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해체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새해가 밝았다.
“다들 주목.”
팀장급 회의를 다녀온 유덕현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세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주혁이가 잡아온 마석 도마뱀 새끼, 놓쳐버린 건 알지?”
“네. 팀장님.”
어제, 공략 1부 정찰팀이 마석 도마뱀 새끼를 잡아온 지역으로 데려가 풀어놓았다.
멀찌감치 떨어진 채 기다리자 새끼는 둥지를 찾아 땅속으로 들어갔고 정찰팀은 곧장 추격에 들어갔다.
추근호 과장이 대표로 새끼가 뚫어놓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바짝 붙어서 쫓아가면 멈춰버릴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한참을 내려가도 마석 매장지는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토굴이 무너지면서 추근호 과장은 땅속에 갇히고 말았다.
역장 마법으로 쏟아지는 흙을 밀어내고 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로프를 끌어당겨서 빠져나오긴 했으나 새끼는 놓치고 말았다.
“많이 깊었나 보군요.”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강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정찰팀에게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긴 거지.”
마석 매장지가 지면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정찰팀이 찾아버린다면 매장지에 있는 마석 도마뱀을 잡는 것 빼고는 공략팀이 할 일이 없어진다.
그마저도 공략 1팀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기회요?”
“정찰팀만으로는 찾는 게 불가능해졌잖아. 정찰팀도 기본 임무가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그 지역 땅만 파고 있을 수는 없지. 팀들 간 실적 문제도 있고.”
매장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마석 매장지를 발견하고 가장 먼저 공략한 팀은 이번 해 실적 1위에 등극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팀이 마석 도마뱀 추적을 원했으나 이미 담당하고 있는 지역들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교대로 투입하기로 결정이 났다. 팀별로 이틀씩 번갈아 가면서 마석 매장지 탐색에 투입될 거야.”
임재경 부장은 그냥 공략 1팀에게 마석 도마뱀 추격 임무를 맡기고 싶었겠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팀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공략 2팀에는 신유정 과장이 있다. 그녀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임재경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한 팀이 탐색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생기는 공백은 다른 팀이 메워주기로 했다. 우리는 공략 2팀 백업으로 들어갈 거야. 우리 백업은 4팀이 하고. 이건 팀별 로테이션 표.”
유덕현 팀장이 A4용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주혁아, 네가 저기다 좀 써 놔라.”
“네. 팀장님.”
강주혁은 종이를 받아서 달력형 화이트보드에다가 일정을 옮겨 적었다.
‘14-A53.’
3팀이 2팀을 대신해서 공략해야 하는 지역이다.
회귀 전, 공략 2팀이 3팀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벌였던 사건이 떠올랐다.
강주혁의 활약으로 모든 사건이 몇 년 정도 앞당겨졌다. 그래도 사건의 순서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현우 팀장의 성격과 공략 2팀이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회귀 전과 같은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무척 컸다.
‘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 * *
14-A53지역.
지역 전체가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복판에는 산을 깎아서 만든 요새가 있다.
공략 2팀은 요새 안에 있는 놀과 코볼트를 모두 사살한 후 최종점검을 위해서 정찰을 돌고 있었다.
요새 안에는 백여 개의 방이 있어서 정찰에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저쪽 방을 체크하지.”
“네. 그럼 제가 이쪽 확인할게요.”
신유정 과장과 한 조를 이루고 있던 김현우 팀장은 잠시 그녀와 헤어졌다.
던전에서의 단독행동은 금기시 되지만 둘 다 놀과 코볼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인 데다가 바로 옆방이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다.
김현우는 어두침침한 방을 한 번 쓱 훑어본 후, 구석에 있는 우물로 다가갔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물은 깊었다. 사실, 이게 정말로 우물이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생긴 걸로 추측만 할 뿐.
김현우는 늘 그랬듯 별생각 없이 우물 안을 들여다봤다.
“헉!”
김현우는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다.
우물의 깊은 어둠 속에서 붉은 피부를 가진 무언가가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정체불명의 존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강렬하면서 사악한 기운이 우물 위로 솟구쳤다.
김현우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A급 헌터인 그조차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기운이었다.
‘데몬?’
