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해냈다
쿵! 쿵!
강주혁은 데몬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크아아아!
데몬이 격노를 터뜨리면서 검은색 검을 번쩍 들었다. 강주혁은 재빨리 데몬을 향해 신형을 쏘았다.
쾅! 콰지직!
강주혁은 간발의 차이로 검을 피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검에서 터져 나온 붉은 색의 전격이 강주혁의 등을 때렸다.
“으윽!”
강주혁은 앞으로 튕겨져 나갔고 덕분에 데몬의 다리 사이로 단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청룡검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여서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화르르!
“젠장!”
좀 전과는 달리 데몬의 발아래는 불바다나 마찬가지였다. 데몬이 발을 디딘 곳마다 불길이 치솟았고 몸에서는 용암이 떨어졌다.
촤아악!
강주혁은 샐러맨더를 휘둘러 열기를 흡수하거나 흩어놓았다.
푹!
그렇게 열기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해놓고 봉마검을 좀 전에 만들어놓은 상처에 쑤셔 박았다.
크아아!
데몬이 절규하면서 미친 듯이 발을 굴렀다.
쾅! 쾅!
발로 바닥을 내리찍을 때마다 화염이 터져 나왔다. 강주혁은 다시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촤라락!
거리를 벌리자 이번에는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회피 동작을 연습해 온 강주혁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쾅!
강주혁은 침착하게 쇠사슬을 피해 나갔다. 그러면서 다시 데몬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하나하나가 제대로 맞으면 즉사할 수 있는 공격들이다. 그리고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하지만 워낙 거구라서 준비 동작이 컸다. 검과 쇠사슬을 볼 수는 없어도 어깨를 움직이는 건 볼 수 있었다. 패턴을 잘 숙지하고 준비 동작을 놓치지 않으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
화르르!
“쳇.”
쇠사슬과 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적들을 제압하는 건 용암과 화염이다. 강주혁은 주작검의 힘으로 그것들을 견뎌내면서 안으로 파고들었고 매번 똑같은 곳을 공격했다.
크아악!
세 번째 공격이 들어가자 발목의 뼈가 드러났다. 기름처럼 시커먼 피가 콸콸 쏟아졌다. 데몬이 다시 한번 발을 굴러서 강주혁을 떨쳐냈다.
그 이후에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데몬은 검과 쇠사슬로 공격하고 강주혁은 얄미울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그것들을 피했다.
검이 일으키는 전격을 맞으면 그 반동을 이용해 단숨에 데몬의 다리 아래로 파고들었다.
크으으!
발목의 상처가 깊어진 데몬은 다리를 절룩거리기 시작했다. 강주혁이 여섯 번째로 다리 아래로 파고들었을 때 데몬은 뒤로 점프해서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강주혁이 바라던 바였다.
쿵!
크아악!
데몬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신음을 토하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발목이 착륙할 때 가해진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냥할 시간이군.’
데몬이 완전히 궁지에 몰리자 강주혁은 본격적으로 공세에 들어갔다.
바닥을 뒤덮고 있는 불과 용암을 건너뛴 강주혁은 곧장 데몬에게 돌진했다.
크흡!
데몬이 숨을 들이마셨다. 입속에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크하!
숨을 내뱉자 입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파이어 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공격력은 차원이 다르다. 드래곤의 숨결만큼은 아니지만 데몬의 숨결도 인간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콰르르!”
강주혁은 불덩이를 마주 보면서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촤아악!
불덩이가 머리에 닿기 직전, 강주혁은 몸을 뒤로 숙이면서 슬라이딩을 했다. 그렇게 불덩이를 뒤로 넘긴 후 곧바로 보법을 펼쳤다.
주작비상보.
쾅!
강주혁이 지축을 박차자 화염 폭발이 일어나면서 몸을 위로 날려 보냈다.
콰쾅!
곧이어 바로 등 뒤에서 데몬의 숨결이 바닥에 닿으면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 템포 일찍 터진 주작의 화염이 보호막 역할을 해주면서 피해를 상쇄시켰다.
화염에 더해진 화염은 강주혁을 밀어내면서 오히려 그의 추진력만 더해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촤아아!
강주혁은 후끈해진 공기를 가르면서 데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파지직!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강주혁을 보면서 데몬은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붕!
하지만 강주혁의 비행 속도가 너무 빨라서 허공만 가르고 말았다.
