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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28화 (2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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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운이 좋았습니다.

28화 운이 좋았습니다.

“팀장님, 이쯤인 것 같습니다.”

“오케이.”

강주혁이 앞장서서 가던 유덕현을 멈춰 세웠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안다정이 입에 웃음을 머금었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막힘이 없었다.

07-A72이 공략이 어려운 이유는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는 지도를 계속 확인하면서 더듬더듬 가야하는 지역이었지만 강주혁은 지도를 통째로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거침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쪽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였는데 한 번도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매복지점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리스폰이 된 몬스터들은 대개 리스폰 이전과 비슷한 행동패턴을 가지기 때문에 매복해있는 지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미리 알고 있으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으나 이 지역에는 매복지점이 수십 개나 되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을 해가면서 움직여야한다. 하지만 강주혁은 그 수십 개를 하나도 빠짐없이 꿰고 있었다.

그러니 이 지역을 여러 차례 공략해본 유덕현과 안다정도 어느 샌가 강주혁의 가이드를 따라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길만 잘 찾는 게 아니라 눈도 밝았다.

“저기서 가스가 나오네요. 조심하세요.”

강주혁이 가리키는 곳에 콧구멍만한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구멍에서는 높은 확률로 유독가스가 나온다.

일행은 일부러 구멍에서 멀리 떨어졌다.

“지혜 씨, 지팡이.”

“아, 네.”

이지혜는 지팡이를 강주혁에게 건넸다.

마법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이 지팡이는 공교롭게도 일행이 가진 무기들 중 길이가 가장 길었다.

강주혁은 지팡이의 한쪽 끝을 잡고 팔을 길게 뻗어서 전방의 땅을 툭툭 쳤다. 그렇게 땅의 두드려가면서 천천히 걸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랐다.

툭!

5분쯤 갔을 때, 지팡이 끝으로 건드린 땅이 살짝 흔들렸다. 흙바닥에 작은 금이 갔다. 강주혁은 손을 들어서 일행을 멈춰 세웠다.

“찾았습니다. 매복지점은 저 모서리 반대편인 것 같네요. 대리님, 저기 나무뿌리에 감겨있는 바위 보이시나요?”

강주혁은 절벽에 박혀있는 작은 바위를 가리켰다.

“보여요.”

“벽진궁(壁㣀弓) 한 발 부탁드립니다.”

<벽진궁>은 이름처럼 벽에 맞으면 튕겨 나오는 화살을 쏘는 기술이다. 내공만 많으면 열 번도 넘게 튕기게 할 수도 있다.

슉!

안다정이 시위를 놓자 내공이 실린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갔다.

팡!

강주혁이 가리킨 바위에 맞은 화살은 작은 폭발을 일으킨 후 직각으로 꺾이면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일행들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끄억!”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크어어어어!”

끔찍한 괴성과 함께 좀비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팀장님.”

“준비 됐다.”

좀비가 그리 강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저건 그냥 좀비가 아니라 역병좀비다. 물리면 영화에서처럼 좀비로 변한다.

초인은 비각성자만큼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랭크가 높을수록 좀 더 오래 견딜 수 있기는 하지만 치료제를 맞거나 힐러에게 치유를 받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고강한 고수라도 종국에는 좀비가 된다.

보급품으로 챙겨온 치유제는 한 사람당 3개뿐. 결코 넉넉한 양은 아니다.

“우어어어!”

강주혁은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몰려오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좀비들이 정말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그것들의 다리 사이로 지팡이를 뻗었다.

“귀 막으세요!”

푹!

좀 전에 땅이 흔들렸던 지점을 정확하게 찌른 후 재빨리 지팡이를 회수했다.

콰쾅!

폭발음과 함께 지팡이로 찌른 부분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크아아아!”

커다란 화염이 그 위에 있던 좀비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유덕현이 방패를 앞세우면서 일행들 앞을 막아섰다. 그는 방패를 중심으로 내공을 펼쳐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렇게 폭발로부터 일행을 안전하게 지켜냈다.

“휴우.”

화염이 사라진 자리에는 직경 2미터쯤 되는 크레이터가 생겨있었다. 그 위로 좀비였던 시체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져내렸다.

성한 좀비는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몸의 일부가 남아있는 것도 불에 휩싸여 있어서 빠르게 녹아내렸다. 수십 마리의 역병좀비가 단 한방에 소각되어버린 것이다.

“지옥벌레를 폭탄으로 쓰는 사람은 주혁이 네가 처음일 거다.”

땅에 숨어 있다가 지팡이에 반응해서 폭발을 일으킨 건 지옥벌레라고 불리는 곤충형 몬스터. 전투능력은 없지만 지면 바로 아래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밟으면 폭발해버린다. 일종의 지뢰인 셈. 원래 명칭도 지뢰벌레였다.

