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이직 제안?
태원공략 별관의 1층 로비.
“마석 도마뱀이다!”
“맙소사…….”
입구 쪽에서 떠들썩한 소란이 일어났다. 로비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입구로 쏠렸다.
강주혁이 나무로 만든 지게를 짊어진 채 들어오고 있었다.
꾸우우.
지게에 묶여 있는 마석 도마뱀이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척!
강주혁은 지게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던전에서 자라는 나무를 잘라낸 후 다용도 로프로 엮어서 만든 지게였다.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도 마석 도마뱀의 무게를 견딜 정도로 튼튼했다.
파이어 치킨의 악취도 모두 제거한 상태였다. 근처의 개울에서 옷을 씻고, 향이 나는 나무 진액을 채취해 발랐더니 악취 대신에 은은한 향기가 났다.
강주혁은 이 모든 일을 30분 안에 처리한 후 마석 도마뱀을 짊어지고 느긋하게 게이트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젠 놀라는 것도 지치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신유정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때, 인파가 모세를 만난 바다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신태원 회장이 이윤철, 김재후, 그리고 남궁천을 대동하고 1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앗!”
남궁천을 발견한 신유정은 냉큼 강주혁의 넓은 등 뒤로 숨었다. 친분이 있는 남궁천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사표를 던지고 신광을 떠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만났군.’
강주혁은 자신을 보면서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는 신태원을 바라보았다. 회귀 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회귀 전, 신태원에 대한 강주혁의 감정은 복작했다. 큰아들의 범죄를 방조한 것에 대한 원망도 있었으나 자신을 중용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회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후 강주혁은 신태원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만약 신태원 회장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무난하게 임원을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대호로부터 신대성이 어떻게 그런 괴물이 되었는지를 들은 지금, 신태원에 대한 감정은 증오와 원망뿐이었다.
‘모조리 뺏어주마.’
신태원은 강주혁이 자신이 일군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겠지만 강주혁은 그 제국을 찬탈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자네가 강주혁이지?”
신태원 회장이 강주혁에게 다가왔다.
“네, 회장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태원은 강주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주혁은 거칠고 투박한 그 손을 잡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문대로 걸물이구먼.”
마석 도마뱀을 보고 있는 신태원 회장은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과찬이십니다.”
“인턴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네.”
“아닙니다.”
“회사의 주인으로서 사과하지. 그리고 회사를 구해줘서 고맙네. 자네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야.”
신태원 회장은 강주혁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면서 말했다. 강주혁에게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이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닙니다, 회장님.”
“이 사장.”
신태원이 이윤철을 불렀다.
“네, 회장님.”
“이 친구가 어디 소속이지?”
“공략 1부 3팀입니다.”
“마석 매장지 찾는 건 공략 1부한테 맡기도록 하지. <웨이브 데이>까지 끝낼 수 있겠나?”
웨이브 데이란 던전의 모든 몬스터가 게이트를 향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을 뜻한다. 매해 3월 17일로 전 세계 던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몬스터 웨이브를 잘 막으면 큰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공략 권한을 박탈당한다. 광야에도 웨이브 데이를 제대로 막지 못해서 망한 회사들이 있었다. 웨이브 데이 기점으로 공략업계 전체가 요동치는 것이다.
“네, 회장님.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저 날강도 같은 놈이 이 친구를 데리고 가지 못하게 인센티브 잘 챙겨. 앞으로 우리 회사의 대들보가 될 사람이니까.”
신태원은 능글맞게 웃고 있는 남궁천을 노려보면서 인상을 썼다.
‘저 사람이 여기에 왜 있지?’
강주혁도 남궁천을 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업계의 대선배로서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롤 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남궁천은 이 업계에서 머슴으로 출발해 주인의 자리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가 태원공략을 떠났을 때만 해도 신광 공략은 우성 그룹에 속해있는 우성공략이었다.
우성 그룹은 현재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이다. 그러나 오너 일가가 헌터는 아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대신해 공략회사를 이끌어갈 헌터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태원공략의 임원으로 있던 남궁천을 스카우트해서 우성공략의 사장 자리에 앉혔다.