새빨간 피부를 가진 몬스터로는 데몬과 레드 드래곤이 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피부는 좀 더 주황빛에 가깝다. 좀 전에 본 녀석의 피부는 피처럼 진한 빨강이었다. 분명 데몬일 것이다.
악마종 몬스터는 다른 종 몬스터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강하다. 하급 악마종 몬스터 정도만 해도 다른 종 몬스터 사이에 껴 있으면 보스 취급을 받는다.
좀 전의 데몬은 분명 그 이상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소스라치게 만든 그 감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김현우는 다시 우물 안을 들여다봤다. 더 이상 데몬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기 중에는 여전히 섬뜩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히든 보스가 있었군.’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저 우물 벽을 타고 내려갈 수 있다. 아니면 정찰팀도 찾지 못한 비밀 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요새 지하에 데몬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추종자를 만드는 악마의 습성상 절대로 데몬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데몬이 강하면 그것에 비례해서 추종자들도 강해진다.
‘어떻게 처리하지?’
공식적인 절차는 공략 보고서를 통해 오늘 본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럼 정찰팀이 리스폰 데이 전에 이 지역을 다시 한번 뒤질 것이다. 비밀 통로가 없다면 우물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적들이 데몬과 그의 추종자들이라면 공략을 위해 TF팀이 조직될지도 모른다. 임재경 부장의 성격상 그냥 공략 1부 내 최강 팀인 1팀을 투입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공략 2팀에게 떨어지는 건 없었다.
‘잠깐.’
그때, 김현우의 뇌리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스쳐 갔다.
‘나만 놈을 본 게 아니지.’
김현우가 데몬을 본 것처럼 데몬 역시 김현우를 봤다. 데몬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설사 가만히 있더라도 자극을 주면 움직일 것이다.
이 지역은 조만간 공략 3팀이 맡게 될 예정이다. 공략 3팀에 안다정과 강주혁이 있기는 하지만 데몬을 상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고민되네.’
히든 보스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감춰서 다른 팀을 위험하게 만든다. 도의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김현우는 애초에 법과 도덕을 따질 만큼 맑은 사람이 아니다. 처벌이 두려워서 따르는 거지 안 걸리면 장땡이라는 주의였다.
공략 1팀은 회사 내 최고의 팀이고 공략 3팀에는 최우수 신입사원이 있다. 공략 2팀은 중간에 껴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1등을 밀어내지도 못했는데 3등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다.
이걸 그냥 보고해 버리면 공략 1팀에게 좋은 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덮어두었다가 사고가 터지면 공략 3팀을 날려버릴 수 있다.
‘정찰팀만 잘 구슬리면 되겠군.’
공략이 끝났으니 정찰팀이 점검하러 이곳에 들릴 것이다.
그들이 이걸 발견하지 못하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발견하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발견하더라도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김현우는 정찰팀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었다. 그를 유혹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팀장님?”
그때, 정찰을 끝낸 신유정이 이쪽으로 건너왔다. 김현우가 얼이 빠져 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 신 과장. 정찰은 끝났나?”
“네. 아까 잡은 녀석들이 전부였어요.”
김현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신유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열패밀리라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건 좋았지만 신대승 라인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지도 않았다. 아버지인 양준기 전무를 동원해 자기가 속한 1팀에게 온갖 특혜를 몰아주는 양준영과는 대조적이었다.
게다가 신유정은 고리타분하게 원칙을 따져서 김현우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 정글 같은 회사에서 혼자만 도도하고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로열패밀리인 그녀에게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나 김현우 같은 사람에겐 사치일 뿐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이만 돌아가지.”
“근데 저건 뭐죠?”
신유정이 갑자기 우물을 가리켰다.
“우물 같은데 버려진 지 오래됐어. 물도 말랐고.”
“저기서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요. 팀장님은 안 느껴지세요?”
신유정의 말에 김현우가 얼굴을 굳혔다. 그녀는 강주혁 같은 천재는 아니지만 감 하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이상한 느낌? 잘 모르겠군.”
“제가 한번 볼게요.”
“신 과장.”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감돌았다.
“내가 전부 확인했네. 이상 없어.”
김현우가 정색하자 신유정은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 * *
“저기 있어요!”
안다정이 외쳤다.
우우우!
