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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26화 (2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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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다 끝났습니다.

26화 다 끝났습니다.

“...주혁 씨가 알아차렸어요.”

이지혜는 턱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뭐를?”

“제가 약을 탄 음료를 줬다는 거요.”

“그 새끼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도 몰라요. 근데 안 마시고 아는 사람에게 가져가서 성분을 확인해봤대요.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데요.”

“허, 어이가 없네. 아니 직장동료가 사준 커피를 왜 안 처마시고 검사를 해. 미친놈인가?”

“정보가 샌 거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 직속부하한테 부탁한 거야. 이런 일 한두 번 해본 양반이 아닐 텐데 그런 실수를 하겠냐. 그 사람 빼고는 너랑 나밖에 몰라.”

“...병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봐요.”

이지혜는 내심 김태현의 분노가 자신이 아니라 강주혁에게 옮겨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김태현의 타깃은 분명했다.

“근데 그 새끼가 알아차렸다는 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냐?”

이지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문이 막히자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번 눈물보가 터지자 눈물이 계속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에 타기 전,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울고불고하면서 매달리면 김태현이 용서해줄지도 몰랐다.

원래는 연기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정말로 상황이 닥치자 두려움 탓에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야, 이게 질질 짠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 같아?”

“미안해요. 오빠. 강주혁 그 새끼가 감사실에 가서 알리겠다고 했어요. 감방에 처넣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이지혜는 한참동안 코를 훌쩍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댔고 김태현은 창밖의 구덩이를 보면서 침묵을 지켰다.

“지혜야.”

이지혜가 좀 진정이 됐을 때 김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좀 전보다는 확실히 누그러져있었다.

“네. 오빠.”

“강주혁 밉지?”

“미워요.”

우느라 코가 막힌 이지혜는 코맹맹이 소리로 답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

“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요.”

언제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이지혜는 강주혁만 없으면 자신이 상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거라고, 공략 1부의 자랑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죽여.”

이지혜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네?”

“죽이라고?”

“어떻게요?”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

김태현은 마치 악마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웃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강주혁이 없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죽이라고 하니까 덜컥 겁이 났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네?”

“내가 왜 강주혁을 처내는 게 중요한지 말하지 않았나?”

“했어요. 사장님이 뽑은 인턴이라서...”

“그래. 근데 그냥 회사를 나가버리면 사장이 헛짓거리를 했다는 것밖에 안 되잖아. 그것만으로는 흠집 내기밖에 안 돼. 하지만 그 새끼가 던전에서 죽어버리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지혜는 김태현을 보고 신데렐라의 환상을 품었다.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 중에 백마 탄 왕자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악에 받쳐서 선을 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김태현을 보니 엮이면 안 되는 사람과 엮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에서 인턴이 다치기만 해도 노발대발했던 회장님인데 죽으면 어떻게 나올까. 아마 이윤철도 자리보전하기 어려울 걸.”

김태현은 자기생각에 취해서 이지혜가 자신을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뒷감당은 어떻게 하고요?”

“어차피 완전범죄가 될 건데 그런 걱정은 왜 하냐.”

“저는 못 해요.”

“지혜야.”

“못해요. 오빠. 이건 아니에요.”

“내가 지금 너한테 부탁하는 걸로 보이냐.”

이지혜는 숨을 죽였다. 김태현이 뿜어내는 살기 때문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너희 집 빚이 좀 많더라. 가게 몇 번 말아먹었지?”

김태현의 말대로 이지혜의 집은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퇴직 후 벌였던 장사들이 모두 망해버린 탓이었다.

월급을 받아도 생활비 약간을 제외하고는 돈을 모두 가족들에게 보내야하는 상황이다.

“제 뒷조사까지 한 거예요?”

“더한 짓도 할 수 있어.”

김태현은 턱짓으로 괴물의 아가리처럼 시커먼 구덩이를 가리켰다. 이지혜는 저 구멍이 김태현의 목구멍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꼴깍 소리를 내면서 침을 삼켰다.

“오빠...진짜 미쳤구나.”

“너 하나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거, 나한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야.”

“허, 헛소리하지 마요.”

“왜? 못할 거 같아?”

김태현은 고개를 돌려 이지혜를 노려보았다.

이지혜는 김태현의 광기어린 눈을 보고 그가 진심이라는 걸 확인했다.

