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 3511144
#
32화 다시 좋아지려고 합니다.
32화 다시 좋아지려고 합니다.
“주혁아!”
로프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강주혁을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유덕현 팀장이었다.
“팀장님.”
유덕현은 강주혁을 와락 끌어안았다.
몰골이 죽다 살아난 강주혁보다도 더 참혹해보였다. 강주혁과 안다정이 추락한 후로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혁아, 끄윽, 큽...”
유덕현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엉엉 울어댔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그 사이에 이마가 더 넓어진 것 같았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강주혁은 유덕현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러다가 유덕현 바로 뒤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유덕현 못지않게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김용수 팀장이었다.
“어? 팀장님이 여기에 어쩐 일이세요?”
“이놈의 자슥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묻혔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어디 멀리 있는 것도 아이고 바로 옆 동넨데.”
강주혁은 그제야 김용수 팀장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광부시절 함께 했던 동료들이란 걸 알아차렸다.
구조작업의 마지막 단계를 진행한 건 구조팀이었으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파내려간 건 채광팀이었다.
“유 팀장님께 감사드리라. 우리한테 곧장 안 오셨으면 나오는 게 마이 늦었을 기다.”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이랑 형님들도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뒤이어서 안다정도 로프를 타고 올라왔다. 먼저 올려 보내려고 했는데 상급자가 가장 늦게 탈출해야한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바람에 먼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두 사람의 생환을 반겼다.
“안 대리!”
유덕현은 안다정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다.
“아, 팀장님. 냄새!”
하지만 안다정은 매몰차게 그를 밀어냈다.
“야! 냄새는 나만 나냐! 네 몸에서도 똥 지린내 나 이것아!”
유덕현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호통을 쳤다.
“아, 그러니까 저리 좀 가라고요! 저 아직 안 죽었어요.”
감동어린 재회를 하자마자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네. 몸은 좀 어떤가?”
이윤철 사장이 임재경 부장을 대동하고 강주혁에게 다가왔다.
던전에서 인명피해가 생기면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회사의 책임자인 이윤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공략 1부의 수장인 임재경 부장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일이 터지자마자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독 때문에 내상을 좀 입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독?”
“안에 맹독 구울이 있었습니다. 변형 개체였는데 아주 큰 놈이었죠.”
강주혁은 마석을 꺼내보였다.
“의무팀.”
“네. 사장님.”
의료진들이 들것을 펼쳤다. 링거까지 준비되어있었다.
“잠깐만요.”
강주혁은 들것에 눕는 대신 주변을 둘러봤다.
“지혜 씨는 어디에 있나요?”
“저...여기에 있어요.”
이지혜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왜 그랬어요?”
“네?”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했냐고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지혜는 이미 안다정이 지옥벌레를 밟았고 지반 아래에 빈 공간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구울들은 공략 3팀의 실수로 미처 처리하지 못한 것들로 간주했고.
유덕현은 미심쩍은 게 많았지만 강주혁과 안다정을 구출하는 게 우선이라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무, 무슨 말이에요?”
“쏟아진 돌무더기에서 이런 게 나왔습니다.”
강주혁은 룬 폭탄의 파편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들어보였다.
“룬 폭탄 파편이군.”
이윤철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서 이지혜를 바라보았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이지혜는 파리한 얼굴로 강주혁을 주시했다.
“지옥벌레만으로는 이런 폭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지반 아래에 빈 공간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럼 싱크홀처럼 그 빈공간이 드러나는 식으로 끝났겠죠. 이런 식으로 주변부까지 무너져서 구멍을 막아버리는 건 지옥벌레만으로 부족합니다. 지옥벌레는...”
“지면과 가까운 곳에서만 서식하지.”
이윤철이 강주혁의 말을 받았다.
“네. 사장님. 그리고 룬 폭탄을 작동시키는 건 마법사만 가능합니다. 안 대리님, 혹시 지혜 씨를 구하러 갈 때 주변에 마력 반응이 몇 개나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안다정은 강주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당황한 눈치였으나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침착하게 답했다.