하지만 다른 몬스터들이 밟을 때는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지옥벌레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혜 씨 계획입니다.”

강주혁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지팡이를 이지혜에게 돌려주었다.

“아, 아니에요. 이건...”

이지혜는 차마 이 모든 것이 강주혁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으니까.

이지혜는 안다정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첫 공략계획서를 수정해갔다. 하지만 안다정은 계속해서 그녀가 제출한 계획서를 반려시켰다. 아무리 수정해도 나아지지 않자 안다정은 강주혁한테 이지혜를 도와주라고 시켰다.

강주혁은 우선, 상사들이 어떤 기술을 쓸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직접 물어보는 게 아니라 3팀의 공략보고서를 몇 개 훑어봄으로써 모두 알아냈다.

그렇게 상사들의 기술들을 확인한 강주혁은 좀비들을 원거리에서 유인한 후 지옥벌레를 이용해 퇴치한다는 기상천외한 전략을 생각해냈다.

이 지역의 몬스터는 강하지 않다. 하지만 매복에 능하고 상태이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공략은 소모전의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실적점수를 제대로 받기 어렵다. 하지만 몬스터를 이용해 몬스터를 잡으면 피해와 보급품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랬지. 지혜 씨, 수고했어.”

“네...”

입안자는 이지혜였지만 사실상 강주혁의 계획이나 마찬가지. 상사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줬다.

이지혜는 오히려 그런 배려 때문에 더 큰 굴욕감을 느꼈다.

“맹독 구울이 오는 것 같은데요.”

강주혁이 코를 킁킁 거리더니 협곡 위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어요?”

안다정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안다정은 공략 3팀의 헌터들 중 가장 강하다. 그만큼 내공의 양도 많고. 매복이 많은 지역이라 그녀는 기감을 확장해 넓은 지역을 주시하고 있었다.

방금 전, 그녀의 레이더망에 살기와 마력을 품은 일군의 몬스터들이 포착되었다. 속도와 마력으로 추측컨대, 맹독 구울이 맞다.

그런데 안다정이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강주혁이 구울의 접근을 알린 것이다. 내공이 그녀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강주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바람에 악취가 실려 왔습니다. 구울 특유의 악취가요.”

강주혁은 자신의 코를 건드리면서 말했다.

안다정은 코를 킁킁거렸으나 좀비들의 시체에서 나는 악취와 구분되는 냄새는 찾지 못했다.

‘개코인가...’

안다정은 강주혁의 후각이 자신의 기감과 동급이라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다.

“크르르...”

잠시 후, 좀비와 비슷하지만 상체근육과 두개골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맹독 구울이 나타났다. 좀비가 된 상태로 급성장해버린 것 같은 기괴한 형상이었다.

구울의 아가리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커다란 보랏빛 혓바닥이 대롱대롱 거렸다. 안다정은 그제야 강주혁이 말한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주혁아, 지혜 씨 잘 지켜.”

“네. 팀장님.”

“독 조심하고.”

“네. 팀장님도 조심하세요.”

좀비의 역병은 병이 진행되는 동안 신체기능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구울의 맹독은 중독자를 좀비로 만들지는 않지만 신체기능을 빠른 속도로 저하시킨다. 제때 해독하지 않으면 몸이 둔해지고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에 전투가 몇 배로 어려워진다.

“온다.”

맹독 구울은 마치 원숭이처럼 네 발로 절벽을 타고 일행들에게 접근했다.

슉!

안다정이 벽진궁을 날렸다.

타타타!

화살은 협곡과 협곡 사이를 튕겨 다니면서 구울들을 꿰뚫었다.

“크아아악!”

안다정의 활에 맞은 구울들이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이지혜도 매직 미사일을 날려 안다정을 지원했다.

서걱!

강주혁과 유덕현이 땅에 떨어져있는 구울들의 목을 베었다. 언데드라서 화살에 몸통이 뚫리는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또 와요!”

수십 마리의 구울들이 추가로 몰려들었다.

“지혜 씨, 우리가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 <플레어>를 날려.”

불에 약한 언데드들에게는 화염마법을 쓰는 게 정공법.

플레어는 여러 개의 화염줄기를 다수의 적에게 날리는 중급 공격마법으로 유도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좁은 곳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적들을 상대하는 데 적합하다.

“네. 팀장님.”

두 번째 무리는 첫 번째 무리보다 수가 훨씬 많았다. 안다정이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댔으나 모두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밑에서 처리할게요.”

안다정은 곧바로 검을 꺼내들었다.

세 사람은 마법을 준비하는 이지혜를 둘러싼 채 진형을 구축했다.

“크아아!”

서걱! 스걱!

머리 위에서 구울들이 일제히 쏟아져 내리자 난전이 벌어졌다.