“날 엿 먹인 새끼들 중에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선택해. 저기 묻히거나 강주혁을 죽이거나. 후자를 선택하면 너희 집 빚은 내가 다 갚아줄게.”

이지혜의 동공이 미친 듯이 떨렸다.

“너 강주혁한테 약점 잡혔잖아. 그 새끼가 그거 틀어쥐고 계속 협박해댈 건데 그냥 내버려둘 거야?”

김태현의 말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귓가를 간질였다.

“오빠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요!”

“허? 좋다고 약 받아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내 탓을 해? 제안은 내가 했지만 승낙은 네가 한 거야.”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에요.”

“나는 아직도 네가 지었던 그 표정이 눈에 선하다. 강주혁 골탕 먹일 수 있게 됐다고 신나하던 게 누군데.”

따지고 보면 그 약도 헌터인 강주혁에게는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이지혜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강주혁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눈이 멀어있었던 것이다.

“같잖은 위선을 떨지 마. 너도 나 같은 쓰레기라는 거 잘 아니까. 쓰레기라면 쓰레기처럼 굴어. 나처럼.”

이지혜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상태로 김태현에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 * *

다음 주 월요일.

공략 1부 3팀은 오전부터 던전에 들어갔다.

“덥네요.”

안다정은 답답한지 목에 차고 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한 차례 전투를 끝낸 일행은 마석을 수거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사체에서 마석을 빼내는 단순작업이지만 이 지역의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다들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벌써부터 악취가 나고 파리까지 꼬여서 불쾌감은 배가 되었다.

“대리님, 답답하시면 목걸이를 푸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안 답답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다정은 여전히 목걸이를 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뭘까?’

회귀 전에도 후에도 강주혁은 안다정이 목걸이를 풀고 있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화장도 안 하고 옷도 대충 입고 다니는데 목걸이만큼은 큐빅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걸 하고 다닌다. 그 괴리감이 상당해서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 텐데도 안다정은 묵묵히 목걸이를 차고 다녔다. 처음에는 안 어울린다고 흠을 잡던 사람들도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그 꾸준함에 질려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안다정을 흠모하는 몇몇 남직원들은 첫사랑이 준 선물이 아닐까라고 추측했고 그녀를 시기하는 이들은 안다정에게 나이에 걸맞지 않는 스펙을 갖게 해준 아티팩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안다정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유덕현 팀장의 의견을 달랐다.

“긴고아야. 긴고아. 저거 벗으면 더 미쳐 날뛸 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목걸이 때문에 짜증이 쌓여있던 안다정은 빽 하고 고함을 질렀다.

강주혁은 회귀 전 생각이 나서 웃음을 흘리다가 고개를 돌리는 안다정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안다정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렸다.

‘웃어?’

그녀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주혁 씨.”

“네. 대리님.”

안다정이 수거작업에 쓰는 단검을 죽은 오크의 명치부분에 꽂아 넣으면서 물었다.

“수거작업에 대해서 한번 설명해 봐요.”

“몬스터의 몸속에 있는 마석을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몬스터 몸속에 마석이 왜 있는 거죠? 역할이 뭐에요?”

“몸에 마나나 오러와 같은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인간의 단전과 같은 역할이죠. 강한 몬스터일수록 마석의 순도가 높습니다. 그만큼 에너지효율이 높기에 가격도 비싸죠.”

“그럼 이 싸구려 단검으로 피부를 뚫을 수 있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겠네요.”

“죽으면 마석이 더 이상 몸에 오러를 공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러가 공급되지 않으니 오러 스킨도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비전투용 검으로도 피부를 뚫을 수 있는 겁니다.”

“오러 스킨이 뭔데요?”

“마석에서 흘러나온 오러가 피부 위에 하나의 층을 만드는데 이것을 오러 스킨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호신강기와 비슷합니다.”

“몬스터의 오러 스킨 때문에 헌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요. 그건 왜 그런 거죠?”

“총 같은 현대화기로는 오러 스킨을 뚫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인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이죠.”

“총이 안 통하는 상대에게 검이나 활은 어떻게 통하는 거죠?”

“엄밀히 말하면 오러 즉, 내공을 실은 검이나 활이 통하는 겁니다. 오러가 담긴 공격만이 오러 스킨을 뚫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러를 다루는 각성자가 필요합니다.”

“총에는 오러를 실을 수 없나요?”

“있습니다. 하지만 효율이 떨어지죠.”

