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올라가면 내 책상부터 닦아놔요
공략 1부 사무실.
3팀 파트.
“안 좋은 소식이 있다.”
유덕현 팀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좋은 소식이요?”
나머지 세 사람이 유덕현에게 다가왔다.
“오늘부로 1부 3팀은 해체됐다.”
“네?”
“무슨 말이에요?”
“일단, 허진이는 오늘부로 대리다.”
“제, 제가요?”
공허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그래. 진급이야. 그리고 안 과장.”
“네.”
“너도 오늘부터 안 차장이야.”
“벌써요?”
“그동안 올린 실적에 비하면 느린 거지. 그리고 앞으로 1부 3팀 팀장은 너야.”
“제가요? 팀장님은요?”
유덕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이상하게 웃어 보였다.
“부장 진급 축하드립니다.”
강주혁이 씩 웃어 보였다.
“우와! 축하드려요!”
공허진도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역시 팀장님이 되실 줄 알았어요.”
유덕현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안다정도 감개무량해했다.
“고맙다.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꿨을 거야.”
“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유덕현은 여전히 얼굴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이걸 목표로 열심히 달려오긴 했는데 막상 부장이 된다고 하니까 더럽게 부담되네.”
소심한 유덕현은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권력이 주어지자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지금까지 하신 것처럼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강주혁이 말했다.
“우리 팀이야 너희들이 워낙 잘하고 성실해서 잘 굴러간 거잖아.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럴 리가요. 팀장님이 계셨으니까 잘 굴러간 거죠. 부장이 되셔도 잘하실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장 진급이 유덕현에게 시련이 될 거라는 건 너무나 뻔했다.
공략 3팀의 경우, 능력은 셋 다 회사 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엘리트들인데 아무도 팀장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다.
반면에 1부 내에는 능력도 안 되면서 파워 게임을 하려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1팀 팀장인 정완순과 4팀 팀장인 하민지가 있었다.
둘 다 스스로를 차기 부장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 유덕현의 리더십을 쉽게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그리고.”
유덕현이 강주혁을 바라봤다.
“너랑 허진이는 1부 2팀으로 간다.”
“아, 안 돼요. 저는 어쩌고요.”
안다정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자신만 남겨진다는 사실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새로운 팀원들로 채워질 거야. 다른 부서에서도 몇 명 옮겨오기로 했어. 1부 3팀뿐만이 아니라 2팀도 완전히 개편될 거야.”
신유정은 강주혁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녀도 나름 열심히 했지만 2021년의 2팀 실적과 3팀 실적은 스무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마석 매장지 두 건을 빼고도 3팀은 2팀을 압도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신유정 팀장은 결과에 승복하고 태원을 떠났다.
태원에서의 마지막 날에 강주혁은 던전에 있었는데, 신유정은 사내 메신저로 그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두고 봐요, 신 씨 슬레이어. 언젠가 복수할 거야! (ᗒ ᗣ ᗕ)՞]
신유정 팀장이 떠난 후 1부 2팀은 김욱 과장이 팀장 대행을 맡아 운영되었다. 하지만 팀원이 연달아 두 명이나 퇴사해 버림으로써 팀 자체가 와해 될 상황에 처해 버렸다.
결국, 이번 인사 개편을 맞이해서 기존의 팀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팀을 꾸리기로 결정이 났다.
“앞으로 1부 2팀 팀장은 주혁이가 맡는다. 사장님이 직접 결정하셨대.”
“축하해요. 강 과장이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와! 잘 됐다!”
안다정과 공허진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근데 강 과장이면 최연소 팀장 아닌가요?”
“주혁아, 너 올해로 서른이지?”
“네. 부장님.”
“그럼 역대 최연소 팀장이네.”
아무리 빨라도 팀장은 30대 중반은 넘어야지 될 수 있다.
신유정처럼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지만 그건 그녀가 로열패밀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도 공식적인 직함은 어디까지나 팀장 대행이었다.
하지만 강주혁은 정식 팀장이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근데 넌 어째 태연하다? 부담 안 돼?”
“많이 됩니다.”
강주혁은 영혼 없이 대답했다.
“표정은 전혀 안 그런데요?”
“맞아요. 팀장님 표정이 그대로예요.”
“언제쯤 네가 놀라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걸 볼 수 있을까?”
“왜 그러세요. 겉으로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저도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강주혁은 어색한 연기를 했지만, 부담은커녕 기대만 되었다. 자신의 팀을 가지는 건 오랫동안 그의 꿈이었으니까.
