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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92화 (92/202)

92화 근데 안 과장님도 신태훈 때리지 않았나요?

태원그룹 본사 회장실.

“앉거라.”

신태원 회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저 의자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았다.

“네. 회장님.”

신태훈은 소파에 앉았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자리가 불편했다.

“왜 그랬느냐?”

“죄송합니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

신태원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냉랭했다.

“승산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후퇴하자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네가 도망치기도 전에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겠지. 4부 4팀 사람들이 네 사람인 것 같으냐?”

“……제가 실수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네가 부하직원들에게 손찌검을 한 게 전부 여덟 번이었다. 다른 사람의 실적을 가로챈 건 스물세 번이고. 내가 이걸 누구한테 들었을 것 같으냐?”

신태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회장의 손자이자 부회장의 아들, 그걸 빼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뭐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고 다녔지.”

“면목 없습니다.”

“4부 4팀 사람들을 불러서 네 거취에 대해서 물어봤다. 내 눈치 보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고 했더니 다들 네가 떠나기를 원하더구나.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엄경일이나 이정인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던 신태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

“네가 구타를 하고 네 잘못을 뒤집어씌우기까지 했던 그 가여운 아이는 1부 3팀으로 가더니 물 만나 물고기가 되었더구나. 너는 그 아이를 팀 닥터 정도로 생각했지만, 강주혁 대리는 같은 사람을 S급 힐러로 키워냈지.”

할아버지의 말이 칼날이 되어 손자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대련에서도 졌고,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도 졌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문제에서도 졌고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는 문제에서도 졌다. 최우수 사원이라는 놈이 들어온 지 6개월도 안 된 녀석에게 모든 면에서 완패했지. 네가 그 타이틀을 차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신태훈은 억울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강주혁은 그냥 규격 외의 괴물이었다. 그런 사람과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당했다. 만약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잘할 자신이 있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이번 해에는 태원공략이 신광공략을 앞지를 거다.”

신태훈은 그 말을 듣고 흠칫하고 놀랐다.

새로 발견한 마석 매장지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지.”

신태훈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이 내 자식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 정말로 통탄스럽구나. 정작 내 피를 물려받은 놈들은 할아비 이름을 팔아가면서 얼굴에 똥칠이나 하고 다니지.”

“정말 죄송합니다.”

“길게 말하지 않으마. 업계를 떠나라.”

“회장님!”

“나이 서른이면 다른 일을 배우기에 늦지 않은 나이다.”

신태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절망감에 눈시울이 붉어 왔다.

태원은 공략이 만들어낸 그룹이다. 그 공략에서 밀려난다는 건 사실상 후계경쟁에서 아웃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회장이 되면 형을 꺾고 차기 회장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던 신태훈이었다.

헌터로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지 못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태훈아.”

신태훈은 고개를 들었다. 신태원은 의자를 돌려 손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할아버지는 무척 슬프고 지쳐 보였다.

“이 어리석은 것아.”

신태원은 한스러운 얼굴로 신태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할 상대는 내가 아니라 네 동료들이었다. 그 눈밭에서 지금처럼 했다면, 네가 상처주고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그들이 너를 가엽게 여겨 없던 일로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애걸복걸하는 신태훈을 보고 신태원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 역시 그동안 손자가 꽤나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손자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네 처지를 바꿀 수 없다. 나 역시 헌터들 중 한 사람이지 헌터들의 주인이 아니다. 내가 너를 파문시킨 게 아니라 헌터들이, 업계 전체가 그렇게 한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신태훈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그가 신처럼 생각해왔던 할아버지의 입에서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네가 고집을 부려서 헌터로 남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내 눈치를 봐서 너를 용서하는 척만 하겠지. 돌아서면 동료를 버린 놈이라고 욕을 하고 등신 취급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신태훈은 그제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신태훈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금니를 꽉 깨문 탓에 뺨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신태훈은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태원은 그런 손자를 보는 게 힘들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 * *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신대성 부회장의 개연별장.