태원에서 갈고닦은 실력과 카리스마로 단기간에 회사를 장악한 남궁천은 회사의 운영 방향을 놓고 오너 일가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성의 한원호 회장은 남궁천을 쫓아내고 새로운 사장을 앉히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회사의 모든 헌터가 남궁천을 지지하면서 들고 일어났고, 모든 업무가 중단되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우성공략의 다른 주주들도 우려를 표시하자 한원호 회장도 결정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남궁천은 자리를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주식을 사들여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남궁천은 계열 분리를 통해 우성공략을 아예 우성그룹에서 뜯어내 버렸다. 신광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바꾼 회사는 남궁천의 진두지휘 아래 업계 1위로 도약할 수 있었다.
‘헌터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섬기지 않습니다.’
이전부터 업계 내에서 그런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말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한 사람은 남궁천이었다. 그날 이후로 이 말은 헌터 업계의 불문율이 되었다.
“회장님도 저희 직원을 말도 없이 빼가지 않았습니까.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남궁천은 강주혁의 등 뒤에 숨어있는 신유정을 보면서 대꾸했다.
“유정아, 갈 땐 가더라도 아저씨한테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니?”
“어, 음…… 죄송해요. 헤헤.”
신유정이 강주혁의 등 뒤에서 나오면서 혀를 살짝 빼물었다.
“시끄럽다. 이놈아. 네 회사 직원이기 전에 내 손녀다. 근데 유정아, 옷은 왜 그러냐?”
신태원 회장의 눈이 신유정의 전투복에 머물렀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옷이 찢어진 부분은 그대로였다.
“할아버지 잠깐 저랑 얘기 좀 해요.”
신유정이 신태원에게 다가가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두 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신유정은 신태원에게 귓속말로 한참을 얘기했다. 신태원은 눈을 감고 낮게 침음을 흘렸다.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 사장.”
신유정의 이야기를 다 들은 신태원이 이윤철을 찾았다.
“네. 회장님.”
“양준기 전무는 어디에 있나?”
신태원이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 * *
양준기 전무의 집무실.
‘제기랄.’
양준기 전무는 초조함을 달래려고 집무실 안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고 가슴이 답답했다. 넥타이가 오늘따라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떡하지.’
그냥 강주혁을 손봐주려고 한 건데 일이 너무 꼬여버렸다.
던전은 무법천지다. 특히, 한반도보다 몇 배나 더 크고 경찰도 없는 광야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이 광야로 도망치거나 게이트 밖의 범죄자들이 톨게이트에 있는 직원을 매수해 광야로 숨어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강주혁이 단독 사냥 시험에서 무법자를 만나서 큰 부상을 입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왜 하필 그 계집애가…….’
문제는 회장의 손녀인 신유정이 강주혁의 감독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후부터 양준기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박동수 이 새끼는 뭘 한 거야?’
신유정이 감독관으로 자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늘이었다.
인사팀 내의 신대성 라인인 박동수 대리는 그전까지 아무런 언질도 해주지 않았다. 아마 신대승 라인인 곽진섭 부장이 박동수 몰래 일을 진행시켰을 것이다.
만약 신유정이 참석한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이번 일을 도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피바람이 불 테니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와서 살수를 찾아가서 의뢰를 멈춰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 하필 오늘입니까?’
가장 큰 문제는 회장이 나타났다는 거였다.
최근 몇 년간 신태원 회장은 태원공략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회사에 오는 것도 많아야 1년에 한두 번이었다. 그것도 큰 문제가 생겼을 때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회사에 행차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 알랑방귀를 껴댔겠지만, 지금은 표정 관리를 할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위이잉.
그때, 양준기의 폰이 울렸다. 별관 1층에 있는 박동수가 보낸 메시지였다.
[강주혁이 마석 도마뱀을 잡아 왔습니다.]
‘뭐? 마석 도마뱀?’
설마 했는데 정말로 잡아 올 줄은 몰랐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양준기에게는 더 급한 일이 있었다.
[강주혁 씨 상태는 어떤가요? 다치진 않았나요?]
[부상은 없습니다.]
양준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멍청한 놈이 놓쳤구나.’
살수가 강주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양준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자신이 오히려 강주혁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 상황이 우스웠다.
벌컥!
그때, 비서실 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문이 양쪽으로 거칠게 열렸다. 노기등등한 신태원 회장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두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아,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당황한 양준기는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인사를 했다.
“네놈이 감히 나를 능멸해!”
신태원 회장은 사자후를 터뜨리면서 왼손 손바닥으로 양준기의 가슴팍을 쳤다. 양준기는 황급히 두 팔을 교차해 가슴을 막았다.
쾅!
강렬한 내공의 폭발과 함께 양준기 전무가 뒤로 날아갔다. 그는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옆방의 바닥에 널브러졌다.
