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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45화 (4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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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45화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구덩이에서 나온 건 플라스틱 재질의 상자였다. 비닐로 밀봉을 해놓은 상태라서 내용물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강주혁은 묻어있는 흙을 대충 털어낸 후 비닐을 뜯어냈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들어있었다.

‘비급?’

누렇게 변색된 종이 위에는 룬 문자가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대충 살펴보니 내공을 이용한 검술에 대한 설명이었다. 중간에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놓은 그림들도 있었다.

그림체도 필체도 상당히 낯이 익었다. 이건 분명 아버지가 만든 것이다.

‘왜 하필 여기에다...’

집에다 보관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런 곳에다가 묻어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강주혁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뒤로 돌아섰다.

‘전부 다섯.’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기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강주혁처럼 내공을 쓰는 헌터들.

어디서 온 건지는 뻔했다. 강 씨 집안이 운영하던 게이트를 담당하는 놈들. 분명, 태원공략의 헌터들이다.

그냥 대화로 풀어볼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같은 회사의 헌터들과 싸웠다가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말에, 그것도 백주대낮에, 국유지인 산에 올라와서 삽질을 했다고 다섯 명이나 되는 헌터가 몰려온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삽질을 시작한지 십분 만에 나타났다. 아마 강주혁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따라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들은 포위망을 구축하면서 전술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대성의 끄나풀인가.’

저 게이트가 태원공략에 넘어간 과정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저들은 태원공략의 헌터들이라기보다는 신대성의 사병에 가까운 자들일 것이다.

스르릉.

강주혁은 검을 뽑아들고는 방한용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노트를 가방 안에 넣었다.

부스럭.

적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반대편으로 달아나는 방법도 있다. 마을 쪽의 산세는 가파르기는 하지만 낭떠러지는 아니다. 내려가려고 하면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쪽에도 헌터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을에 당도하더라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이런 외진 동네에서 공권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네 파출소 순경은 재벌가를 등에 업은 헌터들을 상대로 강주혁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더라도 추격을 따돌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동네를 벗어나려면 배차간격이 긴 버스를 타야하니까. 버스를 기다리다가 따라잡힐 것이다.

다른 방법은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 하지만 차도 잘 오지 않는 시골길인데다가 혹시나 오더라도 헌터들에게 쫓기고 있는 칼잡이를 태워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저들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하고 움직여야한다. 준비를 단단히 해왔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실례합니다.”

헌터들 중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뾰족한 턱에 왼쪽 눈에 칼에 베인 것 같은 흉터가 나있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등산 중입니다.”

“등산객치고는 복장이 이상하군요.”

“그쪽도 그렇군요.”

“저는 태원공략에서 일하는 헌터입니다. 그쪽도 헌터인 것 같은데 어느 회사입니까?”

“제가 답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이곳은 태원공략의 사유지입니다.”

“이상하군요. 좀 전에 확인했을 때는 국유지로 나왔거든요.”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유지에 들어갔다가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 산은 분명 국유지다.

“잘못된 정보입니다.”

“증거 있습니까?”

그 때, 수풀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흉터가 있는 헌터는 바닥에 침을 탁 소리가 나도록 뱉었다.

그리곤 진득한 살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저기에서 뭘 한 거지? 구덩이는 왜 팠나? 죽기 싫으면 대답해라.”

“그건 알아서 뭐하게?”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어차피 말로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쳐라!”

‘흉터’를 제외한 네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흉흉한 살기가 그들이 뽑아든 검을 따라 흘러내렸다. 햇빛을 머금은 칼날들이 섬뜩한 예기(銳氣)를 드러냈다.

일대다수.

헌터라면 지겹게 접하는 상황이다. 던전에서 헌터들이 몬스터들보다 머릿수가 많은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핵심은 절대로 포위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강주혁은 몸 안의 내공을 발바닥에 집중시키면서 발을 비스듬하게 틀었다. 아마 적들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강주혁의 발 주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툭!

강주혁은 헌터들이 지근거리까지 왔을 때 제자리에서 가볍게 발을 한 번 굴렸다.

헌터들은 곧장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애초에 적당히 제압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강주혁은 칼날이 목전에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닥을 힘껏 찼다.

쾅!

발아래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이어서 시뻘건 화염이 뭉게뭉게 솟구쳤다. 강주혁은 그 화염과 함께 하늘로 비상했다.

콰르르!

뒤에 떨어져있던 흉터의 눈에는 작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을 태워버릴 것 같은 기세로 날아오르는 강주혁은 한 마리의 불사조 같았다.

사신무극검(四神武極劍) 1형 3식.

<주작비상보(朱雀飛上步)>였다.

“으아악!”

강주혁에게 다가오던 네 사람은 갑작스러운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날아가 버렸다.

주작비상보의 이름은 보법(步法)이지만 파괴력을 놓고 보면 이동기술이 아니라 광역공격기술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이동기술로서의 성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허공답보(虛空踏步)>처럼 발판이 없는 곳을 디디고 도약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공이 허락하는 한 끝도 없이 상승할 수 있다.

“아니!”

지상에 있는 흉터는 강주혁을 눈으로 쫓기 위해서 목을 뒤로 꺾어야했다. 강주혁의 신형이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헉!”

