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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81화 (81/202)

81화 물론입니다

강주혁과 헤어진 임재경 부장은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미친 새끼.’

양준기 전무가 벌인 짓을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양준기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임재경을 쓰다가 버리는 카드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한테 말도 없이 공략 1부 사람들을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팔 것.’

그동안의 충절이 헛짓거리가 되었다는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임재경은 쓰라린 속에 소주를 부어 넣은 후 한숨을 쉬었다.

‘유철아, 결국 나도 네 전철을 밟고 있구나.’

강주혁만큼은 아니지만 진유철도 걸출한 헌터였다. 그래서 신대성 쪽 상사들이 일찌감치 눈독을 들였다.

진유철이 양준기가 시킨 일을 하다가 광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유철의 부사수였던 유덕현은 그 일로 겁을 집어먹고는 고집스럽게 중립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사리면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나저러나 목이 날아갈 처치라면 모험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원래 야심가이기도 하고.

임재경은 오히려 그 사건 이후로 더 열심히 충성을 바쳐왔다. 양준기는 그런 임재경을 기특하게 여겼고 충성의 대가를 지불해 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무슨 생각으로 신 과장을 건드린 거야.’

임재경은 신대성과 강주혁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양준기의 타깃이 강주혁이 아니라 신유정이라고 생각했다.

신유정은 신대승의 딸. 신대성 라인 입장에서는 적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죽여야 할 만큼 위험한 적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신태원 회장이 양준기를 반쯤 죽여 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아무리 회장이라고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정을 알게 되니 회장이 오히려 대인배로 생각되었다.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인가.’

양준기는 태원공략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다. 태원공략에서 쫓겨나도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신대성의 오른팔이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문제겠지.’

아무리 그래도 아끼는 손녀를 위협한 후레자식이다. 처벌이 이 정도에서 끝났다 하더라도 양준기에게 미래는 없다. 신태원 회장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회장의 은퇴 시점도 문제였다.

양준기는 회장이 오늘내일하는 것처럼 얘기하면서 미래를 거들먹거렸지만, 임재경이 보기에 신태원은 아직 정정했고 앞으로 20년은 더 살 것 같았다. 죽기 전에 물러날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년은 더 회장으로 군림할 것이다.

‘임원이 되기도 전에 내 목이 날아가겠다.’

직장인으로서 임재경이 바라는 건 딱 하나. 최대한 오래 버티면서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것. 하지만 양준기가 하는 짓들을 보면 자신에게도 언젠간 불똥이 튈 것 같았다.

양준기는 신태원에 의해 쫓겨나더라도 신대성이 다시 불러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임재경에게도 같은 소리를 할 것이다. 실적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신대성에게 충성만 하면 된다고. 그럼 언젠가 보답 받게 될 거라고.

하지만 임재경은 그런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애초에 힘에서 우월한 상대가 약속을 곧이곧대로 이행할 거라고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머저리 같은 새끼, 죽을 거면 혼자 죽어라.’

신대성을 위해서 회장에게 찍힐 만한 짓을 했다가 잘리면 절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취직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도 이방인이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임재경은 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을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신대승도 좀 그런데.’

양준기를 배신하고 갈 만한 곳이라면 신대승 라인밖에 없다. 마침 공략 1부에 신유정 과장이 있으니 얘기가 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대승 또한 좌천을 당했으니 미래가 어두운 건 마찬가지다. 신대승 라인과 척을 져왔던 세월을 생각하면 그쪽에 붙더라도 푸대접받을 게 뻔했다.

무엇보다도 이지혜와 김현우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걸 생각하면 아무리 아쉬워도 손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남은 건 이윤철 사장인가.’

자타공인 태원공략의 일인자. 가망성이 없는 신대길을 따른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아쉬워서 귀인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윤철은 상당히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양준기나 김재후처럼 추잡스러운 짓을 안 꾸민다.

그저 밑에서 우직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신태원 회장이 직원들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도 10년은 가겠지.’

