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이번에도 나오려나
회식을 끝내고 집에 들어온 강주혁은 본격적으로 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주택의 시세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대략적인 정보만 가지고 목돈을 지출할 수는 없었다.
강주혁이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어디에 게이트가 생기느냐, 그리고 그 게이트가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가지느냐다.
그런 정보들은 회사 내에서도 꾸준히 회자가 되기 마련이다. 게이트를 구매하는 건 결국 공략회사들이니까. 사업팀에서 오가는 얘기들이 공략팀으로 수시로 흘러들어 왔고, 몇 군데는 파견 임무로 직접 가보기도 했다. 그만큼 기억이 정확했다.
‘임야 쪽이 낫겠지.’
도시에도 게이트가 생긴다. 하지만 게이트가 생기는 땅을 선점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특히, 도심이면 지금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부어도 건물 한 채를 사는 게 어렵다. 강주혁에게 필요한 건물이 매물로 나올 확률도 적고.
물론, 건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게이트에 비해서 투자 대비 수익이 적었다.
강주혁도 게이트가 대충 어느 동네에 생기는지는 알지만 정확하게 어떤 지점인지까지는 모른다. 자칫 잘못하면 게이트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을 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임야를 구매하면 그런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 일단 싸기 때문에 1억 정도만 투자해도 수백 평의 땅을 살 수 있다. 그만큼 게이트가 그 안에 포함될 확률도 높아지고.
1억을 투자해서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강주혁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배팅을 하기로 했다.
‘있다.’
임야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해 보니 마침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화천 쪽에 강주혁이 찍어놓은 지역이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경기도 화성 쪽 게이트의 경우, 마석 매장량이 풍부해서 35억쯤에 거래되었었다. 임야가격은 1억.
강원도 화천의 경우에는 대략 10억 정도에 팔렸던 아티팩트가 나왔었다. 임야가격은 2천만 원. 둘 다 2, 3년 내에 결과를 볼 수 있다.
‘주말에 가서 확인만 하면 되겠군.’
둘 다 파견으로 다녀온 곳이라서 근처에 가면 정확한 위치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연락이나 한번 해볼까?’
투자를 결정한 강주혁은 기쁜 소식을 나누기 위해 형에게 전화를 했다.
“웬일이냐? 늦은 시간에?”
“목소리 듣고 싶어서.”
“징그러운 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좋은 일이 있었지. 회사 사람들이랑 회식하면서 술 한잔했어.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아지니 가족들 생각이 나네. 엄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보고 계셔. 바꿔줘?”
강주혁의 마음에 온기가 번져갔다.
예전 같았으면 식당에서 일하고 계실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늦은 시간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좀 있다가. 집은 따뜻해?”
“말도 마라. 난방 조금만 틀어도 더워.”
가족들이 이사를 간 집은 지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신축 아파트였다. 달동네 쪽방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살기에 편했다.
“관리비 아낀다고 난방 안 틀고 버티는 거 아니지?”
“나만 있으면 그렇게 하겠는데 엄마 때문에 안 되지.”
몇 년 동안 극도의 가난을 경험한 가족들이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강주혁은 가족들이라도 누릴 걸 누리면서 살기를 바랐다. 이제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압도적으로 많아질 테니까.
“잘했어. 조금만 추워도 틀어. 관리비 걱정하지 말고. 옷은 좀 샀어?”
“네가 하도 뭐라고 해서 엄마랑 백화점 한번 돌았다. 이제 엄마도 좀 부잣집 아줌마 같더라.”
“어색해하지?”
“잘 입지도 않지. 입을 일도 없고.”
“우리 어릴 때 알고 지내던 친구분들이랑 좀 만나시면 좋을 텐데.”
“연락하기가 쉽지 않나 봐.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잖아.”
화곡리에 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강 씨 집안은 그들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대구로 이사를 온 후 어머니는 예전 친구들하고도 연락하지 않으셨다. 영락해 버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이기도 하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나니 어머니 주위에는 친구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식당 아주머니는? 꽤 가깝게 지내셨잖아.”
“갑자기 망해도 연락하기 어렵지만 갑자기 흥해도 그런 것 같더라.”
“그런가. 엄마 심심하겠다.”
“우리가 잘 해야지.”
“휴가시즌에 가족끼리 해외라도 한번 다녀오자.”
“짜식, 다 컸네. 그런 생각도 할 줄 알고.”
“형은 별일 없고?”
“있지.”
“뭔데?”
“요리 배운다. 정식으로 학원 다니고 있어.”
“요리?”