척!
강주혁은 데몬의 한쪽 뿔을 잡고 한 바퀴를 돈 후 머리통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봉마검으로 머리를 찍었다.
마(魔)를 거둬들이는 검이 데몬의 마력을 흩어놓았다. 오러 스킨은 허무하게 찢겨져 나갔으나 이번에도 강철 같은 피부가 데몬을 살렸다.
콰지직!
하지만 청룡뇌즉참으로 강화된 공격은 단숨에 피부를 헤집고 들어갔다.
크아아아!
피부가 뚫렸지만 엄청난 두께의 두개골이 남아 있었다. 통증은 있어도 피해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데몬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퍽!
인간이 몸에 붙어 있는 날벌레를 잡기 위해서 손바닥으로 자기 몸을 치듯이 강주혁이 있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이미 봉마검만 꽂아 놓고 뛰어내린 후였다.
푹!
데몬은 자기 손으로 머리에 박혀 있는 봉마검을 밀어 넣어버리고 말았다.
크윽!
데몬이 검은색 침을 질질 흘리면서 비틀거렸다. 강주혁은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낙법을 치면서 빠져나갔다. 덕분에 데몬의 타액을 뒤집어쓰지는 않았다.
쿵!
크으으.
데몬은 다시 무릎을 꿇고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크르르.
데몬은 머리에 박힌 봉마검을 뽑아내려고 손을 움직였다. 이미 뇌가 손상되어서 그런지 움직임이 느렸다.
강주혁은 기다리지 않고 데몬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등을 따라 데몬의 머리 쪽으로 재빨리 올라갔다.
몸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이 약해졌기에 화상의 위협은 없었다. 데몬의 손이 봉마검에 닿기 직전, 강주혁이 먼저 손잡이를 잡았다.
데몬은 검 대신에 강주혁을 움켜잡았다. 데몬의 손아귀가 강주혁을 으스러뜨리기 직전, 강주혁은 자신의 모든 내공을 검으로 흘려보냈다.
칼이 팔의 일부가 된 것처럼 손잡이와 칼날의 모든 부분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칼끝은 분명히 두개골 너머에 닿아 있었다.
강주혁은 칼끝에 모든 내공을 모아 그것을 한 번에 터뜨렸다.
펑!
튼튼한 두개골 덕분인지 무극검에도 불구하고 겉은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강주혁의 등을 압박하고 있던 손에서 빠르게 힘이 빠졌다. 팔이 축 늘어졌다.
크으…….
데몬은 신음을 흘리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쿵!
데몬의 머리 위에 올라타고 있던 강주혁은 몸이 지상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낙법을 치면서 착지했다.
‘해치웠나?’
데몬은 몸을 약간 움직거리기는 했으나 다시 일어서지는 못했다. 몸에 붙어 있던 불도 모두 꺼져버렸다. 눈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사라지자 텅 빈 눈구멍이 드러났다.
무극검의 사용으로 텅 비어있는 단전에 내공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죽은 데몬이 남긴 흔적이었다.
“해냈다.”
강주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짜릿한 성취감과 승리감이 밀려들었다. 회귀 전에도 데몬과 여러 차례 싸워보기는 했다. 하지만 혼자서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아직 동료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가서 도와야 했다.
강주혁은 머리 위로 올라가서 박혀있는 봉마검을 천천히 뽑아냈다.
‘이런.’
칼날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한 번만 더 휘두르면 칼날이 부러질 것이다. 이 정도로 훼손되면 수리로도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강주혁은 검을 조심스럽게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장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으아아아!”
그때, 기합 소리와 함께 신전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밖에 남은 세 사람이 문을 밀고 있었다.
“팀장님!”
강주혁은 곧장 그들에게 달려갔다.
“주혁 씨! 괜찮아요?”
안다정의 표정에 안도감이 번졌다.
“네. 괜찮습니다. 과장님은요?”
안다정이 답하기도 전에 유덕현이 질문했다.
“데몬은? 데몬은 어떻게 됐어?”
“잡았습니다.”
“……뭐?”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네 사람은 합심해서 문을 열었다. 세 사람은 밀고 강주혁은 당기는 식으로 하니 이내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틈이 생겼다.
세 사람은 신전 안으로 들어왔다. 셋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아무리 악마종일지라도 고트맨 정도로는 공략 3팀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맙소사.”
