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지면이 가까이에 있다는 걸 확인한 일행은 야전삽으로 천장을 파기 시작했다. 1m 정도 올라가니 정말로 지상이 나왔다.
일행은 주변 지형을 보고 그곳이 08-A66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마석 매장지를 찾기 위해서 들렸던 곳이라 낯이 익었던 것이다.
강주혁의 예상대로 그들이 올라온 곳은 공략팀들이 번갈아 가면서 폭탄을 터뜨려댄 장소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었다.
일행은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톨게이트로 돌아갔다. 오전 9시에 시작된 공략은 자정 무렵에야 종료되었다.
임재경 부장이 톨게이트에서 공략 3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3팀이 퇴근 시간까지 복귀하지 않자 불안해서 본인도 퇴근을 못한 것이다. 그는 4팀을 시켜 3팀이 들어간 09-A60을 수색하기도 했다.
4팀은 3팀의 흔적을 따라 낭떠러지까지 넘었으나 막다른 길을 만나서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임재경 부장에게 구두로 결과를 보고했고, 특별 휴가를 받아 이틀간 푹 쉬었다.
“유 팀장님.”
회사에 복귀한 공략 3팀을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4팀 팀장인 하민지였다. 그녀는 코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이거 어떡할 거예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박치기할 때만 해도 넘치던 패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부하들 앞에서 바보 취급을 당한 게 너무 수치스러워서 일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막상 그 결과를 마주하니 겁이 났던 것이다.
“말로 미안하다면 다예요?”
“시끄러! 뭘 잘했다고 유 팀장한테 시비야!”
그때, 임재경 부장이 부장실 문을 벌컥 열고 나오더니 호통을 쳤다.
“아니 공략 3팀은 무슨 조직 폭력배예요? 툭하면 폭력을 쓰게?”
하민지는 이에 질세라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안다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나서기도 전에 임재경 부장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너 때문에 공략 3팀이 계획서를 몇 번이나 엎은 줄 알아!”
“그거야 우리 팀에 사정이 생겨서 그렇죠.”
“뭔 놈의 사정이 그렇게 자주 생겨!”
“아, 알겠어요, 유 팀장님, 손해배상 청구할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요!”
하민지는 임재경에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유덕현을 물고 늘어졌다.
“하 팀장도 징계 먹을 각오해.”
“무, 무슨 징계요?”
“몰라서 물어! 다른 팀 계획서 엎어지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잠깐만요. 그게 징계감은 아니잖아요.”
“징계감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해. 덕현아, 차 한잔할래? 피곤하니까 커피가 나으려나.”
임재경 부장은 하민지 팀장을 무시한 채 유덕현에게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그를 부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와, 실적 좀 잘 나왔다고 사람이 180도 달라지시네.”
홀로 남겨진 하민지 팀장이 중얼거렸다.
“실적이 적당히 잘 나오셔야죠.”
커피를 마시면서 사무실 안을 어슬렁거리던 신유정 팀장이 말했다.
하민지는 곧장 표정을 고치고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대들어도 괜찮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건 그녀의 특기니까.
“그건 그렇죠. 공략 3팀은 참 좋겠네요.”
“맞아요. 회사 3개월 치 매출을 한 방에 달성했는데 좋을 수밖에 없겠죠.”
“저, 정말요?”
하민지의 입을 벌린 채로 굳어버렸다. 사무실 안의 웅성거림도 커졌다. 다들 공략 3팀이 마석 매장지를 발견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매장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말 한마디로 사무실을 뒤집어놓은 신유정은 털이 달린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강주혁의 책상 앞으로 왔다.
그리고는 파티션에 팔을 걸친 채 그를 내려다봤다. 항상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답지 않게 몹시 침울해 보였다.
“이번에도 일등공신이 되었네요.”
“계획의 입안자이기는 하지만 일등공신까지는 아닙니다.”
“기분이 어때요?
“좋습니다.”
강주혁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표정은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
“표정만 그런 겁니다.”
강주혁은 신유정이 왜 저러게 심통이 났는지 알고 있었다.
공략 3팀이 마석 매장지를 발견하는 바람에 강주혁과의 내기에서 이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녀가 태원공략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딱 이번 해까지다.
“팀장님.”
“왜요?”
