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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그럼 꼭 이기겠습니다.
23화 그럼 꼭 이기겠습니다.
“야, 박동수, 너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강주혁의 시험결과를 받아든 인사팀 곽진섭부장은 격노를 터뜨렸다. 그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으니까.
“아닙니다. 팀장님. 제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박동수였다. 곽진섭은 시커먼 눈썹을 씰룩거리면서 박동수를 노려보았다.
인사팀이면서 자신과는 달리 신대성 라인을 타고 있는 간 큰 자식. 이 놈이라면 강주혁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현직 헌터들도 거의 다 떨어지는 시험을 인턴이 무슨 수로 만점을 받아. 이게 말이 돼?”
“저도 믿겨지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감독 똑바로 한 거 맞아?”
“네. 바로 앞 의자에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팀장님도 와서 보시지 않았습니까.”
침착하고 당당하게 답하는 박동수를 보면서 곽진섭은 오만상을 썼다. 그의 시선이 옆에 서있는 황순오 사원에게로 옮겨갔다.
“확실해?”
“네. 팀장님. 어떤 부정행위도 없었습니다.”
황순오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팀장인 자신을 따라 신대승 라인을 타기로 했으니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30분 만에 다 풀었으니 커닝은 불가능하다.
100문제를 30분에 풀려면 18초당 하나씩 풀어야한다. 문제를 읽자마자 고민도 없이 답을 체크하고 넘어가야지만 가능하다. 다른 걸 찾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그러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딱 하나.
“전산팀 불러서 컴퓨터 확인해봐.”
“그 컴퓨터는 시험 직전에 부장님께서 직접 골라주시지...”
“그냥 무작위로 하나 고른 거지 그 컴퓨터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토 달지 말고 당장 연락해서 확인해. 전산오류가 아닌 이상 이런 결과가 나올 리가 없잖아.”
“네. 팀장님.”
박동수는 이 이상 곽진섭 부장의 화를 돋우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곧바로 부장의 명령을 이행했다.
박동수 역시 강주혁의 시험점수가 믿겨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 분명 컴퓨터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산팀 직원들은 조사 후 컴퓨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고 인사팀은 단체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 * *
“뭐? 100점이라고?”
“네. 팀장님. 그렇게 나왔습니다.”
“난 네가 너무 빨리 돌아와서 시험을 포기한 줄 알았다. 정말 100점 맞아?”
“네. 저도 잘못 나온 줄 알고 물어봤는데 인사팀 박동수 대리가 100점이 확실하다고 확인해줬습니다.”
“봐요. 제가 뭐랬어요. 주혁 씨한테 어려운 게 아니라니까요.”
트왓의 악명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안다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신입공채출신인 유덕현과 이지혜는 완전히 얼이 빠져있었다.
“안 대리,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태원공략의 신입사원들 중에 트왓 만점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진짜요? 그렇게 어려워요?”
안다정은 그제야 놀라워했다.
“말했잖아. 던전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이상한 것들까지 다 물어본다니까. 안 대리도 만점은 무리일 걸.”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한 번 쳐보고 싶네요.”
안다정이 쓸데없이 승부욕을 드러내는 걸 보고 강주혁은 웃음을 지었다.
회귀 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발치에도 닿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신한테 라이벌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다.
“강주혁!”
그 때, 우렁찬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무실에서 저렇게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강주혁은 3팀 파트로 들어오는 임재경 부장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잘 했어. 인마. 내 그럴 줄 알았지. 하하.”
임재경 부장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강주혁의 등을 팡팡 소리가 나도록 쳤다.
“자, 다들 주목.”
임재경 부장의 말에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강주혁이 정규직 전환 시험 보는 거 다들 알고 있지.”
“네. 부장님.”
“이 녀석이 방금 트왓에서 만점을 받았다.”
잠시 정적. 아무도 믿지 못해서였다.
“내가 하는 못 들었어?”
임재경이 말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인사팀이 일부러 시험을 어렵게 냈다더라. 그런데도 30분 만에 풀고 나왔지.”