“기억나요. 총 일곱 개였어요.”
“유 팀장님, 그 때 맹독 구울이 몇 마리나 있었나요?”
“전부 여섯 마리였다.”
“구울이 여섯 마리에 지혜 씨가 있으니까 딱 맞네요. 안 대리님, 그 때 기감은 얼마나 확장하고 계셨나요?”
“최대로 확장하고 있었어요. 적들의 규모를 파악해야했으니까요.”
“대리님께서는 A급 헌터시니까 대략 30미터 내의 마력반응을 모두 감지하실 수 있겠군요.”
“물론이에요.”
“혹시 다른 마력반응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이상하군요. 지혜 씨가 아니라면 룬 폭탄을 작동시킬 마법사가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합니다. 룬 폭탄을 30미터 밖에서 작동시키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대리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지혜 씨의 마력반응이 어땠나요? 평소랑 비슷했나요?”
“...아니에요. 평소보다 훨씬 약했어요.”
“그것도 이상하군요. 마지막 전투가 끝난 지 1시간이 넘었으니 마나도 모두 회복되었어야할 시점이니까요. 제가 기억하기로 지혜 씨는 아직 구울에게 마법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홀린 듯 강주혁의 추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룬 폭탄 작동에는 엄청난 마나가 소모되죠. 그렇게 갑자기 마나가 빠져나가면 마력반응은 평소보다 약하게 나타납니다.”
강주혁이 쐐기를 박았다.
“그건 사고였어요! 제가 왜 같은 팀원에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이지혜는 악을 써댔다.
“지혜 씨는 같은 팀원에게 독을 탄 음료도 줬던 사람이잖아요. 지혜 씨라면 충분히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강주혁의 말에 안다정이 정색했다. 다른 사람들도 경악했다.
“자세히 얘기해보게.”
이윤철이 강주혁에게 명했다.
“지혜 씨가 지난 몇 주간 제게 커피랑 음료수를 여러 번 나눠줬습니다. 마시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지인에게 부탁해서 확인해봤더니 내공을 흩어놓는 약이 들어있더군요. 증거물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 씨도 이건 인정 하죠?”
유덕현과 안다정은 충격을 받아서 얼이 빠져버렸다.
“그, 그땐 그랬지만 이번에는 제가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이지혜는 울면서 강주혁의 팔에 매달렸다.
강주혁도 이지혜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마석 수거용 단검을 뽑아들었다. 내공이 실린 단검이 이지혜가 입은 로브의 팔 부분을 가르고 지나갔다. 상처 하나 없이 옷만 찢어놓았다.
“어?”
“저건?”
환하게 드러난 팔에는 붉은 색 반점 몇 개가 도돌도돌 돋아있었다.
“강령술 사용의 부작용입니다. 다행히 아직 사라지지 않았네요. 공략이 완전히 끝난 후에 나타난 구울들도 이걸로 설명이 되겠군요.”
“아, 아니에요. 저는...”
이지혜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임 부장.”
“네. 사장님.”
“감사실로 데려가게. 자세한 얘기는 회사에서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임재경 부장이 지시를 하자 공략 1부 소속의 여성헌터 두 사람이 이지혜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고 강주혁에게서 떼어냈다.
“잠깐만요! 이건 모함이에요!”
이지혜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강주혁 인턴.”
“네. 사장님.”
“명탐정이 따로 없군. 혹시 감사실에서 일할 생각은 없나?”
“저는 공략팀이 좋습니다.”
강주혁의 답변에 이윤철이 피식하고 웃어보였다.
“건강이 회복되면 지혜 씨가 줬다는 음료수들 감사실로 제출하게.”
“네. 사장님.”
이윤철은 광부와 구조팀에게 돌아섰다.
“다들 수고했네. 이형석 소장.”
이형석 소장이 주뼛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채광 현장에서 혼자 씩씩거리고 있다가 사장이 행차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곧장 달려온 것이다.
“네. 사장님.”
