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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이전 화에서 회사에서 받은 포상금이 1억에서 5억으로 상향되었습니다.] - 이 문구는 자정쯤에 삭제하겠습니다.
43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팀장님, 그만 우세요. 사무실 다 왔어요.”
포상금 액수를 확인한 유덕현은 감격에 겨워 엉엉 울었다.
세 사람 모두 공평하게 5억씩 받았다. 이번 일을 막지 못했을 때 회사가 입었을 피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큰돈인 것만은 분명했다.
유덕현도 강주혁처럼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다. 부모의 지원도 없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지낼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또 다시 대출을 받았다.
태원공략에 입사하고 삶이 좀 나아지나 했더니 아버지가 병환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아무리 고액연봉자여도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서 생활이 좀처럼 나이지지 않았다. 공략 3팀은 강주혁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인센티브랑은 거리가 먼 팀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 5억이란 돈이 주는 의미가 무척 컸다.
‘방부터 옮겨야겠군.’
강주혁도 마찬가지였다. 이 돈으로 지긋지긋한 고시원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억대 연봉을 받기로 했지만 아직 월급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면서 보증금으로 쓸 돈을 모으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목돈이 생기면서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헌터에겐 잘 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휴식공간으로서 고시원은 정말 최악이었다. 이 돈이면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옥상에서 수련하는 건 회사에 일찍 나와서 훈련장을 이용하면 된다.
“미안하다. 마누라 생각이 나서...”
유덕현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차장님 축하드려요!”
“안 과장 축하해!”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팀 직원들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공략 3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공지 떴어요. 두 분 진급했다고요.”
“아, 그게 벌써 떴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공략 3팀이 한 턱 쏘는 거죠?”
“조만간 자리 한 번 마련하겠습니다.”
공략 3팀은 한참 동안 감사인사를 한 후에야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공략 2팀의 신유정 과장이 3팀의 파트로 넘어왔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멋진 일이 있었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제가 방해하는 건 아니죠?”
신유정은 늘 그랬듯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럼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덕현이 대표로 말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공략 3팀이 아니었다면 제가 가진 회사주식이 종이쪼가리가 될 뻔했어요. 쥐꼬리 만큼이긴 해도 회사가 잘 굴러갈 때는 나름 쏠쏠하거든요. 헤헤.”
“별말씀을. 허허.”
신유정이 웃자 유덕현도 따라 웃었다.
“감사의 뜻에서 제가 공략 3팀에게 식사 한 번 대접할까하는데 어떠세요?”
“저희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던 유덕현은 흔쾌히 응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안다정이 흠칫했다.
“저는 좀...”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주혁 씨는 어때요?”
신유정의 시선이 강주혁에게로 옮겼다. 그를 바라보는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당분간은 괜찮겠지.’
한동안 신대성 라인을 견제하려면 좋든 싫든 신유정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스펠 브레이커를 사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
안다정에 이어 자신까지 거절할 경우, 유덕현의 입장이 난감해진다. 유부남이 외간여자랑 단둘이 밥을 먹는 건 좀 그러니까. 그렇다고 이미 승낙을 한 신유정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저도 좋습니다.”
강주혁도 응했다.
“어? 그럼 저도...”
강주혁이 간다고 하자 안다정의 태도가 급변했다.
“오늘은 어떠세요?”
“저는 괜찮은데...”
유덕현이 눈을 빛내면서 안다정과 강주혁을 압박했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으니 축배를 들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저는 좋습니다.”
“저도...”
* * *
그 날 저녁.
“여기 진짜 맛있어요.”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사줄 것 같았던 신유정은 공략 3팀을 동대문 근처에 있는 허름한 곱창집으로 데리고 갔다.
“곱창 좋죠.”
유덕현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답했다. 지금 기분이라면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준다고 해도 좋아할 것 같았다.
안다정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아이고, 우리 예쁜 색시, 또 왔네.”
아주머니가 신유정에게 아는 척을 했다.