“광야는 넓습니다. 이번 해 안에 마석 매장지가 또 나올 수도 있죠.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힘내세요.”
“치, 나빴어.”
강주혁의 영혼 없는 응원에 신유정은 입을 비죽이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때, 입구 쪽에서 우렁찬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이윤철 사장이 비서와 함께 공략 1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임재경 부장과 유덕현 팀장도 부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공략 3팀 사람들 다 있나?”
“네. 여기 있습니다.”
안다정이 대표로 말했다.
“정혜영 대리랑 주선우 사원은?”
“네. 저희도 있습니다.”
“잘 됐군. 큰일을 해냈는데 인센티브만 주고 넘어가기 그래서 잠깐 들렸네.”
이윤철이 손짓을 하자 비서가 감사패를 꺼냈다.
“유 팀장이 대표로 받지.”
“네, 사장님.”
유덕현이 앞으로 나섰다.
“원래 이런 건 공식 행사 때 줘야 하는데 빨리 주고 싶은 마음에 좀 서둘렀네. 양해해 주게.”
이윤철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 보였다. 사장이라는 직함이 없으면 춤이라도 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닙니다. 사장님.”
유덕현은 황송스러워했다.
“연초부터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들려줘서 정말 고맙네. 회장님께서 크게 기꺼워하셨어.”
“감사합니다.”
유덕현이 대표로 감사패를 받았다.
임재경 부장이 박수를 치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마석으로 된 거니까 혹시 형편이 어려워지면 팔게. 순도가 높아서 값이 꽤 나갈 거야.”
이윤철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강주혁 사원.”
“네, 사장님.”
“이번 공략에서도 활약이 컸다고 들었네.”
“과찬이십니다.”
“대리 진급 축하하네.”
이윤철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강주혁은 이윤철의 손을 잡았다.
“들어 온지 반년도 안 되지 않았어?”
“들어올 때 심지어 인턴이었어. 정식사원 된 거는 3개월밖에 안 됐을 걸.”
“진짜 미쳤다.”
“역대 최단기간 아니야?”
“앞으로도 안 깨질 기록이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목소리를 낮춰 강주혁에 대해서 쑥덕거렸다.
“회장님이 직접 명하신 특별 진급이네.”
구설수를 의식한 건지 이윤철이 덧붙였다.
회사를 구했을 때도 전례가 없던 일이라면서 진급을 시켜주지 못했던 이윤철이었다. 하지만 회장이 직접 명령했으니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센티브는 매장량 측정이 끝나는 대로 들어갈 거야. 이건 내가 따로 주는 금일봉이니까 회식할 때 쓰게.”
이윤철은 두툼한 봉투를 꺼내서 유덕현에게 건넸다.
* * *
그날 저녁.
공략 1부 전체가 회식을 가졌다. 이번에도 강주혁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한 유덕현은 강주혁의 활약상을 늘어놓기 시작해 당사자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강주혁이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최단 시간에 잡은 얘기를 했을 때, 하민지 팀장이 성질을 부렸다.
“사기 치지 마요!”
“진짜라니까요.”
하민지와 유덕현이 옥신각신하자 임재경이 정혜영에게 물었다.
“정 대리.”
“네, 부장님.”
“유 팀장 얘기 진짜야?”
정혜영은 하민지 팀장과 임재경 부장의 눈치를 번갈아 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 진짜예요.”
“말도 안 돼!”
하민지 팀장이 반창고를 붙인 코로 콧김을 뿜어댔다.
“정말이에요.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하하하, 제 말이 맞죠.”
유덕현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좋아했고, 정혜영은 하민지의 눈치를 보면서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유덕현의 강주혁 찬가는 계속 이어졌고, 강주혁은 분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주변에서 권하는 축하주를 마셔야 했다.
강주혁은 유덕현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야 술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주혁 씨. 아, 죄송합니다. 강 대리님.”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오니 주선우가 강주혁에게 말을 걸었다. 손에는 피우다 만 담배가 들려 있었다.
“괜찮아요. 저도 아직 어색한데요.”
“담배 피우세요?”
주선우는 담배를 권했다. 입에서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괜찮아요.”
“어떻게 빠져나오셨어요? 다들 대리님 얘기만 하고 있는데.”