시야가 가려지자 흉터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쾅!

예상대로 벼락처럼 떨어진 강주혁은 그가 있던 땅을 검으로 찍으면서 착지했다. 바닥이 쩍하고 갈라졌다.

이번에는 화염이 터지지 않았다. 빗맞을 걸 알고 일부러 기술을 중단시켜서 내공소모를 줄인 것이다.

흉터는 자세를 잡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강주혁이 도약하면서 일으킨 폭발에 휘말린 부하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얼굴이 숯덩이처럼 새까맸다. 살아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영약 없이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강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법을 한 번 펼친 것만으로 내공이 절반 이상 빠져나갔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착지할 때 한 번 더 화기를 발산했다면 완전히 바닥났을 것이다.

“제법이군.”

흉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러나 노련한 헌터답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투지를 불태웠다.

탁!

흉터가 강주혁에게 돌진했다.

보법을 펼친 것인지 잡초와 돌들이 무성한 땅을 빙판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져왔다.

“으아아아!”

흉터가 기합을 내지르면서 검을 휘둘렀다.

헌터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첫 합에서 검을 맞대보면 상대의 견적이 나온다고.

강주혁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서 피하지 않고 막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할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열은 가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캉!

두 개의 검이 만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의 내공이 격돌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검을 맞댄 채 힘겨루기를 했다.

‘내공만 나보다 높군.’

느낌상 김태현보다 살짝 나은 수준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태현과의 대결 이후 강주혁은 한 단계 성장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굳이 영약까지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촌구석에 쓸 만한 헌터가 있을 리가 없지.”

그나마 흉터가 김태현보다 나은 점은 이런 유치한 농담에 발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챙! 캉!

흉터는 검술을 펼치면서 강주혁을 압박했다. 강주혁은 절반 정도는 피하고 절반 정도는 막았다. 당연히 유효타는 없었다.

‘어떻게 한 거지?’

흉터는 공세를 취하면서도 불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분명히 힘과 속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힘은 강주혁의 방어를 부수지 못했고 속도는 강주혁의 회피동작을 따라잡지 못했다. 여유 있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모두 한 끝 차이로 실패했다.

초조해진 흉터는 날을 비스듬히 세워 햇빛을 반사시켰다. 강주혁은 눈이 부셔서 잠깐 눈을 감았다.

흉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비기인 <환영육참(幻影六斬)>을 펼쳐보였다.

“하아아!”

양손으로 손잡이를 쥔 흉터가 검으로 강주혁의 머리를 찍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공으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칼날들이 검과 나란히 휘둘러졌다.

검만 보고 옆으로 피하려고 하면 내공의 칼날에 어깨가 찢겨질 것이다. 공격력도 평소의 여섯 배가 되기에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검을 세워 막더라도 손잡이를 쥔 손이 베일 것이다.

“용쓴다.”

계속해서 수세를 취하고 있던 강주혁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흉터가 찍어 내리는 검을 올려쳐버렸다.

쾅!

섬광이 번쩍이더니 흉터의 검이 산산조각 났다. 강주혁의 검과 부딪힌 지점에서부터 날이 부서지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버린 것이다. 검을 지지대 삼아 만들어냈던 내공의 칼날들은 검이 사라지자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흉터는 손잡이만 남아있는 검을 잡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역시 무극검이군.’

내공의 절반을 모두 쏟아 부었더니 검 자체를 부셔버렸다. 샐러맨더가 흉터의 검보다 몇 배나 더 튼튼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강주혁은 악마처럼 웃으면서 무방비 상태가 된 적을 베었다.

서걱!

흉터는 팔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다.

“으윽!”

흉터의 두 팔에서 피가 흘렀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자상이 깊었다. 검을 들더라도 제대로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다.

강주혁은 흉터의 목에 검을 겨눴다.

“나는 태원공략의 헌터다.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것 같으냐?”

흉터가 강주혁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퍽!

강주혁은 대답 대신에 흉터의 턱을 후려갈겼다. 목이 획 돌아가면서 비틀거렸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강주혁이 살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퉤!

흉터가 뱉은 침에는 피가 섞여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기는 했으나 강주혁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게 전부는 아닐 텐데. 다른 헌터들은 어디에 있나?”

“...게이트 안에 있다.”

운이 좋았다.

만약 게이트 안에 있는 헌터들까지 모두 덤볐다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운이 따라 줄지는 몰랐다. 헌터들은 몰라도 마을사람들은 분명히 전투의 소음을 들었을 것이다. 워낙 조용한 동네라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직접 나서는 대신 헌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이다.

“왜 날 공격한 거지?”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잡아오라고 했다.”

“국유지에서 삽질 좀 했다고 수상한 자가 되는군.”

“헌터가 올 만한 동네가 아니니까.”

“니들은 경찰도 아니잖아. 무슨 권리로?”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우린 그저 그걸 따랐을 뿐이다.”

“상부가 누군데?”

“나도 최고책임자가 아니라서 누군지는 모른다. 태원공략의 높으신 분이겠지.”

누구인지는 강주혁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잘 가라.”

“자, 잠깐!”

서걱!

흉터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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