세 사람은 불이 꺼진 채 쓰러져 있는 데몬과 멀쩡해 보이는 강주혁을 번갈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유덕현이 물었다.
“신입사원입니다.”
강주혁은 씩 웃으면서 답했다.
“신입사원이 S급 몬스터를 1대 1로 싸워서 잡는다고?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제가 상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겠군요.”
“다친 곳은?”
“불이랑 전격 때문에 좀 그을리기는 했습니다. 직격은 운 좋게 피했고요.”
데몬의 공격력에 맞는 사람이 강주혁이라면 제대로 맞는 즉시 죽는다. 피부의 상처는 물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여간 걸물이야. 걸물.”
유덕현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밖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 잡았어요.”
안다정이 답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강주혁의 말에 안다정이 옅은 미소를 보였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식을 해야겠다. 안 과장도 빼지 마.”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회식이에요.”
“적당한 음주는 피로 회복에 좋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 안 끝났어요.”
“그래. 올라갈 길을 찾아야지. 일단, 숨 좀 돌리면서 정비한 후에 이 신전부터 한번 뒤져보자.”
일행은 장비를 점검하고 휴식을 취했다.
강주혁은 물약으로 피부의 상처를 치유한 후, 데몬의 가슴팍에서 검은색의 마석을 뽑아냈다. 그리고 상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쪽 뿔을 잘라냈다. 마지막으로 데몬이 사용하던 검을 챙겼다.
“슬슬 둘러볼까.”
공략 3팀은 본격적으로 신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른 몬스터는 없었다.
“뭐야, 이건?”
신전의 한구석에서 뼈와 시체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장소가 나타났다.
“코볼트와 놀 같아요.”
공허진이 시체를 발로 뒤적이면서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구역질을 했을 상황인데도 그녀는 잘 참아냈다.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친 것 같군요.”
“제물이요?”
강주혁은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강주혁의 기억대로라면 저 구멍은 요새 내부에 있는 우물과 이어져 있었다.
겉보기에는 우물이지만 사실, 데몬에게 바칠 제물을 던져 넣는 제단이었던 것이다.
“아마 올라가는 길도 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일행은 탐색을 계속했다.
정식 공략이었다면 구석구석을 뒤졌겠지만 지금은 무사 귀환이 주된 목적이었기에 출구를 찾는 것에 집중했다.
“여기 레버가 있습니다.”
강주혁은 바닥에 설치된 레버를 하나 발견했다.
“뭐 하는 데 쓰는 걸까요?”
“승강기를 작동시키는 레버 같습니다.”
“승강기라고요?”
“옆방을 한번 보십시오.”
강주혁은 일행이 좀 전에 지나쳐온 방을 가리켰다. 문이 없었기에 지금 있는 방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였다.
“저 방은 왜요?”
“모서리마다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검은 선 보이시죠? 선이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아마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레일일 겁니다.”
안다정은 곧장 그 방으로 돌아가서 검은 선을 들여다봤다.
멀리서 대충 봤을 때는 그냥 장식용으로 벽에 그어놓은 선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안에 규칙적으로 파여 있는 홈이 보였다.
‘이런 건 또 언제 본 거야.’
안다정은 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강주혁을 보고 있으면 좌절감이 들었다.
규격 외의 싸움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풍부한 이론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이런 걸 찾아내는 센스도 뛰어났다. 아마 정찰팀에 들어갔어도 맹위를 떨쳤을 것이다.
헌터로서 필요한 능력을 모두 갖춘 완전체. 그게 바로 강주혁이었다.
안다정은 자신이 강주혁보다 한 수 아래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같은 헌터로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그냥 강주혁의 장점을 하나 더 알게 된 것만으로 기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뭔가를 잘하면 자신이 잘해 냈을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주혁 씨 말이 맞아요. 레일 같아요.”
“그럼 한번 당겨볼까?”
“팀장님이랑 허진 씨는 저 방으로 가시죠.”
“너는 어쩌고?”
“저는 레버를 당겨야죠. 제 짐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주혁은 데몬의 뿔과 대검, 마석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당기고 냉큼 달려와.”
“네, 팀장님.”
세 사람이 옆방으로 옮겨갔다. 강주혁은 힘껏 레버를 당겼다.
철컹!
옆방의 돌바닥이 지반으로부터 분리되면서 통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닥이 올라가요!”