키만 3m쯤 되는 거대 사슴이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앞이 낭떠러지로 막혀 있어서 달아날 곳이 없었다.
몸 여기저기에 안다정이 쏜 화살들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넘쳤다.
평범한 사슴이 아니라 몬스터로 분류되는 <썬더 엘크>.
우르릉! 콰쾅!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벼락이 떨어져 사슴의 뿔에 맺혔다.
콰지직!
뿔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조심해! 쏜다!”
사슴이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자 뿔에 모인 번개가 공략 3팀을 향해 날아왔다.
전격속성의 공격은 상대적으로 준비 시간이 길고 타격 범위도 적지만 그 대신 날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피하는 건 거의 불가능이다.
“제가 맡겠습니다!”
강주혁이 전면으로 나섰다. 이미 공략 계획을 수립할 때 그러기로 얘기해 뒀다.
강주혁이 청룡검을 전개하자 몸 여기저기에서 푸르스름한 스파크가 터졌다. 온몸을 휘감은 전격이 검으로 모여들었다.
강주혁은 그 상태로 검을 들어서 썬더 엘크가 쏜 번개를 막았다.
콰아앙!
검과 번개가 만나는 지점에서 폭음과 섬광이 터져나갔다. 엄청난 전류가 검에서 팔로, 팔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으윽!”
세포가 비명을 지르고 실핏줄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갔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고 경련이 일었지만, 강주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버텼다.
강주혁 주변에 있는 풀들이 모두 녹아내리고 바위가 새까맣게 그을렸다. 땅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평시라면 맞고 기절하거나 사망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청룡검 덕분에 뇌기로 전환된 내공이 벼락의 힘을 상쇄해서 몸을 지켜주었다.
“힐 들어가요!”
뒤에서 공허진이 외쳤다. 등에서부터 편안하고 시원한 느낌이 전해지자 과부하가 걸린 감각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몸에 기력이 돌아오자 강주혁이 품고 있는 청룡의 힘도 덩달아 강해졌다.
아직 청룡검에 완전히 적응을 한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써왔던 주작검에 비할 바도 아니고. 그러나 태생적으로 차원이 높은 힘이다. 썬더 엘크의 번개 따위에는 뒤지지 않는다.
똬리를 푼 청룡이 아가리를 벌리고 사슴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마침내 엘크의 번개가 끝났다.
“후우, 후우.”
강주혁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피뢰침처럼 번개를 집어삼킨 강주혁의 검이 사방에 청광(淸光)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우우!
최후의 수단이 먹히지 않자 썬더 엘크가 일행에게 돌진했다.
강주혁은 경직된 몸을 한 번 풀어준 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제가 첫 타를 날리겠습니다. 허진 씨, 혹시 모르니까 멀리 떨어져요.”
“네! 조심하세요!”
등 뒤에서 공허진 부산스럽게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
뿔을 앞세우고 돌진하는 썬더 엘크는 우람한 덩치 탓에 꼭 전차처럼 보였다.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뿔은 거인의 손바닥 같았고.
범위가 워낙 넓어서 정면에서 피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강주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탓!
강주혁은 썬더 엘크가 지근거리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아슬아슬하게 엘크의 머리통을 피한 강주혁은 체조 선수처럼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꽈배기처럼 말아 올린 몸이 촘촘하고 날카로운 뿔 사이로 빠져나왔다.
강주혁은 몸을 뒤집은 상태에서 검으로 엘크의 머리를 내리쳤다.
푹!
엘크의 정수리에 칼끝이 파고들었다. 엘크의 오러 스킨과 질긴 가죽을 고려한다면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뇌기를 가득 빨아들인 검은 그 둘을 간단하게 뚫어버렸다.
촤아악!
파고든 칼끝이 엘크의 돌진과 함께 척추를 따라 뒤로 밀려갔다. 칼이 지나가자 등줄기를 따라서 피가 솟구쳤다.
탁!
엘크를 뛰어넘은 강주혁이 지상에 착지했다.
“우우!”
썬더 엘크가 비명을 토해내면서 비틀거렸다. 사람으로 치면 척추를 따라 칼질을 한 것이다. 신경이 집중된 곳에 큰 자상을 입었으니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려오던 관성 탓에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퍽!
