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그건 과장님께서 생각하실 문제죠
공략 1부 회의실.
“무슨 일이시죠?”
강주혁이 신유정에게 물었다.
“김현우 팀장이 혐의를 인정했어요.”
“다행이군요.”
강주혁은 신유정이 더 이상 김현우를 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별로 안 놀라는군요.”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과장님께서 직접 신고를 하셨다면서요.”
“네. 우리 팀이 그 지역에 들어갔을 때 김현우 팀장이랑 둘이서 마지막 정찰을 돌았거든요. 김 팀장이 우물 쪽을 맡았고 제가 옆방을 맡았죠.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에 그쪽으로 넘어갔는데 우물 쪽에서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전해졌어요. 그래서 확인하려고 했더니 김 팀장이 자기가 다 했다면서 저를 막았죠.”
“그때 데몬을 발견했던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아요.”
“정찰팀 쪽에서는 아무 얘기가 없었나요?”
강주혁의 질문에 신유정은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주혁 씨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 없군요. 김 팀장이 추근호 과장을 매수했어요. 추 과장은 그냥 정찰하고도 모른 척을 한 게 아니라 우물 안에 성수를 붓기도 했대요.”
“그래서 데몬이 움직였군요.”
“네.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근데 이 얘기를 굳이 저한테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다른 팀원들도 같이 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당연히 다른 분들께도 말씀드릴 거예요. 하지만 좀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요.”
“민감한 부분이요?”
“김현우 팀장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김재후 부사장님이 도움을 주셨어요.”
“부사장님이요?”
이건 강주혁에게도 좀 의외였다.
“네. 김현우 팀장이 먼저 김재후 부사장님한테 건의를 했대요. 김현우 팀장과 김재후 부사장님은 둘 다 우리 아빠를 지지하거든요. 같은 라인의 선후배 사이인 셈이죠.”
“무슨 건의를 한 겁니까?”
“……주혁 씨를 제거할 수 있는 건수가 있다고요.”
신유정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의 부하들이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저를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실적으로 공략 3팀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겠죠. 지금의 공략 3팀을 있게 한 사람은 주혁 씨고요.”
“김현우 팀장님이 공략 3팀을 시기하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근데 왜 그 제안을 부사장님께 하는 겁니까?”
“주혁 씨한테 해코지했다가 아빠가 좌천을 당했잖아요. 아빠가 주혁 씨한테 앙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부사장님은 아빠의 가장 가까운 친구고요. 그래서 부사장님한테 그런 얘기를 꺼낸 것 같아요.”
“김재후 부사장님도 관여하신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김현우 팀장의 얘기를 듣고는 미쳤냐고 호통을 쳤대요.”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이전의 김재후였다면 김현우가 물어온 건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송년회 때 회장이 내건 공약 때문에 신대승에게 점수를 따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몸을 사리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김재후의 반대에 부딪힌 김현우는 포기하는 대신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했고. 답답한 사람은 김재후가 아니라 김현우니까.
“부사장님이 미리 조치를 취해주셨다면 공략 3팀이 그런 위험을 겪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로 그런 짓을 벌일 줄 몰랐나 봐요.”
“김현우 팀장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찰에 넘길 거예요. 아마 감옥에 가겠죠.”
“추근호 과장님도요?”
“네. 공범이니까요.”
“회사가 어수선해지겠군요.”
“맞아요. 특히, 공략 1부가 그렇게 되겠죠.”
이지혜 사건이 발생한 지 몇 달도 안 되어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양준기 전무 사건의 경우, 신태원 회장이 개인적인 처벌로 끝나버려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지혜 사건과 이번 사건은 공식적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공략 1부에서 발생했다. 임재경 부장의 리더십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눈앞에 어른거리던 임원의 자리가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하군요. 저 때문에 계속 위험에 처하고 되네요. 제가 회사를 나가면 좀 괜찮아질까요?”
강주혁의 말에 신유정은 화들짝 놀랐다.
신유정은 강주혁에게 신광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강주혁이 이번 일로 회사를 떠난다면 태원공략에게 엄청난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그건 주혁 씨가 미안해할 문제가 아니에요. 엄연히 회사의 잘못이죠. 미리 막지 못한 저와 부사장님의 잘 못이기도 하고요.”
