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60화 (60/202)

60화 봉마검으로 처맞기 전에는

강남구의 한 고급 일식집.

룸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김재후 부사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김현우가 직각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부사장님도 강녕하셨습니까?”

“나야 늘 똑같지.”

김재후가 악수를 청하자 김현우는 황송하다는 듯이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앉지.”

“네.”

“어쩐 일인가? 갑자기 나를 보자고 하고.”

“새해가 되었으니 인사를 드리려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재후가 피식 웃었다.

“그럼 자네가 쏘는 건가?”

“물론입니다.”

“됐네. 이 사람아. 부사장이 차장에게 밥 얻어먹으면 사람들이 흉보네.”

김현우는 김재후가 아주 거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걸핏하면 역정을 내고 심하면 재떨이를 집어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한다. 신대성 라인인 임재경 부장 밑에서 김현우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김재후 부사장이 틈틈이 임재경 부장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건 주인인 신대승을 꼭 닮았다. 섬기는 게 쉽지는 않지만 잘 따를 경우 반드시 대가가 주어지는 케이스다.

“한 번쯤은 제가 대접해드려야죠. 매번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

김재후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신변 잡기로 뜸을 들이면서 요기를 한 후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부사장님은 강주혁 사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주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재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신대승 라인에게 강주혁은 이윤철을 몰아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어이 살아남아서 신대승과 김태현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그것만으로 끝났으면 다행인데 입사 초기부터 전대미문의 활약을 펼치면서 회장의 눈에 들어버렸다.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은 제로인데 적이 되면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급성장해 버린 것이다.

“그놈은 왜?”

“강주혁을 처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김현우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뭐라고?”

김재후가 김현우를 노려보았다.

“2팀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히든 보스를 발견했습니다. 저만 확인했고 아직 보고는 안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조만간 공략 3팀이 맡게 될 예정입니다.”

김재후는 김현우가 무엇을 말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이 사람 이거 아주 무서운 인간이었구먼.”

김재후가 기분 나쁘게 웃어 보였다. 김현우는 마주 웃었다. 그가 아는 김재후는 절대로 이 건수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한번 들어나 보지. 히든 보스가 뭔데? 웬만한 걸로는 공략 3팀 실적만 보태주게 될 텐데.”

강주혁의 공식적인 랭크는 D급. 하지만 실제 전투력이 D급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공략 3팀에는 A급인 안다정도 있었다.

“데몬입니다.”

“데몬이라…….”

데몬 정도면 공략 3팀도 위험할 수 있다. 간신히 잡더라도 부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찰팀은 어떻게 하고?”

“정찰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추근호 과장 말이야?”

공략 1부 내에서만 도는 소문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김재후도 알고 있었다.

“네. 부사장님.”

“그 정신 나간 놈으로 뭘 어쩌려고?”

“그 친구, 지금 돈이 많이 궁한 상태입니다.”

“그렇겠지. 여기저기서 대출 끌어다 쓰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목돈을 쥐어 주면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그걸로 그놈의 입을 막겠다고?”

“네. 겸사겸사 부탁도 하나 하고요.”

“부탁?”

“지난 7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데몬입니다. 공략 3팀이 들어갔을 때도 가만히 있을 가능성이 있죠. 그 경우를 대비해서 자극을 줄 생각입니다. 추 과장 손을 빌려서요.”

“자극을 준다고?”

김현우는 14-A53에 있는 우물과 어떻게 해서 데몬과 조우했는지를 설명했다.

만약 데몬이 우물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추근호를 시켜서 우물 안에 성수(聖水)를 던져 넣을 생각이었다. 성수는 던전에서만 나오는 빛나는 액체로 악마종 몬스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던전을 떠나기 직전에 우물 안에 성수를 던져 넣으면 데몬은 그걸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위로 올라올 것이다. 그다음에 투입된 팀은 데몬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정찰팀의 다른 녀석들은? 그 방의 정찰을 반드시 추근호가 맡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현재 마석 도마뱀 탐색 때문에 임재경 부장이 정찰팀을 두 개로 나눈 상태입니다. 하나는 차지훈 팀장이 직접 맡고, 다른 하나는 추근호 과장이 이끌고 있죠. 그 팀이 공략 3팀에게 넘어갈 지역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김재후는 꺼칠꺼칠한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근데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 공략 3팀이 꼴 보기 싫으면 자네 혼자 처리해도 되잖아.”

김재후는 김현우가 혼자서 벌여도 될 일을 자신에게 들고 온 이유를 알면서도 물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랑 신대승 사장님께 점수를 따고 싶어서?”

김현우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김재후가 표정을 고치면서 노기를 드러냈다.

“추근호에게 먹일 돈을 자네가 직접 마련하기 싫어서겠지. 일이 틀어졌을 경우, 나랑 신대승 사장님을 엮어 넣으면 방패막이로 쓸 수도 있고. 안 그래?”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정곡을 찔린 김현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김재후의 말대로 혼자서 일을 벌이려니 겁이 나서 뒷배를 찾은 것이다.