신태원 회장이 집권하는 동안은 이윤철도 안전하다. 강주혁과 공략 3팀의 힘을 빌려 매출을 올린다면 임원도 달 수 있다. 신태원 회장이 물러나면 잘리게 되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신대성 밑에 있으면 10년을 더 버티는 게 가능하겠지만 그 전에 쫓겨나거나 진유철처럼 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았다.

‘그때까지 바짝 벌어나야겠군.’

자신의 예상 정년이 반 토막이 났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래도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주사위가 던져진 것이다.

다음 날, 임재경은 강주혁을 데리고 이윤철을 찾아갔다.

마침 양준기가 순시를 위해 오전 내내 던전에 들어가 있는 날이었기에 그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어차피 양준기도 알게 될 일이지만 늦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이윤철은 강주혁의 제안을 보고는 크게 기꺼워했다.

직접적으로 라인을 갈아타겠다는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윤철은 임재경이 양준기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날 오후.

이윤철 사장의 요청으로 일정에 없던 임원 회의가 개최되었다. 던전에서 돌아온 양준기는 갑작스러운 회의소집에 짜증을 내면서 대회의실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강주혁 대리?”

“안녕하십니까. 전무님.”

강주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양준기에게 인사했다.

“강 대리가 여기에서 뭐 하는 겁니까? 회의 준비는 비서실에서 할 텐데.”

“사장님께서 발표하라고 하셨습니다.”

“발표요?”

“제가 마석 매장지에서 발견한 제단을 이용해서 20-A12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공략 4부 4팀이 공략에 실패했던 지역입니다.”

양준기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걸 여기서 발표한다고요?”

“네. 전무님.”

“강주혁 대리가 직접?”

“네. 전무님.”

강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기는 다른 임원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그 못지않게 황당해했다.

‘멍청한 새끼.’

양준기는 임재경이 강주혁을 제대로 달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자기 아이디어를 빼앗긴 강주혁이 분에 못 이겨 이윤철을 찾았을 것이다.

이윤철은 이걸 공론화함으로써 공략 4부가 독식하는 걸 막으려는 것이고. 하지만 절차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군요. 왜 상사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했습니다. 안다정 과장에게 얘기했고, 유덕현 팀장의 허락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임재경 부장과 함께 사장님을 뵈었고요.”

양준기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임재경 부장이요?”

“네. 전무님.”

“……알겠습니다.”

양준기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양준기를 따르는 신대성 라인의 임원들도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그들 모두 임재경의 돌발행동에 경악스러워했다.

‘이 새끼가 감히 내 등에 칼을 꽂아?’

양준기는 이를 갈았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김재후 부사장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신대성 라인의 분열을 보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설마 저쪽에 붙은 건가.’

그렇다면 이윤철이 아니라 김재후를 찾아갔어야 했다.

‘이 사장에게 붙었을 리는 없는데.’

임재경의 행보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무엇을 꾸미고 있든 간에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양준기는 자신을 따르는 임원들을 쭉 훑어보았다. 여전히 김재후 쪽보다 머릿수가 더 많았다. 이윤철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 회의에서는 자신이 반대하는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잠시 후, 이윤철 사장이 회의실에 나타났다. 그는 어째서인지 상석이 아니라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다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이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르신 겁니까?”

양준기가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면서 물었다. 이윤철은 빙그레 웃어 보이더니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나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네.”

바로 그때, 대회의실에 신태원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공을 갈무리하고 있어서 가까이에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대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태원은 가까이에 있는 몇 명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더니 발표를 위해서 혼자 앞에 나와 있던 강주혁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군.”

“강녕하셨습니까.”

“대리 진급 축하하네.”

신태원이 강주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주혁은 그 손을 잡고는 잠시 신태원을 마주봤다. 그를 바라보는 두 눈이 심연처럼 깊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강주혁은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대단한 안건을 가지고 온 건지 궁금하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

강주혁의 패기 넘치는 발언에 신태원은 이를 드러내면서 웃어 보였다.

“그러지.”

신태원이 발걸음을 옮기자 임원들이 좌우로 물러서면서 길을 내주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 상석에 앉았다.

“다들 앉지.”

신태원의 말에 강주혁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이윤철 사장이 아주 재미있는 건수가 있다면서 나더러 꼭 들리라고 하더군. 마침 시간이 남아서 잠깐 들렸네. 겸사겸사 자네들 얼굴도 보고 말이야.”