강주혁은 침울해하는 신유정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과장님 잘못도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이건 제 잘못이에요.”
신유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김현우가 뭔가 속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김현우와 김재후는 신대승의 사람. 그녀가 책임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처음에 태원공략에 왔을 때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지키지 못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강주혁은 모른 척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신유정을 높이 평가했다. 한 집단의 리더가 되려면 저 정도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장님이 태원공략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책임지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회사가 이 모양인 것에 대해서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강주혁의 말에 신유정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아마 강주혁이 이번 일로 회사를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강주혁은 이런 정공법이 참으로 신유정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주혁의 말에 신유정의 얼굴이 다시 경직되었다.
“내기에서 졌다는 건 인정하셔야겠습니다.”
“아…….”
신유정이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두 사람은 작년 송년회 때 내기를 하기로 했었다. 공략 3팀과 2팀의 이번 해 실적을 비교해서 3팀이 이기면 신유정이 회사를 떠나고, 2팀이 이기면 강주혁이 신유정을 평생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강주혁은 조만간 김현우 팀장이 일을 저지를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기에다 조건을 하나 더 달았다.
‘경쟁은 공정해야 합니다. 어떤 편법이나 반칙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유정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맞장구쳤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반칙패인가요?”
신유정은 한숨을 쉬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렇죠.”
“제가 반칙을 한 게 아니잖아요.”
“내기의 결과는 저랑 과장님이 감당하는 거지만 내기의 주체는 엄연히 공략 3팀과 2팀입니다. 저랑 과장님 실적 경쟁이 아니라 팀별 실적을 겨루는 거잖아요. 근데 2팀이 레드카드를 받을 만한 짓을 저질렀죠.”
“한 번만 봐줘요.”
신유정이 간절한 눈빛을 보냈으나 강주혁은 단호했다.
“좀 전에는 김현우 팀장님의 죄를 대신 짊어질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생각이 바뀌셨나 봅니다.”
“아, 안 돼요. 아직 떠날 수는 없는데…… 할아버지한테는 뭐라고 말해요?”
“그건 과장님께서 생각하실 문제죠.”
강주혁은 머리를 쥐어뜯는 신유정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강주혁은 아직 신유정을 태원공략에서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양준기 전무가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신대성 라인에게 결정타를 날린 건 아니다. 공략 4부의 신태훈도 있고. 아직까지는 신유정이 태원공략에 남아있는 게 나았다.
물론,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이걸 빌미로 뭐든 뜯어낼 생각이었다. 마침 다음 공략에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꼭 있어야 하지만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 물건이.
“적절한 피해 보상만 해주시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죠.”
“피해 보상이요?”
“오거 파워 건틀릿 두 쌍만 사주십시오.”
“……오거 파워 건틀릿?”
* * *
공략 3팀은 천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말이 인센티브지 공략 도중 생긴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피해 보상금에 가까웠다. S급 몬스터를 단독으로 사냥한 강주혁은 천만 원을 추가로 받았다.
그 후, 공략 3팀은 다시 한번 데몬이 있던 요새에 투입되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탈출과 귀환이 주된 목적이었기에 마석을 수거하지 못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공간들도 많았고.
다시 들어간 공략 3팀은 요새뿐만이 아니라 지하 공동까지 싹쓸이함으로써 두둑한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실적 점수에서 공략 1부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직 연초라서 등수가 바뀔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기선 제압은 충분히 한 셈이다.
“주혁아.”
“네, 팀장님.”
“연구팀에서 연락 왔다.”
“확인 작업이 끝난 건가요?”
강주혁은 데몬을 죽이고 챙긴 흑검을 규정에 따라 인사팀에게 제출했었다. 던전에서 찾아낸 아티팩트는 모두 회사의 소유물이니까.
미확인 아티팩트는 모두 연구팀의 검사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연구팀에서 근무하는 정보계열 각성자는 아티팩트의 성능을 수치화하고 숨겨진 기능을 찾아낼 수 있다.
물론, 그들도 만능은 아니다. 강주혁이 회귀를 하게 만든 회중시계처럼 연구팀도 알아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니까.
“그래. 다른 놈도 아니고 데몬이 쓰던 거라서 찝찝했나 봐. 반나절이면 끝날 일인데 좀 오래 걸렸네.”