“이모 보고 싶어서 또 왔죠. 여기 A세트로 두 개 주시고 처음같이 두 병 주세요. 양 많이 해주실 거죠?”
“그럼 단골인데 섭섭하게 할 수 있나. 근데 소주 두 병이면 너무 적은 거 아니야? 색시 혼자 마시기에도 모자라잖아.”
“이모! 이분들은 저랑 처음 오신 거라고요. 눈치 없게...”
그러더니 재빨리 공략 3팀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시죠?”
“네. 과장님. 알고 있습니다.”
유덕현이 껄껄 웃으면서 답했다.
“근데 월요일부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공략 2팀 내일 던전 들어가던데요.”
“두 병이면 입가심이죠. 주혁 씨 은근히 소심한데요. 실망이에요.”
“과장님, 제가 장담하건대 주혁이가 공략 1부 최고 주당일 겁니다. 한 번도 취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어머, 진짜요? 그럼 공략 2팀의 명예를 걸고 대작 한 번 해야겠네요.”
“...”
강주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곱창의 맛은 신유정이 장담한대로 괜찮았다. 소주랑 궁합도 잘 맞았고.
신유정은 공략 3팀의 활약상을 듣고 싶어 했다. 술만 들어가면 익살맞은 이야기꾼으로 돌변하는 유덕현은 신이 나서 강주혁이 어떻게 이번 일을 해냈는지를 얘기했다.
강주혁은 유덕현이 너무 띄어주는 것 같아서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안다정도 유덕현을 거들었고.
“칼랍투스 잎이요? 저도 타보고 싶어요.”
“말도 마십시오. 롤러코스터 타는 것보다 더 어지럽습니다.”
“팀장님도 엄살은.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술기운이 오르자 안다정도 말수가 조금은 늘었다. 표정은 여전히 뚱했지만.
“우와, 주혁 씨 진짜 주당인가 보네. 완전 말짱해요.”
“아닙니다. 과장님. 저도 살짝 취했습니다.”
“에이, 거짓말. 진짜 마신 티도 안 나네. 재미없게.”
“정말입니다.”
“마시는 척하면서 물로 바꿔치기 한 거 아니죠?”
“설마요.”
“주혁 씨, 사적인 질문 하나 해도 돼요?”
“네. 과장님.”
강주혁은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이상하네요.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네가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회사가 너한테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세상에 너 같은 신입이 어디 있냐.”
유덕현이 킬킬거리면서 핀잔을 줬다.
“주혁 씨, 저는 어때요?”
신유정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강주혁에게 말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화들짝 놀랬다. 안다정은 어깨를 들썩이기까지 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세 분 다 깜짝 놀라는 거 완전 웃겨요.”
신유정은 눈물까지 보이면서 깔깔거렸다.
“과장님도 짓궂은 면이 있으시군요.”
“미안해요. 제가 장난치는 걸 좋아해서요. 내일 모레 서른인 아줌마가 주책이었죠.”
“아닙니다.”
“연애할 생각은 있어요?”
“없습니다.”
“흠...이 사람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신유정은 폰에서 사진 한 장을 골라서 강주혁에게 보여줬다.
“어때요?”
“...미인이시네요.”
“엄청 예쁘죠? 주혁 씨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제가 소개시켜줄까요?”
“괜찮습니다. 당분간은 일에 집중하고 싶네요.”
강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너 퇴근하고도 매일 일만 하잖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너무 그렇게 팍팍하게 살면 나중에 지쳐. 한 번 만나 봐.”
유덕현도 핀잔을 주면서 부추겼다.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알아요?”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아는 얼굴이었지만 강주혁은 모른 척 했다.
“제 사촌동생이에요. 이름은 신다은. 태원상사 신대길 사장님의 딸이에요.”
“그런 분을 저한테 소개시켜 주신다고요?”