“제가 자리를 피해줘야 제 흉도 보고 그러죠.”
“하하하, 공략 1부에서 누가 감히 그러겠습니까.”
“흉보고 싶은 사람들은 많을 걸요. 대놓고 말을 못 해서 그렇지.”
강주혁의 말에 주선우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회사는 본질적으로 정글이다.
동업자 정신과 선후배 사이의 의리 정도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깔려 있는 곳이다.
그러니 강주혁의 기념비적인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를 품고 그를 대할 것이다.
“대리님한테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담배를 다 피운 주선우가 입을 열었다.
시선이 강주혁이 아니라 겨울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사과요?”
“네. 대리님이 인턴으로 들어왔을 때 엄청 깔봤었거든요.”
“그런 속마음까지 저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속마음만이 아닙니다. 신입사원들끼리 모이면 대리님 얘기를 하고 그랬으니까요. 김태현과 이지혜가 그런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즐겼어요. 한심하죠?”
“다들 힘들 때잖아요. 좋은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회사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자부심이 넘쳤겠어요. 그런데 던전에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상사들에게 깨지게 되죠.”
주선우는 멍한 얼굴로 강주혁을 쳐다봤다.
“망가진 자존심을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기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깔보는 거죠. 내가 오늘 사수에게 엄청 깨졌을지언정 저 인간보다는 낫다. 그렇게 자위하는 겁니다. 때마침 곡괭이질 하던 놈이 헌터랍시고 인턴으로 들어왔으니 씹어대기 딱 좋았겠죠.”
“강 대리님은…… 무서운 분이시군요.”
“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봐주면 고맙겠군요.”
“팩트로 두들겨 맞으니 술이 확 깨네요. 대리님 말이 맞아요. 밖에서는 태원에 들어갔다고 다들 부러워하는데 회사에서는 맨날 등신 취급당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분풀이할 곳이 필요했던 거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참 한심했었죠.”
강주혁은 주선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주혁은 여전히 그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본바탕이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요즘은 뭐래요?”
“다들 민망해하죠. 이지혜랑 김태현은 그렇게 되어버리고 강 대리님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만날 때마다 그때 일을 떠올리게 되어서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강주혁은 첫날 자신을 바라보던 신입사원들의 눈빛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어 보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가 대리님 욕을 하면 맞장구를 치고 그랬는데, 그런 대리님한테 신세를 지게 되었네요.”
낭떠러지에서의 일을 떠올린 건지 주선우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번 공략전부터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요?”
“이 길이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서요. 헌터는 대리님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헌터가 천직인 사람이 회사 내에 몇이나 되겠어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저를 기준으로 삼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세상은 헌터가 천직인 사람만 기억하잖아요. 출발선에 섰을 땐 분명 대리님보다 한 걸음 정도는 앞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괴감이 들더군요. 바로 옆 팀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네요.”
“지금은 하루하루 버티는 게 전부라서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멀리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은 운이 따라서 일이 잘 풀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조금이라도 실적이 줄어들면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겠죠. 그리고 지금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회사를 이끌어갈 인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대표주자가 안다정이다. 화려한 스펙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사람들과의 마찰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후자의 예시로는 회귀 전의 강주혁과 공허진이 있었다. 처음에는 안 잘리는 게 신기한 열등 사원이었지만 10년 후에는 회사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되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강주혁 입장에서는 주선우가 회사를 나가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강주혁의 사람이 아니니까. 던전에서 도움을 준 것도 유덕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회사에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건 분명 플러스요소였다.
“맞아요. 저도 이번 공략에서 좀 느끼는 게 있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써먹을 데가 아주 없지는 않구나. 그래서 조금만 더 버텨보려고요.”
강주혁은 주선우의 능력과 적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따져보았다. 분명 전투 마법사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보조 마법 쪽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공략팀이 아니라 연구팀이나 정찰팀에 있으면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잘 생각했어요. 이 회사에도 분명 선우 씨만의 자리가 있을 겁니다.”
강주혁의 말에 주선우는 감동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이는 분명 동갑인데 대리님은 항상 형님 같아요. 그것도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형님.”
“칭찬이죠?”
“그럼요. 앞으로도 리스펙 하겠습니다.”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사람들 기다릴 텐데 슬슬 들어가죠.”
주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주혁을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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