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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공략 5부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27화 공략 5부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공략 3팀은 원래 던전에서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때우고 곧바로 오후 공략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강주혁이 엄청난 속도로 수거작업을 해치워버린 덕분에 점심을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돌아온 일행은 곧바로 다음 지역인 07-A72으로 향했다.
“거기는 웨이포인트가 없어. 옆 동네로 간 다음에 걸어서 들어가야 돼. 예전에 만들어놨는데 관리가 잘 안 됐거든.”
유덕현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3팀은 바로 옆 지역의 웨이포인트로 간 후 도보로 공략지역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마석채굴 작업이 한창인 돌산을 가로질러야했다. 광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암벽에 박혀있는 마석을 뽑고 있었다.
“수고들 하십니다.”
선두에 선 유덕현이 인사를 건넸다. 광부들도 잠시 곡괭이를 내려놓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지나치려는 찰나, 누군가 소리쳤다.
“이게 누꼬!”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수십 명의 시선이 공략 3팀에게로 쏠렸다.
일행은 영문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점마 저거 강주혁이 아이가!”
“어? 주혁이다!”
“주혁아!”
수십 명의 광부들이 곡괭이를 내려놓고 공략 3팀에게, 엄밀히 말하면 강주혁에게로 몰려들었다. 광부들에게 둘러싸인 일행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했다.
인턴으로 뽑히기 전 강주혁은 이 채광팀의 막내로 일했었다. 헌터들의 관리 소홀로 채광현장에 몬스터들이 나타났을 때 강주혁은 단신으로 곡괭이를 휘두르면서 몬스터와 싸웠다.
덕분에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근처에서 순시를 돌다가 현장으로 달려온 이윤철 사장은 강주혁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그에게 헌터 인턴자리를 제안했다.
그렇게 광부에서 헌터가 된 것이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강주혁은 코등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회귀를 안 했다면 몇 주 만에 만나는 거지만 회귀한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20년 만에 만나는 거니까.
강주혁이 이 광부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답게 거칠고 투박한 면도 있지만 그만큼 진솔하고 인간적이기도 했다. 강주혁은 고향에서 같은 일을 하는 형을 떠올리면서 선배들을 무척 잘 따랐다. 그들 역시 강주혁을 잘 이끌어주었다.
“이야, 우리 주혁이 진짜 헌터가 됐네.”
광부들 중 가장 체구가 큰 사내가 강주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팀장님도 잘 지내셨죠?”
꾀죄죄한 몰골에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사내는 채광팀장 김용수였다. 얼굴이 웃는 상이라서 그런지 퍽 친근한 인상을 줬으나 몸은 위협적으로 보일만큼 우락부락했다.
김용수는 경상도 출신으로 동향사람인 강주혁을 무척 아꼈다. 광산에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더 나은 곳으로 가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여줬기에 다른 광부들도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헌터 일은 할만 하드나?”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죠. 여기 계신 팀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용수의 시선이 유덕현에게로 향했다.
유덕현은 강주혁이 옛 직장동료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는 걸 보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유덕현은 강주혁이 실력뿐만이 아니라 인성도 썩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다.
누구나 상사 앞에서는 겸손하고 반듯한 사람처럼 행세한다. 그래도 타고난 본성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다.
유덕현은 겉보기에는 예의바르고 착한 이지혜가 욕심도 많고 못된 구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콕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러 사람을 겪으면서 생긴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반대로 강주혁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히든 피스 사건 때 보여준 모습만 봐도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인복은 좀 있나보군.’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사람을 부하로 두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팀장님. 우리 주혁이 잘 좀 봐주이소. 인마 이거 완전 진국입니다. 일도 꼼꼼하게 잘 하고 엄청 성실하거든요. 혼자서 거의 두세 사람 몫을 하는 놈이라서 임마 빠진 후로 한동안 고생 좀 했십니더.”
“그럼요. 팀장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덕현은 웃으면서 김용수와 악수를 나눴다.
“주혁이 아니었으면 여 있는 사람들 중 태반이 다치거나 죽었을 깁니다. 우리 생명의 은인이니 꼭 좀 잘 챙겨 주이소.”
“어휴, 김 팀장님, 그만 하세요. 술 한 잔 사주셨으면 됐죠. 구질구질하게 왜 이러세요.”
얼굴이 빨개진 강주혁은 손사래를 쳤다.