유덕현은 몸을 날리면서 엘크의 머리통을 방패로 후려갈겼다.
머리통이 틀어지면서 목이 드러났다. 안다정의 검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안다정의 칼날이 예기를 번뜩이면서 목젖을 베었다. 선혈이 낭자하고 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쿵!
썬더 엘크가 침몰하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엘크는 몇 번 몸을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
“주혁 씨, 괜찮아요?”
안다정이 물었다.
“네. 과장님. 허진 씨 덕분에 잘 넘겼습니다. 고마워요, 허진 씨.”
“아, 아니에요.”
공허진이 뺨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네 서커스를 봐도 별로 놀랍지가 않네. 어째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를 보여 주냐.”
유덕현이 강주혁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 웃었다.
“신기라뇨. 그냥 잔재주입니다.”
강주혁은 공허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진 씨.”
“네?”
“이번에도 허진 씨가 끝내죠.”
“……제가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니 조만간 숨을 거둘 것이다. 그래도 공허진에게는 좋은 기회다.
공허진은 유덕현과 안다정에게 눈짓을 보냈으나 두 사람은 모른 척했다. 체념한 공허진은 메이스를 두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썬더 엘크에게 다가갔다. 몬스터인 동시에 초식동물. 그래서인지 눈만큼은 온순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허진 씨 혼자서 이 녀석과 마주쳤다면 사냥당하는 건 허진 씨일 수도 있어요. 물론, 허진 씨를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재미 삼아 죽일 수는 있겠죠.”
“……알겠어요.”
때릴 곳을 확인한 공허진이 눈을 찔끔 감았다. 그리고는 메이스를 높이 치켜들었다.
퍽!
이번에는 한 번에 끝냈다.
‘확실히 나아졌군.’
공허진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불안 요소가 백 퍼센트 사라진 건 아니다. 드물긴 해도 치유가 안 될 때도 있다.
평소라면 충분한 시간을 줬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강주혁은 공략 2팀이 일을 벌일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회귀 전, 공략 2팀이 보고서에서 의도적으로 빼버렸던 데몬 때문에 3팀은 큰 위기를 겪었다. 접전 끝에 이기기는 했지만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게다가 회귀 전보다 몇 년이나 상황이 앞당겨졌다. 강주혁은 회귀와 비급을 통해 훨씬 강해졌지만 그 대신 공허진은 아직 미완성이다.
공략 2팀에게 넘겨받은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공허진의 정신을 굳건하게 다져 놓을 필요가 있었다.
“좋아. 이 지역은 끝났으니까 밥 먹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자.”
유덕현이 제안했다.
“네, 팀장님.”
웨이포인트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라서 시간상 밖에 나가서 먹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 온 전투 식량을 꺼냈다.
“지긋지긋하다. 진짜.”
유덕현이 한숨을 쉬었다.
전투 식량답게 열량도 높고 영양소도 풍부하지만 맛은 더럽게 없었다.
“팀장님.”
강주혁이 말했다.
“응?”
“저거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강주혁이 죽은 썬더 엘크를 가리켰다.
“저걸 먹겠다고?”
“네.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서 던전에 들어갔다가 먹은 적이 있습니다. 먹을 만합니다.”
“독성이 없는 건 알지만…… 질기지 않나요? 비린내도 날 텐데.”
안다정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공허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강주혁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이걸 준비했죠.”
강주혁은 오다가 채집한 나무 열매를 보여주었다.
“룬시아 열매?”
예상대로 안다정은 열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던전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서 이론에 능한 헌터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다.
“룬시아 즙은 고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비린내를 잡아줍니다. 저한테 10분만 주시면 엘크 스테이크를 대접해드리죠.”
“저는 먹고 싶어요!”
공허진이 큰소리로 외쳤다. 세 사람이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어깨를 움츠렸다.
“죄, 죄송해요. 맛있을 거 같아서…….”
세 사람은 빙그레 웃었다.
“좋아. 주혁이 요리 솜씨 한번 볼까?”
“그럼 제가 망볼게요.”
안다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허진 씨, 저 좀 도와줄래요?”
강주혁은 마석 채집용 칼을 엘크의 배에 쑤셔 넣으면서 말했다.
“해체 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들떠 있던 공허진의 얼굴이 착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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