“자네는 지금 회사의 부사장에게 해사 행위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거야. 그게 얼마나 정신 나간 소린지 알기나 하나?”

김재후가 정색하면서 언성을 높이자 김현우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짓거리를 해서 공략 3팀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면 회사는 멀쩡할 것 같나? 아무리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강주혁은 같은 인재를 잃어버리는 건 회사 입장에서 큰 손해야.”

김재후는 김현우에게 삿대질까지 해대면서 훈계를 해댔다.

‘비열한 새끼.’

김현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김태현에게 강주혁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코치까지 해준 양반이 저런 식으로 나오니 분통이 터졌다.

‘멍청한 놈, 뒈질 거면 혼자 뒈져라.’

김재후는 그런 김현우를 노려보면서 속으로 웃음 지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김현우의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양준기는 강주혁을 잘못 건드렸다가 회장에게 박살이 났다. 상처는 모두 회복했으나 위신은 그렇지 못했다. 양준기를 따르던 자들 중에 신대승 쪽으로 넘어오려고 간을 보는 자들도 생겨났다.

게다가 지난 송년회 때 회장이 한 선언은 김재후의 야심에 불을 지폈다. 겉으로는 계속 신대승에게 충성하는 척을 했으나 속으로는 그를 제치고 태원공략을 차지할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니 신대승을 위한답시고 회장에게 찍힐 만한 일을 하는 건 피해야 한다.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하지. 잘 생각하게.”

김재후는 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 * *

강주혁은 커다란 대검을 수평이 되도록 들고 있었다. 칼날의 평평한 면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어져 있었다. 무게가 20㎏은 족히 되는 돌덩이였다.

‘이걸 버티네?’

권대호는 무심한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몇 분이 지나도 흔들림이 없었다.

“스승님.”

“왜?”

“회장님은 왜 태원공략에 무관심해진 건가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최근에야 강주혁의 부상으로 다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지만 입사할 때만 해도 신태원은 태원공략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고삐가 풀린 각 계파들은 회사를 망가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공략을 그룹의 핵심으로 여기는 사람답지 않은 태도였다.

“형님은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그만큼 바라는 것도 많았지. 센 몬스터도 잡고 싶어 했고, 돈도 많이 벌고 싶어 했지. 큰 회사를 세워서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삶을 꿈꾸기도 했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원했던 건 무(武)였다.”

“무요?”

“그래. 무에서 정점에 오르고 싶어 했지.”

“이미 오르셨잖아.”

직접 붙어본 적은 없으니 한국 최강이 전 세계 최강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신태원만큼 뛰어난 업적을 남긴 헌터는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굳이 그런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신태원이 검에서 정점에 올랐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권대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지. 나도 그렇고 형님도 그렇고 6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내공이 쌓이지 않았다. 성장을 멈춘 거지.”

육체는 30대만 지나도 서서히 노쇠하지만 내공은 그렇지 않다. 사냥과 수련을 계속하면 무한하게 성장한다.

“죽을 때까지 쌓이는 게 아니었나요?”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 나이까지 헌터로 활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 편견이더구나. 분명히 멈추는 시점이 있어. 아무리 강한 몬스터를 잡아도 아무리 운기행공을 해도 더 이상 쌓이지 않지. 결국, 형님이나 나나 헌터로서의 생명이 끝난 거야.”

“그래서 태원공략에서 마음이 멀어졌군요.”

“엄밀히 말하면, 광야에서 마음이 멀어진 거지. 거기에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뭔가가 나올 줄 알았거든. 결국은 못 찾았지만.”

“혹시 신대성을 그냥 내버려 둔 것도 무에 대한 갈망 때문인가요?”

“그래. 자신이 넘지 못한 한계를 자식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럼 저를 회사에 잡아두려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일 수 있겠군요.”

강주혁은 지난 주말에 권대호에게 신태원이 송년회 때 했던 말들을 해주었다. 회사를 통째로 넘기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권대호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래. 너를 잡아두는 게 회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첫 번째 이유겠지만, 대성이 때문도 있겠지.”

강주혁은 신태원이 자신을 남궁천처럼 자식들의 페이스메이커로 써먹을 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강주혁은 이용만 당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네, 스승님.”

“이쯤 하면 충분한 것 같구나. 내려놓아라.”

강주혁은 검을 기울여서 돌덩이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뻐근해진 팔을 풀었다.

“시험에 통과했으니 약속하신 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죠.”

무거운 돌덩이를 검에 얹어 놓고 버티는 건 권대호가 내린 시험이었다.

청룡검의 다음 단계로 서둘러 넘어가려고 하는 강주혁에게 제동을 걸 생각으로 낸 시험이었는데 이것도 무난히 통과해 버렸다.

권대호도 할 말이 없어졌다.

“청룡검은 위험한 기술이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이냐?”

“조만간 어려운 공략에 들어갈 예정이거든요.”

