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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못난 제자를 용서하십시오.
46화 못난 제자를 용서하십시오.
양준기 전무의 자택.
그는 서재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방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다섯 명이나 죽었다고요? 상대는 몇 명이었습니까?”
“한 명에게 당한 걸로 추측됩니다.”
“C급 한 명과 D급 네 명이 한 명에게?”
“네. 전무님.”
“어디로 도주했습니까?”
“그게...아직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흔적이 없다고요?”
“네. 전무님.”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양준기 전무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인상을 썼다.
신대성의 사병들이 주둔하고 있는 화곡리에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마을 인근까지 접근해 헌터 다섯 명을 살해했다. 그런데 추격할 만한 단서가 남아있지 않았다.
“길이 없는 곳으로만 다닌 것 같습니다.”
“나무나 수풀이 꺾여있는 곳이 있을 텐에요.”
“정찰팀까지 투입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음...”
양준기는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걸 느꼈다.
화곡리는 신대성이 신줏단지처럼 생각하는 게이트가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침입한 목적을 알 만한 단서는 없나요?”
“그것도 아직...”
“무슨 일처리를 그따위로 하는 겁니까!”
양준기는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평소에는 부하들에게도 신사적으로 대하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양준기는 한숨을 쉬었다.
“경찰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직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양준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뒤처리를 하는 솜씨를 봤을 때 침입자의 신상을 알아내는 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화곡리 근처에 경찰이 얼쩡거리는 건 양준기도 원치 않았다. 경찰을 매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경찰이 움직이면 언론도 따라붙는다. 백주대낮에 사람이 다섯 명이나 죽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화곡리 던전은 태원공략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곳. 무슨 일이 있어도 여론의 주목을 받는 상황만큼은 피해야한다.
“죽은 헌터들은 그냥 던전에서 실종된 걸로 처리해요. 언론에서 냄새를 못 맡도록 입단속 잘 시키고요. 그리고 그 놈이 다시 올지도 모르니까 경계를 강화해요.”
“네. 전무님.”
“다음번에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신대성 사장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겁니다.”
“네. 전무님. 명심하겠습니다.”
“뭔가 나오는 게 있으면 곧장 연락해요.”
“네. 전무...”
양준기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머저리 같은 놈.”
신대성에게 보고를 할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왔다. 문제만 보고 할 게 아니라 해결책도 같이 얘기해야한다.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이게 누구의 소행인지부터 알아야한다.
“도대체 어떤 새끼지...”
양준기는 입술을 짓씹으며 머리를 굴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대는 화곡리 던전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그럴 만한 정보력을 갖춘 집단은 태원공략과 체급이 같은 공략회사거나 음지에 숨어있는 블랙헌터들일 것이다.
하지만 의문의 상대는 게이트로 접근하기 전에 경비헌터들과 조우했고 그들만 살해하고 돌아가 버렸다.
화곡리 던전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 태원공략을 건드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집단이라면 실력자 한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니라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공격대를 보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집단에서 미리 보낸 정찰병일 가능성도 있다.
‘정찰 목적으로 왔다가 경비랑 마주치자 그냥 달아버린 건가?’
전투력과 뒤처리 솜씨를 보건대 분명 프로다. 그런데 그 정도의 실력자가 정찰목적으로 왔다가 고작해서 C급인 경비에게 걸렸다?
이것도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애초에 목적이 화곡리 던전 자체가 아닐 수도 있겠군.’
화곡리에는 볼 일이 있지만 화곡리 던전 자체에는 볼 일이 없는 사람. 경비에게 걸릴 정도로 허술하면서도 동시에 경비들을 몰살하고 흔적을 지어버릴 수 있는 사람.
양준기는 그럴 만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었다.
객관적인 스펙은 E급이나 D급 정도밖에 안 되지만 항상 그 스펙을 초월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사람. 그리고 화곡리와의 인연이 무척 깊은 사람.
양준기는 다시 폰을 들었다.
“네. 전무님.”
탁한 목소리의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미행해야할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급한 양준기는 본론부터 얘기했다.
* * *
강주혁은 흉터가 올라온 길을 고대로 따라서 도로로 내려갔다. 흙바닥을 디디지 않고 곳곳에 박혀있는 돌덩이와 바위만 밟고 내려갔기에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신발에 묻어있는 흙이 바위에 흔적을 남길까봐 신발을 벗고 양말차림으로 디뎠다. 돌과 돌 사이가 떨어져있을 때는 보법을 이용해 뛰어넘었다. 시간도 더 걸리고 훨씬 더 고생스러웠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도로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 후 다른 정류장을 이용해 남산면을 벗어났다. 곧장 대구로 가는 게 아니라 버스를 갈아타가면서 북쪽의 영천시를 거쳤다가 대구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저녁 무렵이 되었다. 강주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족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서울로 올라왔다.
이동하는 내내 아버지가 남긴 노트를 읽었다. 고시원에 돌아온 후에도 새벽 2시까지 독서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반나절 만에 노트를 독파할 수 있었다.