강주혁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유덕현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다정은 말없이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왜요? 마음만 맞으면 만날 수도 있죠. 저도 재벌가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요. 전부 평범한 사람들이었죠.”
“과장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 분은 저 같은 서민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주혁 씨가 어때서요. 능력 있잖아요. 능력 있는 남자는 다들 좋아해요. 거기다가 잘 생기기까지 하면 금상첨화죠.”
신유정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강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떠보는 건가.’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속에 뼈가 있었다.
어쩌면 신유정은 김태현 때문에 강주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강주혁이 신대성보다 세력이 약한 신대길에게 붙는 게 낫다. 그래야 위협이 덜 될 테니까.
신다은을 만나보라는 건 아마도 신대길과 강주혁을 엮기 위해서일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회귀 전처럼 신대길과 신다은을 지지하기로 결심했으나 그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킨 이윤철을 보고 있으면 괜찮은 사람들 같았으나 그래도 신대성의 혈육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강주혁은 신대길의 충성스러운 가신이 되는 게 아니라 용병이 될 생각이었다.
그냥 용병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고용해야하며, 적에게 붙을 경우 내가 필패하게 되는 그런 용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몸값이 높아지면 신대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생각이다. 나를 고용하고 싶으면 태원공략의 지분을 내놓으라고. 세력이 가장 약한 신대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신대길은 부상 때문에 태원공략을 이끌 수 없다. 이윤철처럼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이윤철의 시대가 저물면 태원공략의 왕좌에는 강주혁이 앉게 될 것이다. 이윤철에겐 없는 지분까지 가지고.
강주혁에게 신대길은 섬겨야할 주군이 아니라 러닝메이트일 뿐이다. 동등한 입장이라는 걸 보여주려면 먼저 찾아가는 게 아니라 찾아오게 만들어야한다. 괜히 중간에 신다은을 끼워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저는 제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지나친 겸손은 기만이에요. 잠깐만요. 다은이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신유정은 말릴 틈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신다은은 받지 않았다. 안다정은 계속해서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 기집애는 왜 또 안 받는 거야?”
신유정은 처음으로 짜증을 냈다.
“미안해요. 또 어디 들어가서 폐관수련하고 있나 봐요.”
“폐관수련이요?”
“할아버지 이겨보겠다고 매일 집에 틀어박혀서 검술연습만 하거든요. 밖에도 잘 안 나와요.”
“회장님을 이기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그 회장님 손자손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에요. 저랑은 많이 다르죠. 다은이만 할아버지에게 직접 검을 배웠어요.”
강주혁은 신유정의 얼굴을 스쳐가는 씁쓸함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 표정은 개구쟁이의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하도 그런 쪽으로 펌프질을 하셔서 완전히 검만 보고 살아요. 거의 편집증 수준이에요. 아, 그래서 모태솔로예요. 왜 그렇게 사는지 몰라.”
딱!
그 때, 안다정이 들고 있던 젓가락이 부러졌다. 나무가 아니라 쇠로 된 젓가락이었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죄송해요.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하하, 그럴 수도 있죠. 이모 여기 젓가락 하나만 더 주세요! 요건 제가 변상할게요!”
신유정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저보고 한 번 만나보라고 해놓고는 그렇게 흉을 보시면 어떡합니까.”
“회장님 손녀라고 해서 주혁 씨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요. 재벌가 아가씨도 평범한 사람이란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모태솔로라서 더 부담스러운데요.”
“왜요? 얼마나 좋아요. 주혁 씨가 손만 한 번 잡아주면 완전 뿅! 하고 갈 걸요? 어? 안 과장님, 왜 자꾸 자작을 하고 그래요.”
“네? 아, 그냥...술이 달아서.”
“차장님, 뭐하세요. 부사수가 술잔이 비었잖아요. 센스 없게.”
“아이고, 제가 이런 실수를. 미안해. 안 과장. 내가 주혁이 장가보내는 거 신경쓰느라 안 과장한테 소홀했네.”
“...됐어요. 그만 마실래요.”
