내노릇을 해야 하잖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 옆에서 잘 구슬려봐. 아마 조만간 한 명이 더 들어갈 테니 그놈도 꼬셔보고. 그렇게 한명씩 네 편으로 만드는 가는 거다.”
이미 마음이 꺾여버린 아들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놈에게 약점이 될 만한 게 있는지 찾아봐. 사람이 완벽할 순 없으니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분명 꼬투리 잡을 만한 게 나올 거다. 알겠어?”
“……네.”
아버지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 * *
1부 2팀의 첫 회의.
강주혁은 연장자로서 시범을 보이라면서 양준영에게 첫 공략 계획서를 써오라고 했다. 그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1부 1팀 때 여러 차례 공략했던 곳이라서 자신이 있었다. 양준영이 생각하기에도 썩 괜찮은 계획서였다.
“선우 씨.”
“네. 팀장님.”
“이 계획서에 대한 선우 씨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주선우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강주혁이 저렇게 물어온 건 분명 계획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니까.
여기서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에 대한 첫인상이 결정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요.”
강주혁이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팀장이 되어서 처음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건데도 강주혁은 여유가 넘치는 것 같았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주선우는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공 대리님 생각은 어때요?”
강주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공허진에게 물었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강주혁을 곁에서 지켜봤고 그에게 많은 걸 배웠던 공허진은 사실상 그의 제자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공허진은 양준영의 눈치를 슬쩍 봤다.
회사의 실세이자 신대성의 오른팔이라는 양준기 전무의 아들. 예전의 그녀라면 말도 제대로 못 붙였을 상대였다.
하지만 공허진은 2년 전, 강주혁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양준기 전무가 보는 앞에서 양준영을 반쯤 죽여 놓은 강주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사람. 공허진은 강주혁의 옆에 서려면 자신 역시 그 정도 대범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양준영이 눈을 치켜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겁니까?”
“그냥 입구로 들어가면 안 될까요?”
일행들이 공략해야 하는 17-A47 지역의 지하에는 거대한 납골당이 있다. 몬스터의 대부분은 납골당 안에 있다.
납골당으로 진입하는 입구 부분에는 몬스터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정면 돌파가 어렵다. 가능하더라도 피해가 크기에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고안된 방법이 몬스터가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에 굴을 뚫어서 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안전하게 몬스터를 잡을 수 있지만 그 대신 시간이 더 걸린다.
“공 대리가 이 지역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이 방법이…….”
“잠깐만요, 대리님. 일단 공 대리 말을 마저 들어보죠.”
양준영이 언성을 높이자 주눅이 든 공허진은 강주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상대가 언데드잖아요. 제가 턴 언데드를 쓸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공허진은 강주혁이 안전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효율성을 극한으로 추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1부 3팀 시절에 강주혁이 기지를 발휘해서 예정보다 공략을 빨리 끝낸 후 느긋하게 쉬었던 적이 많았다.
일할 때는 빡세게 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자는 게 강주혁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고착화된 공략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거기에 스펙터가 얼마나 많은데 턴 언데드 한두 번으로 될 줄 알아요?”
흥분한 양준영은 삿대질까지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스펙터는 유령이라는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몬스터. 반투명한 육체 탓에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물리 공격에 완전 면역이다.
헌터들의 공격에는 많든 적든 마력이 들어간다. 무기 자체의 공격력에 거기에 깃든 마력이 더해져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펙터에게는 무기 자체의 공격력이 영향을 안 주며 순수하게 마력 피해만 들어간다. 이런 특징 때문에 맷집이 약한데도 공격을 꽤 오래 버틴다.
게다가 속도도 엄청 빨라서 마법을 쓰려고 하면 금방 내빼버린다. 헌터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난적이다.
“대리님.”
“네?”
강주혁이 입을 열자 양준영의 분노도 사그라졌다. 영혼에 각인된 공포가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공허진 대리의 턴 언데드는 본 드래곤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습니다.”
“본 드래곤이요?”
강주혁의 말에 주선우와 양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게, 마무리는 팀장님이 하셨는데…….”
공허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자기 머리를 손가락을 꼬기 시작했다.
“공 대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죠. 본 드래곤을 잡은 게 2년 전 일입니다. 그동안 공 대리의 영력도 꾸준히 상승했을 테니 스펙터 정도는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겁니다.”
양준영과 주선우는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공략 계획서 쓰기 전에 팀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파악하는 건 기본입니다. 제가 대리님이었다면 공 대리의 턴 언데드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알아봤을 것 같네요.”
“……네.”
양준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공략 계획서 수정해서 다시 올려주세요. 결재 떨어지면 곧바로 들어갑니다.”