“왜 떨어지는데요?”

“물체의 내공 전도율은 그 물체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떨어집니다. 총은 활이나 칼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그만큼 전도율이 떨어집니다. 내공을 실을 수는 있어도 전도율이 낮으니 파괴력이 떨어집니다. 절정의 고수라면 기관총으로 오러 탄을 날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같은 내공의 양이라면 총보다는 검을 쓰는 게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재미없어.’

강주혁이 막힘없이 정답을 술술 말하자 안다정은 입을 비쭉이 내밀어보였다.

신입이면 좀 어설픈 면도 있어야하는데 강주혁은 이론도 실기도 너무 완벽해서 빈틈이 없었다. 혼내는 맛도 가르치는 맛도 없다.

“안 대리, 지금 트왓 만점자한테 그런 기초적인 걸 물어보는 거야?”

“기초적인 것일수록 확실하게 알아야죠.”

일반인들도 몬스터들에게 총이 안 통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게 오러 스킨 때문이라는 것도.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오면 다들 헌터를 찾지 경찰이나 군인을 찾지는 않는다. 그런 건 상식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총은 안 되는데 칼이 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 기초적인 개념을 단순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은 쉬워 보이면서도 은근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헌터 아카데미 교본을 통째로 머릿속에 쑤셔 넣은 사람마냥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定義)를 매번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답했다.

“난 지금 트왓 봐도 만점 받을 자신 없다. 아마 이론만 놓고 보면 주혁이가 우리보다 나을 걸?”

‘다른 것들도 나을 지도 모르죠.’

안다정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강주혁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리 오러 스킨이 사라졌다고 해도 오크의 피부는 엄청나게 두껍다. 그런데도 강주혁의 단검은 쑥쑥 들어갔다.

수거작업에 쓰는 단검들은 모두 똑같은 것. 강주혁만 특별히 좋은 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공을 쓰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구역질을 참아가면서 상처를 벌이고 속에 있는 것들을 헤집은 끝에야 마석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반면에 강주혁은 딱 마석이 나올 만큼의 상처만 만들어서 손쉽게 뽑아냈다. 피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어디를 어떻게 찌르고 갈라야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마치 도축 작업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도살자처럼.

‘고블린도 저런 식으로 잡았었지.’

안다정은 강주혁의 모든 동작에서 추구되는 경제성을 또 한 번 읽을 수 있었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다른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석 하나를 뽑아낼 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대여섯 개를 뽑아냈다. 작업속도가 가장 느린 이지혜와 비교하면 거의 열배나 차이가 났다.

“아닙니다. 팀장님. 왜 그러세요.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도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좀 전에 안다정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손은 계속해서 마석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유덕현과 이지혜는 아직까지 강주혁의 정신 나간 작업속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나한테는 질문도 안 하네.’

한편, 이지혜의 속은 뒤틀려가고 있었다.

안다정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서 깨지고 대답을 잘한 강주혁과 비교를 당하는 일이 하루에 한 번 꼴로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강주혁과 안다정에 대한 증오심은 커져만 갔다.

김태현의 협박이나 마찬가지인 제안을 받아들이고도 주말 내내 고민해왔던 이지혜였다. 잘못될 경우 인생이 끝장나니까. 김태현이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했었다.

하지만 강주혁과 안다정을 보고 있으니 김태현이 시키지 않아도 일을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지혜 씨.”

“네. 팀장님.”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요. 하하.”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오늘 공략 때문에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잠을 좀 설쳤어요. 헤헤. 공략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아침에 커피도 진하게 한 잔 마셨어요.”

“맞다. 오늘 오후에 공략할 지역이 지혜 씨가 처음으로 입안한 곳이지.”

오전에는 지난주에 끝내지 못한 이 지역을 정리했다. 오후부터는 이지혜가 공략계획을 세운 07-A72지역을 공략하기로 되어있었다.

“네. 팀장님.”

“이번만큼은 지혜 씨가 리더나 마찬가지야.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네. 팀장님. 명심할게요.”

“아이고, 힘들다. 잠깐 쉬었다 할까?”

유덕현은 수거용 단검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다 끝났습니다. 팀장님. 시간도 남았는데 밖에 나가서 밥 먹고 오는 건 어떨까요?”

강주혁이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뭐?”

그제야 유덕현은 강주혁 옆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마석 더미를 봤다.

유덕현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마석추출이 안 된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언제 다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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