“시끄럽다, 임마. 니 아니었으면 내 우리 딸래미 얼굴도 못 봤을 기다. 아, 맞다. 말 나온 김에 함 물어보자. 니 우리 딸래미 한번 만나 볼래? 우리 집사람 닮아서 아가 이뻐.”
“아니, 팀장님. 저는 왜 안 소개시켜줍니까. 제가 몇 번을 부탁드렸잖아요.”
뒤에 있는 젊은 광부 한 사람이 투덜거리자 광부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이 자슥아, 니랑 주혁이랑 같나. 산도적 같이 생겨가지고 어디 금지옥엽처럼 키운 우리 딸래미를 탐내노. 거울 좀 보고 살아라.”
김용수의 호통에 광부들이 또 한 번 박장대소했다.
“하하, 말씀은 감사하지만 요즘 헌터일 배우느라 정신이 없네요.”
“김 팀장!”
그 때, 모여 있는 사람들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돌리니 깐깐한 인상의 안경잡이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건가?”
“아이고, 소장님 오셨습니까. 우리 팀에 있던 친구가 와가지고.”
“여기가 무슨 애들 놀이터야. 친구 왔다고 일 던져놓고 딴 짓 하게. 작업량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도 이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알겠습니더. 지금 복귀하겠습니다.”
“작업량 못 채우면 휴식도 퇴근도 없어! 빨리 돌아가서 일해.”
“주혁아, 또 연락하자.”
“네. 팀장님. 몸조심하세요. 형님들, 다음에 또 뵐게요.”
“그래. 너도 몸조심해라.”
그렇게 찝찝한 마음으로 짧은 해후를 끝내고 떠나려는데 소장이 말을 걸었다.
“소속이 어딥니까?”
같은 회사라고는 해도 헌터들과 광부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분차이가 존재한다.
지금이야 정부의 압박 때문에 공략회사들이 광부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전부 하청을 줬다. 태원공략도 그랬고.
태원공략과 채광업체 사이에는 갑을관계가 존재했다. 조직 간의 관계는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
광부들은 직급에 상관없이 헌터들의 눈치를 봤고 헌터들 중에는 이런 분위기를 악용해서 광부들에게 갑질을 해대는 인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장은 헌터들 앞인데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공략 1부 3팀의 유덕현 팀장입니다.”
상대가 위압적으로 굴자 소심한 유덕현은 저자세로 나갔다. 현장소장 정도면 부장급이니 직급상 팀장보다 높기는 했다.
“일 하는 거 방해하지 마시고 가던 길 가시죠.”
“뭐요? 우리가 언제 방해했다고 그래요.”
안다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쪽 때문에 작업이 중단되었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한가하게 보입니까.”
“그냥 지나가던 길에 마주친 거예요.”
“왜 공략팀이 광산을 지나쳐갑니까. 길이 여기밖에 없어요.”
안다정이 폭발할 조짐을 보이자 유덕현이 끼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강주혁이 한 템포 빨랐다.
“이형석 차장님, 아니 이제 현장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현장소장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의 옷에는 이름을 알 수 있을 만한 무엇도 없었다. 공략 3팀 사람들도 깜짝 놀라서 강주혁을 쳐다봤다.
“날 알고 있나?”
“공략 5부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형석 소장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헌터로 차장까지 단 사람이 광산의 현장소장이 되는 경우는 좌천뿐. 거느리는 사람이야 현장소장이 더 많지만 연봉이나 사회적 대우는 공략회사 차장 쪽이 훨씬 높다.
“헌터셨으니까 잘 아시겠죠. 웨이포인트가 없는 지역을 공략할 때는 잘 알려져 있고 안전이 확보된 경로를 이용해야한다는 걸요. 우리도 원해서 이 길로 가는 게 아닙니다.”
할 말이 없어진 이형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주혁을 노려보았다.
“자네 이름이 뭔가?”
“강주혁 인턴입니다.”
“인턴?”
“네. 아직 인턴입니다.”
이형석 소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강주혁을 아는 눈치였다. 최근에 회사에서 가장 회자가 많이 된 인물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만 가 봐. 다음에 지나갈 때는 광부들 상대 하지 말고.”
“실례했습니다. 가시죠. 팀장님.”
“어, 그래. 그래.”
광산을 벗어나자 유덕현과 안다정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이형석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데.”
“나도다. 주혁아, 너는 어떻게 알았냐?”