“젠장! 긁혔다.”

한꺼번에 대여섯 마리의 구울을 동시에 상대하던 유덕현이 외쳤다.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기 시작했다.

“지혜 씨, 언제 끝나요?”

안다정이 덤벼드는 구울의 머리통을 날린 후 유덕현 쪽으로 이동하면서 물었다.

“거의 다 됐어요!”

“제가 커버하겠습니다! 팀장님은 주사부터 맞으세요.”

갑자기 강주혁의 검이 달구어진 쇠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사신무극검 제 1형(形), 주작검(朱雀).

내공을 화기(火氣)로 전환시켜 검신에 흘려보낸 것이다.

서걱! 서걱!

강주혁이 붉은 빛을 흘리는 검을 휘둘렀다. 그냥 내공만 두른 검에 비해 절삭력이 배가 되었다. 잘려나간 면이 불에 지진 것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다.

구울이 손톱을 할퀴려고 하면 팔을 날리고 아가리를 벌리면 턱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축축하고 두터운 가죽이 두부처럼 썰려나갔다.

“후우.”

강주혁이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내공으로 만들어낸 불의 기운은 검에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육체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피부가 옅은 자주색을 띠었다.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까지 했다.

영약을 먹은 사람처럼 힘과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강주혁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석! 석! 석!

잘려나간 팔다리와 머리통이 사방으로 튀었다. 베인 곳이 새까맣게 그을린 덕분에 독성을 띠는 피가 튀지도 않았다.

촤악!

넘쳐나는 힘으로 검을 휘두르자 한 합에 두 마리의 구울이 두 동강 나기도 했다.

구울들은 어떻게든 강주혁을 할퀴거나 물어뜯으려고 애썼지만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번번이 실패했다.

강주혁은 방어도 하지 않고 공격만 했지만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이동을 하면서 싸운 덕분에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그렇게 강주혁이 두 사람 몫을 해내는 동안 유덕현은 방패로 몸을 가린 후 주사기를 꺼냈다. 주사기의 플라스틱 뚜껑을 입으로 뜯어낸 그는 곧장 그걸 허벅지에 꽂았다.

“오케이. 됐다!”

유덕현이 다시 합류할 때쯤, 기다리던 이지혜의 마법도 준비되었다.

화르르.

여섯 개의 화염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그 중 절반은 아무것도 없는 공중으로 뻗어나갔다.

“어?”

플레어의 타깃이 될 맹독 구울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주혁 쪽에는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잘 그을려진 시체들 뿐.

아수라장에서 공포감을 참아가면서 정신을 집중했는데 그 결과가 너무 허망했다.

“끝났죠?”

안다정이 검을 털면서 말했다.

“오, 주혁이가 제일 많이 잡았네.”

유덕현은 강주혁 앞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면서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강주혁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공을 화기(火氣)로 바꾼 거예요?”

안다정은 강주혁이 죽인 구울들을 살펴보면서 물었다.

“네. 대리님.”

“내공이 조금만 더 있으면 삼매진화(三昧眞火)도 쓸 수 있겠는데.”

삼매진화는 내공을 이용해서 불을 지피는 기술. 허공섭물과 마찬가지로 고수의 반열에 들어야지만 쓸 수 있다.

“하하, 그러면 저도 좋겠네요. 아마 최소 10년은 더 걸릴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주혁은 내공만 충분하다면 언제든 삼매진화를 쓸 수 있었다.

‘내공이 아쉽군.’

회귀 전의 기억과 감각 덕분에 쓸 수 있는 기술들은 많은데 내공이 부족하니 제대로 펼쳐 보일 수가 없었다.

‘...불공평해.’

한편, 이지혜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동료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강력한 마법을 시전해 상황을 역전시키는 게 마법사의 역할. 그런데 강주혁은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전투를 끝내버렸다.

작동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마나로 불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만 오러로 만들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정말로 불을 지핀 건 아니었지만 강주혁은 거의 그것에 근접한 경지를 보여줬다.

‘저건 반칙이잖아...’

사실, 이지혜의 마법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위기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도 잘 했고 시전시간도 길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절에는 모두가 부러워하던 마법이었다.

하지만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버린 강주혁의 활약 때문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상사들은 이지혜에게 칭찬도 위로도 하지 않았다.

이지혜는 지금까지 강주혁의 활약이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저 괴물 같은 인간을 잠깐이나마 몰아붙였다는 김태현에게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저 인간만 없으면...’

나는 결코 모자라지 않다.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건 전부 저 인간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이 이지혜의 마음을 검게 물들여갔다. 그녀는 주머니 속에 있는 두루마리들을 만지작거렸다. 김태현이 강주혁을 죽일 때 쓰라고 준 것이었다.

이지혜는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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