박수와 환호 소리가 더 커졌다. 강주혁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유 팀장.”
“네. 부장님.”
“오늘 저녁에 회식 한 번 해. 내일 실기시험 봐야하니까 술은 적당히 먹이고.”
임재경 부장이 법인카드를 내밀었다.
곽진섭 부장이 강주혁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온갖 수작을 부렸다는 걸 박동수 대리가 알려줬다. 그런 곽진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유덕현이 카드를 받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임재경은 강주혁을 보고 말했다.
“남은 시험도 잘 봐. 필기 만점 받아놓고 떨어지기만 해봐라. 가만히 안 둬.”
“네! 부장님! 꼭 합격하겠습니다.”
임재경은 강주혁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왓이 던전에서는 쓸모없는 지식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했다. 그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헌터를 걸러내기 위해 고안한 수단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헌터 생활로 잔뼈가 굵은 임재경 부장의 생각은 달랐다.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움만 잘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싸움실력만 믿고 설쳐대다가 던전에서 비명횡사한 헌터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임재경에게 강주혁이 받아온 필기점수 만점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크게 될 놈이다.’
만약 강주혁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든다면 임원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장자리까지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임재경 부장이 껄껄 웃으면서 부장실로 가자 다른 직원들이 3팀 쪽으로 몰려들었다.
“축하해요. 주혁 씨.”
“어떻게 한 거예요?”
“근데 진짜 만점 맞아?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는데. 부럽다.”
“입사시험 잘 본 건데 뭐가 부러워.”
“몰라서 하는 소리. 트왓 점수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가.”
“그 얘긴 나도 들었어. 나중에 임원진급심사 할 때도 트왓 점수 본다더라.”
“진짜요? 에이, 설마.”
“유 팀장은 좋겠네. 안 대리에다가 주혁 씨까지. 아주 든든하겠어.”
강주혁과 공략 3팀 사람들은 한참을 공략 1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어야 했다.
‘허물어졌네.’
그 모습을 보면서 안다정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사내정치를 안 하는 유덕현과 타협할 줄 모르는 자신의 성격 탓에 공략 3팀은 항상 고립되어있었다. 겉으로는 함께 해도 공략 3팀과 다른 팀 사이에는 심리적인 벽이 있었다.
그동안 벽을 허물지 않았던 이유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했기 때문이다. 상사인 유덕현도 원치 않았고.
하지만 강주혁은 간단히 그 벽을 무너뜨려버렸다. 공략 3팀은 자연스럽게 다시 공략 1부에 스며들었다.
‘나쁘진 않네.’
안다정은 이런 변화가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뭔가를 희생하거나 양보하지 않고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니까. 그래서 이런 변화를 일으킨 강주혁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지혜 씨만 빼면.’
안다정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이지혜를 슬쩍 봤다. 그녀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강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인 이지혜였다. 몇 번 혼을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안다정은 그 원인이 강주혁에게 있다고 추측했다. 무슨 근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느낌상 그랬다.
‘주혁 씨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나?’
이지혜가 콧대가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주혁 정도면 미녀들도 먼저 들이댈 만한 남자였다.
그 때, 고개를 돌리던 이지혜가 안다정과 눈이 마주쳤다. 안다정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혜 씨.”
“네. 대리님.”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아, 그게...”
이지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 같은 표정으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할 말 있어요? 회의실 갈래요?”
“네. 근데 팀장님도 들으셔야할 것 같아요.”
“알겠어요.”
안다정은 더 묻지 않고 강주혁과 유덕현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그만 돌아가 주실래요? 우리 팀 회의 있어서요.”
“뭐? 회의?”
유덕현은 잠시 어리둥절해했으나 안다정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주혁 씨도 와요.”
“네. 대리님.”
공략 3팀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지혜 씨가 할 말이 있대요.”
“중요한 일이야?”
“네. 그게...”
이지혜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공략 2부 김태현 사원 아세요?”
“알아요. 태원전자 신대승 사장 아들 맞죠.”
