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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꼭 돌아와라.
37화
“니한테?”
강주혁은 김용수 팀장에게 이형석 소장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자기한테 알려달라고 말했다.
김용수는 이제 갓 신입사원이 된 강주혁이 왜 헌터도 아닌 이형석 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와? 무슨 일 있나?”
“소장님께서 어쩌다가 소장이 되신 건지는 아시죠?”
“그래. 헌터로 잘 나가다 회사 물건 손대 가지고 이짝으로 왔다는 건 안다.”
“이건 어디까지나 헌터들 사이에 도는 소문인데요. 소장님이 다시 헌터 쪽으로 돌아가려고 일을 꾸미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런 소문은 없었다.
강주혁이 아는 건 앞으로 몇 주 후에 이형석 소장이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해 태원공략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공략 1부와 3팀도 큰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이 자리의 광부들 중 상당수가 죽는다.
“그래?”
김용수는 강주혁을 말을 듣고도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워낙 올곧은 사람인지라 남을 감시하는 건 성격에 안 맞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꾸민다고 카드노?”
“거기까지는 모릅니다만, 짐작 가는 건 있습니다.”
“뭔데?”
“소장님이 헌터 시절에 마법사로 활동하셨잖아요. 마법사들은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이를 테면, 몬스터들을 불러들이는 주문도 쓸 수 있죠.”
“몬스터는 불러서 뭐하게?”
“본인이 그걸 잡는 거죠.”
“잡는다고?”
“저도 팀장님이랑 형님들 지키려고 싸우다가 헌터가 되었잖습니까. 그걸 따라하시려는 거죠.”
김용수는 배움이 짧고 단순한 사람이지만 결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자작극을 벌이가 공을 세운다는 말이가? 헌터로 복귀하려고?”
“네. 팀장님. 이미 저라는 성공사례도 있으니 따라 하기에 딱 좋죠.”
“음...그 정신 나간 가시나도 마법사였제.”
“네. 마법사였습니다. 소환서로 몬스터들을 불러냈죠.”
이지혜 때문인지 김용수의 머릿속에는 마법사란 믿을 수 없는 족속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져있었다.
강주혁으로서는 다행이었다.
“만약 그 소문이 잘못된 거라면 우야노?”
“뭐, 그럼 다행인 거죠. 팀장님, 제가 문제가 될 만한 부탁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그냥 소장님이 평소랑 다른 행동을 하시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그게 답니다.”
“내가 그걸 알려준다고 해서 네가 뭔가 할 수는 있나?”
“상사들에게 보고할 수는 있죠. 점수 좀 따고 싶어서요.”
김용수는 피식 웃었다.
“뭐, 알겠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주꾸마. 그 대신, 니도 우리 딸래미 한 번 만나 봐라.”
“팀장님, 그건 좀...”
회귀 전에도 만나 봤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 김용수의 딸은 강주혁을 꽤나 좋아했지만 일에 미쳐 살았던 강주혁은 그만한 마음을 주지 못했다.
“어?”
그 때, 가게 입구 쪽이 시끌벅적해졌다. 김용수와 강주혁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곳에는 뜻밖의 사람이 있었다.
“내 카드 들고 간 녀석이 어떻게 쓰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네. 나도 좀 껴도 되겠나?”
이윤철 사장이었다.
* * *
“도련님. 이쪽입니다.”
비서가 리무진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차 안에는 신태원 회장이 앉아있었다.
김태현은 침을 꼴깍 삼킨 후 문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타거라.”
“네. 회장님.”
김태현이 타자 비서가 문을 닫았다. 비서가 조수석에 탑승하자 리무진이 도로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갔다.
신태원은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김태현은 그의 눈치를 보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왜 그랬느냐?”
긴 침묵 끝에 신태원이 입을 열었다. 김태현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유를 물었다.”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왜 직접 싸우지 않았느냐?”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신 씨 집안의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으나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기도 했고.