“그래? 이걸 들으면 더 부담스러워할 거 같은데…….”
“뭔데요?”
“1팀의 양준영 대리가 2팀으로 옮겨갈 거야.”
양준영을 2팀으로 보낸다는 건 양준기 전무의 주장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팀장이니 보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근거였다.
양준기가 아들을 이용해 강주혁을 흔들어놓으려 한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윤철 사장은 신태원 회장 앞에서도 할 소리를 다하는 강주혁의 대범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승낙했다.
강주혁이 팀장을 맡기에는 나이나 경력이 너무 이르다면서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기에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다.
“어서 오십시오!”
강주혁이 공허진과 함께 2팀 파트로 넘어오자 양준영이 큰소리로 외쳤다. 소리는 컸지만 빈정대는 투였다.
양준영은 미리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가 하필 팀장들이 쓰던 가장 안쪽 자리였다.
게다가 그는 몸을 뒤로 젖힌 채 구두를 신은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뭐해요, 선우 씨. 신임 팀장님께 인사 안 드리고.”
“안녕하세요. 팀장님.”
4팀에서 2팀으로 넘어온 주선우 사원이 강주혁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들어왔지만, 강주혁은 팀장이 되었고, 주선우는 여전히 사원이었다.
하지만 2년 전 합동 공략을 하면서 강주혁의 실력과 인품을 경험한 주선우는 강주혁의 예외적인 진급을 고깝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강주혁 밑에 들어가서 한 수 배울 수 있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선우 씨는 공략팀 체질이 아닌데…….’
오히려 강주혁이 주선우를 껄끄럽게 여겼다.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실력은 좀 모자랐으니까.
공격 마법보다는 보조 마법을 더 잘 다뤘기에 공략팀보다는 지원팀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했고.
보조 마법도 전투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강주혁에게는 거의 모든 보조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리치의 반지가 있었다.
사실상 이 팀에서도 주선우는 잉여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강주혁은 주선우와 굳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는 양준영에게 다가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원공략 역대 최. 연. 소. 팀장님.”
양준영은 앉은 채로 빈정거렸다.
“꺼져요. 여긴 내 자립니다.”
강주혁이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자 양준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더니 피식 웃었다.
“말씀이 지나치군요. 주혁 씨, 아, 이제 팀장인가. 강 팀장도 잘 알겠지만 내가 3년이나 일찍 들어왔어요. 직급도 중요하지만, 이 바닥에는 엄연히 위계라는 게 있잖습니까. 우리가 선후배 사이라는 걸 확실히 해두자고.”
“이봐요. 양준영 대리.”
강주혁이 ‘님’자를 붙이지 않자 양준영이 정색했다.
“내가 인턴이었을 때도 대리였던 것 같은데 아직도 대리군요. 양 대리가 제때 진급만 했어도 족보가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선배 대접 못 받는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선배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어떻습니까?”
“풉!”
파트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 미안해요.”
3팀 팀장 안다정이 낸 소리였다. 강주혁은 빙그레 웃더니 다시 양준영을 바라봤다.
양준영은 책상에서 다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주혁 앞에 섰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안타깝게도 양준영에게는 그 이상의 액션을 취할 만큼의 배짱이 없었다.
“할 말 있어요?”
“그래도 내가 업계 선배인데 기본적인 예의는 좀 지킵시다.”
양준영이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내가 선배인데’ 밖에 없었다.
“나는 실력 지상 주의자라서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나한테 선배 대접 받고 싶으면 실력으로 증명해요. 제가 기회를 드리죠. 점심시간에 나랑 대련하는 겁니다. 어때요?”
양준영의 눈이 떨렸다.
그는 자신이 강주혁의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그런 헌터지만 강주혁은 규격 외의 괴물이니까.
하지만 이미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꼬리를 말면 평생 동안 겁쟁이라고 무시를 당할 것이다.
“겁나는 모양이네요. 좋습니다. 체급을 맞춰 드리죠. 양 대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공격에 성공하면 제가 회사를 떠나죠. 어때요?”
“팀장님!”
옆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주선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있던 공허진이 주선우의 소매를 잡아끌어서 다시 자리에 앉혔다. 강주혁이 자충수를 뒀는데도 그녀는 놀랄 만큼 태연했다.
“허,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이겨도 승자 대접을 못 받는다. 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나을 정도로 비참해질 것이다.
