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회사를 떠나주십시오
“다은아!”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신유정이 아는 체를 했다.
“언니, 오랜만이야.”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사람들이 다 너만 쳐다본다, 얘.”
신유정의 말대로 신다은은 사람들의 이목을 싹쓸이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러 갈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그녀를 보느라 움직일 줄 몰랐다. 신태원 회장과는 다른 의미의 존재감으로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격식을 차린 자리인 줄 몰랐지. 할아버지가 그냥 연말 파티니까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거든.”
신다은은 태연한 척 말했으나 오늘 이 순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브닝드레스와 귀걸이는 한 달 전에 주문 제작한 것이고, 화장은 톱스타들만 상대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머리는 청담동에서 가장 몸값 비싼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해준 것이다.
“근데 공략 3팀은 왜?”
신유정이 물었다.
“아, 다정이 만나러 왔어.”
신다은은 그렇게 말한 후 공략 3팀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다정 과장은 어디에 있나요?”
공략 3팀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신유정도 깜짝 놀랐다.
“아, 안 과장을 알아?”
신유정은 말을 더듬었다.
“응. 나 미국에 있을 때 유학생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친구야. 우리 회사도 내가 추천해 준 건데 입사하고는 통 연락을 못 했네.”
“안 과장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강주혁이 답했다.
“아, 그렇군요. 따로 연락해 봐야겠네요. 다정이한테 물어보면 언니 회사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도 들을 수 있겠다. 같은 부서라고 했지?”
신다은이 싱긋 웃으면서 신유정을 바라보았다. 신유정의 동공이 미친 듯이 떨렸다.
“내가 회사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왜 안 과장한테 들어.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신유정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신다은과 팔짱을 꼈다. 그러더니 그녀가 모르게 공략 3팀 사람들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강주혁이 말했다.
“네? 아, 저…….”
신다은은 다급하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고 말을 삼켰다.
“하실 말씀이라도?”
강주혁은 정중했지만 동시에 냉담했다. 그 사무적인 태도에 신다은은 벽을 느꼈다.
‘날 봐도 아무 느낌이 없나?’
지금까지 신다은을 본 남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황홀경에 빠져서 미친 듯이 들이대거나 겁을 집어 먹어서 말이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강주혁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똑같은 톤과 표정, 시선으로 그녀를 대했다.
“아니에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 그럼.”
강주혁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유덕현과 공허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시죠. 팀장님.”
“그래.”
세 사람은 음식이 차려진 홀로 향했다.
‘의외군.’
안다정과 신다은이 아는 사이라는 건 강주혁도 처음 알았다. 회귀 전에는 이런 일 자체가 없었으니까. 강주혁은 이 변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상관없으려나.’
강주혁이 태원 공략을 차지할 야심을 품었을 때 고려했던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태원 회장이 오늘 했던 선언에 따라 자력으로 사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회장이 공언한 만큼 번복될 가능성은 적으나 그의 자식들이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컸다.
공략을 차지하더라도 모그룹의 집중포화를 받는다면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장애 때문에 공략 회사를 이끌기 힘든 신대길과 손을 잡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신다은이 문제였다.
신다은이 할아버지에 버금가는 천재라는 얘기는 강주혁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신대길은 분명 뛰어난 무재인 딸에게 공략회사를 물려주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니 강주혁 입장에서는 신다은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방법이 두 개나 생겼다. 하나는 권대호에게 주식을 물려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광으로 이직해 외부에서 태원공략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선택지가 네 개나 되니까 굳이 하나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다.
“진짜 소문대로네.”
유덕현이 말했다.
“소문이요?”
“신다은 씨 말이야. 여배우 뺨친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데뷔하면 단번에 톱스타 등극하고도 남을 것 같더라.”
“저도 저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어요.”
유덕현과 공허진이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전설 속의 동물을 직접 목격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는 미모이기는 했다.
“주혁아, 신유정 과장 말대로 소개팅 한번 해보는 건 어때?”
“저런 사람이 저를 좋아하겠습니까?”
“왜? 네가 어때서?”
“신분이 다르잖아요.”
“혹시 아냐? 널 마음에 들어 해서 네 직장 생활에 꽃길을 깔아줄지.”
“반대로 회장님한테 찍혀서 가시밭길을 걸을 수도 있죠. 회장님이 엄청 아끼신다고 하셨잖아요. 저 같은 서민과 만나는 걸 허락하실 리가 없죠.”
“쩝. 그런가.”
식당은 뷔페식이었다. 강주혁과 유덕현은 음식을 먹을 만큼만 접시에 담았다.
하지만 공허진은 산더미처럼 쌓았다. 공허진의 먹성을 잘 알고 있는 강주혁은 무덤덤했지만 유덕현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랬다.
“허진아, 그거 다 먹을 수 있어?”
“네? 아, 네…… 다 먹을 수 있어요.”
공허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민망해했다. 강주혁은 유덕현에게 귓속말을 했다.