의외로 신태원은 언짢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기대 자체를 안 한 것인지도.
“네가 계획한 일이더냐?”
김태현은 질문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러니 이 질문은 시험이다.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솔직함에 대한 시험일 수도 있다.
“제가 전부 계획했습니다.”
김태현은 아버지를 따르는 쪽에 모든 걸 걸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거짓말 하지 않아도 된다. 네 아버지가 시켰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아니까. 김재후 그 녀석도 거들었겠지.”
김태현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신태원은 진노하지 않았다.
“그렇게 달려들고도 고작 인턴 하나를 죽이지 못했지.”
“면목 없습니다.”
“직접 싸워서도 지고 암살시도도 실패했다. 이제는 어쩔 셈이냐?”
“이제는 신입사원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죽일 필요가 없다고? 회사는 언론에 두들겨 맞고 괜찮은 마법사를 잃었다. 너는 그 가여운 여자아이의 입을 틀어막느라고 수억 원의 돈을 날렸고. 한 달 동안 네가 한 일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느냐?”
신태원의 어조는 건조했으나 김태현은 그게 더 무서웠다. 언제든 터뜨릴 수 있는 분노를 감추고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얻는 것은 없고 잃은 것만 많았지. 그 중 가장 최악인 게 뭔지 아느냐?”
김태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답해 보거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 걸출한 녀석을 완벽하게 네 적으로 만들었다는 거지. 이 회사가 세워진 이래 한 달 만에 그만한 업적을 쌓은 사람은 없었다. 한두 번의 성공이라면 우연으로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건 전부 실력이다.”
김태현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 역시 강주혁이 천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꼭 자기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원치 않았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은 부하가 될 수 없다면서.
“인턴은 과정을 보여주는 시기도 아니고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엄청난 결과를 보여줬지. 벌써부터 이 정도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하겠느냐. 그 괴물 같은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서 거물이 되었을 때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것 같으냐.”
김태현은 신태원의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는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로열패밀리니까.
하지만 강주혁이 정말로 복수를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자 덜컥 겁이 났다. 강주혁이라면 정말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원하던 게 아니었습니다.”
“네가 원하던 게 아니라고?”
“네. 회장님. 저는 강주혁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근데...”
김태현이 말을 잇지 못하자 신태원이 혀끝을 찼다.
“좀 전에는 아버지를 두둔하더니 이제 아버지를 배신해?”
“그게 아니라...”
김태현은 답답함을 느꼈다. 회장이 풍기는 중압감 탓에 생각이 자꾸 꼬이는 것이다.
“너랑 네 아버지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
이번에도 김태현은 답을 알지 못했다.
“네 아버지가 던전에서 인턴이 죽으면 회사가 피해를 본다는 걸 몰랐을까?”
“알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해를 끼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도?”
“네. 회장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네 아버지는 그런 짓을 벌였다. 이유가 무엇이냐?”
“회장님을 속일 수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그래서 나를 속였느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네 아버지도 나를 속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벌였지. 왜 그런 것 같으냐?”
“...회장님의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틀렸다. 네 아버지는 나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한다. 네가 네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보다도 더. 그런데도 그런 짓을 저질렀다. 이유가 무엇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뜻을 거스르더라도 그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한테 욕을 먹더라도 이윤철 사장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그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 거지. 지금 당장에는 회사가 타격을 입겠지만 자기가 회사를 장악하면 금방 그걸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김태현은 신태원이 자신을 꾸짖으면서도 동시에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너한테는 그게 없는 것 같구나. 네 아버지가 내 뜻을 거스를 배짱이 있었던 것처럼 너 역시 그런 배짱을 부렸어야지. 강주혁을 정말로 네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말이다.”
김태현은 억울했다. 그에게는 애초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랬다가는 아버지에게 피가 나도록 맞았을 겁니다.”
“네 아버지는 나한테 그렇게 안 맞을 것 같으냐.”