“기별을 주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김재후 부사장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망할 노인네가 노망이 나서 바쁜 사람들 귀찮게 한다고 속으로 욕하고 있다는 거 아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거추장스러운 인사는 생략하고 곧바로 시작하지.”

“네, 회장님. 강주혁 대리.”

이윤철이 강주혁에게 사인을 줬다.

“네, 사장님.”

강주혁이 발표를 시작했다.

이윤철은 강주혁의 아이디어를 접한 후 그것을 회의에서 보여줄 발표 자료로 만들 것을 명했다. 강주혁은 사무실로 내려가서 30분 만에 자료를 만들어서 이윤철에게 보여주었다.

애초에 내용 자체가 많지 않았기에 형식만 제대로 갖추면 됐다. 회귀 전의 관록이 있는 강주혁에게는 휴지로 코를 푸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강주혁이 만든 자료를 본 이윤철은 곧장 회장에게 회사에 한 번 들려줄 것을 청했고 마침 시간이 비어 있었던 신태원은 곧바로 회사를 찾았다. 임원들을 소집한 것도 사장이 아니라 회장이었다.

‘대리 나부랭이가 회장 앞에서 발표를 해? 저 인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양준기는 강주혁과 이윤철을 번갈아 보면서 오만상을 썼다.

반면에 이윤철은 강주혁이 제대로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태원이 이 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일 거라는 확신도.

처음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때 미심쩍은 내용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강주혁은 모든 질문에 대해서 나름의 답변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얻어 걸린 걸 가져온 게 아니라 자기가 찾은 아이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급조한 것처럼 보이던 발표 자료도 찬찬히 뜯어보니 형식적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회장님 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게다가 회장님이 특히 좋아하는 직원이니 기회를 줘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역시.’

이윤철의 기대 대로 강주혁은 회장과 임원들 앞에서도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해본 사람처럼 전달력도 좋았다.

“이상입니다.”

짧은 발표를 마친 강주혁이 고개를 숙였다.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발표였기에 양준기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그는 조심스레 신태원의 얼굴을 살폈다. 의외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양준기는 희망을 품었다.

“발표 잘 들었네. 질문할 사람 있으면 한번 해봐.”

신태원 회장이 말했다. 이건 임원들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다.

“지금 여기에서 말한 건 어디까지나 추측이 아닙니까?”

양준기는 곧장 포문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강주혁 대리는 추측만 가지고 공략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겁니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겁니다. 20-A12 지역은 지난 가을에 있었던 공략이 실패로 끝난 후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임재경에게 강주혁의 아이디어를 전해 들은 후 양준기는 신태훈을 만나 20-A12 공략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신태훈은 공략 자체를 언급하기를 꺼렸고, 가봤더니 별거 없더라는 식으로 둘러댔다. 공략 보고서에도 그렇게 썼고. 실패의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서 공략 대상의 가치를 축소해 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4부 4팀이 작성한 공략보고서는 20-A12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로 취급되고 있었다. 반면에 강주혁의 주장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린다 해도 결국은 해석이 불가능한 문헌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양준기는 이것을 이용해 이번 건을 엎어버린 다음, 회장이 이 일에 대해서 무관심해질 때쯤, 신태훈에게 떠먹여 줄 생각을 했다.

“공략 4부 4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 지역은 공략할 가치가 없습니다. 설사 그 요새에 건질만 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합니다. 마석 매장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추측 아닙니까. 그리고 공략이야 그 제단이 없어도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서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양준기의 말에 다른 임원들도 웃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강주혁의 발표는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으니까.

헌터들이 매번 던전 안의 모든 지역을 샅샅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 정찰 후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확신이 서면 그냥 내버려 두는 지역들도 많다. 20-A12도 그럴 가능성이 ㅋ다.

“할 말 있나?”

신태원이 빙그레 웃으면서 강주혁을 쳐다봤다. 강주혁은 담대하게도 회장을 보면서 마주 웃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잠깐 이 자료를 봐주시겠습니까?”

강주혁은 발표 때 보여주지 않았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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