사신무극검(四神武極劍) 2형(形).
<청룡검(靑龍劍)>.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펼쳐 보일 수 있는 기술들.
아버지가 있다고만 말하고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사신무극검의 또 다른 가지였다.
주작검과 달리 청룡검은 양손으로 휘두르는 대검을 이용했다. 양손대검을 사용하는 건 강주혁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검을 다루는 네 가지 방식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줬다.
첫째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방법. 주작검이 이 방법을 기반으로 한다. 아버지가 권해준 무기는 숏 소드나 레이피어였으나 강주혁은 근력을 길러서 롱 소드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숏 소드는 사거리와 공격력이 아쉬웠으니까.
둘째는 길고 무거운 대검을 양손으로 사용하는 방법. 청룡검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한손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방법이고 넷째는 한 손에 하나씩 두 개의 검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양손대검을 사용하는 청룡검으로 추측컨대, 아직 배우지 못한 백호검과 현무검은 저 방법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신대성이 이걸 배웠구나.’
주작검이 화기를 다루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처럼 청룡검은 바람과 번개의 기운을 다루는 법을 포함하고 있었다.
양손대검을 이용해 뇌기를 다루는 검술이라고 하니 이윤철과 신대성의 결투가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태원그룹과 강주혁의 운명을 결정지은 그 결투는 20년 후에 벌어진다. 미래가 바뀌지 않는 이상.
오랜 칩거를 끝내고 복귀한 신대성은 태원공략의 주인자리를 놓고 이윤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노환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던 신태원 회장은 그 결투를 허락했다. 부장이었던 강주혁도 그 결투를 참관했다.
신대성은 특이하게도 양손대검을 사용했다. 그건 파천제왕검의 방식이 아니었다. 파천제왕검은 주작검과 마찬가지로 한손 검으로 펼치는 기술이니까.
강주혁은 그 결투에서 신대성이 펼쳐보였던 기술들이 이 노트에 담겨있는 초식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걸 확인했다. 물론, 신대성이 그것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펼친 기술들 중 꽤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강주혁은 애증이 뒤섞인 시선으로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신대성이 원한 건 강 씨 집안의 게이트가 아니었다. 태원그룹의 장자가 매출도 얼마 안 나오는 촌구석의 던전을 탐낼 이유가 없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강 씨 집안의 사신무극검이었다. 회귀 전, 강주혁이 전체의 4분의 1만으로 태원공략에서 이름을 떨쳤으니 충분히 탐낼 만한 검술이긴 하다.
‘책으로 남기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살아생전에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무극의 묘리와 주작검도 시범을 보여주고 구두로 설명하는 식으로 가르쳐준 것이다. 설명을 위해 룬 문자나 그림을 써야할 때는 흙바닥이나 메모지를 이용했다.
아버지는 일부러 책으로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식들이 이유를 물으면 나쁜 사람들이 탐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던전에서 일어난 사고가 부하직원의 실수가 아니라 신대성의 음모라는 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몰래 전해주려고 하신 건가.’
태원공략의 마수를 피해서 자식들에게 몰래 기술을 전수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럴 거면 그냥 본인이 가지고 있다가 전해주면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에는 묻어놓은 장소가 너무 이상했다. 뒷산 중턱에 나란히 서있는 나무를 쌍둥이나무라고 부르는 건 아버지와 두 아들뿐이니까.
이처럼 아버지의 선택에는 모순되는 측면들이 있었다. 강주혁이 생각하기에 이걸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
‘사신은 무극에 이르는 열쇠이자 자물쇠다. 그 길을 걷는 자는 마(魔)를 경계해야한다.’
비급의 마지막에 적혀있던 구절. 마지막뿐만이 아니라 중간에도 주화입마(走火入魔) 즉, 내공의 역류나 폭주를 경계하는 구절들이 수없이 많았다. 사신무극검은 강력한 위력을 가진 만큼 극도로 위험한 기술이란 얘기였다.
오러를 내공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오러를 기반으로 하는 전투기술들을 무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사용자까지 위험하게 만들거나 익히고 사용하기 위해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들을 사파 무공이라 칭한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사신무극검은 사파 무공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신대성의 기이한 행보도 설명이 된다. 신대성은 신태원의 아들들 중 최강으로 꼽히던 신대길을 꺾었다. 기세가 올라서 한창 나대야할 시기인데도 신대성은 칩거를 택했다. 부회장으로서의 업무도 집안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신대성은 사신무극검의 일부를 익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신대길을 꺾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대성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데에 필요했던 20년은 사신무극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걸렸던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은 아버지의 소박한 삶도 설명해준다. 4분 1만으로도 대기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무공이 사신무극검이다. 아버지는 완전한 기술을 가지고도 시골에 있는 작은 공략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만족했다.
아마 아버지는 사신무극검을 자주 쓰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기본이 되는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안분지족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반강제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셨구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강력하지만 위험한 무공을 전수해줄지 말지를 고민했던 것 같았다.