별장이 있는 산 전체가 신대성의 소유로 철조망이 처져있고 경비가 순찰을 돌고 있어서 꼭 군부대처럼 보였다.

사신무극검 습득의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시달리고 있는 신대성은 이곳에서 잘 나가지 않았고 대부분의 일도 이곳에서 처리했다.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별장을 찾았고 그는 곧장 서재에 있는 신대성에게 안내되었다.

“아드님 일은 유감입니다.”

사내는 인사도 없이 대뜸 말했다.

특유의 빈정거리는 웃음 때문에 조롱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었다.

신대성은 노기를 띤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건들거리기만 할뿐 표정을 고치지 않았다.

“용건이 뭐요?”

“우리 주혁이가 비급을 손에 넣은 것 같습디다.”

신대성을 눈을 치켜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강주혁이 아드님과 대련할 때 양손대검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신태훈이 강주혁과 붙었다가 망신을 당한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고작 그것 때문에?”

“부회장님도 알다시피 그 놈은 오랫동안 한손 검만 사용해왔습니다. 주작검밖에 몰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 달 전부터는 양손검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양손검으로는 주작검을 제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비급을 손에 넣은 게 분명합니다.”

사내의 말에 신대성은 턱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경산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그때가 딱 몇 달 전이었다. 공교롭게도 강주혁이 대검을 쓰기 시작한 시점과 딱 맞아 떨어졌다.

“회장님이 그놈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추측만으로는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럼 일단 간부터 보시죠.”

“간을 본다고요?”

“일단, 그놈이 정말로 비급을 습득했는지부터 알아보는 겁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그놈이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끌어낼 만한 상황을 조성하면 되죠.”

“구체적으로 말해요.”

“제가 직접 상대하겠습니다.”

“당신이?”

“비급을 익혔는지를 확인하려면 비급을 알고 있는 사람이 봐야죠.”

“그놈은 이미 보통이 아닙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부회장님께서 도와준다면 일이 좀 더 쉬워질 수도 있죠.”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부회장님이 소장하신 검들 중에 참마검(斬魔劍)이란 놈이 있지 않습니까?”

참마검은 이름처럼 마를 베는 검이다. 악마종 몬스터에게 추가 피해를 입히고 그것들과 관련된 주문까지 파괴할 수 있는 검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사용하면 그저 뛰어난 명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검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요?”

“회장님께서 쓰시던 명검이니까요. 그 검이 있으면 그놈이 비급을 먹었는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도대체 그 검이 왜 필요한 거요?”

“자기네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강 씨 집안의 본질은 마(魔)입니다. 마를 참하는 검을 그놈에게 사용한다면 속에 꽁꽁 숨겨놓은 걸 모두 끄집어낼 수 있을 겁니다.”

“일이 잘못되면 내 신분이 노출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으니까요. 이 세상에 저보다 강 씨 집안사람들을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놈을 죽이는 게 아니라 청룡검을 익힌 건지만 알아내면 됩니다. 적당히 싸우다가 물러나죠. 별 일 없을 겁니다. 그놈이 이 검을 알아볼 일도 없고요.”

사내는 자신감이 넘쳤다.

덥수룩한 수염과 산발한 머리가 꼭 노숙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대성은 그가 엄청난 실력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신대성은 위험한 도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성공했을 때 얻는 것에 비해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이 너무 컸다.

하지만 신대성은 비급이 없다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정보를 얻어야했다.

“이건 당신 아이디어입니까?”

“물론 아니죠. 제가 섬기는 분이 시키신 일입니다.”

김동훈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일이 잘못되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할 겁니다.”

신대성은 서재의 한구석에 걸어두었던 참마검을 향해 걸어갔다.

* * *

태원공략 공략 1부 사무실.

“신태훈 과장, 퇴사했대.”

잠시 자리를 비웠던 유덕현이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강주혁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그도 상사들에게 어떻게 신태훈이 도망치게 되었는지를 들었다.

만약 그가 본 드래곤을 5분만 일찍 잡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월척을 낚은 셈이다. 하늘이 도와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회장님 손자라도 탈주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맞아. 그런 건 회장님도 커버칠 수 없지. 그래서도 안 되고.”