공략 당일.
“준비됐어요! 눈 감으세요!”
공허진의 외침에 세 사람이 눈을 감았다.
번쩍!
공허진의 손에서 터져 나온 새하얀 빛이 어두침침한 납골당 안을 환하게 밝혔다.
끄아아악!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던 수백 마리의 스펙터들이 일거에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와.”
주선우와 양준영을 소문으로만 듣던 공허진의 영력을 직접 보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공 대리님, 영력은 얼마나 남았어요?”
“턴 언데드를 다시 쓰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좋아요. 보스를 위해 아끼죠. 지금부터는 정공법으로 상대합시다.”
강주혁은 방패를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일행은 그를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다.
스펙터 다음에 그들을 맞이한 건 무덤 구울이었다. 맹독 구울과는 달리 독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신체적인 스펙은 더 뛰어나다. 시체를 먹어서 몸을 재생시키기도 한다.
서걱! 스걱!
강주혁은 우직하게 덤벼드는 구울들을 베어 나갔다. 정직하게 막고 베는 걸 보면 비슷한 스타일의 전사 헌터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강주혁이 검을 휘두를 때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문을 들었던 양준영을 고개를 갸웃했다.
‘일부러 나한테 안 보여주려는 건가?’
하지만 전투가 치열해지자 양준영은 강주혁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팀장님!”
“마나 고갈?”
“네!”
“뒤로 빠져서 물약 마셔요.”
강주혁은 앞에 있는 적들을 베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계속되는 전투에 양준영의 내공도 주선우의 마나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허진은 후반전을 위해서 영력을 아끼고 있었고.
강주혁 혼자만이 휴식이나 내공의 보충도 없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시발, 내공 운용을 어떻게 하는 거야.’
강주혁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내공의 양이 아무리 높게 잡아도 자신과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강주혁의 내공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공허진과 같은 이레귤러가 아닌데도 그랬다.
‘저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내공만 많은 게 아니라 그걸 펼쳐 보이는 육체도 지칠 줄 몰랐다.
전투가 격렬해지면 호흡이 가빠지는 자신과는 달리 강주혁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한 놈도 없다.’
지금까지 강주혁이 서 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뒤로 넘어오는 적들이 한 마리도 없었다. 상대가 천장과 벽을 자유자재로 타고 다니는 구울인데도 그랬다.
여러 방향에서 적들이 몰려들면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적들을 베어 나갔다. 적들이 많아지면 베는 속도도 빨라졌다. 모든 적이 일합에 쓰러졌다.
보이지 않은 장벽이 적들을 모두 저지했고 팀원들은 그 장벽 뒤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강주혁의 엄청난 지구력과 내공 운용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망할, 진짜 괴물이잖아.’
아버지는 강주혁의 약점을 찾으라고 했지만, 공략에서만큼은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구울을 모두 처치하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니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진형을 짠 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스켈레톤이네요. 선우 씨, 파이어 볼 준비해요.”
“네! 팀장님!”
미치듯이 방방 뛰어다니는 구울에게는 화염구를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떨어지고 뭉쳐 다니는 스켈레톤에게는 다르다.
화르르.
주선우는 머리 위에서 두 손을 모아 화염구를 생성해냈다. 화염구의 열기로 인해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눈앞에서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주선우는 일행을 믿고 마법에 집중했다.
슉!
그때, 화살 하나가 주선우의 팔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으악!”
주선우는 집중력을 잃었고 활활 타오르던 화염구는 힘을 잃고 줄어들었다. 뒤늦게 집중을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후였다.
파스스.
화염구는 완전히 사라졌다. 주선우의 얼굴에 절망감이 번져갔다.
서걱! 스걱!
강주혁은 선두에서 검과 방패로 적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분명 주선우의 마법이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젠장, 뭐 하는 거야! 똑바로 안 해요!”
호통을 친 건 양준영이었다.
‘저 새끼도 지친 건가.’
단 한 번의 공격도 일행에게 넘어오는 걸 허용하지 않았던 강주혁이 처음으로 막지 못한 공격이 나왔다.
양준영은 야릇한 승리감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죄, 죄송합니다!”
주선우는 다시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슉!
이번에도 마법 시전 중에 화살이 그를 스쳐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시전을 마쳤다.
화르르. 콰쾅!
화염구가 적들에게 작열했다.
하지만 이미 나머지 세 사람이 대부분의 적을 죽인 후라 잔당소탕에 그쳤다.
“선우 씨.”
양준영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네, 대리님.”
“잘 좀 합시다. 화살 하나 가지고 그러면 뭘 하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때, 공허진이 끼어들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팀장님이 일부러 보낸 거예요.”
“……?”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