“팀장님, 다음에 회식할 때는 무한 리필집으로 가시죠.”
“……그래. 그래야겠다.”
세 사람은 자리에 돌아와서 식사를 했다.
5분쯤 지났을 때, 신유정과 신다은이 각자의 접시를 들고 공략 3팀의 자리로 왔다.
“팀장님, 우리 여기 앉아도 될까요?”
팀별로 원형 테이블이 하나씩 배정되었는데 공략 3팀은 원래 인원이 적은 데다가 안다정도 불참해서 빈자리가 있었다.
“물론입니다.”
유덕현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냉큼 자리에 앉았다.
“우리 다은이가 공략 3팀 사람들이랑 인사를 하고 싶대요.”
신유정이 개구쟁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뭔가 장난을 칠 만한 건수가 생긴 얼굴이었다.
“여기 먹성 좋은 아가씨는 공허진 사원이고 저기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녀석은 강주혁 사원입니다.”
강주혁과 공허진은 신다은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저는 이 팀의 팀장인 유덕현 차장입니다.”
“반가워요.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 이름은 신다은이에요. 저는 그냥…… 백수예요.”
신다은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돈 많고 칼 잘 쓰는 백수지. 여기에 있는 주혁 씨도 검술에 조예가 깊으셔.”
“과찬이십니다. 신 과장님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죠.”
“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저도 주혁 씨에 대해서 많이 들었어요.”
신다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얘기를요?”
“아빠가 이윤철 사장님하고 친하거든요. 그래서 주혁 씨 얘기를 자주 들어요.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라고 극찬하셨죠.”
강주혁은 신다은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의도를 알아차렸다. 강주혁에게 이윤철과의 관계를 과시하면서 손을 내밀려고 온 것이었다. 신유정은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거고.
“사장님께서 저에 대해서 좀 과장해서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과장은 무슨.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유덕현이 힘주어 말했다. 공허진도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면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이는 주혁 씨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네요.”
신다은의 말에 신유정이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신다은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머, 진짜?”
신다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시선이 강주혁을 향했다.
“주혁 씨도 알고 계세요?”
“안 과장님 얘기라면 노코멘트입니다.”
“주혁 씨는 다정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다은이 맹랑하게 물었다.
“좋은 상사이자 전투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라고 생각합니다.”
“안 과장도 그렇게만 생각할까요?”
신유정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물었다.
탁.
강주혁이 들고 있던 포크를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과장님, 아가씨.”
강주혁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 별로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 같네요. 잘 아시겠지만 이런 가십거리는 업무 분위기를 해칠 수 있습니다.”
어조는 정중했지만 목소리는 냉랭했다.
신유정과 신다은은 장난을 치다가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사람과 함께 강주혁을 놀리려고 하던 유덕현도 그가 정색하자 입을 다물었다.
“안 과장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우리가 이러는 걸 알면 당사자가 좋아하겠습니까?”
“……미안해요. 장난이 과했네요.”
신유정은 머리를 배배 꼬면서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웃어?’
하지만 신다은은 오히려 강주혁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친구 맞나?’
오늘 불참한다는 것도 모를 정도면 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마침 접시가 비었기에 강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짜증나네.’
강주혁은 감정을 드러낸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다정을 농담거리 삼아서 시시덕거리는 걸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너무 철부지 같은데.’
강주혁은 신다은에 대해서 잘 몰랐다. 회귀 전에도 먼발치에 몇 번 봤을 뿐,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주혁은 이윤철에게 신세를 졌고, 이윤철은 신대길의 친우다. 권대호 역시 신대길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신대길을 저렇게 만든 건 강주혁의 원수인 신대성이다.
신대성과의 전쟁에서 동맹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신대길이다. 그래서 그의 외동딸인 신다은에게도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검술 실력이랑 외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 때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성숙함과 오너 일가로서의 위엄은 결여된 것 같았다.
‘칼만 잘 쓰는 바보인가.’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도 있으니 그쪽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주혁 씨.”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음식이 준비된 홀로 걸어가는데 신유정이 그를 따라잡았다.
강주혁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화 많이 났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은이랑 같이 있으니까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지 뭐예요. 제가 잠깐 회사에 있다는 걸 망각했네요.”
“그럴 수도 있죠.”
강주혁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신유정은 잠시 그의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음식을 가지러 오기는 했지만, 입맛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은 마실 걸 챙겨서 사람이 없는 창가 쪽으로 이동했다.
“저는 주혁 씨가 참 좋아요.”
신유정이 대뜸 그렇게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말아요. 남자로서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이전이랑은 얘기가 다르군요.”
“어머? 주혁 씨 기대하고 있었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마음을 접었는데…….”
“엇갈린 사랑이네요.”
강주혁이 농담을 받아주자 기분이 좋아진 신유정이 헤헤거리면서 웃었다.
“주혁 씨처럼 근사한 남자가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단념할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럴 땐 왜냐고 물어보는 게 예의에요.”