“...”
“그렇게 맞고 자랐는데도 겁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지. 피가 나도록 맞는다고? 그 다음에는? 네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너를 정말 죽이기라도 할 것 같으냐.”
김태현은 침묵했다. 수치심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네 아버지와 너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김태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문답 같은 회장의 말에 김태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강주혁을 욕보이고 싶으면 강주혁을 꺾으면 되고 이윤철 사장을 몰아내고 싶으면 이윤철을 뛰어넘으면 된다. 실적으로든 실력으로든. 하지만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니까 유치한 수작질로 회사에 똥칠을 했지.”
“...죄송합니다.”
“네 아버지도 벌을 받았으니 너도 그래야겠지. 내일 당장 태원공략을 떠나라.”
“회장님!”
아버지가 좌천당했을 때 이미 운명은 정해져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태원공략을 떠나야한다는 건 신 씨 집안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얘기니까.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앞만 보고 있던 신태원 회장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었다. 그리고 한쪽 눈으로 김태현을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내 뜻은 정해졌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이 상황을 바로잡겠습니다.”
“이미 늦었다.”
“...”
“네 적들은 바보도 아니고 호구도 아니다.”
“...”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모든 범이 이빨이 빠져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너랑 네 아버지가 강주혁이라는 천군만마를 갖다 바쳤지. 명분도 있고 인재도 있으니 남은 건 복수뿐이다. 네가 강주혁을 가장 만만하게 생각했듯이 네 적들도 너를 가장 만만하게 생각할 거다. 죽기 싫으면 태원공략을 떠나라.”
김태현은 어금니를 소리가 나도록 깨물었다.
겉보기에는 인턴과 대리에게 일어난 사고. 하지만 이 사고가 이윤철 사장과 그 너머의 신대길을 겨냥하고 있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게다가 강주혁은 신대성 라인도 등에 업고 있었다. 신대길과 신대성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다.
“차 세우게.”
신태원은 팔걸이에 있는 버튼을 누른 후 명령했다. 잠시 후, 리무진이 멈췄다.
“내려라.”
김태현은 인사를 꾸벅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리무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은이에게 한 소리 듣겠구먼.’
신태원은 쓰게 웃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이 맺어준 여자를 내팽개치고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다. 그래도 자신의 피가 흐르는 녀석이니 개죽음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아끼는 막내손녀가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싫었고.
광야에서라면 안다정이 김태현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밖에서라면 신다은이 아닌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좀 정리가 된 것 같군.’
벌을 받을 사람은 벌을 받았다. 이제 망가진 회사를 바로잡는 일이 남았다. 신태원은 폰을 꺼내 이 일의 적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정아, 할아비다.”
“할아버지!”
화사하고 행복감이 넘치는 목소리가 신태원을 반겼다.
그의 입에 부드러운 웃음이 걸렸다.
* * *
월요일 아침.
“진짜로 사장님이 오셨어요?”
안다정은 토요일 회식에 이윤철 사장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런 척을 했다.
“진짜라니까.”
유덕현은 어제 하루 종일 쉬었는데도 아직 술이 덜 깬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입니다. 대리님.”
강주혁이 증언했다.
“엄청 불편했겠네요.”
“그랬나. 잘 기억이 안 나서...”
평소 같으면 사장님의 존재만으로도 분위기가 경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이미 다들 너무 취해있었다.
술기운의 도움으로 광부들은 스스럼없이 이윤철과 술잔을 기울였고 그도 그런 격의 없는 분위기를 썩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유덕현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술에 취해서 이윤철과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다. 강주혁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근데 왜 오셨대요?”
“그러게. 왜 오셨을까?”
“주혁 씨 입사 축하해주러 오신 건 아닐까요?”
“사장님이? 아무리 직접 뽑은 직원이라지만 그건 좀 오버지.”