“잘됐네요. 그런 쓰레기는 던전에 들어가면 안 돼요.”

안다정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안 과장답지 않게 표현이 세네.”

“허진 씨한테도 몹쓸 짓을 했잖아요. 그게 무슨 헌터에요. 깡패새끼죠.”

안다정이 거친 표현을 쓰면서 열을 올리자 유덕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저, 저는 괜찮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공허진이 말했다. 그녀는 신태훈이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그가 자신에게 보복하는 건 상관없지만 1부 3팀 사람들까지 괴롭힌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만약 신태훈이 어떤 식으로든 해코지를 한다면 1부 3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퇴사할 생각까지 했었다.

“참, 허진아. 감사실에서는 뭐래?”

“……감봉이래요.”

공허진은 무슨 상이라도 받은 사람마냥 부끄러워했다.

신태훈이 탈주로 인해 중징계를 받는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신태훈을 벌하기 위해서 공허진과 신태훈 사이에 있었던 일을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공략 1부 3팀은 공략보고서는 절대 조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공허진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고.

결국, 공허진은 상사폭행에 대한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신태훈이 공허진에게 저질렀던 일들이 있었기에 정상참작을 받아서 감봉 선에서 끝났다.

“안타깝네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고 처벌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팀원이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강주혁은 그런 분위기를 깨고 싶었다.

“근데 안 과장님도 신태훈 때리지 않았나요?”

강주혁의 지적에 유덕현이 눈을 빛냈다.

“맞다. 직급은 같아도 상사잖아. 왜 안 과장은 감봉이 아니지?”

“그, 그건 그냥 분위기상 그런 거죠.”

“허진이도 분위기상 그런 거잖아.”

유덕현은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저는 헌터 업계의 일원으로서 헌터답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처벌을...”

당황한 안다정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허진 씨도 헌터 업계의 일원으로서 헌터답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처벌을 내린 거 아닙니까? 그렇죠, 허진 씨?”

강주혁도 거들었다.

“네? 아, 네.”

공허진은 얼떨떨해하면서 강주혁과 안다정을 번갈아 가면서 봤다.

안다정이 도끼눈을 뜬 채 강주혁을 째려봤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아, 알았어요. 그냥 열 받아서 때렸어요. 됐죠?”

“허진아, 너도 열 받아서 때린 거지?”

“네. 저도…….”

“한 대 때린 사람은 감봉도 안 당하는구나. 나도 고 재수 없는 놈 한 대만 때릴 걸. 우리 허진이는 참 억울하겠다.”

“아오, 진짜! 알았어요! 내 월급 떼서 허진 씨 주면 되잖아요!”

폭발해 버린 안다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거렸다.

유덕현과 강주혁은 같이 킬킬거렸다.

“저…….”

공허진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왜?”

“인사팀에서 인센티브 정산 끝났다고 메일 왔어요.”

그 순간, 3팀의 파트뿐만이 아니라 1부 사무실 전체가 썰렁해졌다.

척! 척!

몰려든 사람들이 파티션에 팔을 걸친 채, 3팀 사람들이 메일을 확인하기만을 기다렸다.

“뭐, 뭐 하는 겁니까?”

당황한 유덕현이 사람들을 둘러봤다.

“팀장님, 빨리 확인해 보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이번에는 얼마에요?”

“좋겠다. 3팀은 회사 다닐 맛 나겠어.”

“규모가 더 크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수십억은 받겠지?”

정확한 액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번 마석 매장지 때 관련자들이 수십억의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에 준하는 결과물을 발견했으나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얼마를 받든 간에 3팀이 한 턱 쏘는 겁니다.”

“쏘기는 뭘 쏴! 이놈들아!”

그때, 임재경 부장이 나타나 호통을 쳤다. 몰려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안타깝지만 3팀이 쏘는 회식은 일주일 후로 미뤄야겠다.”

임재경 부장이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흔들어댔다.

“웨이브 데이 팀별 배치표 나왔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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