“이번 일로 채광팀이 어떤 불이익도 받아서는 안 되네. 작업이 늦어진 건 내가 조정해주지. 구조작업에 참여한 모든 광부들은 내일부터 이틀 간 휴가를 줄 테니 작업은 그 후에 시작하게.”
“감사합니다! 사장님!”
휴가명령에 광부들이 환호했다. 이윤철은 빙그레 웃어 보인 후 공략 3팀에게로 돌아섰다.
“공략 3팀도 이틀 간 휴가를 줄 테니 푹 쉬고 복귀하게. 지혜 씨 문제는 갔다 와서 해결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유덕현이 대표로 고개를 숙였다. 이지혜 때문인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강주혁과 안다정은 들것에 실린 채 링거를 맞으면서 게이트 밖으로 이송되었다.
공동 안에 갇힌 채 꼬박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바깥세상은 다시 저녁이 되어있었다.
“저 퇴근할게요. 금요일에 봬요.”
안다정은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것에서 내렸다.
“어? 안 대리, 치료 받아야지.”
“다친 데 없어요.”
“무리했잖아.”
“잠은 안에서 질리도록 잤어요. 그리고 의무실보다 집이 편해요. 배도 고프고요. 팀장님도 사모님 걱정하실 텐데 빨리 집에 가세요. 주혁 씨, 오늘 고마웠어요. 몸조리 잘해요.”
“네. 대리님. 저도 감사했습니다.”
안다정은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다.
“주혁아, 너는?”
“저는 의무실이 집보다 편합니다. 내상도 치료해야하고요.”
직종 특성상 태원공략의 의무실은 작은 종합병원 수준의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병실도 호텔 수준으로 좋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시원보다 훨씬 나았다.
유덕현은 강주혁을 따라서 의무실까지 왔다.
“지혜 씨가 커피에 약을 탄 건...”
유덕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황당했던 것이다.
“진작 말씀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한테 하도 애걸복걸해서 그냥 넘어갔어요. 그냥 질 나쁜 장난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런 짓을 저질렀네요.”
“그래서 네가 지혜 씨를 멀리했었구나.”
유덕현은 안다정과 강주혁이 생환했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팀장에게는 팀원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팀원이 감옥에 갈 만한 짓을 두 번이나 해버렸으니 팀장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먼저 가마. 너도 푹 쉬어.”
“네. 팀장님도 많이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너도 몸조리 잘해. 애썼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병실을 떠나는 유덕현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강주혁은 병실에서 제공해주는 죽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낼 때쯤, 뜻밖에도 이윤철 사장이 비서도 없이 병실을 방문했다.
“일어날 필요 없네.”
이윤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강주혁을 제지했다.
“안다정 대리는?”
“...퇴근했습니다.”
“치료를 받아야하는 거 아닌가?”
“큰 상처는 없었습니다. 오는 길에 링거도 맞았으니 푹 쉬기만 하면 괜찮을 겁니다.”
“자네는 좀 어떤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강주혁은 영양제뿐만이 아니라 내상을 치유하는 치료제도 링거로 맞고 있었다.
“괜찮다면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이윤철은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따라온 의무실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이지혜가 자백을 했네.”
“생각보다 빠르군요.”
“자네가 모두 밝혀내버렸는데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겠지.”
“지혜 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살인미수니까 감옥에 가겠지.”
“그렇군요.”
“기분은 좀 어떤가?”
“나쁘진 않습니다.”
“다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자네는 너무 무덤덤해서 탈이군. 마치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해본 사람처럼 말이야.”
강주혁은 이윤철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회귀 전 태원공략에서 20년을 보내면서 온갖 인간군상을 접했다. 고작 이 정도의 일로 인간에 대한 환멸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이지혜에게는 애초에 기대 자체를 안 했기에 실망할 일도 없었다.
“심보가 고약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선을 넘을 줄은 몰랐지만요.”
이윤철은 잠시 입을 다물고는 말을 골랐다. 이지혜에게 배후가 있다는 걸 말할까말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인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어쨌든 자네에게 미안하게 됐네. 회사의 대표로서 사과하지. 정말 미안하네.”