유덕현이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사실, 헌터들은 전리품에 대해서 물어볼 권리가 없다. 제출해서 실적을 인정받고, 그 실적으로 월급을 받으면 끝이다. 그러니 연구팀도 전리품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의무가 없다.
이런 실정이니 신입사원이 전화해서 검사 결과를 물어보면 건방진 놈이라고 욕만 먹는다. 그래서 강주혁은 유덕현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했다. 차장 정도면 짬으로 뭉갤 수 있으니까.
“랭크는 어떻게 되나요?”
“A급이래. 검 자체로도 명검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데 뇌기를 증폭시켜 주는 능력도 있다더라. 그걸로 교환할 거야?”
강주혁에게는 회사가 보유한 A급 아티팩트 하나를 가져갈 수 있는 교환권이 있다. 신광의 이직 제안을 받은 후 연봉 재협상을 했을 때 태원 측에서 제시한 것이다.
“네. 팀장님.”
그때, 교환권을 곧장 사용하지 않은 건 이 검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데몬한테는 단검이지만 너한테는 양손대검이인데 괜찮겠어?”
데몬의 흑검은 거의 그레이트 소드에 육박하는 크기를 자랑한다.
“네. 팀장님. 아버지한테 양손대검 다루는 법도 배웠습니다. 최근에 익힌 기술과의 상성도 양손대검 쪽이 훨씬 좋고요.”
청룡검은 양손대검의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기술이다. 그동안 한 손 검을 양손에 잡는 식으로 써왔는데 공격력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데몬이 사용하던 흑검은 크고 아름다운 크기만큼 절륜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뇌기를 증폭시켜 주는 능력까지 있다. 샐러맨더가 주작검의 성능을 극대화시켜 주는 것처럼 데몬의 흑검은 청룡검의 위력을 배가시켜줄 것이다.
“공략에 맞춰서 바꿔가면서 쓸 생각입니다.”
“손에 익기만 하면 그것도 좋지. 인사팀한테 연락해서 받아와.”
“네, 팀장님. 감사합니다.”
강주혁은 그 날 인사팀으로부터 데몬의 흑검을 인계받았다. 그리고 퇴근할 때 검을 챙겨 나왔다.
검이 너무 길었기에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사람 키만 한 검을 들고 다니니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자꾸 힐끗거렸다. 하지만 헌터들이 득실거리는 강남이었기에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강주혁은 집으로 가기 전에 제작 공방들이 모여 있는 상가에 들렸다. ‘ㅁ'자 모양의 5층 건물이었는데 바깥쪽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안쪽에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제작실이 있었다.
“이야, 그 검 참 튼실하게 생겼네. 칼집 만들려고 온 거지? 내가 딱 맞춰서 해줄게.”
“헌터님! 여기가 칼집 제일 싼 집이에요. 싸게 해드릴게요.”
“구경 한번 하고 가세요. 칼집 사이즈 별로 다 있어요.”
칼집이 없는 검을 들고 다니자 상인들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호객행위를 했다. 강주혁은 그들은 무시하고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대형 무기들이 오가는 업장의 특성상 복도가 넓고 엘리베이터도 엄청 컸다. 2m에 달하는 검을 들고도 타는 데 무리가 없었다.
강주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건물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5층 구석으로 갔다. 다른 가게들은 모두 장사에 열심인데 혼자서 문을 닫은 가게가 있었다.
문 앞에는 ‘Closed’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고, 벽에는 ‘임대문의’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유리 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잡동사니 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였다.
강주혁은 문을 슬쩍 밀어보았다. 예상대로 잠겨 있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려 봤으나 반응이 없었다.
쾅! 쾅! 쾅!
문을 몇 번 힘껏 치자 노인이 몸을 움찔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까풀이 서서히 올라갔다. 흐리멍덩한 시선이 강주혁과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대검에 옮겨갔다.
노인의 얼굴에 짜증이 확 번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노인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술 냄새와 악취가 확 풍겼다.
“장사 안 한다고 써놓은 거 안 보여!”
노인은 다짜고짜 성질을 부렸다. 강주혁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태원공략에 다니고 있는 강주혁 헌터입니다.”
선생님이란 칭호에 노인이 표정이 굳어졌다.
“나를 아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인인 장철준 선생님 아니십니까.”
노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