“어려운 공략?”

“네. 그 전에 신무기 하나쯤은 있어야지 마음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 * *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목소리 낮추게.”

김현우는 언성을 높인 추근호 과장을 제지했다.

“하.”

추근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김현우는 끈기를 가지고 기다렸다. 그로서는 이번 일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강주혁이 아이언 골렘을 잡을 때 보여줬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런 괴물이 있다면 공략 3팀이 2팀을 뛰어넘는 것도 시간문제다.

양준기 전무도 휘청거렸으니 공략 1팀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공략 3팀만 처리하면 자신과 공략 2팀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비열한 김재후 부사장이 발을 빼버렸지만 상관없었다. 김현우에게는 신대승의 비서실장인 백규진이라는 루트도 있으니까.

이번 일을 성공시킨 후 신대승에게 직접 보고하면 분명 자신을 치하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 살겠다고 자신을 모른 척 한 김재후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신대승 라인 내에서의 서열이 역전될지도 모른다.

“간단한 일이야. 그냥 그 방에 들어가서 우물 안에 성수만 던지고 나오게.”

김현우의 말에 추근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민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을 한다는 건 이미 마음이 어느 정도 기울어졌다는 얘기니까.

“우리는 그렇게 깊숙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추근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14-A53에는 마석이 없다. 채광팀이 투입될 일이 없기 때문에 정찰팀도 리스폰 데이 후에나 들어갈 것이다.

리스폰 데이가 지나면 요새 안은 다시 몬스터가 득실거리게 된다. 그만큼 정찰팀이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줄어든다.

“투명화 마법이 있지 않나.”

김현우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추근호는 투명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투명화 마법을 감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없으니 요새의 내부까지 정찰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지 공략팀에게 생길 변수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잠입해서 우물 안에 성수를 던져 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만 해주면 내가 좀 더 도와주겠네. 돈이 많이 급하다고 하지 않았나?”

추근호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예전에 김현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지는 몰랐다.

“저 이제 손 털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추근호는 계속 입을 달싹였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마석 도마뱀 새끼를 쫓아 수십 미터 지하로 내려갔던 때를.

멀어져 가는 마석 도마뱀.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 마법으로 만들어낸 작은 빛으로는 밀어낼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어둠.

그 속에서 추근호는 반드시 마석 매장지를 찾아내라는 차지훈 팀장의 엄포와 살고 싶다는, 빨리 올라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싸워야 했다.

결국, 단념하고 올려달라고 로프를 흔들어댔지만 반응은 느렸다. 역장 마법으로 흙을 밀어내고는 있었지만 마나는 빠르게 고갈되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수십 미터 지하에 산 채로 묻힐 뻔했다. 공략팀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성질의 공포를 정찰팀은 매일 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추근호는 그 공포를 달래기 위해서 더 큰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군. 오늘 들은 얘기는 없던 일로 해주게.”

김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김현우의 시선이 다시 추근호에게 향했다.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직장인에게 생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추근호는 눈을 감았다. 그 역시 직장에서 살아남겠다는 생각만으로 버텨왔다.

헌터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도박을 해야 했다. 노름빚을 갚기 위해서는 헌터 일을 계속해야 했고. 그렇게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멈추는 순간이 자신의 최후가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추근호는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떴다.

“하겠습니다. 그 대신…….”

퀭한 두 눈이 통제할 수 없는 갈망으로 번들거렸다.

“조금만 더 챙겨주십시오.”

* * *

공략 3팀이 14-A53에 들어가는 날.

강주혁은 톨게이트에서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늘어놓았다. 인사팀 직원과 감사실 직원이 함께 그것들을 확인했다.

안에 들고 들어가는 물건을 확인해야지만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물건이 개인 소지품인지 던전에서 습득한 물건인지 알 수 있으니까.

안다정과 공허진은 옆방에서 여직원에게 검사를 받고 있었다.

“성수?”

함께 검사를 받던 유덕현이 빛나는 액체가 담겨 있는 병을 보면서 물었다. 강주혁이 자비로 마련한 것이다.

“네, 팀장님.”

“갑자기 성수는 왜?”

“혹시나 해서요. 역병 치료제랑 해독제도 챙겼습니다.”

“좋은 자세다.”

유덕현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사실, 오늘 필요한 것은 성수뿐이지만 둘러대기 좋도록 역병 치료제랑 해독제도 같이 챙긴 것이다.

“확인 끝났습니다.”

소지품 확인을 끝낸 직원이 말했다.

“들어가자.”

“네, 팀장님.”

반드시 오늘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직 공략 2팀이 데몬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몇 년 후에 벌어질 일이다.

만약 데몬이 잠잠히 있으면 강주혁은 놈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그놈을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척 크지만, 일행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데몬이 활동을 개시하더라도 승산은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냈으니까. 무엇보다도 강주혁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어떤 악마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지.’

강주혁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봉마검으로 처맞기 전에는.’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