“주혁아, 달려!”
강주혁은 전력 질주했다. 바닥이 두 방을 이어주는 문보다 높이 올라가기 직전, 빈틈으로 슬라이딩을 했다.
“잘했다.”
“다행이에요.”
틈에 끼어서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강주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털고 일어났다.
보는 사람은 마음을 졸이는데 정작 본인은 태연하기만 했다.
“요새로 가는 게 맞겠지?”
유덕현은 불안한 눈으로 어둠에 잠겨 있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요새 지하에서 곧장 올라가는 거니까 맞을 겁니다.”
“천장에 가시 같은 게 잔뜩 달려있으면 어떡하죠?”
공허진이 입을 열었다가 세 사람이 째려보자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그냥 불안해서.”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아니길 바라야죠.”
강주혁은 이 승강기의 도착지를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이걸 타고 내려갔으니까. 멋도 모르고 발을 들였다가 꼼짝없이 신전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반대로 올라가고 있으니 반드시 요새에 닿을 것이다.
공략 3팀은 경계태세를 취한 채 끈기 있게 기다렸다. 20분쯤 지나자 천장이 나타났다.
“가시는 없네요.”
강주혁의 말에 공허진은 민망한 듯 웃었다.
철컹.
바닥이 멈췄다.
“설마, 승강기만 있고 나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겠지.”
공략 3팀은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다 막혀 있어요.”
“조금씩 밀어보죠. 분명히 비밀 통로가 있을 겁니다.”
강주혁의 말에 따라 공략 3팀은 사방의 벽을 조금씩 밀어보았다. 강주혁도 이 부분에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쯤이었던가?’
강주혁은 벽을 밀었다.
드르륵!
벽이 뒤로 빠지면서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드러났다.
“찾았습니다.”
“오오! 잘했다! 잘했어.”
유덕현이 강주혁의 등을 두들겼다.
“조용하세요! 밖에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안다정이 핀잔을 줬다.
“어, 미안…….”
유덕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가시죠.”
공략 3팀은 부비트랩이 있나 확인하면서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었고 마침내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여기도 한번 밀어볼까요?”
강주혁이 벽에 몸을 기대고 힘을 주자 이번에는 벽이 옆으로 밀려났다.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여, 여긴?”
“요새입니다.”
강주혁은 신전과 이어진 우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 * *
“팀장님.”
공략을 끝내고 톨게이트로 돌아가는 길에 신유정 과장이 김현우 팀장에게 물었다.
“음?”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왜 그러나?”
“오늘 하루 종일 표정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요.”
표정이 안 좋다고 돌려서 말하긴 했으나 김현우는 하루 종일 넋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오늘은 공략 3팀이 백업해 주는 날이라서 공략 2팀은 마석 매장지 탐색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정찰팀이 새끼를 놓친 상황에서 공략 2팀도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래서 1팀이 그랬던 것처럼 룬 폭탄을 이용해 땅을 파고들어 갔다. 룬 폭탄이 일으키는 폭발의 소음과 진동은 주변 지역의 몬스터를 끌어들였다. 공략 2팀은 하루 종일 고된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팀의 리더인 김현우는 집중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신유정이 그를 대신해서 명령을 내리는 일도 많았다.
“좀 피곤해서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게.”
마석 매장지를 어떤 팀이 발견하느냐에 따라서 이번 해 최고 실적 팀과 차기 부장이 결정될지도 모른다. 그런 중요한 날에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 김현우가 신유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유정이 보기에 김현우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능하고 야심도 있는 인물이었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도 컸고. 그런 사람이 이렇게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인다? 분명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이다.
“저거 데몬 뿔 아니야?”
“어? 진짜네.”
“어떻게 잡은 거야?”
그때, 톨게이트 부근이 어수선해졌다. 톨게이트는 게이트 바깥쪽에도 있지만 게이트 안쪽에도 지어져 있다.
퇴근 시간이 되면 게이트 안쪽 톨게이트도 보고를 마치고 퇴근하려는 헌터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공략 2팀도 헌터들이 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략 3팀이 태원공략의 웨이포인트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지옥에 다녀온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주혁 씨?”
그리고 강주혁은 어깨에 코끼리 상아보다도 굵은 뿔이 걸쳐져 있었다.
S급 몬스터 데몬의 뿔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