“아, 나도 들었어. 이번에 태원공략 들어온 거지? 그럼 지혜 씨 동기인가?”
입사 후 몇 주가 지나서인지 유덕현도 김태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네. 제가 동기라서 김태현 사원이랑 좀 친하거든요. 좀 전에 김태현 사원한테 들은 건데 주혁 씨 실기시험 볼 때 대련자로 나설 거래요.”
필기시험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두 개의 실기시험을 봐야한다.
첫째는 몬스터와의 전투. D급 몬스터 한 마리를 제한시간 내에 죽여야 한다.
둘째는 사람과의 전투. 사원급 직원과 대련해서 이겨야한다.
“뭐라고?”
유덕현이 인상을 팍 썼다.
아무리 서자라고는 해도 로열패밀리다. 공략업계의 로열패밀리들은 예외 없이 동년배들을 상회하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 어린 시절부터 받게 되는 체계적인 교육,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영약, 가문의 비전절기.
이런 요소들 덕분에 대부분 직급을 초월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 무늬는 사원이지만 김태현의 실력도 분명 대리급이다.
“이유가 뭐래?”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주혁 씨가 연수원에서 3등 했던 최석도 사원을 이겨서 그런 것 같아요.”
“2등은?”
“2등은 지혜 씨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마법사처럼 몬스터와의 전투에 특화되어있는 클래스는 대련자로 잘 나서지 않는다.
“주혁아.”
“네. 팀장님.”
“너 혹시 우리 회사 높으신 분들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없습니다. 팀장님.”
“그냥 신입사원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야지만 뽑아주겠다는 거잖아요. 그래야지만 특혜를 줬다는 얘기가 안 나올 거니까.”
안다정은 김태현이 대련자로 나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건 나도 아는데 그럴 거면 2년차 사원을 내보내야지. 주혁이가 지혜 씨 기수의 후배라고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
입사시험에서 대련자로 나서는 건 대개 바로 위 기수의 선배들이다. 그래야 지원자들도 어느 정도 비벼볼 수는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인사팀 마음이죠. 관례를 크게 어긴 것도 아니고요.”
“관례대로 열심히 싸우면 적당히 하다가 봐주겠지?”
1년 동안 회사에서 구른 선배사원을 지원자가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원자가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면 선배들이 기권해서 져주는 게 관례다.
간혹 압도적인 기량으로 선배들을 꺾고 들어오는 지원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아닐 겁니다.”
강주혁이 말했다.
“아니라고? 어째서?”
“저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인사팀이 저를 떨어뜨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봐주지는 않을 겁니다.”
“맞다. 임 부장님도 인사팀 놈들이 필기시험 난이도 엄청 높였다고 했었지. 혹시 인사팀한테 찍힐 만한 일이라도 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짐작 가는 건 있습니다.”
“뭔데?”
“제가 공채에서 한 번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떨어뜨렸던 사람이 뽑은 사람들보다 나으면 인사팀이 일을 똑바로 안 한 셈이 되니까요.”
“일리가 있네요.”
“쪼잔한 놈들, 일을 똑바로 안 했으면 앞으로 잘 할 생각을 해야지.”
유덕현은 툴툴거렸으나 그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주혁 씨.”
“네. 대리님.”
“이길 수 있겠어요?”
회귀 전, 훈련장에서 싸운 사람은 최석도가 아니라 김태현이었다. 강주혁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을 정도로 김태현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내공을 다루는 감각은 부장급이고 히든 피스를 일찍 찾은 덕에 내공도 D급이 되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물론입니다.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다니?”
“제가 로열패밀리를 이기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 팀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요.”
강주혁의 우려에 유덕현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안다정도 피식 웃어보였다.
“어차피 바닥인데 불이익을 받아봤자 얼마나 받겠냐.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불이익을 받더라도 주혁 씨가 우리팀에 남아있는 게 더 큰 이득이에요.”
덕분에 강주혁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꼭 이기겠습니다.”
“로열패밀리이고 나발이고 그냥 발라버려.”
“네!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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