하지만 승리할 경우, 강주혁을 몰아낼 수 있다. 자기가 했던 말을 엎는 것만큼 치졸한 짓은 없으니까. 나가지 않더라도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장난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 * *
점심시간.
강주혁은 공허진과 주선우를 데리고 가서 밥을 먹고 들어왔다. 그리고 12시 50분쯤 수련장에 도착했다.
소문을 들은 수십 명의 사람이 강주혁과 양준영의 대결을 구경하러 몰려왔다.
“전투복은 안 입습니까?”
양준영은 초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강주혁은 양복을 입은 상태였다. 넥타이도, 시계도, 심지어 단추도 풀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반면에 양준영은 던전에 들어갈 때처럼 전투복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강 팀장이 이기겠지?”
“질 수도 있지. 내기 조건이 다르잖아.”
“내기 조건?”
“한 대만 제대로 때리면 이긴 걸로 쳐주겠다고 했대.”
“뭐? 그건 강 팀장한테도 무리일 텐데.”
모여든 사람들은 싸움결과에 대해서 한 마디씩 늘어놓았다.
하지만 입방아를 찧어대던 사람들도 양준기 전무가 나타나자 입을 닫아버렸다.
“시작하죠.”
강주혁이 양준영에게 말했다.
“검은 어디에 있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뭐요?”
“점심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빨리 덤벼요.”
“방금 한 말, 후회하게 될 겁니다.”
양준영은 곧장 강주혁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아버지에게 배운 장법을 쓰려는 것이다.
장법은 내공을 넓게 확산시켜서 적을 타격하는 공격법 검이나 주먹에 비해 공격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공격 범위는 넓다.
일단 장법을 사용하면 전방에 있는 적이 그걸 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강주혁은 분명 한 방만 맞으면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했고.
‘건방 떨었던 걸 후회하게 해주마.’
양준영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내공이 손바닥을 통해 퍼져나가려는 찰나, 한참 떨어져 있던 강주혁이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그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먹을 양준영의 손바닥에 꽂아 넣었다. 잠시 당황했던 양준영은 회심의 피소를 지었다.
‘멍청한 새끼, 권법도 제대로 안 배운 놈이 권으로 장을 막아?’
가위바위보와 마찬가지로 권법은 장법에 약하다. 넓게 퍼져나가는 장법의 내공이 동그랗게 뭉쳐져 있는 권법의 내공을 감싸 안으면서 피해를 상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장법을 쉽게 이길 수 있는 건 지법이나 검법이다. 권법으로 장법을 이기려면 내공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야한다.
하지만 강주혁과 양준영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적어도 양준영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쾅!
“윽!”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강주혁이 내지른 주먹이 양준영의 장법과 함께 그의 팔까지 부숴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악!”
팔 안의 뼈들이 조각났다. 일부는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양준영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다.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멍청한 놈.’
강주혁은 예상대로 움직여 준 양준영을 보고 조소를 머금었다. 상성의 우위를 노리고 곧바로 장법을 펼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맞았다.
장법이 권법보다 유리한 건 맞다. 하지만 그것도 장법이 제대로 펼쳐졌을 때의 얘기. 강주혁은 장법이 펼쳐지기도 전에 주먹으로 그것을 끊어버린 것이다.
만약 강주혁이 양준영이었다면 장법을 쓸 적절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기본기를 쓰면서 간부터 봤을 것이다. 하지만 양준영에게는 그 정도의 전투 센스가 없었다.
퍽! 퍽! 퍽!
강주혁은 부러진 팔을 잡고 울먹거리는 양준영에게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닿을 때마다 피가 터지고 살이 터졌다.
“힐, 컥!”
죽음의 공포를 느낀 양준영은 힐러를 부르려고 했으나 강주혁은 그의 턱을 후려갈겨서 말을 막았다.
“기, 크흡!”
기권을 외치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턱에 주먹이 꽂히면서 말이 막혔다.
“컥!”
강주혁은 양준영의 복부에 주먹을 꽂은 후 뒤로 물러났다. 양준영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쿠에에엑!”
양준영이 점심때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쿵!
그리고는 자기가 쏟아낸 토사물 위에 쓰러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처참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끝났습니다.”
강주혁은 힐러를 불렀다. 그러곤 턱뼈가 부서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양준영에게 말했다.
“올라오면 내 책상부터 닦아놔요.”
강주혁은 구경꾼들을 향해 다가갔다. 양준기 전무가 있어서 아무도 박수를 치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강주혁은 하얗게 질려 있는 양준기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한 후 수련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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