형의 뜬금없는 대답에 강주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광부 일 그만두기 전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결론이 요리야?”
“그래.”
요리하는 형의 이미지가 생각만큼 낯설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면 형이 바쁜 와중에도 동생에게 밥을 차려주곤 했으니까.
손맛이 괜찮은 편이긴 했다. 그러나 그 손맛만 믿고 직업을 택하는 건 섣부른 판단인 것 같았다.
“좋아서 하는 거 맞지?”
“그럼.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어. 돈이랑 시간이 없어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광부 일을 안 하면 늦더라도 헌터가 될 줄 알았다. 어릴 때는 형도 헌터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자신보다 나은 동생을 위해서 꿈을 양보했다고 생각했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에 갈고 닦은 기본기가 있어서 몇 달만 훈련을 받아도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기량이 나올 것이다.
형이 헌터가 되겠다고 하면 이것저것 도움을 줄 생각에 신나 있었던 강주혁은 김이 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형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강주혁은 형이 어떤 길을 택하든 믿고 지지해 줄 생각이었다.
“내가 형에 대해서 잘 몰랐나 보다. 요리하겠다는 얘기를 들으니 좀 당혹스럽네.”
“다 그렇지. 나도 네가 태원공략에 집착하는 게 네 인생에 해가 된다고 생각했잖아. 나라고 이렇게 흥할 줄 알았겠냐.”
“그러네. 근데 구체적으로 어느 쪽이야? 양식?”
“한식부터 시작했는데 나중에 양식, 일식, 중식도 다 배워보려고. 아직 정확하게 어느 쪽이 나한테 맞는지는 모르겠더라.”
“근데 그런 거 하려면 좋은 요리 많이 먹어 봐야 하지 않나?”
“물론이지. 엄마 모시고 대구에 유명한 식당들 한번 싹 돌려고. 나중에 내려오면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곳으로 데리고 가마.”
“좋아. 기대할게.”
“참, 너 형수 생겼다.”
“형수?”
“광부로 일하던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친구야. 아저씨들만 득실거리는 곳에서 나이가 비슷해서 나랑 죽이 좀 잘 맞았거든. 퇴사하기 전에 밥 한번 먹자고 했다가 이렇게 됐네.”
설명을 들어보니 회귀 때 형이랑 결혼했던 사람이 맞았다.
강주혁이 기억하는 형수님은 힘든 형편에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씩씩하고 당찬 사람이었다. 어머니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고.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건가.’
강주혁이 회귀를 하면서 형의 인생도 많이 달라졌다. 광부 일을 일찍 그만뒀음에도 이렇게 또 맺어지는 걸 보니 신기했다.
“재주도 좋다.”
“이 형님의 마성에 빠져든 거지.”
형의 허세에 강주혁이 킬킬거렸다.
“요리 공부 끝나고 경력도 좀 쌓이면 내가 식당 하나 차려줄게.”
“아서라, 이놈아. 동생이 몬스터 뚝배기 깨서 벌어오는 돈으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네 도움 받는 건 딱 배울 때까지만 할게. 그다음부터는 식당에서 일 배워가면서 돈 모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 돈 많아.”
“이놈 이거 또 허세 부리는 거 보니까 보너스라도 받은 모양이네. 있을 때 아껴.”
“걱정 마. 안 아껴도 될 만큼 받았으니까.”
“얼마를 받았는데?”
“30억.”
형은 당연히 코웃음을 쳤다.
“재미없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고 다니지 마라. 내가 다 쪽팔린다.”
“진짜야. 내가 왜 형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강주혁이 계속 진지하게 말하자 형이 잠시 침묵했다. 불과 몇 달 전에 5억을 벌어온 동생이었다.
“……진짜야?”
“그래.”
“주혁아.”
“응?”
“너 태원공략 다니고 있는 거 맞지? 무슨 불법적인 일 하는 거 아니고? 형한테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엄마한테 말 안 할게.”
“내가 사원증 안 보여줬었나?”
“아니, 무슨 회사가 신입사원한테 그런 돈을 줘?”
“내가 마석 매장지를 찾았으니까.”
“뭐?”
헌터는 아니지만, 형도 던전에서 일해 봐서 안다. 마석 매장지를 찾아내는 것이 헌터에게, 그리고 공략회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 참고로 나 이제 대리야. 원래 이렇게 빨리 진급시켜 주지는 않는데 마석 매장지 찾았다고 진급시켜 주더라.”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남들 3년 동안 올릴 실적을 3개월 만에 올렸는데 진급시켜 줘야지. 어차피 실적이 전부인 곳이잖아.”