자식에게 유서나 유언을 남기는 대신, 장부 한구석에다가 신경질적으로 남겨놓은 메모는 그런 고민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최고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과 자식이 위험에 처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 사이에서 번민해왔던 아버지.
자식들만 아는 장소에 비급을 묻어놓고도 자식들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한 건 아마 그 번민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강주혁은 비급을 내려다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익혔다가 잘못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간신히 성공하더라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대성처럼 장기간의 폐관수련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너무 아까웠다. 이건 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하니까. 사신무극검을 훔쳐간 신대성에게 진정한 주인의 힘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강주혁은 청룡검을 부작용 없이 익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만큼 고강한 고수를 알고 있었다. 그를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 *
월요일 아침.
웬일로 임재경 부장이 강주혁을 아침부터 부장실로 불러들였다. 명목은 직원관리차원에서 하는 면담이었는데 타이밍이 참 미묘했다.
“회사생활은 어때? 할 만해?”
임재경은 직접 내린 차를 강주혁에게 건네면서 물었다.
“네. 부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되었으니 가족들이 좋아하겠네?”
“네. 부장님. 저도 이제 눈치를 좀 덜 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서울에 있나?”
임재경이 모르는 척 넌지시 물었다. 강주혁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대구에 있습니다.”
“맞다. 그쪽에서 올라왔다고 했지. 대구는 자주 내려가나?”
“아니요. 마지막으로 본 게 반년 전입니다.”
“그렇게나 오래?”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군.”
“첫 월급이 나오면 내려가려고요.”
“첫 월급은 꼭 부모님 드려. 그래야 효자 소리 듣는다.”
“네. 부장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임재경은 피식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단독사냥시험 준비는 잘 하고 있나?”
“네. 부장님.”
원래 단독사냥시험은 늦어도 11월 말쯤에는 치러진다. 하지만 이지혜 사건과 이형석 사건으로 회사가 어수선해져서 12월 중순으로 연기된 상태다.
“유 팀장 말로는 마석도마뱀에 관심이 있다고 하던데 진짜야?”
“아닙니다. 부장님. 제 욕심이었습니다. 만나면 이길 자신은 있는데 만날 자신이 없네요.”
“흐흐, 그건 그렇지. 그럼 뭘 잡으려고?”
“오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거면 B급인데 괜찮겠어?”
“이전에도 지형을 이용해서 잡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항상 생기는 건 아니지.”
“한 번 조성해보려고요.”
“다들 네가 뭔가 한 건 할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
“네. 부장님.”
“혹시 일하다가 무슨 문제 생기면 언제든 얘기해. 혼자 낑낑대지 말고.”
“네. 부장님. 감사합니다.”
“가봐.”
강주혁은 인사를 꾸벅하고는 나왔다.
‘양준기 전무가 눈치를 챘구나.’
대구에 다녀왔냐고 묻는 건 화곡리에서의 사건 때문일 것이다. 단독사냥시험에서 뭘 잡을지를 묻는 건 강주혁을 납치하거나 죽이기 위해서고.
강주혁은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퇴근 후, 강주혁은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실제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공만큼은 강주혁보다 한 수 위. 그리고 분명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강주혁이 기감을 확장시키면 이내 몸을 빼서 그의 레이더에서 벗어났다. 강주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그보다 더 광범위한 레이더를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행동이었다.
고시원에 도착해보니 방을 뒤진 흔적이 있었다. 영약을 먹고 잡아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 놈을 처리해봤자 다른 놈이 올 거다. 누가 보냈는지도 알고 있었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강주혁은 이 미행자를 역으로 이용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미행자가 붙은 상태로 평일을 보냈다. 회사 내에서는 감시의 눈이 없었지만 퇴근하면 어김없이 미행자가 따라붙었다.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강주혁 역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주말.
강주혁은 예정대로 청계산으로 향했다. 미행자 역시 전철을 탔다. 강주혁의 다음 칸이었기에 낯짝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뒀다.
권대호와 주로 만나는 산속의 공터에 도착한 강주혁은 가방을 던져놓고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청룡검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단전에서 탁한 기운이 일어나면서 몸의 상태가 변하고 머릿속에 하나의 심상(心想)이 하나 떠올랐다.
네 개의 큰 가지를 가진 검은 나무.
사신무극검의 성질이 서서히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청룡검의 영향은 아니었다. 아마 이게 사신무극검의 본모습일 것이다.
가지 하나만을 볼 때는 그게 나무인지 몰랐으나 두 개의 가지가 보이니 비로소 전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딱!
“윽!”
한창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데 번갯불이 번쩍이면서 정수리가 욱신거렸다. 탁한 기운이 흩어지면서 몸의 변화도 중단되었다.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산신령 같은 모습을 한 권대호가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제 하다하다 스승에게 날파리 청소도 시키느냐.”
권대호의 우악스러운 손이 한 중년남자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얼굴이 피투성이였고 팔과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자기 힘으로 일어설 힘이 없는지 몸이 축 늘어져있었다.
“못난 제자를 용서하십시오.”
강주혁은 화끈거리는 정수리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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