“왜요? 주혁 씨 정도라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죠. 제가 높으신 분이어도 주혁 씨를 엄청 탐냈을 것 같은데.”
안다정은 대견스럽다는 투로 말했으나 강주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오히려 좀 부담스럽습니다.”
사장이 이렇게 한 사람을 노골적으로 끼고돌면 파벌에 속해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경계하게 된다.
어쩌면 강주혁이 이윤철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소문이 나돌지도 모른다.
‘아빠한테 말하기를 잘했네.’
안다정은 아버지 신대길에게 강주혁을 반드시 우리사람으로 만들어야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신대길은 죽마고우인 이윤철 사장에게 강주혁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던 이윤철 사장은 친구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강주혁과 광부들의 모임에 얼굴을 비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건 그렇고. 주혁아, 오늘 공략에 뭐 필요한지는 알지?”
“네. 팀장님. 오크 고기가 필요합니다.”
모든 몬스터가 인간을 먼저 공격하는 건 아니다. 마석 도마뱀처럼 충분한 전투력을 갖추고도 인간을 피해 다니는 놈들도 있다.
오늘 오후에 사냥할 예정인 <던전 그리즐리>도 그런 몬스터들 중 하나. 생긴 건 곰인데 인간의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기 때문에 덫을 놓아서 잡아야한다. 오크 고기는 덫에 놓을 미끼로 쓰려는 것이다.
“어디서 가져오는지는 알아?”
“네. 팀장님. 지하 4층에 있는 냉동고에서 반출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챙겨와. 슬슬 들어갈 준비하자.”
“네. 팀장님. 다녀오겠습니다.”
강주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데 등 뒤로 유덕현과 안다정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안 대리가 가르쳐줬어?”
“아니요.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어요. 미끼 쓰는 거 이번이 처음이잖아.”
“신기하네. 저 놈이 여기 와서 뭘 배우는 걸 본 적이 없어.”
“저도 뭘 가르쳐준 기억이 없네요.”
강주혁은 웃음을 흘리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김태현이 나타났다.
“어?”
“시발...”
강주혁을 본 김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입에 걸레를 물었냐. 보자마자 욕질이야.”
강주혁은 인상을 썼다. 김태현은 신경질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강주혁은 밖에서 열림 버튼을 눌렀다.
당연히 엘리베이터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강주혁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전세 냈냐. 왜 타지도 못하게 방해질이야.”
“빨리 꺼져라.”
“안타깝게도 너랑 같은 층이야.”
두 사람은 사이좋게 지하 4층까지 내려갔다.
“너 혹시 잘렸나?”
강주혁은 김태현이 안고 있는 작은 상자를 보면서 물었다. 안에는 수면안대, 쿠션 같은 개인물품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만두는 거다.”
“왜?”
“...지겨워서.”
“잘렸네. 사장님도 좌천당한 마당에 네가 멀쩡할 리가 없지. 그래도 참 꼴이 말이 아닌 것 같다. 아랫사람 시키지도 못하고 이렇게 직접 짐 싸서 나오는 거 보면.”
“닥쳐! 이 새끼야! 죽여 버리기 전에.”
김태현이 강주혁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강주혁은 그런 김태현에게 등을 보인 채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넥타이를 바로잡았다.
김태현은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러야했다. 싸워봤자 어차피 진다.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를 것이다.
그 때의 공포감이 충동을 억눌러줬다.
“회장님께서 상벌이 분명하신 분이라서 다행이네.”
“죽여 버린다고 했다.”
“참아. 다 왔으니까.”
강주혁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재수 없는 새끼.”
김태현은 곧장 자기차로 향했다.
“야, 김태현.”
강주혁의 부름에 김태현이 돌아봤다.
“꼭 돌아와라.”
“뭐?”
“넌 꼭 내 손으로 죽이고 싶으니까.”
강주혁은 기분 나쁘게 웃어보이고는 냉동고로 연결된 통로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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