이윤철은 강주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강주혁은 당황했다.
“사장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자네는 아직 공식적으로 태원의 일원이라고 할 수 없네. 태원이 어떤 곳인지 체험하러 온 외부인에 가깝지. 내가 사람을 잘못 뽑아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사과하는 게 맞네.”
“저는 이미 저를 태원공략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면접이 남았지만요.”
“이런 일을 겪고도 태원에 남고 싶은 건가?”
“물론입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최고의 헌터가 세운 회사고 최고의 사냥터에서 싸울 수 있으니까요. 헌터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 아닙니까.”
이윤철의 입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아마 그도 강주혁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래도 더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면접에서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큼큼...”
이윤철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건 원래 자네가 태원을 떠나겠다고 하면 마음을 돌리게 할 심산으로 준비한 건데...”
이윤철이 주머니에서 꺼낸 건 한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상자였다. 금각이 된 껍데기가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우리 집안에서 내려오는 환단이네. 내상을 치유해주는 동시에 내공을 상승시켜주지. 자네가 찾아낸 영약만큼은 아니지만 반성(半成) 정도 내공을 올려줄 수 있을 거야.”
강주혁은 이윤철이 사장의 신분으로 인턴의 병상을 찾아온 저의를 알게 되었다.
강주혁이 이번 일로 회사를 떠나려고 하면 마음을 돌리게 하고, 만약 회사에 남겠다고 하면 다른 라인으로 가지 못하도록 미리 침을 발라놓으려는 거다.
“이렇게 귀한 걸 왜 저에게...”
“일종의 뇌물이라고 생각하게.”
이윤철은 씩 웃으면서 상자를 건넸다.
인턴이 사장에게 뇌물을 주는 게 아니라 사장이 인턴에게 뇌물을 주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강주혁에게 내공만큼 절실한 게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번 일로 회사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다시 좋아지려고 합니다.”
“그럼 뇌물이 제 역할을 한 셈이군. 꽤 독한 거니까 몸이 다 회복되면 운기행공을 해가면서 섭취하게. 아,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게.”
이윤철 사장은 자신의 법인카드를 내밀었다. 강주혁은 묻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광부들에게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게. 생명의 은인들인데 그냥 넘어가면 쓰나.”
강주혁은 이윤철의 세심한 배려에 감탄했다. 강주혁도 오는 길에 광부들이 항명까지 해가면서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걸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답례를 하고는 싶은데 인원이 백 명이나 되니 밥 한번 사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사장님의 법인카드가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
“감사합니다.”
“원없이 쓰고 다음 주 월요일에 비서실에 반납하게.”
“네. 사장님.”
* * *
회사를 나온 안다정은 직접 운전을 해서 압구정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갔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목걸이부터 풀었다.
짧았던 머리카락이 빠르게 자라나 어깨를 넘겼다.
얼굴의 형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얼굴선이 부드러워지고 눈이 커졌다. 덕분에 날카롭고 쌀쌀맞은 인상이 많이 희석되었다.
마르면서도 근육질이었던 몸은 좀 더 굴곡져졌다.
목걸이를 하고 있을 때의 안다정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목걸이를 벗은 지금, 그녀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위이잉.
안다정이 목욕을 하고 나왔을 때 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쓰는 폰이 아니라 집에 있는 다른 폰이었다.
“다은아.”
“응. 엄마.”
“소식 들었어. 몸은 괜찮니?”
“괜찮아. 안 다쳤어.”
“진짜지?”
“진짜라니까. 완전 멀쩡해.”
“할아버지 오셨는데 집에 잠깐 들릴래?”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곧 갈게.”
“그래. 조심해서 와.”
“아줌마한테 밥 좀 차려달라고 해줘. 나 배고파.”
“그럴게. 먹고 싶은 건 있니?”
안다정 아니, 신다은은 잠시 생각한 끝에 답했다.
“먹고 싶은 건 많은데 일단 죽부터 먹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