안다정은 뾰로통한 얼굴로 술잔을 뺐다. 유덕현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혁 씨의 답변은 뭔가요?”
“생각 없습니다.”
“왜요?”
강주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유정을 태원공략에 보낸 건 신태원 회장. 신유정에게 하는 말은 전부 신태원 회장의 귀에 들어간다.
신태원 회장은 지금쯤 한 가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강주혁은 신태원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로 했다.
“저는 신 씨 집안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강주혁은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조는 진지했다.
유덕현과 안다정은 흠칫하면서 신유정의 눈치를 살폈다. 신유정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
“태현이 때문이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김태현 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이유가 뭔데요?”
“능력이 부족해서요. 참고로 회장님은 좋아합니다. 존경하기도 하고요. 다른 젊은 헌터들처럼 저도 회장님 때문에 이 회사에 들어왔죠. 확실히 회장님께서는 그 자리에 있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은 아니라는 거군요.”
“회장님은 이 나라를 두 번이나 구하셨죠. 전 세계 최초로 드래곤을 잡기도 하셨고 쿠데타를 막기도 했죠.”
신태원은 젊은 시절, 몬스터들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을 단신으로 잡음으로써 처음으로 이름을 떨쳤다.
몬스터들의 침공이 저지되고 헌터들의 세상이 왔을 때, 몇몇 헌터들은 각성자들이 세상을 지배해야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블랙헌터>라고 불렀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남미와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은 블랙헌터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30년 전쯤, 한국에서도 블랙헌터들이 쿠데다를 일으켰는데 이를 저지한 것이 신태원을 필두로 한 전국 10대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장님의 자제분들은 그 정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죠.”
“할아버지랑 비교하는 건 반칙이잖아요.”
신유정은 뚱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그녀에게 강주혁의 말은 비수나 다름없었다.
신유정도 뛰어난 헌터이기는 하지만 강남검제의 손녀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현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태원공략의 창사멤버들은 독립해서 공략회사를 차리고도 남을 정도로 쟁쟁한 분들이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분들은 회장님을 보필하는 것에 만족했죠. 지금도 회장님의 카리스마에 이끌려서 태원공략에 들어온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들 중에는 회사 입장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뛰어난 인재들도 많겠죠. 하지만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들 떠날 거라는 건가요?”
“헌터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섬기지 않습니다. 공략회사도 많고요. 광야를 담당하는 공략회사만 해도 열 개나 되죠. 그리고 실력 좋은 헌터는 어디에서나 환영 받습니다.”
“주혁 씨도 떠날 건가요?”
“태원공략은 최고의 헌터가 세운 회사지만 최고의 회사는 아닙니다. 신광에서 일하셨으니까 과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죠.”
지금 공략업계에서 1위를 꼽는다면 누구나 신광을 뽑을 것이다.
“멋져.”
신유정은 양손으로 자기 뺨을 감싸더니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네?”
이번에는 강주혁이 당황할 차례였다.
“왜 그런 거 있죠? 드라마에서 여주가 남주인 사장님한테 따귀를 날리면 ‘나한테 이렇게 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이러면서 완전히 뿅 가잖아요. 지금 제 마음이 딱 그래요. 다들 어떻게든 저한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데 주혁 씨는 정반대잖아요. 요샛말로 노빠꾸 상남자. 진짜 반하겠어요.”
“...과장님 취향이 좀 독특하시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여자들은 원래 자신감 넘치는 남자를 좋아한답니다. 혹시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서른을 앞둔 이 노처녀 누나도 꼭 기억해줘요. 주혁 씨가 마음이 바뀔 때까지 관리 잘 하면서 오매불망 기다릴게요.”
신유정은 절절한 목소리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았다.
딱!
그 때, 안다정이 젓가락을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안다정이 사라지자 신유정이 표정을 싹 고치고는 목소리를 낮춰서, 하지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안 과장이 주혁 씨 좋아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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