이번에는 콧김을 뿜으면서 씩씩거렸다.
“쓸데없는 미련을 가지게 하는 것보단 낫죠.”
“주혁 씨는 칼보다 말이 더 날카로운 사람 같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어휴,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요. 그렇게 못된 말만 하다가 천벌 받을 거예요.”
강주혁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신유정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도 한참 동안 뜸을 들였다.
“우리 아빠 많이 싫죠?”
“네. 싫습니다.”
인턴 시절 당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나도 아빠가 못된 사람이란 거 알아요. 이 업계에 들어오니 모를 수가 없더군요.”
신유정이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근데 그거 알아요? 밖에서는 폭군에 악당이지만 집에서는 완전 딸 바보라는 거.”
신유정을 보면 왠지 그럴 것 같기도 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많이 슬펐어요. 아빠한테 왜 그렇게 사냐고 울면서 화를 낸 적도 많았죠.”
“아버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미안하다고 하면서 달랬죠. 하지만 딱 그때 뿐이었어요. 나가서는 또 직원들 괴롭히고 나쁜 짓을 서슴없이 벌였죠. 제가 첫 직장으로 태원이 아니라 신광을 택한 것도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어요. 아빠가 떠났어도 여기에는 아빠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후계 경쟁의 최전선이기도 하고요.”
“근데 왜 옮겨오신 건가요?”
“할아버지로부터 주혁 씨한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들었어요. 아빠가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 전에도 해서는 안 될 짓들을 많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이대로 뒀다가는 내가 아는 아빠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왔죠.”
“아버님이랑 싸우시려고요?”
“그건 아니에요. 아빠가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저는 아빠의 딸이니까요. 아빠가 큰 아빠랑 삼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요. 하지만 공정하게 실력을 겨뤄서 이겼으면 좋겠어요. 그게 할아버지의 바람이기도 하고요. 제가 여기에 있는 한 아빠도 함부로 일을 벌이지 못할 거예요.”
“아버님께서 경쟁에서 승리하셔서 회장 자리에 오르시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도 선을 넘지 않을까요?”
“그렇게 안 되도록 제가 막아야죠.”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강주혁도 신유정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신유정은 도덕적으로 흠이 될 만한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운 적이었다. 장수로 비유하자면 덕장(德將)이니까. 태원공략에는 유덕현처럼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다른 로열패밀리하고는 다른 신유정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잘 따랐다.
신대승은 유능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대신 오만하고 성정이 거칠다. 신유정은 신대승에게 결여되어 있는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서 아버지의 약점을 보완해 주었다.
“지나친 낙관론처럼 들리는군요.”
하지만 강주혁은 신유정의 한계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맞아요. 그래서 주혁 씨가 필요해요.”
“제가요?”
이런 말이 나올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신다은을 통해 강주혁이 신대길과 손을 잡는 그림을 그렸는데, 강주혁의 반응이 영 심드렁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질러보기로 한 것이다.
“공략회사는 그룹의 핵심이에요. 할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열사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공략회사를 잘 이끌기 위해서는…….”
“뛰어난 헌터가 되어야 하죠.”
“맞아요. 사실, 저는 그 점에서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주혁 씨가 도와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저를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닙니까?”
“주혁 씨에 대한 소문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어요. 하지만 함께 싸워보니 오히려 소문이 주혁 씨의 진가를 축소해버린 느낌이 들더군요. 할아버지가 좀 전에 한 말도 사실 주혁 씨 들으라고 한 말이에요. 주혁 씨도 알고 있죠?”
강주혁은 부정하지 못하고 웃음을 지었다.
“주혁 씨가 저를 도와서 아빠를 회장 자리에 오르게 해주면 주혁 씨가 태원공략의 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줄게요.”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저 스스로 사장이 될 수도 있는데 굳이 과장님의 손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사장이 되면 그룹 전체의 공격을 받을 거예요.”
그건 강주혁 역시 걱정하던 바였다.
“만약 주혁 씨가 저를 도와준다면, 그렇게 해서 아빠가 회장이 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막아줄 테니까요. 동시에 주혁 씨가 아빠를 견제하는 거예요. 공략회사 사장이라면 그룹 내에서 그 정도 힘은 있어요. 제가 중간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거죠.”
먼 미래의 일이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저도 아빠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아빠의 시대도 언젠가는 지나갈 거예요. 그 이후엔…….”
“과장님의 시대가 오는 겁니까?”
“거창하게 말하면 그렇죠. 주혁 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영영 오지 않겠지만.”
신유정이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랑 내기 하나 하시죠.”
“내기요?”
“다음 한 해 동안 공략 3팀과 2팀이 올릴 실적으로 내기를 하는 겁니다. 만약 2팀이 이기면 평생 과장님의 검이 되겠습니다. 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신유정의 얼굴이 환해졌다.
공략 3팀이 무섭게 상승세를 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2팀만큼은 아니다.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나쁘진 않네요. 3팀이 이기면요?”
“회사를 떠나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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