“회사근처 국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우리 회사직원들로 보이는 분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찮게 들었습니다. 공략 5부에서 차장으로 있다가 채광팀 현장소장이 되신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회귀를 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걸 밝힐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아까 그 사람이란 건 어떻게 알았냐?”
“궁금해서 좀 찾아봤거든요.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별 걸 다 궁금해 하는구나. 공략 5부는 나도 아는 게 없는데.”
태원공략에는 공략부만 열 개가 있다. 각 부에는 적게는 30명, 많게는 50명 정도의 헌터들이 소속되어 있고.
게다가 강남의 광야에 투입되는 건 공략 1부에서 4부까지. 공략 5부는 광야가 아니라 다른 지역을 담당한다. 사실상 만날 일이 없다.
“근데 어쩌다가 현장소장이 된 거야?”
“아티팩트를 빼돌리려다가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잘려야하는 거 아니야?”
“빼돌려서 팔아먹었으면 잘리거나 감옥에 갔겠죠. 그냥 시도만 했다가 팔아먹기 전에 걸렸나 봅니다.”
“엄청 깐깐하게 생겼던데 의외로 허술한 양반이었군. 근데 저렇게 되면 자존심 상해서 그냥 나가버리지 않나.”
“회사가 붙잡지 않았을까요?”
세 사람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강주혁을 바라봤다.
“회사물건에 손을 대서 좌천까지 시킨 사람을 회사가 붙잡는다고요?”
“붙잡는다기보다는 협박을 했겠죠. 소문을 내겠다고요. 그럼 다른 공략회사에 가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손버릇 나쁘다는 거 소문나면 이 바닥에서 버티기 힘들지.”
“차장급 인력이면 회사 입장에서도 아깝지 않을까요. 헌터로 써먹기에는 찝찝해도 다른 일은 시킬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일?”
“네 팀장님. 우리가 가는 07-A72는 공략기피지역이잖습니까.”
“공략기피지역이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가 고른 지역이 기피대상이라고 하니까 놀란 것이다.
“헌터들이 맡기 싫어하는 지역들을 그럴 듯하게 부르는 거예요. 공략하는 건 어렵지만 매출은 생각만큼 안 나오는 곳들이죠. 07-A72가 대표적이죠.”
안다정의 설명에 이지혜가 시무룩해졌다.
세 사람은 알고 있는 걸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차피 우리가 공략해야 하는 지역이에요. 그렇게 인상 쓸 필요 없어요.”
“네. 대리님.”
안다정이 웬일로 이지혜를 다독여줬다. 하지만 이지혜의 표정은 편치 않았다.
“그래. 근데 07-A72이 공략기피지역인 거랑 도둑질하려다 걸린 인간을 현장소장으로 좌천시킨 거는 무슨 상관이냐?”
유덕현이 물었다.
“공략기피지역이니까 몬스터들이 지역을 이탈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광부들도 위험해지죠.”
공략팀들도 기피지역의 공략은 데드라인인 리스폰 데이 직전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다.
몬스터들이 그렇게 한 지역에 오랫동안 방치되면 자기가 속한 지역을 벗어나기도 한다. 고블린 신전에서 만난 오거도 인근지역에서 넘어온 것이다.
만약 07-A72의 몬스터들이 방치되다가 자기지역을 벗어나게 되면 바로 옆에 있는 채광현장이 위험해진다.
“광부들을 지키기 위해서 헌터출신을 현장소장으로 배치한다?”
“네. 팀장님. 차장급이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요.”
“일리가 있군.”
유덕현은 강주혁의 혜안에 또 한 번 감탄했다. 회사를 오래 다녀본 사람이라면 관련정보를 듣고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인턴이 생각해낸 건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럼 저 재수 없는 소장님이 주혁 씨 후임인 셈이네요. 광부들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크크, 듣고 보니 그러네. 선배로서 조언이라도 한 마디 해주지 그랬냐.”
“아무리 그래도 소장님이신데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유덕현과 안다정은 별거 아닌 일로 시비를 걸었던 이형석 소장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근데 솔직히 우리한테 고마워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고마워하다니?”
“우리가 07-A72를 청소해주잖아요. 아직 데드라인까지도 며칠 남았는데. 우리가 방치하다가 몬스터가 넘어가면 본인만 고생하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요?”
강주혁의 말에 안다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어떻게 헌터가 될 수 있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아...”
“아마 소장님은 07-A72에서 몬스터가 넘어오기를 바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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