“그, 그래?”
“그리고 나 찾는데도 많아. 신광공략 알지?”
“알지. 거기 업계 탑 아니냐?”
“응. 거기 사장이 나한테 직접 이직제안 했어. 불러서 밥까지 사주더라.”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지?”
형은 여전히 동생이 하는 얘기를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죄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니까. 동생한테 리플리 증후군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못 믿겠으면 내 통장 잔액 캡처해서 보내줄게. 신광에서 온 메일도.”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진짜라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이런 걸로 무슨 거짓말을 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밖에 내놓은 자식도 그럭저럭 잘지…….”
“어무이!”
형이 갑자기 괴성을 질러대는 바람에 강주혁은 전화기를 귀에서 멀리 떨어뜨려야 했다.
다음날.
강주혁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사의 <비급서고>에 들렸다. 비급서고는 던전에서 발견된 비급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으로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입사 혜택 중 하나고, 비급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보물 창고나 마찬가지다. 강주혁 역시 회귀 전에는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 서적들은 밖에서도 돈만 좀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알짜배기들은 임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전용 서고에 있거나 오너 일가가 가져버리기 때문이다.
강주혁이 비급서고를 방문한 이유는 비급 때문이 아니었다. 부회장이 범죄를 저질러가면서 차지하려고 했던 검술을 알고 있고 대한민국 최고의 권사에게 권법을 배우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책들은 그에게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
‘기타 쪽이었지.’
강주혁이 찾아간 서가는 <기타 도서>로 분류된 곳이었다. 이곳에 있는 서적들은 던전에서 발견되고 룬 문자로 적혀있으나 전투기술이나 마법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가끔 헌터관련 학계에서 연구목적으로 대여 요청을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이렇게 구석에 처박힌 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여기 있군.’
강주혁은 목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찾는 책은 다른 책들보다 표지가 더 낡아 보였다. 꺼내보니 책갈피에 <해석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용의 길.
겉표지 상단부에 룬 문자로 적혀 있었다. 위치상으로 제목.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문자 여덟 개가 표지 여기저기에 적혀 있었다.
줄이라도 맞춰서 적어놨으면 해석의 가능성이 생길 텐데 이렇게 장난을 치듯이 글자를 흩어놓으니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표지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문자는 무척 낯이 익었다. 마석 매장지 한복판에 있던 제단에 적혀 있는 문자와 똑같았으니까.
강주혁은 책을 펼쳤다. 차례를 보면 총 여덟 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은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있었지만, 첫 번째 챕터의 첫 문단에서 낯익은 문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용의 길을 걷는 자여, 바람의 세례를 받아 눈보라를 몰아내라.’
강주혁은 책을 챙겨서 사서에게 가져갔다.
“그 책 빌려 가시려고요? 아무 도움도 안 될 텐데요.”
사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대여 못 하는 건 아니죠.”
“아니요. 가능합니다. 해드릴까요?”
“네.”
책을 가지고 사무실로 돌아간 강주혁은 곧장 회사 포탈에 접속해서 공략 4부 4팀의 공략 보고서들을 열람했다. 최우수 사원을 배출한 엘리트팀답게 최근에 발견된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20-A12.
공략 4부 4팀도 공략에 실패한 지역이다. 저 지역을 공략하다가 대리급 헌터가 부상을 당했다. 팀의 힐러였던 공허진은 그를 제때 치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출을 당했고.
공략에 실패한 이유는 강력한 몬스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혹한의 추위 때문이기도 했다. 몬스터들이 있는 요새까지 가려면 눈보라가 불어 닥치는 설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4부 4팀은 공략에 실패했지만, 요새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오기는 했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는 제단을 찍은 것이었다.
강주혁은 그것과 똑같이 생긴 문자를 <용의 길> 겉표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석 매장지 제단에 적힌 문자는 가장 아래쪽에 있었고 공략 4부 4팀이 발견한 제단에 적혀있는 문자는 가장 왼쪽에 있었다.
강주혁은 광야의 전체 지도를 하나 출력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마석 매장지의 위치와 4부 4팀이 20-A12에서 발견한 요새의 위치를 표시했다.
그리고 <용의 길>의 겉표지 바로 옆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표지에서 두 개의 문자가 있는 위치와 지도에서 그 문자들이 발견된 위치가 일치했다.
<용의 길>이라고 명명된 책의 표지는 사실 광야의 지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표지의 여기저기에 적혀 있는 문자들은 광야에 있는 제단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용의 길이란 그 제단을 순서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번에도 나오려나.’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강주혁을 회귀시킨 회중시계의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