“으으으…….”
격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앞이 희뿌옇게 보였다.
신태원 회장의 장법(掌法)을 막은 두 팔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 그렇게 막았는데도 갈비뼈가 주저앉은 것 같았다. 벽에 부딪힌 뒤통수와 등이 타들어 갈 것처럼 아팠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눈물이 찔끔 흘렀다.
저벅저벅.
신태원 회장이 벽에 뚫린 구멍으로 옆방으로 건너왔다. 방주인은 퇴근하고 없었다.
“내가 꼭 일일이 얘기를 해줘야 아느냐. 지난번 사건 때 내가 김재후 그놈을 가만히 내버려 둔 건 결국 모든 게 대승이의 잘못이기 때문이었다. 그놈이 잘나서가 아니라.”
양준기는 신태원 회장이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죄, 죄송합니다.”
양준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으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대성이가 시켰느냐?”
“아닙니다. 저 혼자 벌인 일입니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라!”
신태원이 호통을 쳤다. 양준기 전무는 간신히 뜬 눈으로 신태원을 올려다봤다.
“신대성 부회장은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신태원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하는 짓이 괘씸했지만, 처 낼 수도 없었다. 양준기와 김재후 모두 자신이 키워낸 인재들이다. 아직 까지는 회사 내에서 두 사람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정도면 다른 공략회사의 임원으로 무난하게 옮겨갈 수 있다. 남궁천의 전례를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네 놈이 올라가는 건 여기까지다.”
부사장도 사장도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회, 회장님…….”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칼을 뽑는 걸 보게 될 거다.”
신태원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남겨진 양준기 전무는 한 움큼의 피와 함께 허탈한 웃음을 토해냈다.
‘장법이라니…….’
신태원의 손바닥을 맞아보니 자신이 평생 동안 단련했던 무예는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법의 고수라는 평판과 구로쌍장이라는 별호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강주혁은 늘 그랬듯이 아침 일찍 출근했다. 웬일로 안다정이 미리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일찍 오셨네요.”
“좋은 아침이에요. 주말은 잘 보냈어요?”
강주혁을 바라보는 안다정의 얼굴에 얼핏 웃음기가 비쳤다.
“네. 과장님은요?”
“저도 잘 쉬었어요. 금요일 밤에 여기 어땠는지 모르죠?”
“사무실이요?”
“네. 주혁 씨가 마석 도마뱀 생포해왔다는 소식 듣고 다들 만세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너무 시끄럽게 해서 아래층에서 항의하러 올 정도였어요. 주혁 씨가 있었다면 헹가래도 쳤을 걸요.”
“제때 못 와서 죄송합니다. 사장님한테 붙잡히는 바람에…….”
단독 사냥 시험이 끝난 후 이윤철은 특별히 신입사원들만 데리고 회식을 했다. 마침 금요일 저녁이라서 술자리는 길어졌고 강주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밤 10시가 넘었다.
“축하해요. 주혁 씨 한 사람 덕분에 많은 게 달라졌네요.”
“감사합니다. 전부 팀장님이랑 과장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그런 거죠.”
“제가 주혁 씨한테 뭘 가르치겠어요.”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강주혁이 알고 있는 지식들 중 상당 부분이 회귀 전에 안다정에게 배운 것들이다.
그 지식들로 좀 잘나가게 되었다고 해서 우쭐거리거나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릴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 아직 업무시간도 아닌데 좀 쉬어요. 커피 한잔할래요?”
“아, 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할게요.”
“네. 과장님. 감사합니다.”
안다정은 강주혁의 텀블러까지 챙겨서 탕비실로 향했다.
강주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아는 안다정은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지만 대신해 주지도 않는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칼같이 선을 긋는 사람이니까.
강주혁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부터 확인했다.
‘어?’
최신 메일은 일요일인 어제 온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강주혁 씨. <비전 스카우트>입니다.]
비전 스카우트는 헌터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헤드헌터 기업이었다. 강주혁은 메일을 열람했다.
‘이직 제안? 벌써?’
대충 훑어보니 강주혁을 원하는 기업이 있으니 시간을 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뇌리에 신태원 회장과 입씨름을 벌이던 남궁천 사장이 스쳐 갔다.
‘신광인가?’
강주혁이 입 한쪽 끝을 올렸다.
그때, 뒤통수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안다정이 굳은 얼굴로 강주혁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